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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43)화 (4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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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싸가지 최강의 연애사?

“최강 대령님, 사귀던 사람 많았죠? 지금은 어떤가요? 정말 남자 페어와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요?”

“예? 어…….”

나리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진로 상담이 아니었었나?

이걸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지?

나도 페어이신 유일한 소령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줄 알았는데요. 알고 보니 오랫동안 두 분이 데면데면한 권태기 커플이셨더라, 하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연대장님의 개인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최강 대령님 이상형은요?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선호하는 타입은 알아요?”

“그것도 잘…….”

“오랫동안 같이 군 복무 하셨다고 했는데, 그것도 모르세요?”

그러게요.

나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껏 잘못 알고 있던 거 같아서 혼란스럽거든요.

“연대장님은 일 외의 말은 절대 얘기하지 않으시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도 연대장님의 연애사가 엄청 궁금하긴 하네요.”

강의 성격이 뭐 같아서 과연 연애에 관심이 있긴 한지, 사귄 사람이 있긴 한 건지, 있었으면 얼마나 착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지, 그 싹퉁바가지의 연애사가 미치도록 궁금한 건 나리도 마찬가지였다.

손톱을 짓씹으며 시간만 낭비한다며 중얼거리는 에덴의 얼굴에는 나리가 예상했던 동경심은 없어 보였다.

정말이지 자신의 촉은 똥촉인가 보다.

나리가 허허,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최 대령님의 연애사를 궁금해하십니까?”

“왜긴요. 최강 대령님의 장래 가이드이자 아내가 될 거니까요!”

“…….”

응. 그래.

파이팅…….

나리는 에덴의 자신감 넘치는 포부에 응원의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강을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라는데요? 최 대령님, 미래의 사모님을 어디로 모셔다드리면 될까요?’

강은 바득바득 마른오징어를 씹으며 짜증을 부렸다.

‘저승으로 데려가. 안 그러면 나 영창 갈 거 같으니까.’

푸훕!

멀리서 툴툴대는 강의 목소리를 듣고 나리는 고개를 돌려 터지는 웃음을 삼켰다.

지금…… 비웃었어?

에덴은 기분이 확 나빠졌다.

“왜요? SS급 가이드의 에스퍼는 최강쯤 돼야 하잖아요. 그게 웃겨요?”

“아, 아니 그게……. 큼! 매칭은 등급으로 되는 게 아니라, 에스퍼 고유의 파장과 얼마나 맞는가에 따라 되는 거잖습니까.”

“…….”

“졸업 후 임관하면, 대령님과 매칭 테스트를 진행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상스러운 말로 한마디 보태자면, 저희 부대 훈련이 개빡셉니다.”

나리는 지나가는 유치원생들도 아는 기본 상식을 부드럽게 일러 주었다.

그러나 유치원생보다 어리숙한 애 취급을 받은 에덴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차며 나리를 노려보았다.

“Esp 파장 매칭률?”

에덴의 가이딩이 나리의 피부 속으로 침투했다. 핏줄을 쾅쾅 때리며 심장까지 올라온 섬뜩한 기운이 나리의 파장을 움켜쥐었다.

“나한테 그런 한계는 없어. 내가 내 에스퍼를 고르면 되니까.”

에덴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나리의 파장을 움직이자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어어? 으읍……!”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나리는 입을 틀어막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아이는 손도 대지 않고 자신의 파장을 움직이고 있었다. 쉴드가 묵직하게 퍼지며 길의 자갈과 화초들을 짓이기고 밖으로 밀어냈다.

이, 이게, 말이 돼?

“대단, 하네요…….”

가냘프고 허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대단히 위험한 가이드였다. 나리는 에덴이 끌어간 자신의 파장을 거두며 공중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숨을 참고 파장을 끊어 보려고 해도 강력한 자석에 이끌리듯이 속수무책으로 에덴의 가이딩에 끌려 나갔다.

“저기, 화, 황에덴 생도님?”

당황한 나리가 에덴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A급 쉴드, A급 신체 강화, A급 감지력, D급 부유력…… D급 은신술?”

흥, 딱 봐도 방패막이밖에 못 쓸 능력뿐이었다. 에덴은 픽, 조소하며 뻗었던 손을 내렸다.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망신살 좀 당하게끔 가이딩을 거뒀지만, 나리는 멋지게 낙법으로 한 바퀴 굴러 떨어졌다.

맘대로 되지 않아 짜증 난 에덴은 나리를 제쳐 놓고 성큼성큼 가 버렸다.

“어? 황에덴 생도님? 정문은 그쪽이 아닙니다!”

“됐습니다. 저 길 알아요!”

나리는 에덴을 따라잡으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어디선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시선이 느껴져 바짝 털을 세우고 주위를 경계했다.

“으으…….”

근처에 강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안 그러면 이 날씨에 살이 떨릴 리가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강이 무시무시한 파장을 씩씩거리며 에덴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너, 집에 가라고 했지?”

“아저씨랑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야 나오셨네요?”

“짜증 나게.”

“누군 짜증 안 나나?”

어, 어우야…….

전운이 감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리는 허리를 바짝 숙이고 뒷걸음질 쳤다.

오랜 경험으로 미뤄 보아 이런 전장에 가이드도 없이 휘말렸다가 전생에 먹은 것까지 게워 낼 거다.

“나리 중사.”

오늘 바쁠 거라고 했던 일한이 나리를 불렀다.

“유 소령님?”

“숙실에 들어가 있어요. 강이 꼭지 돌아서 말려야 하니까.”

“예? 그러면 제가 쉴드라도…….”

“괜찮아요. 들어가요.”

일한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나리를 지나쳤다.

“…….”

얼굴이 굳은 일한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리는 괜히 가슴이 불편해졌다.

어렵게 얘기 좀 하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도 없고. 항상 둘이서 강을 컨트롤했는데 빠지라고 하니 서운했다.

또 다치면 어떡해.

나중에 그가 명령 불복종이라고 몰아붙이더라도 물러나기 싫다. 나리는 일한의 뒤를 따라갔다.

“보란 듯이 나대는 걸 보니까 그분이 네 능력으로 날 컨트롤할 수 있을지 알아보라고 한 거 같은데.”

강이 에덴의 멱살을 움켜쥐고 어마어마한 파장을 폭발시켰다.

“나한테 개기면 어떻게 되나 보여 주지.”

그리고 그 파장이 일한과 나리에게 닿기도 전에 두 사람은 부대 안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 미치겠네. 저 녀석 진짜.”

일한은 바로 워치를 들어 그의 이동 장소를 확인했다.

“C12까지 갔냐? 와…….”

일한은 지도를 펴고 강의 주변에 안전하게 이동할 좌표를 찾았다.

“유 소령님, 저도 가겠습니다.”

나리는 일한을 붙잡았다. 기척도 없이 불쑥 나타나 자신을 잡은 나리를 본 일한은 놀랐는지 멈칫거리다가 미간을 구기며 나리를 뿌리쳤다.

“안 됩니다.”

강의 약점이 이나리라는 걸 에덴에게 들키면 안 된다.

에덴이 나리에게 가이딩하자마자 강이 에덴을 죽여 버릴 듯이 이동하는 걸 말리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는데.

“하지만, C12는 몬스터 활동 구역입니다. 유 소령님 지금 총도 없으시잖아요. 대령님께 휘말려서 또 다치시는 건 싫습니다.”

아, 정말 어쩌면 좋을까.

“그럼 2가지만 약속해요.”

일한은 손을 들어 나리의 뺨을 감쌌다.

“첫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만 지켜 주세요.”

나리는 일한의 은은한 눈빛에 어쩔 줄 몰라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일한은 엄지로 나리의 입술을 훑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둘째, 상황이 나쁘면 내가 또 나리 중사 어빌리티를 빌려야 할 수도 있어요.”

내가 너한테 입 맞출 수도 있는데, 따라올 거야?

나리는 그의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일한은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리 중사, 손.”

나리는 씩씩하게 일한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넵!”

그렇게 두 사람은 위험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접근 제한 지역으로 분류된 C12는 도심 외곽 산등성이를 따라 농경지가 있던 곳이었다.

이제는 뼈대에 흉물스럽게 폐비닐이 걸린 잡초들로 무성한 들판이 되었고, 악취가 나는 안개 때문에 한낮에도 음습했다.

갈라지고 뒤틀린 도로 위에 발이 여러 개에, 기형적인 꼬리를 가진 몬스터들이 사체를 뜯고 있었다.

까악! 깍!

기울어진 전깃줄 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괴상한 새 떼들이 울부짖어 댔다.

허겁지겁 먹는 데 바쁜 몬스터 1마리가 위를 쳐다보았을 때, 이미 검붉은 빛 무리와 함께 날카로운 파장이 지상을 향해 내리꽂혔다.

케게겍! 끼!

허겁지겁 도망가던 몬스터들이 파장에 맞아 짓이겨지고 부분 부분 삭제되었다. 피와 비명이 튀는 소리가 계곡에 울렸다.

으드드드……. 땅속에서 자고 있던 거대한 몬스터가 땅을 울리며 지표면 위로 솟아올랐다.

아귀를 닮은 커다란 입이 피 흘리는 몬스터 떼를 아스팔트째 집어삼키더니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까악! 까악!

새치기를 당한 새 떼들이 사납게 퍼드덕거리며 불평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에덴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뭐, 뭐야. 여기에 왜…… 나를……. 우윽!”

코를 찌르는 악취와 피부에 엉겨 붙는 습기, 혐오스러운 몬스터들과 주위 경치까지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새 떼는 지하 몬스터를 향해 깍깍 울어 대던 것을 멈추고 에덴의 주위를 맴돌며 입맛을 다셨다.

강은 에덴의 멱살을 놓았다.

“왜, 시체 썩는 냄새 처음 맡아 보나? 그래도 연구실 냄새보단 견딜 만한데?”

강의 형형한 눈빛은 괴물들보다 더 괴물 같았다. 그가 검붉은 파장을 발산하며 이죽댔다.

“해 봐. 그 잘난 SS급 가이딩.”

“……!”

강은 자신의 파장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공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땅이 파이고 흙과 돌이 튀어 올랐다. 몬스터들은 혼비백산 도망가기 바빴다.

에덴은 덜덜 떨다가 다리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지옥이다.

여기가 한국일 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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