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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42)화 (4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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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외부인 금지입니다

소민은 다시 가이딩실로 들어갔다.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오들오들 떨던 에스퍼는 능글맞게 웃었다.

“이야, 새로 오신 가이드님은 어느 부대에 있으셨습니까? 이런 미인을 전역시키다니, 혹시 치정 싸움에 휘말리시기라도 하셨나?”

“…….”

태형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손님은 시커먼 싹수를 보였다. 소민은 냉담하게 얼굴을 굳힌 채 그의 뒤로 섰다.

“가이딩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저도 다 압니다. 얼굴 반반한 가이드 단물 빨고 싶어서 난리 난 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막장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하다니까요?”

소민은 에스퍼의 뒤에 서서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오랫동안 침전된 파장의 잔여물들을 정리하는 데에 집중하는데, 계속 주절주절 얘기를 늘어놓던 에스퍼가 소민의 손을 잡았다.

“배형준 에스퍼 님. 손 놔주십시오.”

“하하, 거, 가이드님 말씀이 너무 없으셔서 졸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소민이 놔 달라고 말해도 이리저리 구설을 늘어놓으며 그녀의 손등을 어루만져 댔다.

“아이고, 손이 참 보드랍고 예쁘시네.”

소민은 화들짝 손을 뗐다.

“가이딩 중에 제게 손대시는 것은 센터의 안전 지침 사항에 어긋납니다. 한 번 경고를 드렸으니 오늘은 이만 가이딩을 멈추겠습니다.”

“아니, 무슨! 5초도 안 됐는데 제가 무슨 추행이라도 한 것처럼 구십니다? 난 진짜 가이드님이 졸고 있는 줄 알고 깨우려고 한 건데?”

“…….”

“이 정도는 군부대 가이드나 센터의 다른 가이드들도 다 넘어가는 일이잖아!”

첫 손님부터 비상벨을 눌러야 하나. 소민은 벨 위에 손을 올려놓고 제게 성토하는 에스퍼를 못마땅하게 노려보았다.

“저는 가이드라인대로 가이딩합니다. 제 방식이 싫으시면 다른 가이드님을 지명하시면 됩니다.”

“뭐, 뭐!”

이제부터 그 어떤 에스퍼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거다.

소민은 비상벨을 눌렀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우기며 화를 내는 에스퍼의 염력 어빌리티에 바닥을 딛던 발이 미끄러졌다.

“윽…….”

“하는 걸 보니 너도 남의 인생 망치고 군에서 쫓겨난 모양인데! C급 주제에 너같이 콧대 높은 가이드가 한둘인 줄 알아?”

“이거 놓고……!”

“가이드가 순순히 가이딩이나 할 것이지, 에스퍼가 다 호구로 보이지?”

그는 바닥에 넘어진 소민을 붙잡고 윽박질렀다. 붙잡힌 손목이 가시에 찔린 듯이 따끔거리며 아팠다.

소민이 아무리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포박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C급 에스퍼도 일반인보다 강했다.

발버둥 치는 동안 구두가 벗겨지고, 정장 재킷의 어깨 솔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격렬한 실랑이 중인데도 경호원은 오지 않았고 카메라는 빈 의자 위만 비추고 있었다.

“놔! 으윽.”

“아직 내 시간은 남았다고! 가만히 있으면 다치지 않잖아!”

소민은 손목에 달린 워치를 쳐다보았다.

“함장님……. 공태형 함장님께 통화를. 윽!”

[없는 번호입니다.]

아, 어제 연락처를 초기화했지.

이제 페어가 아닌 에스퍼가 자신의 상태창을 알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소민은 공허한 심해로 떨어진 듯 막막해졌다.

태형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기로 했으면서 왜 속이 이리도 울렁거리고 헛헛한 걸까.

그때였다.

“이 개새끼가……!”

태형은 두 손에 든 커피를 떨어트리고, 소민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쳐든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따뜻한 커피로 몸 좀 녹이라고 했는데 두 잔 모두 얼어붙어 바윗덩어리가 떨어지듯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으, 으아악!”

“하, 함장님? 꺄악!”

태형은 꽁꽁 얼어붙어 버린 남자를 내동댕이쳤다. 눈도 못 감은 채 급속 냉동된 사람의 얼굴을 본 소민은 입을 틀어막고 덜덜 떨었다.

주, 죽었나?

빨리 가이딩으로 녹여야 하는데…….

“소민 씨, 괜찮아?”

두 번 다시는 에스퍼에게 휘둘리지 않길 바랐건만.

“괜찮을 리 있겠습니까?”

소민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흐느낌을 삼키며 태형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동사 직전인 사람의 심장 위에 손을 포개어 올리고 얼음을 녹였다.

“…….”

“흐윽. 흐으윽……. 왜 안 뛰어…….”

소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비상벨을 몇 번이고 주먹으로 내리쳤다.

“응급 가이딩 오라고요! 코드 블랙이란 말이야!”

소민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태형을 향해 소리쳤다.

“왜 가만히 계십니까! 정말 사람 죽이시려고 하셨습니까! 가서 다른 가이드를 불러오세요.”

“……죽어도 싸.”

“그걸 말이라고!”

“왜 소민 씨가 저런 새끼들 가이딩을 해 줘야 하는데!”

“…….”

소민은 태형에게 할 말이 많았다.

센터에 오는 에스퍼들은 다 몬스터와 싸우다가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이다. 당신의 옆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여기에서만큼은 나도 다른 가이드처럼 한 사람의 몫이라도 해내고 싶었다고.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에게 큰소리치며 화를 내는 태형 앞에서 소민은 입이 얼어붙었다.

태형은 소민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댔다.

“나는……?”

소민은 고개를 떨구며 입 안을 깨물었다. 태형은 소민의 턱을 들고 시선을 맞췄다.

“소민 씨, 나는?”

나는 왜 안 되고,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은 되는데?

소민은 바르르 떨며 두 눈을 감았다.

“그러면 저는요? 전 언제까지 비참해져야 합니까?”

가슴이 미어지는 파장에 소민은 울음을 터트렸다.

❖ ❖ ❖

나리는 숙사 앞을 서성이며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유 소령님, 기분…… 안 괜찮으시죠? 저 때문에 많이 곤혹스러우셨지요?]

일한만 안 좋을까? 주환과 강의 기분도 안 좋을 것이 뻔했다.

[저어, 바쁘시지만 않다면 잠시 얘기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나리가 어렵게 메시지를 보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저기요.”

“힉!”

섬뜩한 기운에 나리는 펄쩍 뛰며 뒤를 돌았다. 사관생도 정복을 입은 웬 조그마한 아이가 나리에게 물었다.

“여기가 B동 숙사 맞죠?”

“예. 맞습니다만,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가이드 연수를 알아보고 있어서요. 근래에 이능력자 알파81 특공연대에서 외부 가이드의 단기 연수를 허가해 줬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주환의 얘기가 벌써 돌고 있나?

나리는 의아했다.

“보다시피 제가 생도라서 오늘밖에 연대장님을 만날 시간이 없는데, 부탁 좀 드리려고요.”

에덴은 큼직한 눈을 애처롭게 깜박이면서 나리의 손을 와락 붙잡았다. 에스퍼들은 남녀 불문하고 다 에덴에게 꼼짝 못 했으니 이렇게 손을 잡으면 뭐든 해 줬다.

들어가는 김에 자신도 숙사에 들여보내 달라는 건 어렵지도 않을 터였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나리 중사님?”

귀엽고 깜찍하고 달콤한 가이딩을 솔솔 흘리면서 유혹했건만 나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에덴이 한 것처럼 나리도 에덴의 명찰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황에덴 생도님, 죄송합니다만 외부인은 부대 내 숙사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사도 관등 성명도 하지 않고 제게 다짜고짜 이렇게 부탁을 하기보다 연대장님께 공식적인 연락을 취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에덴의 예상과 달리 나리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등급이 높나? 여기 에스퍼들은 왜 다들 말을 안 듣지?

에덴은 더 센 가이딩을 방사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했죠. 인사과장님께도 허락을 받고 다 했는데도 최강 연대장님께서 절 피하시니까 마지막으로 이렇게라도…….”

“…….”

에덴이 가이딩을 흩뿌리고 생글생글 웃어 대도 나리는 이 상황이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사관 학교에서도 충분히 배울 텐데, 왜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깡시골까지 와서 생고생하겠다고 자처하지?

“제발 부탁드려요! 최강 연대장님 같은 훌륭한 군인을 뵙는 게 제 꿈이자 소원이에요.”

[이 중사, 외부인 쫓아내.]

마침, 강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멍멍 짖어 대는 강아지 사진까지 덧붙여서.

“…….”

졸지에 또 똥개 취급을 받은 나리는 기분이 나빠졌다.

“안 됩니다.”

에덴은 가슴 앞에 꼭 모으고 기도하던 손을 툭 떨어트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상심해 양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아이를 나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군사 시설이라 함부로 견학도 못 하셨겠군요. 혹시 진로 고민이라면 정문까지 배웅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답변은 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에덴이 고개를 들고 나리를 올려다보았다.

“정말요?”

“예. 그럼요.”

[야, 그런 쓸데없는 짓은 왜 해?]

나리가 강의 메시지를 날파리 쫓듯이 휙휙 내저으며 생긋 웃었다. 에덴도 씩씩하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이나리 중사님.”

“뭘요.”

“최강 대령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거든요.”

“아아, 사람 잘 찾으셨습니다. 제가 최강 대령님과 10년 동안 같은 팀이지 말입니다.”

강은 국내 최고의 에스퍼이니 언론 매체에 종종 비칠 만큼 유명했고, 동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리는 에덴이 최강과 유일한 같은 유명 이능력자가 되길 희망하는 꿈나무 사관생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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