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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18)화 (1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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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왜긴, 더 욕먹을 짓을 할 거니까요

둘 중 하나가 임무 중에 죽어서, 혹은 둘의 성격 차이로, 등급 차이로, 그냥 가이드의 변덕 때문에 등등 페어가 깨지는 이유는 많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해란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음료수 박스 안에 있던 캔 하나를 꺼내서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이 중사를 제 친동생처럼 생각합니다. 누가 내린 명령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중사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그래요. 그래서, 저 요즘 많이 힘듭니다.”

나리를 위한다는 사람이 여태까지 뭐 하다가 페어 될 가이드가 나타나고 나서야 그녀를 흔들려고 한단 말인가?

해란은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여기서 더 기다리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소령님의 단념을 돕기 위해 매칭 테스트를 요청해 드릴까요?”

“아, 진짜! 안 중위님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내가 뭐, 안 중위님께 섭섭하게 한 거 있습니까? 응원과 위로를 못 할망정, 단념이라니! 저 이제 시작입니다?”

일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란에게 따졌다. 해란은 픽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 중사에게 오늘 꼭 유 소령님 문병하라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앗, 정말?

일한은 귀를 쫑긋 세우더니 해맑게 웃으며 해란을 추켜세웠다.

“역시, 독수리처럼 영민하고 재빠른 안해란 중위밖에 없습니다.”

1시간 뒤.

나리가 일한을 찾아왔다.

“유 소령님, 몸은 좀 괜찮습니까?”

“보다시피, 살아났죠.”

일한은 나리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속으로 해란을 욕했다.

“다행입니다. 유일한 소령.”

나리 뒤에 시커먼 박주환도 있었다. 취사실에 있어야 할 50인용 대형 밥솥과 함께.

“많이, 드시고, 얼른, 회복하시라고, 죽 챙겨 왔습니다.”

“아, 예……. 고오……맙습니다.”

주환은 이동식 식탁을 꺼내서 일한의 앞에 떡하니 올려놓았다. 천장을 찌를 듯한 높은 곳에서 주환의 무시무시한 시선이 일한에게 쏘아졌다.

“두 손은 멀쩡하시니 떠먹여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하. 하…….”

일한은 흥부 뺨칠 만큼 단단한 밥숟가락을 들고 있는 주환이 원수라도 되듯 흘겨보았다.

나리가 다소 조용했다. 나리 얼굴 보고 할 말이 있는데, 주환의 덩치와 큼직한 밥솥에 가려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일한이 상체를 옆으로 끌어당기고 나서야 나리의 옆모습이 보였다.

“나리 중사? 그간 무슨 일 있었어요?”

일한의 발치만 보고 있던 나리가 퍼뜩 입을 뗐다.

“벼, 별일 없었습니다. 내일이 페어 훈련 마치는 날이라 좀 바빴어요.”

“아아, 벌써 일주일이 되어 가는군요. 훈련 때, 강이가 뭐라 하던가요? 왜 안색이 굳었어요?”

“예……?”

나리가 놀란 표정으로 일한을 쳐다보았다. 일한도 두 눈을 깜박이며 나리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멍하니 시선을 주고받는 사이, 주환이 대답했다.

“유 소령님, 최강 대령님 3일째 외출 중이십니다.”

“예엑?”

뭐엇?

일한은 펄쩍 뛸 노릇이었다.

아니, 그럼 얘네 둘이 사흘간 훈련하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진도를 뺐을지 아무도 감시 안 했다는 거잖아!

나리도 당황스러웠는지 어리바리하게 입을 우물거리더니 일한에게 물었다.

“유 소령님, 모르셨습니까?”

“모, 몰랐죠! 강이가 내 워치 고쳐 준다면서 가져가고는 난 사경을 헤매다 오늘 새벽에서야 일반 병실로 내려왔는걸요. 파장도 안 잡히고, 강이는 불러도 안 오고. 얘가 나한테 삐져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요?”

“아…….”

그랬구나.

내가 못 볼 걸 봐서, 내가 두 사람 사이에 괜히 끼어서 날 피하는 게 아니었구나.

내내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시름에 잠겨 있던 나리는 그제야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두 분 다 연락이 안 돼서……. 전…….”

일한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였다.

아! 나리가 나한테 연락했었구나.

“나리 중사, 나한테 연락했었어요? 혹시, 내가 강이랑 나리 중사 찾는 말은 못 들었고?”

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못 들었습니다. 1인실이 있는 4층 병동 안으로 들어오니 바깥 소음은 차단되어서…….”

“…….”

일한은 입 안을 짓씹으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이도 없고, 나도 자리에 없었을 텐데. 누가 그동안 부대를 맡고 있었습니까?”

“한 소령님께서 맡고 있습니다.”

“한 소령? 가이드 한다희 소령이요?”

“네.”

일한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습니까?”

“아……. 그리고 오늘 아침엔…….”

일한이 닦달하듯 눈꼬리를 세우고 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나리와 주환에게 물어볼 게 아니었다. 일한은 링거 거치대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 소령님? 이, 일어나셔도 됩니까?”

“아파도 일어나야죠! 그 어중이떠중이 한 소령이 지휘권 잡고 있는 데다가 강이가 부대 내에 없다는 걸 아무도 나한테 안 알려 줬는데, 지금 이게 그냥 넘어갈 일입니까?”

일한은 절뚝거리며 병실을 나섰다. 눈앞이 흔들리며 머리가 핑 돌았다. 나리가 황급히 휘청거리는 일한을 붙잡았다.

“유 소령님. 잠시만요.”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했지…….”

으득, 일한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았다. 나리는 성치 않은 몸으로 서두르려는 일한을 잡고 말했다.

“소령님, 오전에 해군 측 사람들이 왔습니다.”

일한은 주환을 째려보았다.

“해군, 누구입니까? 이미 김성권 중령님이 박주환 가이드의 훈련, 일정, 책임자로 계실 텐데요?”

주환이 대답했다.

“김성권 중령님은 어젯밤 사령탑으로 돌아가셨고, 공태형 대령님께서 마지막 일정을 직접 논의하고 싶다고 오셨습니다.”

“마지막, 일정, 요?”

“예. 이나리 중사가 언제 해군으로 이동할지…….”

“…….”

아오! 하필이면 강이 부재중일 때, 그 인간이 오는 건데에? 이 타이밍 너무 절묘한 거 아니야?

일한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하마터면 빽 소리칠 뻔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손으로 제 이마를 툭툭 치며 정신부터 차렸다.

일단, 강부터 찾아야 한다.

외출할 곳도 없는 애가 이렇게 허술하게 부대를 비울 이유가 전혀 없다.

“나리 중사.”

“예.”

“좀 어려운 부탁이 있습니다.”

일한은 나리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숙였다. 다리가 화끈화끈 아프고, 저기서 주환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가 입술만 움직여서 아주 작게 속닥거렸다.

“아무래도 강이 외출한 게 아니라, 납치당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

말도 안 돼…….

어느 누가 SS급 순간 이동 에스퍼를 납치할 수 있다는 거지? 강이 누굴 납치한 게 아니라? 납치를 ‘당’해?

못 믿겠다는 나리의 눈에도 불구하고 일한은 농담이 아닌 듯 심각했다.

“가이딩…… 아니 나리 중사 어빌리티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제 어빌리티를요? 소령님은 저랑 페어도 아니고 파장도 안 맞는데, 그걸 어떻게…….”

듣도 보도 못한 얘기의 연속이었다.

SS급 에스퍼가 납치당했다는 말도 어이없는데, S급 가이드의 넘사벽 능력 중에는 페어가 아닌 에스퍼의 어빌리티를 이용할 수 있는 필살기라도 있냐고 물으려던 찰나.

“나리 중사는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런 건 가이드가 알아서 맞출 테니까.”

“에에……? 가만히, 요?”

“들어주셔야 합니다. 나리 중사 말고 부탁할 사람이 없어요. 공 대령을 상대할 에스퍼가 부대 내에 강, 아니면 이나리 중사인데…….”

급한 사안인 것 같아 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리 중사, 저를 막, 엄청!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그렇진 않죠?”

“막 싫……어하진 않습니다만.”

“오케이.”

그걸로 충분하다.

나리의 뒷말을 자르고 주환을 향해 생긋 웃었다. 말로 뭐라 하지 않았지만, 딱 ‘너 엿 먹어라.’ 할 때의 그 표정이었다.

왜 그런 걸 묻는 걸까.

예민한 에스퍼는 스멀스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요?”

나리가 미간 사이를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긴, 더 욕먹을 짓을 할 거니까요.”

일한은 그 말과 함께 나리의 얼굴을 감싸 올려서 입을 맞췄다. 그가 혀끝으로 무방비하게 살짝 벌어진 입술을 젖히고 잇새를 벌렸다.

“……!”

깜짝 놀란 나리는 일한의 팔과 어깨를 잡아 밀어 내려다 말고 그에게 매달려야 했다.

살짝 들린 발꿈치 때문에 발끝에 힘을 주고 땅을 디뎌야 했다. 아니, 그보다 제 혀를 긁고 옭아매는 일한의 혀와 그의 향, 맛, 가이딩이 섞여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부터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으응, 흐…….”

속으로 깊게 스며드는 일한의 가이딩 때문에 머릿속 어딘가가 툭 끊기며 녹녹해졌다.

아…… 맛있다.

가이딩이, 이렇게 달콤할 수가 있구나.

나리는 질끈 감았던 눈꺼풀을 살짝 들었다. 흐릿했던 초점이 일한의 갈색 머리카락을 거쳐, 그의 귓바퀴를 지나, 제 옆에 서 있었던 주환에게 닿았다.

입을 떡 벌리며 이게 대체 뭔 일인지 파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저 가이드도 맛있겠지. 아직도 그가 깨물었던 곳이 간지럽고 홧홧하니까…….

나리는 뜨겁게 뛰는 제 심장 소리를 달갑게 들으며 일한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멋대로 나리의 잇새를 짓쳐들어온 건 일한이었지만, 그를 혼미하게 놓지 않는 건 나리였다. 어느새 입술 사이로 흐르는 침을 씁, 빨아들이며 그의 입가까지 할짝거리고 있었으니까.

일한은 움찔거리며 나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위험하게 요동치는 나리의 파동을 이로 질끈 물었다.

“하아…….”

나리는 아쉽다는 듯이 발갛고 도톰한 일한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발꿈치를 더 높게 들면서 일한의 팔을 잡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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