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사랑받는 게 쉬울 리 없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에덴은 자신의 바로 옆에 떨어진 몬스터들의 신체 부위를 보고 헛구역질을 해 댔다.
“읍! 우윽! 허억, 헉…….”
에덴은 네 발로 기어서 강의 공격 반경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무차별적인 강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괴이한 새들이 깍깍거리며 에덴을 향해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에덴은 이도 저도 못 하고 몸을 웅크린 채로 머리를 감쌌다.
〈최강을 잡아…….〉
〈모든 수치가 S급을 상회합니다. ……어떤 파장이든 매칭될 수 있으며, ……이라 SS급이라고 보셔야…….〉
〈최강이 아니면, 너를 어디에 써야 할까? 응?〉
〈이 연구는 한국의 국력과 위상에 큰 공헌을…….〉
〈미군의 균열 침투 연합 작전에 투입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SS01001의 모의 실전 투입을 허가…….〉
〈최강을 잡아, 에덴. 그게 네가 태어난 이유니까.〉
눈앞이 캄캄해지고 뇌 속에 새겨진 기억들이 에덴을 짓눌렀다.
“하악, 하, 흐읍!”
에덴은 매운 눈물을 글썽이며 괴롭게 과호흡을 뱉어 냈다.
삑.
그녀의 상태 이상을 확인한 워치에서 진정제를 주사했다.
숨통을 조여들던 패닉이 점점 지워지며, 에덴의 숨소리는 점차 잔잔해졌다.
“…….”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뺨에 몬스터의 핏줄기가 튀었다. 에덴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최강…….”
직선과 곡선, 형이상학적으로 금이 난 공간들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그 이음새로 붉은 피가 흘렀다.
한 발이라도 떼서 움직였다가는 몸이 공간과 함께 조각나 버리는 감옥이었다.
❖ ❖ ❖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일한과 나리가 강의 좌표 근처로 이동했을 때엔 이미 눈을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일한은 코앞에 놓인 시공간의 경계선을 보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마터면 몸이 두 동강 날 뻔했다.
나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발치에 놓인 경계선에서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히익!”
그러다 뒤꿈치로 잘린 몬스터의 꼬리를 밟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살짝 톡 건드렸는데 통통 튀면서 꿈틀대는 게 아닌가.
“꺄아악!”
나리는 일한을 꽉 붙잡고 질끈 감은 두 눈을 그의 등에 묻었다.
“으으, 진짜 싫어어어…….”
갑작스레 달려든 나리 때문에 시공간의 경계선에 코가 닿을 뻔한 일한은 하얗게 질린 채 발끝에 힘을 주었다.
“나리 중사?”
강이랑 최전방을 뛴 게 10년인데……. 여기 오겠다고 자처한 사람이 아직까지 몬스터 사체를 징그러워하면 어떡합니까.
어휴.
일한은 한 손으로 나리의 어깨를 감싸 안고 한숨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미친 듯이 꿈틀대는 몬스터의 꼬리를 경계선 쪽으로 뻥, 차 버렸다.
“이제 없어요.”
“…….”
나리는 흘끔 실눈을 뜨고 발밑을 살폈다. 훈병도 아니고 기강이 빠졌다고 여길까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이며 일한에게서 떨어졌다.
“아, 아니, 그게…….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놀라서…… 말입니다.”
큰일이다. 저런 모습도 일한의 눈에는 귀엽게만 보였다.
유일한, 입꼬리 올리지 마.
“흠흠……!”
일한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목을 큼큼 가다듬고 작전을 말했다.
“황에덴 생도가 아무리 SS급이라도 실전 한 번 나가 본 적 없는 어린애입니다. 제가 강을 말릴 테니, 나리 중사가 생도의 주위에 쉴드를 쳐 주세요. 단, 황에덴 생도의 가이딩은 위험하니까 닿지 않도록 하고, 제 옆에서 벗어나서도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일한은 나리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워, 꼭 쥐었다.
“손 풀지 마세요. 강이 파장 풀면서 나리 중사한테 방사 가이딩 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예…….”
나리는 당황해 얼굴이 벌게졌다. 어째 일한에게 말려든 기분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따라와서 일한에게 따질 수는 없었다.
일한은 손을 경계선 가까이에 대고 강의 파장을 풀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벼린 파장은 일한의 온기에 사르르 사그라들었다.
- 강아, 이 정도면 충분해. 이러다 애 기절하고 다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니까?
“…….”
허공 위에 거꾸로 서 있던 강은 일한과 나리를 보고도 시공간 분열, 공간 왜곡 어빌리티를 거두지 않았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파장이 다시 공간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낮은 먹구름이 떠 있던 하늘이 반으로 접혀 큐브가 돌아가듯이 비틀어진다.
“소령님, 쉴드로 최 대령님 파장을 제한할까요? 이러다가 끝도 없이 비틀어질 거 같지 말입니다.”
나리의 말에 일한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만 지켜 주기로 했잖아요. 강은 신경 쓰지 말고 생도 찾는 거에 집중해요.”
일한은 나리의 손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내달렸다. 공간을 왜곡하는 경계선이 도로를 직각으로 꺾어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일한은 그것을 다시 자잘하게 나누고 접어서 거대한 계단을 만들었다.
팟!
일한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계단 위로 순간 이동 했다.
천장이 된 도로에서 흙과 돌의 파편들이 나리와 일한의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나리는 팔을 크게 휘저어 일한의 머리 위에 쉴드를 쳤다.
그들의 머리 위, 거꾸로 된 공간에 서 있던 강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로 이동한 걸까? 혹시 그가 있는 곳에 에덴도 있을까 싶어 나리는 탐지 어빌리티를 끌어 올렸다.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에 있는 괴물들의 소리, 코를 찌르는 듯한 피 냄새와 악취가 나리의 뇌를 긁어 댔다.
‘그래, 사랑받는 게 쉬울 리 없어……. 사랑받는 게 쉬울 리…… 없어.’
어디선가 작게 조잘대는 혼잣말이 들렸다.
나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이질적인 가이딩이 밀물처럼 강의 파장을 휩쓸었다. 그와 동시에 강의 파장으로 뒤집힌 공간 쪽으로 계단을 냈던 일한의 수고도 없던 일처럼 사라져 버렸다.
“으? 와아아악!”
이게 바로 고래 싸움에 끼어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등 터지는 순간인 건가.
나리는 10여 미터 아래로 떨어지며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발동했다.
무섭게 자신을 끌어당기던 중력이 나리의 부유 어빌리티와 마찰을 일으키며 하강 속도가 줄어들었다.
“저기. 타깃 찾았습니다. 소령님.”
나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주저앉아 있던 에덴을 가리켰다.
“최강!”
에덴은 피에 젖은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강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 ❖ ❖
쓰흐읍, 하아…….
불쾌한 공기가 좀 전과 달리 아무렇지 않았다. 에덴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그만 넋을 놓은 건지, 약물에 진정된 탓인지 모를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흐……!”
이렇게 복잡하고도 위험한 파장을 가진 에스퍼의 목줄을 잡으라니. 아버지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
황 대통령의 소원은 에덴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그래, 사랑받는 게 쉬울 리 없어.”
에덴은 자신의 앙상한 두 손을 내려다보다가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거꾸로 서 있는 강을 올려다보며 팔을 뻗었다.
“아, 너무 멋진 파장이야……!”
중지의 긴 손톱이 공간의 경계에 잘리고 손가락 끝이 쓸리며 피가 났다. 그런데도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지, 에덴은 강의 파장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최강!”
손톱과 살 끝이 베이다가 손바닥 안이 벌겋게 쓸렸고, 이내 포악하게 날뛰는 파장을 잡아당겼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공간들이 뚝 멈추고 헛맞춰진 유리 조각이 허물어지듯이 경계가 깨졌다.
에덴은 발갛게 홍조를 띠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어때? 나 대단하지 않아?”
에덴의 목소리가 계곡에 메아리쳤다. 스산한 산, 뿌연 안개, 부서지고 뒤틀린 도로와 뼈대만 남은 흉가와 비닐하우스. 강의 공간 제어 어빌리티가 파훼되고 난 후의 광경은 전과 같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괴이한 몬스터와 자신을 노리던 새 떼들, 지상 위를 집어삼킨 아귀, 그리고 강까지.
“봐! 아저씨 파장이 내 가이딩에 얌전해졌잖아?”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에, 저와 단둘뿐이라는 SS등급. 아이의 눈에 최강은 가장 완벽한 운명의 왕자님이었다.
사실 에덴은 그가 운명의 왕자님이 아니어도 좋았다. 강의 파장이 자신의 것이 되기만 한다면,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모두가 날 사랑해 줄 거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며 흥분되었다.
“게다가 나 아저씨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이 정도면 정말 찰떡궁합 페어가 될 조짐이지?”
에덴은 저 하늘 위에서 하강 중인 인영을 올려다보았다. 좀 전에 느껴졌던 강의 파장을 움직이는 또 다른 가이딩, 일한이었다.
에덴은 씩 입꼬리를 올리며 허리에 찬 호신용 권총을 꺼내 들었다.
“안 그래? 아저씨.”
강은 불쑥 튀어나와 에덴의 총을 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타앙!
동시에 에덴의 총구에서 불꽃이 일었다.
강의 몸 어느 한 군데 구멍이 뚫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였다. 그러나 총알은 총구에서 쏘아지자마자 반투명한 장막에 가로막혀 슬로 모션으로 빙글빙글 공회전했다.
이 둔하고 단단한 파장은 강의 것이 아니었다.
에덴은 일한의 옆에 있던 다른 사람, 아까 자신을 비웃었던 에스퍼를 떠올렸다.
짜증 나게 어딜 끼어들어?
둘 다 없애 버리고 싶다.
“이 새끼가, 사람한테 총을 쏴?”
꼭지가 돈 강이 검붉은 파장을 꽁꽁 두른 주먹으로 쉴드를 내리쳤다.
쿠웅! 콰아앙!
위협적인 진동이 에덴의 눈동자까지 흔들었다. 주먹질이 내리쳐질 때마다 에덴이 몸을 뉜 땅이 움푹 팼다.
X됐다!
일한의 하얀 얼굴이 완전히 백지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