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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20)화 (2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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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이 사람들, 적응이 안 된다

페어들이 쓰는 숙사도 처음인데, 일한과 강이 같이 쓰는 숙실까지 들어올 줄이야. 나리는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군부대 안의 숙실이 맞는지, 넓기도 넓고 천장도 높았다. 거실처럼 보이는 공간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 2개가 다였고, 왼쪽 방은 일한이, 오른쪽 방은 강이 쓰는 것같이 보였다.

“엥?”

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어는 한 숙실, 한 침대 쓰는 게 아닌가? 원래 각방이야?

“왜 그래요? 나리 중사.”

일한이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자꾸 갸웃거리는 나리를 불렀다.

“아, 아니. 페어는 같은 숙실, 같은 방을 쓰는 줄 알았거든요. 방이 2개 있을 줄은…….”

“사이가 좋으면 그러기도 하고요. 아니면 각방 씁니다.”

“헐.”

일한의 말에 나리는 상처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일한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속으로 ‘작가님! 아니, 외전을 왜 이딴 식으로 쓰셨어요!’를 외치는 줄도 모르고.

주환은 제 신혼집 모델 하우스 구경하듯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일한은 제 방에 들어가 멋이 살지 않는 환자복부터 갈아입었다.

가벼운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일한은 바닥에서 두 동강 난 자신의 비싼 헤드셋을 발견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최강…….”

너, 나중에 보자?

꼭, 살아서 보자?

일한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며 거칠어진 감정을 갈무리한 뒤, 서랍 속에 넣어 둔 비상용 구버전 워치를 착용했다.

그가 컴퓨터를 실행하자 푸른색 창들이 나타나 컴컴한 방 안을 가득히 메웠다.

일한이 강의 위치를 추적하는 동안, 주환은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벽의 스위치를 이것저것 만지다가 멈칫 굳어 버렸다.

“……총이 왜 주방에…….”

거실과 주방의 전면을 차지한 까만 유리 캐비닛 속의 조명이 켜지며 안이 드러났다. 반이 총기류였고, 반은 술이었다.

군인 집인지, 마피아 집인지. 주환은 순간 강과 일한의 정체가 의심되기 시작했다.

“오와! 537매그넘이다! 이건 금장도 박히고 되게 예쁘네요. 유 소령님, 앤티크도 모으세요?”

“네에. 제 자식들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저 나중에 사격 연습할 때 써 봐도 됩니까?”

태연하게 총을 구경하는 나리 때문에 주환은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아니, 유 소령. 총기류를 개인이 소장해도 되는 겁니까? 그것도 군부대 내에서?”

“아아,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할 특수 임무에 걔들 데리고 가야 하니까, 빨리 챙겨요.”

“그 말은, 이 총들이 장식용이 아니라는…….”

주환은 경악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제 키보다도 높은 캐비닛에는 앤티크, 클래식에서부터 괴수용으로 제작된 최신식 저격총, 자동 소총, 피스톨, 소음기, 스코프, 양각대 등등의 부속품과 폭발물, 나이프까지 빼곡했다.

나리는 이미 건숍(Gun shop)에 온 손님처럼 허리를 숙여 두 무릎에 손을 얹고 제 맘에 드는 총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코카콜라가 맛있다며 고르고 있었다.

“…….”

나만 적응을 못 하는 건가.

뭐지? 이 육지 사람들?

일한은 강의 마지막 행적을 주환과 나리에게 전달했다. 허공에 띄운 창을 본 나리와 주환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공유된 창을 재확인했다.

“여긴―…… 부대 내이지 않습니까?”

외출이라더니, 강은 부대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었다.

“말했잖아요? 납치당한 거라고.”

일한은 캐비닛을 열더니 대 괴수용 자동 소총 KM900을 꺼내 들었다. 이동성이 떨어져 군에서 잘 사용하지도 않는 묵직하고 큰 라이플을 본 주환은 ‘굳이 저걸 왜?’라는 의문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박 소령은 이거.”

그러고는 그 커다란 흉기를 주환에게 홱 던졌다. 얼떨결에 총을 받은 주환의 멍한 얼굴을 본 일한은 픽 미소 지으며 말했다.

“힘자랑하기 딱 좋은 거라, 잘 어울리네요.”

“총이 무슨 액세서리도 아니고, 대체 왜.”

“작전 설명하겠습니다.”

일한은 따지려는 주환의 말을 끊고 허공에 뜬 창을 돌렸다. 그의 손짓에 따라 건물의 투시도가 3D로 확대되며 세 사람은 파란색 선으로 그어진 건물 앞에 섰다. 노란색 선은 전기 배선도를, 회색 선은 건물 내의 벽과 계단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보다시피 부대 내에서도 기밀 시설입니다.”

자주 봤던 건물이었다.

병동 옆에 연결된 이능력자 연구소 C 지사. 몬스터와 차원 균열을 연구하고 에스퍼와 가이드의 상태 관리 및 매칭 테스트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했다.

“우린 연구소 청소부와 관리인들이 드나드는 지하 입구로 잠입, 비상계단 쪽을 통해 지하 8층 랩으로 갑니다.”

“보안은 어떻게 뚫습니까? 병동과 연구소 내의 경비는 경호 로봇인데요?”

“마구 쏘세요. 이능력자 본부 관할이라 안 물어 주고 버텼었는데 돈이 남아돌아서 그런가……. 그쪽에서 알아서 최신식으로 채워 넣더라고요.”

“…….”

그런 걸 물은 게 아니었는데…….

유 소령님…… 유경험자시구나.

“단, 속전속결로 가야 합니다. 시간 끌수록 골치 아픈 곳입니다. 강을 찾자마자 제가 여러분을 이동시킬 테니, 제 주위에서 너무 멀어지지만 마세요.”

“옙, 알겠습니다.”

“…….”

주환은 대답 없이 이 상황의 앞뒤 설명을 바라는 시선으로 일한을 쏘아보았다. 일한은 사정을 말해 주지도 않고 산탄총을 집어 들었다.

“박 소령님. 내 입으로는 말 못 합니다. 그냥, 가 보면 압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놈들이 있는지.

일한이 하나, 둘, 탄환을 넣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복도를 시끄럽게 울리던 보안 경보에 헐레벌떡 올라온 숙사 당직 병사가 구겨진 철문을 보고 놀라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아악! 아니! 어떤 간 큰 놈이 최 대령님 숙실을……!”

철컥.

일한은 레버를 펌핑하며 장전을 마무리하더니, 문에 선 병사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최후의 목격자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일한과 나리, 주환을 쳐다보았다.

“내가 간이 좀 큽니다.”

일한이 눈꼬리를 휘며 병사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살짝 귓속말을 건넸다. 병사는 가이드의 입김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며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아, 예……. 대, 대기, 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관리자님께 문, 새것으로 달아 놓으라고 하세요.”

“아, 네…….”

“갑시다.”

일한이 앞장섰다. 그 뒤를 나리가, 마지막으로 얼떨결에 괴수용 총을 든 주환이 뒤따랐다.

주환은 일한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최 대령이 연구소에 잡혀갔든 끌려갔든 해군인 자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대체 어째서 원수 같은 최 대령을 구하러 저 여우 같은 녀석을 따라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제 옆에서 총총걸음으로 뛰는 나리를 보니, 또 울컥 차오른 화가 누그러진다.

강과 일한이 없던 사흘 내내 안절부절못하다가 또 풀이 죽어 한숨만 쉬던 나리였다.

같이 밥을 먹는 동안에도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훈련 중에도 어설프게 웃어 줄 뿐, 무슨 일 때문에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정말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얼굴로 뻔뻔하게 괜찮다고 우기는 나리 때문에 주환은 가만히 손만 잡아 줄 수 없었다. 참다못해 가이딩도 잊고, 나리를 제 두 팔 안에 가둬서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없게 몰아세웠다.

〈하나도 안 괜찮은 얼굴로 거짓말하지 마시죠.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습니까?〉

바른대로 말해 보라고 나리를 다그치며 내려다보았다. 나리는 무슨 대역죄를 지은 사람처럼 잔뜩 움츠리고는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을 굴렸다.

〈그……. 박 소령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요……. 제가 엊그제 최 대령님께 큰 사고를 치고 냅다 도망갔거든요. 언제 마른하늘에서 천벌이 내려질지 몰라서, 그냥 자수하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는 걸 보니, 정말 망했구나 싶어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나도 딴 남자 얘기 못 나오게 입술을 삼킬 걸 그랬지.

주환은 어금니를 지르물고 총을 쥐었다.

❖ ❖ ❖

훤한 대낮, 부대 안에서 커다란 총을 들고 뛰는 사람이 하나도 아닌, 셋이나 있었다.

그들과 마주친 병사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멈춰 섰다가, 워치에서 아무런 알림이 없자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고 다시 제 갈 길들을 가는 게 아닌가.

무심하고 경계심이 없는 부대의 분위기를 본 나리는 혀를 찼다.

강이 알면 바로 입에서 흑염룡의 브레스를 뿜어 댈 일이었다. 최강이 외출했다고 하니 다들 휴가를 맞은 것처럼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한편, 이를 보고받은 한 소령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한 소령은 태형을 뒤로하고 멀찍이 떨어져 자신을 따르는 에스퍼들을 급히 불러 모았다. 자신의 페어인 A급 에스퍼와 B급 에스퍼 4명, 그리고 백업할 가이드 1명까지.

“무슨 일입니까?”

태형이 한 소령에게 다가와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병동 쪽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 잠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들어 보니 조금이 아니던데?”

“…….”

귀 좋은 에스퍼 같으니.

한 소령은 생긋 웃으며 곱게 손질한 머리를 뒤로 넘겼다.

“최 대령님께서 부재중일 때에, S급 에스퍼께서 도와주신다면야 저희가 감사할 일이죠. 앞으로 진행할 합동 훈련도 빠르게 풀릴 거고. 보고받으실 각하께서도 흡족하시겠죠.”

그녀가 미소 지으며 태형의 뒤에 선 가이드를 향해 눈짓했다.

“…….”

태형의 가이드는 짧은 커트 머리에 조그맣고 무표정한 여자였다. 저렇게 심심하게 생긴 가이드가 뭐가 좋다고, S급 에스퍼와 매칭이 된 건지. 한 소령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안 그렇습니까? 윤소민 소령?”

한 소령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인지 태형의 가이드, 소민은 한숨을 내쉬며 태형에게 말했다.

“함장님, 한 소령님과 다녀오십시오. 저는 여기에 남아 밀린 잔업 좀 처리하겠습니다.”

“나더러 우리 소민 씨 두고 딴 가이드랑 가라니? 표정과 말씨가 ‘잘 가, 집에 돌아오기만 해 봐.’ 하고 협박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내 기분 탓이야?”

저리 차갑고 점잖아 보이던 남자가 갑자기 뚱한 얼굴을 한 소민 앞에서는 능글맞게 웃으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공태형, 그는 아주 전형적인 에스퍼였다.

“…….”

소민은 반쯤 감긴 눈으로 태형을 흘겨보더니 자기 짐을 챙겨서 무심하게 가 버렸다. 제 가이드의 가차 없는 무반응에 태형은 입매를 비틀며 애꿎은 한 소령을 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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