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땅속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일한은 서둘러 순간 이동 했다.
“어이쿠, 연대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 생도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대통령 각하의 하나뿐인 늦둥이 따님이시고…….”
“놔! 저 새끼, 반 죽여서 기강부터 잡을 거야!”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가이드를 때리시겠다고요? 차라리 독방 근신을 시키십시오! 아니면 저 입에서 퇴소를 외칠 때까지 제가 책임지고 굴려 드리겠습니다!”
“유일한. 씨발, 놓으랬지!”
일한은 강을 끌어안고 얄미운 시누이 대사를 읊었고, 강은 일한의 얼굴로 주먹을 휘둘렀다. 일한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강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나리는 에덴을 살폈다.
“황에덴 생도, 괜찮으십니까?”
강의 파장을 순식간에 쓸어 버린 가이딩에 휘말리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말이다.
괜찮냐고 물을 거면 부축해 줘야지. 에덴은 다섯 걸음 밖에서 주춤대며 괜찮은지 묻는 나리가 너무나도 얄밉고 싫었다.
“이씨, 안 괜찮아악!”
에덴은 권총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쉴드를 내리쳤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서 파장을 해체하겠다는 생각도 못 하고 어린애처럼 팔다리를 마구 휘저어 댔다.
두웅, 둥, 퉁!
“황에덴 생도, 손을 많이 다쳤는데 그러지 말고…….”
나리가 두 손을 들어 에덴을 말리려던 그 순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쿠구구궁…….
멀리서 땅이 울렸다.
산에서 내려오는 몬스터 소리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허공을 맴돌며 에덴을 노리던 조류 몬스터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주위를 감싼 불길한 정적을 알아차리자마자 나리의 심장은 쿵쿵 엇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유 소령님……? 최 대령님?”
나리는 실랑이 중인 강과 일한을 불렀다.
“후, 후퇴를.”
하지만 나리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땅울림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더니 지표면이 솟구쳤다.
콰과가강!
아스팔트가 철심을 드러낸 채로 튀어 올랐고, 흙과 돌무더기가 나리와 에덴을 덮쳤다.
아니, 그것은 범고래처럼 튀어나와 한입에 그들을 집어삼켰다.
“나리 중사?”
일한은 지표면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몬스터를 보고 턱을 툭 떨어트렸다. 거대한 아귀의 입이 나리와 에덴이 있는 곳을 통째로 삼키더니 튀어나왔던 구덩이로 도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강이 곧바로 팔을 뻗어 지하에 파장을 쏘아 결계를 그었다. 그러나 지상과 다르게 방해물이 많은 땅속은 파장이 퍼지는 속도가 더뎠다. 파장의 끝과 끝이 이어지기도 전에 아귀는 더 깊은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거대한 아귀가 튀어나왔던 구덩이는 깔때기 모양으로 빨려 들어갔다.
“놓쳤어.”
“딱 봐도 S급이던데.”
방도는 하나뿐이었다.
저 흙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
“하아, 왜 하필 C12로 이동한 거냐?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못 산다.”
일한은 암담한 표정으로 입술을 사리물었다. 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땅에 손을 올리고 몬스터의 위치를 탐지했다.
……땅울림이 멀다.
“쉴드가 있으니까 당분간은 괜찮겠지.”
“야 인마, 뭐가 괜찮아? 나리 중사 비무장이란 말이야! 게다가 황에덴이랑…… 아오!”
일한은 착함을 집어 던지고 강의 옆구리를 냅다 걷어찼다.
“넌 여기서 반성하며 탐지하고 있어. 5분 내로 박주환이랑 안해란 중위 분대 끌고 올 거니까.”
일한은 강을 남겨 두고 사라졌다.
[이나리]
강이 메시지를 보냈다가 바로 통화로 바꿨다.
“이나리, 들려? 상황 보고해.”
1초, 2초, 3초…….
“이나리!”
4초, 5초, 6초…….
분명 초 단위로 시간을 재는데도 1시간이 지난 기분이었다.
땅을 짚은 양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강은 손으로 흙을 긁어 움켜쥐었다.
37초, 38초…….
이 흙과 함께 몬스터에 집어삼켜진 것은 나리인데, 강은 자신의 폐부가 콱 막힌 것 같았다.
그때,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최 대령님, 너무 캄캄해서 상황 파악이 안 됩니다.
노이즈가 심했지만, 나리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강은 우선 나리의 위치부터 파악했다.
“위치. 이동 속도 말해.”
- 현재 좌표는…….
“뭐라고?”
- 좌표가…… 콜록콜록, 아, 냄새……. 괴물 위장 속이라서 그런가, 말을 못 하겠…….
까악, 깍! 까악!
대형 아귀가 땅속 깊이 사라지자 까마귀 떼가 다시 날아왔다.
X발! 조용히 해!
강은 손아귀에 쥔 흙먼지를 까마귀 떼에게 집어 던지며 파장을 일으켰다. 강의 파장을 피해 까마귀 떼가 멀어졌다.
- 좌표 38°6′14.46″, 127°6′53.62″ 15m 아래, 이동 속도 15km/h, NE 41°1 방향입니다.
강은 지도를 켰다. 시야 속에 산세와 옛 도로와 건물들의 윤곽이 겹치고 지하에 있는 암반과 지하수들의 흐름이 겹쳤다.
그러나 저 아래에 S급 흙아귀들과 다른 몬스터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잡히지 않았다.
123초, 124초. 125초…….
강은 일한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나리가 가는 방향으로 순간 이동 했다.
가파른 산등성이 위였다.
“위치 계속 말해!”
157초, 158초…….
“이나리!”
강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러나 이 위치를 알려 준 것이 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기 전, 나리의 마지막 신호였다.
❖ ❖ ❖
캄캄하고, 답답했다. 땅굴을 파는 소음 속에 한 사람이 지랄발광을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악! 젠장! 이게 뭐야!”
덕분에 나리는 에덴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쟤는 반경 2m의 쉴드 속에 있어서.
“읍.”
나리는 속에서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억지로 삼켰다. 몸을 감쌌던 쉴드 때문에 다친 곳은 없는데, 돌과 흙 속에 끼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몬스터가 움직일 때마다 위장이 꿀렁거리며 흙과 돌, 아스팔트 조각이 출렁이면서 나리를 으깨듯이 조여들었다.
악취와 압박감으로 숨 쉬기가 힘들다.
[황에덴 생도, 침착하게 가만히 있어요. 그러다 제 파장이 해체되면 우리 둘 다 꼼짝없이 죽어요.]
“으으, 흐흑……! 아버지이…….”
나리의 메시지를 받은 에덴은 발악을 멈추고 격해진 감정을 울음으로 토해 냈다.
이제 어쩐담.
에덴의 가이딩은 쉴드로 차단되어 있고, 자신은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대령님. 일단 맨손으로 때려잡아 볼게요.]
캄캄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소화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리는 손에 쥐여지는 돌을 잡고 신체 강화 어빌리티를 할 수 있을 만큼 끌어 보았다.
으드득, 두드득.
흙과 돌무더기를 헤집는 소리가 왜 내 관절이 끊어지는 소리 같지?
나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물컹한 벽을 더듬었다.
우웩. 지, 징그러……!
미끌미끌하고 오돌토돌한 융기도 나 있다. 나리는 소스라치게 떨면서 욱욱 헛구역질을 해 댔다.
오오, 신이시여.
제발 제가 정신줄을 똑바로 잡고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흐압!”
나리는 온 힘을 다해서 돌을 위장에 내리쳤다.
10톤 화물 트럭도 번쩍 들어 올릴 만한 괴력일 텐데 몬스터의 위장은 출렁거리며 위액을 뿜어 댈 뿐이었다.
나리는 두어 번 주먹을 휘두르다가 빠르게 힘이 빠지고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파장이 이 몬스터의 내벽에 흡수되고 있었다.
[작전 실패했습니다. 위액과 위벽에 파장과 가이딩이 흡수돼서 힘을 아끼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메시지와 함께 다시 자신의 위치를 보냈다.
쿠구구르르…….
소음 때문에 귀가 먹먹해졌다. 나리는 탐지 어빌리티도 거두고 쉴드를 더 단단하게 두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위장은 쓰리고 머리는 깨질 거 같은데 콧대까지 시큰거렸다.
“하아, 하…….”
숨을 크게 쉬면 안 되는데. 독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썩은 공기라도 달라며 폐가 가쁘게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워치를 만졌다.
안 돼.
내 신호가…….
나리는 손을 뿌리치고 웅크렸다.
“뭐야! 손 줘. 언니 워치로 각성제라도 놓아야 시간을 좀 더 벌 거 아냐.”
뭐?
에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나리가 눈을 깜박였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람의 다섯 손가락. 에덴이 그녀의 팔을 잡고 워치를 톡 두드렸다.
“참 나, 이런 상황에서 쉴드 어빌리티만 있는 에스퍼밖에 없다니. 쓸모없어.”
워치의 불빛이 에덴의 얼굴을 비췄다. 나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건 꿈인가.
아무리 얘가 SS급 가이드라고 해도 그렇지 자신의 쉴드를 변형해서 두르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나리의 워치를 이것저것 만져 대던 에덴이 “됐다.” 하면서 씩 웃었다.
따끔거리는 감각과 함께 에덴의 가이딩이 나리의 핏속을 뒤흔들었다.
“허억!”
쿠웅, 쿠구구궁…….
땅이 울리는 건지, 심장이 울리는 건지 나리의 고막에 낮은 울림이 점점 커졌다.
손발이 저릿해질 정도로 섬뜩한 기운이 심장을 움켜쥐고 펌프질을 해 댔다.
에덴은 권총을 들어 몬스터의 내벽을 쐈다.
타앙! 탕! 탕!
그것이 효과가 있던 걸까. 몬스터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얼마 후, 몬스터의 위장은 위액을 쏟아 내며 더 활발하게 움직여 댔다. 흙무더기와 위액이 뒤섞이며 거대한 늪 속에 빠진 것 같았다.
몬스터와 에덴에게 파장을 속수무책으로 빨리며 이리저리 휩쓸린 게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 두 발밖에 없어.”
에덴이 말했다.
“어떻게 할래? 한 발씩 쏘고 같이 죽을까? 아니면 5분만 더 버텨 볼까?”
“……당연히 버텨야죠.”
“글쎄. 각성제를 맞고도 언니 파장이 별로 안 남았어. 5분 후면 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위액에 녹아서 괴롭게 죽을지도 모르는데?”
에덴은 그렇게 말하며 총구를 나리의 이마 위에 댔다.
저 애는 미쳤나 보다.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저리 차분하게 웃을 수가 있는 걸까. 나리는 두 손을 들어 총을 잡았다.
“대령님, 제 좌표…… 38°7′9.5″ 127°9′33″입니다. 지표면에서 22m 아래쯤. 이동은 멈췄습니다.”
제발, 이 목소리가 강에게 닿길.
“그게 언니 유언이야?”
“하아, 최 대령님…….”
“아저씨 부르지 마. 짜증 나서 3분 뒤에 죽일 거 지금 쏘고 싶어지잖아!”
그래. 넌 젊어서 짜증 낼 힘도 있고 좋겠다!
나리는 입에 고인 쓰디쓴 침을 퉤 뱉고 말했다.
“유일한 소령님께 통화.”
- 통화 연결 실패. 통신 상태를 확인해 주십시오.
그래서 강의 답신이 없었던 거구나.
“박주환 소령님께 통화.”
- 통화 연결 실패. 통신 상태를 확인해 주십시오.
“……개색키한테 통화.”
띠리링.
- 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역시 최첨단 테크놀로지는 욕을 해야 알아듣나 보다.
나리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현 좌표 38°7′9.5″, 127°9′33″입니다. 지표면에서 22m 아래쯤. 이동은 멈췄습니다.”
- 알아.
“들으셨으면 대답 좀 해 주시죠?”
- 지금 막 800m짜리 산 하나 들어 올렸거든.
예?
- 1000m 하강 준비해라. 5초, 4초, 3초…….
뭐,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