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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31)화 (3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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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쟤, 보호자 나와

“최강 대령님을 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 영광은 무슨…….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강은 새로 부임한 인사과장을 삐뚜름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보고도 귀띔도 없더니만,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한다희 소령이 부임하기 전에 있었던 장대신 소령이었다. 황현균 대통령의 처남인 그는 B급 가이드였다. 수도 중앙사령탑에서 얼마나 편하게 있으셨던 건지 2년 사이에 살은 더 찌고 얼굴은 반질반질하고 주름 하나 없이 매끈했다.

달갑지 않은 이는 혹까지 하나 더 달고 왔다.

“외삼촌!”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에덴이 장대신 소령과 같은 차량에서 내리며 당당하게 친인척 관계임을 온 부대에 알렸다.

“…….”

아니, 저건 혹이 아니라 암세포다.

강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상부에서 왜 토요일 아침부터 일한을 불러들이나 했더니, 일한 대신 에덴을 보내겠다는 뜻이었나 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직 열몇 살밖에 안 된 애가 사관생도 정복을 입고 있다는 거였다.

“하하. 제 조카가 이번에 최 대령처럼 특별 전형으로 사관생도가 되었는데, 최 대령을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육군 사관 학교 황에덴 생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임시 입교 훈련은 받았는지 엉성한 폼은 아니었다.

장 소령은 자랑스럽게 에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최 대령과 같은 SS급입니다. 하하핫! SS급 에스퍼와 SS급 가이드가 현시대 한국에 딱! 있다니, 이건 정말 하늘이 보우하사 우리 대한민국을 살피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

강은 아무 말도 없이 노려보았다. 그의 어깨 위로 넘실거리는 파장이 숨 막힐 정도로 더 짙어지더니 그가 비소를 머금었다.

“생도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놀러 온 건가?”

“놀러 온 거 아닙니다. 좋은 기회가 있을 때, 견학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했습니다. 최강 대령님께서도 생도이셨을 때, 미국, 캐나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등 많은 나라에서 작전을 수행하셨잖아요?”

“그럼 너도 미국, 캐나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가. 왜 쓸데없이 여기로 와?”

장 소령과 에덴의 웃는 낯이 싸늘하게 굳어 버렸다.

“장 소령, 여기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입니다. 사관생도도 여기 오려면 정식 출입 절차 받고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결재한 정식 서류도, 사전 통보도 없이 이렇게 불쑥 오면, 황현균 대통령께 소중하게 숨겨 놓은 딸한테 뭔 일 생겨도 제 책임 아니라고 하십시오.”

에덴은 흥, 코웃음 치며 강을 쏘아보았다.

그러고는 강의 파장을 억누르는 가이딩을 방사했다.

윽!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턱을 들고 있던 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이딩 자체가 불쾌했지만,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소름 끼치는 가이딩은 쟤가 처음이다.

“이 새끼가…….”

강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에덴을 노려보았다.

역시, 아무리 최강이라도 황에덴 앞에서는 맥도 못 추는 에스퍼일 뿐이다. 에덴이 가이딩을 방사하자 주춤거리는 강의 반응을 본 장 소령은 속으로 시원하게 쾌재를 외쳤다.

강에게 2년 전에 당한 수모를 꼭 갚아서 당당하게 진급하리라.

장 소령이 비릿하게 웃으며 자랑스러운 조카의 어깨를 토닥이려고 할 때였다.

퍽!

하늘이 빙 돌더니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장 소령은 얼얼하게 아픈 자신의 콧대를 쥐고 자신에게 주먹질한 강을 황망하게 쳐다보았다.

“쟤 교육 네가 했지?”

어째, 강은 더 저기압이었다.

장 소령은 에덴의 다리를 붙잡고,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황 대통령이 보내 준 경호원들을 쳐다보았다.

“최, 대령?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너희들……도 뭐 하고 서 있어! 봐, 봤으면…….”

내가 맞는 걸 봤으면 빨리 저 괴물을 말려야지. 명색이 대통령 경호원이 말이야, 빨리 와서 대신 맞아 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황 대통령께도 재깍재깍 보고하고! 어?

에덴의 힘을 등에 업고 당당하게 금의환향하려는 연출을 원했던 장 소령은 난데없이 맞아서 아프고 억울하기만 했다.

그의 콧대를 세워 줬던 경호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경호해야 할 상대는 장 소령이 아니라 대통령의 딸, 황에덴이었다.

“누가 함부로 가이딩 뿌리래?”

강은 장 소령의 발목을 짓밟으면서 사납게 쏘아붙였다.

“…….”

에덴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설 생각을 안 하는 외삼촌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가이딩을 접고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가이딩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대령님께서 파장이 위험해 보여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됐어. 넌 집에 가. 장 소령, 넌 집무실에서 보자.”

강은 더러운 똥을 피하듯 순간 이동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에덴이 어빌리티를 발동한 강의 팔목을 잡았다.

“!”

신체의 반이 사라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강은 놀란 눈으로 에덴을 돌아보았다.

에덴은 입매를 비틀며 뻔뻔하게 말했다.

“아저씨, 나도 여기서 연수받아도 되죠? 나같이 페어도 없는 SS급이 사관 학교 가이딩 클래스에서 뭘 배우겠어? 그렇다고 페어도 없이 작전에 뛸 수도 없잖아? 나도 박주환처럼 아저씨한테 배워야겠는데?”

“…….”

저 버르장머리…….

이놈 저놈 자꾸 기어오르는 게 너무 봐줘서 그런 거 같다. 일한은 새로 오는 손님에게 적당히, 잘, 해서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했지만 참는 것도 여기까지.

강은 에덴의 손목을 홱 돌려 정강이 뒤를 걷어차 바닥에 꿇렸다. 장 소령이 맞을 때는 가만히 있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총을 뽑아 들었다.

“그럼 머리 박고 엎드려뻗쳐.”

“뭐? 하핫!”

에덴은 두 눈을 치켜뜨며 헛웃음을 쳤다.

“나, 황에덴이야. 내 아버지가 황현균 대통령이시고.”

“…….”

“나한테 막 이러면, 아저씨도……. 아악!”

강은 가느다란 에덴의 팔을 부러트릴 듯이 힘을 주었다. 너무 말라서 신체 강화 어빌리티도 쓸 필요가 없었다.

에덴은 강에게 가이딩을 시도했지만, 브레이크를 걸었는지 파장은 하나도 안 잡히고 접촉 가이딩도 딱딱한 뭔가에 막힌 듯이 통하지 않았다.

차갑고 커다란 손이 에덴의 자그마한 머리를 짓눌러 바닥에 꿇렸다.

“머리 박고.”

에덴의 두 발이 바닥을 바르작거렸다. 하얀 이마와 뺨이 짓눌리고 긁혔다.

“엎드려뻗쳐. 황 생도.”

무시무시한 강의 위압감에 장 소령도 대통령의 명을 받은 경호팀도 한마디 하지 못했다.

“내가 올 때까지 자세 풀면, 퇴교다.”

“……!”

강은 땅을 긁어 대는 다른 쪽 팔도 잡아 등 뒤로 그러쥐어 허공에 들었다. 무릎에 짓눌린 허리가 들리도록 엎드려뻗쳐 자세를 잡아 주었지만, 강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바닥 위로 와르르 허물어졌다.

“이것도 못 해? 뭐 해, 너네? 얘 데리고 가.”

강은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고 멍하니 총구만 겨누는 경호팀에게 턱짓했다.

“윽……!”

자신을 깔보는 강의 말투에 오기가 생긴 에덴이 이를 갈며 자세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위압적인 파장에 짓눌려 두 팔은 후들후들 떨리고 발끝은 바닥을 긁을 뿐이었다. 오자마자 체면을 구긴 장 소령은 에덴을 일으켜 세우며 까드득 이를 갈았다.

“최강 대령, 진짜 연대장 직급에서 내려오고 싶습니까?”

강은 대답 대신 장 소령의 옆구리를 툭툭 걷어찼다.

❖ ❖ ❖

“우움…….”

나리는 이걸 살지 저걸 살지 고민 중이었다. 라이더 슈트를 입고 돌아다니기 덥다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쪽쪽 마시면서…….

다 예쁜데 뭘 그리 고민하는 건지.

“…….”

주환은 카트에 기대어 괜히 헬멧에 짓눌린 앞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이렇게 뭐라도 딴짓을 하지 않으면 자꾸 나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침에 화장 안 했던데 왜 저리 얼굴색은 맑은 건지 모르겠고, 발갛게 홍조 띤 뺨과 빨대를 문 촉촉한 입술, 반쯤 내린 지퍼 사이로 보이는 목선과 빗장뼈 위, 그 아래로 떨어지는 S자 곡선에 입 안이 말랐다.

나리에게 눈길을 주는 게 주환뿐만이 아니었다.

주말 아침이라 마트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많았고, 우람한 덩치에 훤칠하게 뻗은 주환과 검은 라이더 슈트를 입은 나리는 자연히 시선 강탈 대상이었다.

왠지 모를 갈증에 주환은 뜨거운 커피를 들이켰다.

핫, 뜨!

“박 소령님, 이 세트가 세일 중이지 말입니다?”

그 타이밍에 나리가 주환을 돌아보며 물었다.

주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발가락을 꾹 오므리며 입에 들어간 뜨거운 것을 꿀꺽 삼켜 버렸다.

“윽! 아……. 그. 콜록콜록!”

뜨거운 커피에 사레들린 주환은 고개를 돌리고 마른기침을 해 댔다.

“어, 괜찮으십니까?”

나리가 자신이 마시던 아이스커피를 내밀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주환은 그걸 벌컥벌컥 들이마시다가 아차 했다. 나리는 얼마 마시지도 못했는데 다 마셔 버렸다.

“미안. 내가 한 잔 더 사 줄게.”

“아,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그거 둘 다 내가 계산하겠습니다.”

주환은 나리가 처음에 집었던 식기 세트와 세일 중이라는 것까지 번쩍 들어 카트 안에 집어넣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예? 박 소령님, 계산이 잘못되었습니다! 이거 두 세트가 커피 20잔보다 더 비싸지 말입니다? 괜찮습니다. 저 원래 한 세트만 필요했어요.”

나리가 주환의 앞을 가로막으며 카트 안에 넣은 박스 하나를 꺼내려고 하는 걸, 주환이 긴 팔을 들어 막았다.

“됐습니다. 나도 필요했었습니다.”

“세트잖아요. 컵 4개, 큰 접시 4개, 앞 접시 4개, 밥그릇 4개. 둘이서 충분히 쓰니까 하나는 빼셔야…….”

“……?”

주환이 우뚝 굳어서 제 팔에 매달린 나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내 입이 뭐라고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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