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내가 저 집착광공의 똥개도 아니고
타다다당!
탕, 탕! 탕!
가이드들의 백업과 함께 에스퍼들이 파동을 일으켰다.
- 알파, B-22, C9 구역 SW 210방향, 37°53′39.81″, 127°43′42.17″ 백화점 입구 탐지, 1층 입구, 클리어.
- 알파, B-11, C9 SW 215방향, 37°53′53.73″, 127°43′57.31″ 거의 도착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에스퍼들이 상황을 보고하며 건물 진입을 시도했다. 일한은 앞선 에스퍼들의 파동을 제어하면서 뒤따라 붙었다.
“아직 지하로 가지 마! 독수리 올 때까지 대기!”
같이 출격한 A급 안해란 중위가 도착해야 한다.
“안 중위! 어디쯤 왔습니까?”
“아아아악!”
일한을 뒤따라오던 에스퍼의 파장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일한은 바로 총구를 돌렸다.
군용차만 한 거미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날카로운 갈퀴가 달린 앞발로 사람의 복부를 뚫어 버렸다. 그리고 에스퍼는 관심이 없다는 듯 그대로 옆으로 팽개쳐 버린다.
“젠장.”
수많은 거미 눈이 탐욕스럽게 번뜩이며 일한에게 쏠렸다. 일한은 거미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당! 탕!
바로 지척에서 총을 쐈는데도 거미는 눈알이 으깨지고 머리 표피에 금이 간 채로 일한에게 달려들었다.
“유 소령님!”
앞서가던 에스퍼들이 뒤돌아 파장을 퍼트리며 불길을 일으켰다.
콰강! 콰과앙!
퀘에엑!
매캐한 연기와 폭발음이 땅을 진동시켰다.
거미는 일한의 다리를 물고 건물 위로 쿵쿵, 뛰어올랐다. 그 무게에 반쯤 무너진 건물 벽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독을 감지한 워치에서 빨간 불이 깜박거리며 시야 가득히 상태 이상을 알렸다.
“……칫.”
더럽게 아프네.
거미에게 물린 채로 허공에 흔들리던 일한은 홀스터에 단 비상 주사약을 뽑아 독이 퍼져 나가는 허벅다리에 꽂았다.
페어와의 거리 85.22km.
강의 파장을 잡을 수 없는 거리였다.
❖ ❖ ❖
삑!
손목이 따끔했다. 강은 눈가를 가리고 있던 팔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일한의 상태가 표시되고 있는 바이털이 붉은색으로 상태 이상을 알렸다. 강은 워치를 눌러 일한의 위치를 확인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위치 추적 불가
강은 다급하게 일한을 불렀다.
“유일한, 상황 보고해.”
5초를 기다려도 답이 없었다.
“야. 유일한?”
그리고 상황 보고는 일한이 아닌 다른 쪽에서 왔다.
- 독수리, A-01. 구조 지원, 구조 지원 바랍니다. C9 구역, 좌표 37°53′39.81″, 127°43′42.17″ 백화점 지하 1층에 독거미 집 다수 발견, 콜록, 서 중위 소대 쪽은, 지하 1층에 잡혔고……. 큼! 후우, 알파 쪽은 저희와 합류했는데……. 심 상병 중상에, 유일한 소령님 실종입니다.
강은 튀어 나갈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옆자리에서 보고를 들은 나리는 벌써 인이어를 차고 군화를 신고 있었다.
“솔개, A-09. 지원 요청 확인했습니다. 1분 내로 출격합니다.”
예기치 못한 비상 상황에 주환뿐만 아니라 의무실 당직 가이드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움직였다. 나리는 주환을 막아섰다.
“박 소령님은 여기 계십시오.”
“하지만.”
“부상 중인 가이드는 열외입니다.”
나리는 이미 훌쩍 사라진 강이 누워 있었던 자리를 돌아보더니 발뒤꿈치를 들어 주환에게 작게 속삭였다.
“전 괜찮습니다. 저 정말 어제보다 팔팔하고, 다녀오면 박 소령님께 가이딩받을 거니까요.”
눈을 찡긋거리며 씩 웃더니 짧게 경례하고 의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
주환은 간지러운 귓가에 손을 댄 채로 나리가 가 버린 복도 쪽을 쳐다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그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헤집었다.
나한테 가이딩받겠다니.
강한테 들은 말이 있어서 그런가, 당연한 말인데도 괜히 더 설레게 되잖아.
“그 말, 손만 잡겠다는 소리겠, 지…….”
하아.
주환은 제 입가를 쓸면서 의무실을 서성였다. 머릿속에 차오르는 별의별 생각에 긴긴밤이 될 거 같다.
❖ ❖ ❖
열 맞춰 집합한 소대가 강의 명령을 기다렸다. 렌즈에 비치는 정보창으로 안 중위와 현장을 파악하고 있던 강이 뒤돌아 작전을 지시했다.
“우 소령 쪽은 안 중위랑 합류, 지하 1층 처리. 박 중위 쪽은 건물 붕괴하지 않게 가이딩하는 데 집중해. 한 중위 쪽은 건물 밖에서 지원하고, 이 중사는 나 따라와.”
“네!”
저녁 8시 반, 총기류와 구조 장비를 실은 군용차는 대형 라이트만 환하게 켜 놓고 있었다.
“다들 총 들어. 출격 3초 전.”
강이 양팔을 뻗어 공간에 경계선을 둘렀다. 다들 총을 든 상태로 자세를 낮췄다. 폭풍우 같은 파동이 반투명한 경계선을 만들며 부대가 서 있는 공간을 감쌌다.
“2, 1…….”
강의 손뼉이 마주친 순간, 백여 명의 부대원과 군용차가 사라졌다. 강은 시공간을 접어 부대원을 순식간에 정해 둔 좌표에 올려놓았다.
고르지 못한 땅바닥에서 나뭇가지 하나라도 걸리면 사람은 다치고 장비는 못 쓸 수 있기에 공간 이동 시 바닥에서 1m 띄운다.
쿠웅! 차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어두웠던 백화점 주변이 대낮같이 밝아졌다. 떨어질 준비를 한 대원들도 착지와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리는 강의 뒤를 따랐다. 강은 파장을 넓게 퍼트리며 일한을 불렀다.
“유일한, 어디야? 나 왔으니까 파장 잡아서 이동해!”
그러나 워치는 일한의 위치를 잡지 못하고 계속 상태 이상만 알릴 뿐이었다.
“유일한!”
“거미 독에 당하신 것 같습니다. 심 상병과 다른 대원들도 소령님 다리 문 채로 끌고 갔다고 했고.”
나리는 손전등을 꺼내서 무너져 내린 백화점 벽을 살폈다. 그리고 감각에 집중해 주위를 살폈다.
쿵쾅거리는 누군가의 심장 소리, 총소리, 화약 냄새, 몬스터가 재잘거리는 소리, 역한 냄새, 수많은 발이 땅을 기어오르는 소리……. 수많은 것들이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물밀듯이 쏟아진다.
나리는 코를 찡긋거리며 무너진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약 냄새와 거미의 피 냄새를 맡았다.
“최 대령님, 이쪽입니다.”
잔해의 아래쪽에 있던 강이 순간 이동으로 나리의 앞에 섰다. 나리의 손목을 잡아 제 코 가까이에 대고 손에 묻은 돌가루의 냄새를 맡았다.
“따라와.”
“네엡.”
나리는 등에 멨던 소총을 들고 강의 뒤를 따랐다. 강은 무너져 내린 잔해의 부분 부분을 사뿐사뿐 디디며 순간 이동 할 수 있지만, 나리는 바위보다 험하고 위험한 건물 잔해 위를 두 다리로 재주껏 뛰어야 했다.
헥, 헤엑, 헥…….
내가, 진짜, 저 집착광공의 똥개도 아니고, 왜 맨날 나만 강행군이냐아! 나보다 더 능력 쩌는 에스퍼도 많은데에!
나리는 속으로 불만을 외쳤다.
빌어먹을 쉴드 어빌리티. 하필이면 강의 파장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서 아군의 피해를 줄이려면 그의 옆에 붙어 다녀야 했다.
장장, 10년 동안 말이다.
밤이 되어 밖으로 기어 나오던 땅거미들이 갑자기 나타난 환한 전등 불빛에 혼비백산 숨기 바빴다. 그 뒤를 따라붙는 에스퍼들의 공격이 사정없이 쏘아졌다.
콰앙! 쿵!
가이드가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파장의 반경을 제어하고 거미들 쪽으로 돌렸지만, 나리는 손과 발이 닿는 곳마다 자잘한 진동을 느꼈다.
허물어진 콘크리트를 손으로 짚어 훌쩍 뛰어넘고, 그림자가 드리운 잔해 속에 숨은 거미들의 머리를 쏘았다. 저만치 앞서가던 강이 검을 휘둘러 거미들을 반으로 갈랐다.
사람 머리처럼 생긴 거미의 몸체가 퉁, 퉁, 나리의 앞으로 떨어졌다.
오웩.
“최 대령님…… 썰지 말고 찌르시면 안 됩니까?”
가이딩도 없이 어빌리티 발동 중인 예민한 에스퍼 좀 배려해 줄 수 없냐고…….
따져서 뭐 하나.
강은 이미 잔해 더미 꼭대기로 이동한 후였다.
정말, 배려심 제로.
저긴 또 어떻게 올라가지?
나리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하아, 유 소령님,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여기로 이동해 주세요! 일한이었으면, 진즉 ‘나리 중사, 손! 자아, 이동할게요.’ 하고 손잡고 쉽게 쉽게 갔을 것이다.
“읏챠!”
두 손을 탈탈 털고 높게 뛴 나리는 암벽 등반하듯이 커다란 벽을 기어 올라갔다.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강은 검에 묻은 몬스터의 진액과 피를 털어 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크레이터였다. 마치 커다란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이 파인 크레이터에는 거미줄이 촘촘하게 쳐져 있었다.
“저 정도 크기의 거미집이면, B급 이상이겠는데요?”
겨우겨우 벽을 타고 올라 강의 옆에 선 나리가 크레이터의 크기를 보고 말했다. 강은 일한의 바이털을 확인하면서 나리에게 명령했다.
“들어가면 쉴드로 입구 봉쇄해.”
“네, 알겠습니다.”
“유일한 찾아서 쉴드 쳐 놓고 신호 보내고.”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최 대령님.”
“왜?”
“저 로프도, 낙하산도 없습니다. 유 소령님 앞에 이동시켜 주면 안 됩니까?”
직각으로 똑 떨어지는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좌표 알아?”
“저는 모르죠. 유 소령님 좌표는 대령님이 아셔야죠.”
자기 페어 좌표를 왜 나한테 묻는담?
“내가 알면 이렇게 가겠어?”
“아…….”
강은 눈살을 찌푸리고 흘겨보면서 나리를 바보 취급 했다. 나리는 심기가 불편해진 예민하고 까칠한 상사가 훌쩍 혼자 이동해 버릴까 봐, 강의 옷깃을 꼬옥 쥐었다.
하? 이게 뭐 하자는 건지.
강은 기가 찬다는 듯이 헛바람을 흘리더니, 왼팔로 나리의 허리를 감싸 단단하게 붙잡았다.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
“아, 예…….”
허덜덜더덜…… 턱이 덜덜 떨리고 동공에 지진이 온다. 졸지에 강의 가슴에 바짝 붙게 된 나리는 예민 회로가 쌩쌩 돌아가며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유, 유일한 소령님은 손만 잡고도 잘 이동했는데.
불편하게 왜?
내 예민한 옆구리 간지럽게 왜……!
“힘 빼.”
“으, 으으.”
“이나리, 너……. 이상한 소리 내면 아래로 던져 버릴 거다. 무거우니까 힘 빼라고.”
강이 무섭게 쏘아보았다.
“네네네넵…….”
나리가 덜덜거리는 턱을 바싹 올리고, 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순간 주변이 훅, 하고 변했다.
왼팔로 나리를 끌어안고 오른팔로 거미줄을 끊어 내며 세 번의 도약 만에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 그 밑바닥에 발이 닿았다.
곧바로 눈에 낀 렌즈가 적외선 기능으로 전환되며 캄캄하기만 하던 시야가 파랗게 변했다.
가시처럼 돋은 까만 털이 달린 커다란 거미 다리들이 눈앞에서 지나갔다. 그것은 생각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며 알을 낳을 커다란 고치를 만들고 있었다.
나리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리고 거미집의 입구를 쉴드 막으로 봉쇄했다.
“……!”
에스퍼의 파동을 감지한 거미가 두리번거리며 앞다리로 쉴드를 긁어 댔다. 까다닥, 끠이이…… 칠판을 긁는 듯한 스크래치 소리와 함께 거미의 소름 끼치는 괴성이 컴컴한 어둠을 뒤흔들었다.
나리는 강의 품에서 튀어나와 거대한 고치를 향해 뛰었다. 누가 보더라도 일한은 저기에 있었다.
나리의 발소리가 캄캄한 크레이터 안에 메아리치자 거미의 눈들이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강은 검을 휙휙 돌리며 거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봐?”
거미는 나리에게서 눈을 돌려 강을 쳐다보았다. 새빨간 구슬 같은 눈들이 검을 든 강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의 검 끝을 인지한 순간, 거미의 빨간 망막은 길게 금이 가고 핏물이 팍 터졌다.
나리는 나이프를 들어 거미줄을 헤치고 두꺼운 고치를 갈랐다. 부화를 앞둔 축구공만 한 새끼 거미들이 알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엑! 그, 극혐!
저 수많은 새끼 거미 떼가 와르르 쏟아져 제 살갗 위를 지나갈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에 나리의 예민 회로가 풀가동했다.
으으, 촉감 이상하다.
으으, 냄새도 역하고 이상해.
으으, 싫어. 징그러워. 숨 못 쉬겠어. 목구멍도 간질간질해.
아씨! 제발 누가 가이딩 좀 해 달라고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