059. 삐뽀삐뽀, 철컹철컹 나쁜 놈들 ‘처’ 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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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새 차 냄새 너무 좋다! 진짜! 이 중사님! 저 한 번만 앉아 봐도 되겠습니까?”
“이 브랜드 지금 주문해도 오래 걸리지 않아요? 요즘 뱃길 험하다고 그랬는데…….”
식후 몰려든 사람들이 식당 앞에 세운 주환의 차 주변에 몰려들어 한마디씩 했다. 차주는 옆에 두고, 나리가 훠이훠이 팔을 크게 휘저으며 날파리 떼를 쫓았다.
“자자! 금쪽같은 자유 시간에 어서 가서 할 일들이나 합시다? 조금 있으면 소등 시간입니다.”
“와, 치사합니다! 이 중사님! 페어 생겼다고 이러시깁니까?!”
야유가 쏟아졌다. 나리는 작게 혀를 내밀었다. 평소처럼 밝아진 나리의 모습에 주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모두의 질시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하늘이 짙어지는 저녁이었다. 부대 밖으로 드라이빙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어서 부대 안을 한 바퀴만 돌기로 했다.
그런데도 나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양 뺨에 홍조를 띠고 양팔을 쭉 뻗어 스티어링 휠을 단단히 붙잡았다.
문이 닫히고 시동을 켜니 인테리어 등이 파도처럼 켜지며 좌석이 키에 맞게 조절되었다.
나리가 주환을 돌아보며 물었다.
“진짜로 제가 운전해도 됩니까?”
주환이 몸을 기울여 나리의 입가로 손을 옮겼다. 나리의 입가에 묻은 것을 쓱 쓸어 주며 가이딩을 스르륵 흘렸다.
“예.”
차는 조심스럽게 후진했다. 주위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두세 발짝 뒤로 물러나자 나리는 기어를 수동으로 바꾸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전기 차라서 나리의 바이크처럼 거칠게 공기를 뒤흔드는 배기음은 없었지만 부드럽고도 빠르게 속도계가 훅 치솟았다.
“와아!”
주환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리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헉, 하고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차는 식당 앞에서 본관을 빠르게 가로지르고 이능력자 연구소 앞까지 500m를 로켓처럼 쏘아지다가 끼이이익, 검은 스키드 자국과 고무가 타는 연기를 남기며 유턴했다.
“윽!”
원심력에 상체가 옆으로 쏠리고 덜컹거리며 연구소 옆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환은 숨을 멈추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나리는 드리프트로 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나선형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묘기를 부렸다.
“워후!”
“……!”
차는 순식간에 지하 5층 빈 주차 공간에 쏙 들어가 멈췄다.
나리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스티어링 휠을 쓱 쓰다듬더니 얼굴이 허옇게 질린 주환을 돌아보았다.
“박 소령님, 차 엄청 좋네요! 나중에 저랑 레이스 해요!”
“레, 레이스……?”
자신의 차가 드리프트를 할 수 있는 줄도 몰랐던 주환은 멎어 버릴 것 같던 심장을 쓸어내리며 멍하니 생각했다.
레이스고 뭐고 자신이 무조건 질 것 같다고.
주환은 넋을 놓고 머리를 차창에 콩 박았다. 현기증이 일었다. 자신은 몇 번 타 보지도 못한 새 차인데,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던 자신의 에스퍼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화끈하게 다뤘다.
그는 그만 가이딩―을 빙자한 수작―을 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아, 저희 부대에 레이싱 좋아하시는 분들 꽤 있지 말입니다! 돈 많이 버는 젊은 애들이 이런 곳에서 즐길 게 뭐 있겠습니까? 군부대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군용차 외에는 들어오지 않으니 한산하기도 하고, 에스퍼라고 하면 이자랑 수수료도 제하고 차를 넘겨주는 딜러도 많거든요. 박 소령님이 들어오시면은…… 바, 박 소령님?”
“…….”
“괜찮으세요?”
나리가 상체를 기울여 넋이 나간 주환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주환은 “자, 잠깐만, 좀…….” 하고 작게 우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지하 주차장은 나리의 말 그대로였다. 주환의 차종 못지않은 스포츠카와 슈퍼 카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똑똑.
누군가 허리를 굽히고 차 문을 두드렸다.
일한이었다. 마침, 어느 절도 용의자가 경찰서에 있다며 혹시 훔친 물건들과 용의자를 확인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서 구시렁구시렁 자신의 차로 가던 중이었다.
나리가 환하게 웃으며 창문을 내렸다.
“유일한 소령님!”
“누가 부대 내에서 험하게 차를 모나 하고 봤더니 역시, 나리 중사였네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오? 나리 중사 새 차 뽑으셨나요?”
“아닙니다. 박 소령님이 새 차를 뽑으셨다고 해서.”
“아아, 박주환 소령이…….”
일한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허옇게 질린 주환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2인승 스포츠카, 뒷좌석이 있긴 했지만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가 겨우 앉을 만한 공간, 그리고 녹진하게 가득 찬 가이딩까지.
같은 속셈을 지닌 남자의 눈에는 주환의 머릿속이 빤히 보였다. 일한은 부러운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차 안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와, 진짜 멋있네요. 박 소령, 저 한번 앉아 봐도 됩니까?”
어차피 내리려고 했던 착한 나리는 차 문을 열었다.
나리가 내리자마자 차에 냉큼 올라탄 일한은 세차게 문을 닫고 주차장을 나갔다. 주환이 말릴 새도 없었다.
그저 뭐, 부대 한 바퀴나 돌고 올 줄 알았는데, 웬걸. 그대로 검문대를 지나 부대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게 아닌가.
“유, 유 소령! 지금 어디 갑니까?”
130km…… 140km……. 주환은 손잡이를 구명줄인 양 부여잡고 당황해했다. 일한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거침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부와앙 밟았다.
“경, 찰, 서, 갑니다아…….”
“예엑? 자, 잠깐만, 경찰서? 경찰서어어?”
“예에……. 철컹철컹, 삐뽀삐뽀 나쁜 놈들 ‘처’넣는 그 경찰서요오…….”
일한이 전방의 코너를 갈아 먹을 것처럼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바로 산길을 내려가는 코너가 코앞인데도 속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비안전 구역의 산간도로.
한 남자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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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에 멈춰야 할 것 같은 차는 경찰서 앞에 멈춘 지 한참 되었다. 죽을 것같이 괴로운 멀미는 도통 가시지 않았다.
주환은 저녁을 많이 먹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냥 조금만 먹고 부대 밖으로 드라이빙을 갈 것을. 훈련 후 먹는 제육볶음이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는 바람에…….
“하아……. 으윽.”
운전석을 두 번이나 내어 준 바람에 새 차를 타고 황천길 문턱까지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제부터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넘기지 않으리.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낯빛이 허옇게 질린 주환이 운전대를 잡고 메슥거리는 속을 꾹꾹 눌렀다.
강은 주환의 옆에 턱 앉았다. 혼자 덩그러니 서 있게 된 일한은 한숨을 푹 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박 소령 안색이 너무 안 좋습니다. 편하게 뒤에 앉으십시오.”
편하게?
193cm의 주환이 장식용으로 달아 놓은 것 같은 뒷좌석에 두 무릎을 접고 쪼그려 앉아 가는 게 뭐가 편하단 말인가.
“제 차입니다. 제, 가, 운전하겠습니다!”
“아까는 제가 최 대령님을 빨리 모셔야 하는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조금―전혀 조금이 아니었다.― 거칠게 몰았습니다만, 돌아가는 길은 아주 안락하고 편하게 운전할게요. 차가 움직이는 것도 못 느끼실 겁니다.”
“됐습니다. 그냥, 저 혼자 가겠습니다. 두 분이서 알아서 오시죠.”
주환은 내렸던 창문을 올렸다. 주환의 축객령에도 강은 못 들은 척, 좌석을 뒤로 눕히더니 편하게 상체를 젖혔다.
허.
주환은 꼼짝도 안 하겠다는 강의 행태를 보고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은 두 눈을 감고 그 중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 소령, 트렁크 열어.”
“야……. 진담이냐?”
“…….”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트렁크가 열렸다.
어차피 각자 사는 인생. 세 남자 사이에는 동맹도, 연합도, 10년간의 의리와 정도 없는 외롭고 이기적인 싸움만 있었다.
주환은 얄미운 여우보다 더 악질적인 강을 보면서 나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아픈 원인은 심장에 켜켜이 뭉친 파장의 찌꺼기가 아닌, 저놈들 때문에 쌓인 사리일 거라고.
펄펄 뛰며 화를 낼 것 같던 일한은 그저 보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트렁크의 문을 쾅 닫았다. 그러고는 넓게 벌린 양팔로 차의 보닛을 짚고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일한은 무해하게 웃음을 지우고 진중하게 두 마리의 적을 쏘아보았다.
“지금 우리끼리 기 싸움 할 때가 아니라니까? 황 대통령께서는 황에덴으로 강을 묶어 놓고 싶어 하는데, 강이 너는 죽어도 싫다면서 경찰서에 자진 신고 하는 쇼를 벌이며 완강하게 거부했어. 그럼 그다음은 뭘까? SS급 에스퍼가 없으면 재능 낭비인 SS급 가이드를 어디에 쓸 거라 생각해?”
“…….”
강은 감았던 눈을 떴다. 주환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황에덴이 우리 부대 에스퍼들을, 아니 전국의 에스퍼들을 다 가이딩하면 어떻게 할 건데?”
젠장.
아무래도 성가신 일에 휘말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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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현균은 돌아가기 전 후원을 거닐었다. 높은 담장 안, 은은하게 밝힌 조명과 고풍스러운 경치.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심심하게 울리는 풀벌레 울음이 어우러져 고요했다.
에덴은 비서실장과 함께 현균의 느릿느릿한 보폭에 맞춰 걸었다.
연구소에서 대리모를 통해 태어나 병원과 연구소를 전전한 딸과 평소에도 바쁜 아버지는 법적 테두리 외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명절도 아닌 날 만나 단둘이 외식을 한 것도, 함께 걷는 것도 처음이건만, 두 사람은 평온한 분위기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권 실장.”
“예.”
“내일 아침에 그 보도 자료 풀게.”
“알겠습니다.”
현균은 비서실장을 물리고 에덴과 둘이 섰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에덴은 침묵 속에 흐르는 잔잔한 물소리 끝에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것처럼 느낄 뿐이었다.
마침내 현균이 에덴을 돌아보며 입을 뗐다.
“황에덴.”
부드러운 부름이 묵직했다. 에덴은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네.”
“네게 내 짐을 덜어도 괜찮겠느냐?”
“그, 그럼요! 저 이제 다 컸어요.”
현균은 에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미소 지었다.
이 아이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실망시켜서도 안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