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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28)화 (2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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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갈증이 이는 아침을 너로 축이고

새벽 5시 기상.

기상 알림이 울리기 30분 전에 눈이 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어나자마자 체조를 빙자한 고문과 5km 뛰면서 시작하는 천인공노할 훈련 스케줄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여야 하는데.

“하……. 미치겠네…….”

페어 숙실에서 지낸 지 닷새째. 지옥의 훈련을 견디는 것보다도 본인의 생리적 반응을 모른 척 넘기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주환은 끄응, 두 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페어가 한 숙실을 쓰면 매일 불꽃이 일지 않겠냐고?

그럴 체력이 남아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남자도 버티기 힘든 강행군에 녹초가 된 나리는 숙실로 돌아오자마자 힘들어 죽겠다며 쓰러지는데, 제 욕심에 그녀를 뭘 어떻게 해 보겠다 밀어붙일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저 문을 열고 나리가 그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혹시나 하는 맘에 문을 걸어 잠근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번엔 너무 고약한 꿈이었다.

“…….”

주환은 벌게진 얼굴로 옷걸이에 건 그의 제복을 흘긋 쏘아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해군 정복은 곱게 걸려 있었다. 애꿎은 제 옷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박 소령님, 한 번만 입어 봐도 돼요?’ 하며 나신 위에 제 옷을 걸친 나리라니.

“으…….”

주환은 어금니를 지르물고 앓는 소릴 내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씻자. 씻으면서…… 좀…….”

그리고 제 방에 딸린 화장실로 성큼성큼 직행했다.

❖ ❖ ❖

세찬 물소리가 난다.

나리는 부스스 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했다. 기상 점호 20분 전이다.

“으으…….”

잠귀가 밝은 에스퍼, 이나리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근육통으로 무거운 몸을 뒤척였다.

조금만 더 자자……. 조금만.

“……?”

근육통인 줄 알았는데, 뭐가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고 걸리적거렸다.

뺨에 닿는 숨결과 제 등허리를 감싼 누군가의 팔에 나리는 흠칫 몸을 떨며 눈을 번쩍 떴다.

으아, 박 소령님?

거실 쪽 인기척이나 문 여는 소리 같은 거 들은 적 없는데?

나리가 뻣뻣하게 몸을 굳히는 걸 느낀 등 뒤의 남자는 더욱 팔에 힘을 주고 나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목덜미에 묻은 그의 코와 입술이, 등에 닿는 그의 세찬 심장 소리가 나리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저어…….”

쉿.

그가 나리의 귓바퀴를 물면서 작게 속삭였다.

조용히 해.

강이 알면 나 죽어.

“…….”

나리가 눈을 가로로 뜨고 뒤를 돌아보자, 일한이 씩 웃으면서 입 모양으로 ‘잘 잤어?’ 하고 묻는다. 나리는 두 눈을 깜박이며 왜 일한이 제 침대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일한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어떤 대답보다 시린 새벽빛에도 환한 저 미소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널 맨 처음 보고 싶어서.

포근한 널 안고 싶어서.

다른 사람보다도 내가 먼저 네 눈에 들었으면 해서.

일한이 몸을 일으켜 나리의 위에 올랐다. 그가 침대 위에 있는 나리의 알람 시계를 보더니, 알람을 끄고 나리를 내려다보았다. 곤히 자는 모습도 예쁜데, 침대 위에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과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저를 올려다보는 무방비한 나리의 모습에 일한은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일한은 부드러운 입술을 베어 물며 하얀 손가락 사이사이 깍지 껴 잡고 나리의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턱을 비스듬히 기울여 더 깊게 혀를 놀렸다.

으응.

갈증이 이는 아침을 이 남자의 혀로 축이는 것이, 달콤한 꿈 같았다. 밀어 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스며드는, 꿈.

일한이 침대 위를 바르작거리는 나리의 다리를 잡아 제 허리에 붙였다. 허벅지 위를 쓸며 내려온 손이 그녀의 허리춤을 잡고 끌어 내리려고 하자, 나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손목을 잡았다.

“하아, 소, 소령님 그건, 읍.”

무슨 말도 못 하게 일한이 다시 입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왜?”

싫어? 나빠? 그것도 아니면, 뭐…….

가이딩이 이렇지, 안 그래?

“으…….”

맨 허리를 간지럽히는 손가락이 갈빗대를 훑으며 겉옷을 들춰 올렸다. 일한의 시선이 너무 간지러워서 나리는 허리를 비틀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리는 다 예쁘구나. 쿵쿵 심장에서부터 울리는 파장이 듣기가 좋아 가슴을 움켜잡고 한입 가득 베어 먹었다.

하아…….

속에서부터 달아오른 나리의 숨소리가 그의 귀를 기껍게 했다.

“간지러워요……. 흐읏. 그만…….”

“가이딩해 줘도, 못 참겠어?”

“으응.”

몸을 잔뜩 움츠린 나리가 나른한 신음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한이 혀로 날름 나리의 입술을 훑으며 쿡쿡 웃었다.

“그럼 나리가 원래 예민한 거겠지.”

나리는 질끈 감았던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마를 맞대고 가쁜 숨을 들이쉬던 일한이 살짝 멀어진다. 눈가에서 흔들리는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농밀한 시선이 드러나고 이내 호선을 그리며 살랑살랑 눈웃음을 쳤다.

으으, 사람 화도 못 내게…….

달아오르는 심장 소리가 삑, 워치에 기록되었다.

일한은 나리의 손목을 잡아 내리더니 이를 세워 워치를 풀었다.

“유 소령님…….”

샤워기 물소리가 뚝 끊겼다.

벌컥 열린 문소리와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러다, 박 소령님한테도 호되게 맞으실 거 같은데요?

나리가 일한의 어깨를 밀어 내며 몸을 일으키자, 일한은 “조금만.” 하고 예민한 목덜미를 물고 애원했다.

똑똑.

주환이 문을 두드린다.

“이 중사. 일어났습니까?”

일한이 칫, 혀를 차면서 문 쪽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도 옷 속을 파고든 손을 치울 생각은 없나 보다. 손가락을 펴고 등허리를 쓰는 손에서 사람 맥이 빠지게 하는 포근한 느낌이 번졌다. 일한을 저지하려던 나리는 저도 모르게 일한의 품에 스르륵 기댔다.

몇 초가 흘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주환이 문고리를 잡고 말했다.

“상태 이상 신호라, 들어가겠습니다.”

주환이 숨을 크게 들이켜고 문을 열었다.

달칵.

“……?”

삐죽빼죽 산발을 한 강이 퀭한 눈으로 일한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주먹을 내지르기 직전이었다. 강이 주환을 째려보았다. 잔뜩 저기압인 서늘한 시선이 주환의 젖은 머리와 잠옷 바지에 수건만 걸친 허술한 모습을 훑고, 으르르 이를 세우며 나리에게 쏘아 말했다.

“너네……. 문단속, 안 하지?”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강의 한마디에 정신이 든 나리였다.

하아, 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열감에 흐릿한 눈을 깜박거리다 가슴께까지 올라간 셔츠를 쥐고 바르르 떨었다.

“이나리.”

나리가 저를 쏘아보는 강을 올려다보았다.

“너 오늘부터 쉴드 치고 자.”

“……?”

그게 뭔 X같은 말이야?

“문단속하고.”

강이 끙끙거리는 일한을 끌고 문으로 나갔다. 멍하니 서 있던 주환을 확 밀치면서.

“이 중사,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 유 소령이…….”

주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새끼 저 새끼 험한 욕을 하는 두 남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

“…….”

나리는 주환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석고대죄를 하는 사람처럼 침대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벽에 콩콩 머리를 박았다.

주환이 성큼성큼 다가와 나리의 양어깨를 잡아 돌렸다. 그러고는 나리의 목덜미에 남은 남의 가이딩 흔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유일한이 난데없이 이런 겁니까?”

아파.

나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하, 참 나.”

주환에게 뭐라 말해야 하나.

난 처음에 주환인 줄 알았었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일한이었다고 그래야 하나?

침묵 중에 까득, 짓이기는 잇소리가 무서웠다.

“참은 내가 바보네.”

어깨를 힘껏 붙잡은 손에서 홧홧한 가이딩이 나리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갈무리되었던 심장 박동이 쿵쿵 빠르게 치솟으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환은 나리를 벽에 밀치고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침이 고인 잇몸 안쪽을, 오돌토돌한 입천장으로 넘어가 말캉말캉한 혀뿌리, 입 안 곳곳에 남은 일한을 물어뜯어 삼켜 버릴 듯이 거친 키스였다.

“아…… 으, 흐읍.”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붙이고, 그의 홧홧한 가이딩이 덧칠해질 때마다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다. 주환은 나리를 침대 위에 쓰러트리고 얼굴을 감싸 올려 더 깊게 혀를 옭아매고 씁 빨아들였다. 나리는 그의 묵직한 손아귀에 옴짝달싹 못 하고 구겨진 시트만 움켜잡아야 했다.

무겁고, 아프다.

아찔한 경계선을 이리 넘나들다가는 과열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바, 박 소령님…….”

잠시 떨어진 입술과 입술 사이로 그의 이름이 신음처럼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주환이 고개를 들고 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입가를 쓱 훔쳤다.

“침대 위에선 그냥 이름 불러.”

“……!”

“나도 네 이름 부를 거니까.”

짙게 가라앉은 시선이 나리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그녀의 티셔츠를 훌렁 젖혀 올렸다. 새벽의 찬 공기가 맨살에 확 와 닿자 나리는 흠칫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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