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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10)화 (1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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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햇병아리, 너나 남의 에스퍼 건드리지 마라

일한은 회색 얼룩무늬 전투복 위에 검은 방탄복과 장갑, 탄창과 배터리를 장착한 홀스터 매듭을 단단히 고정한 뒤, 인이어를 걸었다.

손등에 달린 스크린을 조작하자 눈에 낀 렌즈가 푸른빛을 점멸하며 시야 속에 상태 정보창을 띄웠다.

“알파 A0, 소령 유일한, 8314S005 출격 준비 완료.”

일한이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작전 지역과 상황 보고를 들으며 괴수용 라이플에 탄환을 장전하는 동안, 강은 팔짱을 낀 채로 일한을 지켜보고 있었다.

“혼자 괜찮겠어?”

“언제는 맨날 너랑 출동했었냐?”

“내가 가는 게 더 금방 끝날 텐데?”

“됐습니다. 최 대령님. 서 중위랑 안해란 중위도 있고, B급 세 소대나 가는데 대령님께서 저 대신 가시면 아군 피해만 더 늡니다.”

“…….”

강은 입 안을 깨물었다.

강과 일한이 항상 페어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일한이 따로 임무에 나갈 때면 이나리가 있었다.

“박 소령이나 잘 감시하십쇼.”

일한이 씩 웃으며 강을 지나쳐 군용차에 올랐다.

헤드라이트가 짙게 깔린 안개를 통과하며 점점 멀어졌다.

C9 구역은 5년 전 전투로 심하게 파손되어 험하긴 해도 안전 구역에서 멀지 않았다.

전투 피해 지역이 복구 및 정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정기적으로 정찰하며 조무래기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것쯤이야 늘 하는 일이었고.

요즘 들어 나리 때문에 부쩍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런 거로 생각하며 강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후우…….”

손목을 살짝 거둬 워치에 뜬 그와 페어의 상태를 확인했다. 10km, 14km…… 일한과 거리가 멀어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강의 두통도 심해졌다.

미리 약을 먹었는데 그 약도 내성이 생긴 것 같았다.

강은 빠른 걸음으로 제 집무실로 향했다.

“연대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해군 측에서 연락 좀 받으라고 전갈이 왔습니다.”

“씹어.”

“네. 알겠습…… 예?”

“거기서 연락 오면 씹으라고.”

다들 귓구멍이 있는데 매번 두 번씩 말하게 만든다.

강이 신경질을 부리며 길을 막은 행정병을 밀치자 행정병은 당황해서 눈만 굴렸다.

“저……. 연대장님, 김성권 중령님께서 연대장님 집무실 앞에서 대기 중이시던데요?”

“아, 씨.”

강은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주환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짓씹힌 손끝에 말캉한 입술이 닿고, 나리를 유혹하는 화한 가이딩이 숨결을 따라 훅 스며들었다.

나리를 지그시 쳐다보는 주환의 까만 눈동자가 깊어서, 그렇게 혹해서 심장이 쿵, 하고 덜컹거렸다.

쫍, 물린 손가락 한 마디가 주환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리는 멍하니 생경한 감각에 이끌려 그의 혀를 긁었다.

부드럽다.

저 숨결을 마셔서 심장 가득히 채우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누군가 속삭이는 듯했다.

나리의 상체가 주환 쪽으로 점점 기울어졌다.

쾅!

“……?”

“……!”

나리는 흠칫 굳은 채로 부서진 의무실 캐비닛을 돌아보았다.

강이었다.

형형하게 날을 세운 눈으로 두 사람을 쏘아보고 있었다.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최 대령님?”

강은 까드득 이를 갈면서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리의 팔을 잡아채 주환에게서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나리의 옆 침대에 풀썩 누워 버린다.

“엥?”

강이 왜 여기 있지?

분명 일한이 오늘 오전 출격한다고…….

“씹……. 머리 아프니까,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마라.”

한마디, 한마디에서 나오는 파장이 살갗을 할퀴는 듯이 따가웠다.

숨 막힐 듯한 파장이 노이즈를 일으키며 주환의 머리를 짓눌렀다.

나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

“…….”

나리는 멍하니 서서 두 눈을 끔벅거리며 강을 쳐다보다가 다시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인 건지. 누군가 설명 좀 해 줬으면 좋겠다는 투로 동그란 눈을 깜박거렸다.

주환은 그저 어이가 없어서 욕설처럼 헛바람을 내뱉었다.

참 나. 분위기 좋았는데.

이놈이나 저놈이나 참 가관이다.

“연대장님.”

“…….”

나리는 눈을 가로로 뜨고 대답 없는 강을 불렀다.

저기 빈 침대가 많은데. 아니, 그보다 강의 침대가 의무실의 좁고 비루한 침대보다 훠얼씬 안락하지 않을까?

“최 대령님은 출격 안 하셨습니까? 오늘 유일한 소령님 혼자 가신 겁니까?”

“보면 몰라?”

강이 버럭 소리쳤다. 나리는 흠칫거리며 얼굴을 굳혔다.

왜 저래.

자기가 일한한테 잘못해 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람? 아니, 도대체 둘이서 뭔 일이 있었길래 각방에, 얼굴도 본척만척, 임무도 따로 뛰고, 성질은!

“그, 그래서…… 저는 어젯밤에 분명히 두 분 화해하시라고 했습니다. 화해 안 하고 버티시다가 손해 보는 건 순전히 대령님 아닙니까?”

“하아, 이나리. 나 머리 아프니까, 그 입 쫌……!”

강이 주먹을 쥐고 으르르 짜증을 냈다.

“예예…….”

나리는 눼에눼에 굽신거리며 제 침대로 돌아와 자신의 입 지퍼를 꾹 그었다.

허…….

주환은 소리 없이 경악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의무실을 가득 채운 강의 파장은 불구덩이 속에서 포효하는 폭풍 같았다. 저 파장을 홀로 감당해 내는 일한이 새삼 까마득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주환은 허공에 휘몰아치는 강의 파장을 멍하니 보면서 손을 들었다.

뜨겁고, 따갑다.

나리의 파장은 이렇진 않았는데.

주환은 저도 모르게 강의 파장을 휘저으며 가이딩을 방사했다.

“……!”

그 바람에 강이 눈을 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한 바람이 제 파장을 느리게 붙잡고 억눌렀다.

경험 많은 의무실 가이드들도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가이딩을, 난데없이 나타난 특이 발현자가 겁도 없이.

“그만해라. 박 소령.”

강이 반쯤 몸을 일으키며 주환을 노려봤다. 주환은 듣지 못했는지 강의 파장을 손에 쥐었다 폈다.

“내가 언제 가이딩해 달라고 했어?”

“에스퍼는 오감 신경이 예민하기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며, 매사에 신경질적이다. 그렇게 교육받았습니다.”

어쭈.

“그래서.”

A급 가이드가 날 가이딩해 보겠다고?

“남의 에스퍼한테 신경질 부리지 마시고 한숨 주무십시오.”

주환은 강에게 손을 뻗었다.

강은 그의 단단한 손에 순순히 잡힌 채로 픽 조소했다.

자라고?

나더러……?

“박 소령, 에스퍼에게 가이딩이 어떤 느낌인지 아나?”

“그야 안정적이고 편안한…….”

“하! 해군은 5살짜리랑 같이 교육해?”

“…….”

“존나 꼴리는 기분 들어. 아주 중독적이라, 정신 놓고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지. 그래서 페어 매칭 시스템이 있고, 의무실 가이드들은 가이딩 전에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미리 알려야 하고, 상태가 통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안정제를 놔야 해. 에스퍼는 과한 가이딩이라 인지하면 바로 브레이크를 알리며 기를 다 꺼야 하고. 가이딩 때문에 벌어지는 불의의 사고가 군에 빈번하니까. 그런데, 날 가이딩하겠다?”

“…….”

주환은 강의 손을 놓았다. 강은 주환의 목을 조를 것처럼 노려보며 파장을 일으켰다.

“햇병아리. 내가 그때 빈말로 죽인다고 말한 거 같나?”

주환은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강은 이를 세우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너나 남의 에스퍼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

“마지막 경고야. 박주환 소령. 일, 똑바로 해.”

아.

강의 말이 송곳처럼 꽂혔다. 나리는 저도 모르게 입 안에 넣고 있던 손가락을 뺐다.

내 감정과 가이딩, 그 미묘한 선에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서 있으라고.

“…….”

나리는 고개를 숙인 채 촉촉하게 젖은 자신의 손을 주먹 쥐었다가 주물렀다. 아직도 주환이 깨문 데가 홧홧했다.

❖ ❖ ❖

- 독수리, B-12, C9 구역 NE 60방향 37°53′5.9″, 127°42′58.6″ 클리어.

- 독수리, B-14, C9 구역 NE 63방향 37°53′5.9″, 127°42′62.8.″ 클리어.

- 독수리, A-01, 클리어 확인. 과장님. 이제 C9은 복구 단계 들어가도 되겠는데요? 뭐야, 너무 깨끗한데?

일한은 무너져 내린 아파트 건물 옥상에 서서 황폐해진 옛 도시의 잔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이플의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제 뺨을 붉게 물들이는 바람이 부는 쪽을 돌아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붉은 노을이 이끼와 이름 모를 잡초들로 무성한 C9 구역을 붉게 물들였다.

“복귀할까요?”

일한의 옆에 있던 에스퍼가 물었다. 일한은 붉은 노을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다시 스코프를 눈에 댔다.

“저, 백화점 건물.”

“예.”

“저기 들어간 거, 서 중위 팀입니까? 들어간 지 꽤 됐는데 왜 보고가 없습니까? 에스퍼 한 명 파장이 안 느껴지는데?”

느낌이 안 좋다.

“아……. 유 소령님.”

일한의 말을 듣고 바이털과 캠을 확인한 에스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독거미입니다. 거미 둥지가…….”

일한이 제 렌즈로 화면을 돌렸다.

백화점 지하, 컴컴한 푸드 코트에 새하얀 거미줄이 빽빽하게 쳐져 있었다. 에스퍼들을 돌돌 말아 천장에 걸어 놓은 듯, 캠 화면은 상하가 반전되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거미에서부터 사람만 한 거미까지 우글우글했다. 다행히 신경독에 당해 정신을 잃은 건지 바이털은 계속 표시되고 있었다.

“안해란 팀장, SW 212방향 백화점 건물로 이동합시다.”

- 독수리 A-01, SW 212방향 백화점으로 이동. 그럼 그렇지. 이놈의 끈질긴 땅거미들…….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했습니다.

일한은 라이플을 둘러메고 자신이 맡은 소대에게 이동 명령을 내렸다.

“자칫하면 건물 붕괴합니다. 거미집 소탕은 나중이고, 사람 먼저 구합시다. 가이딩은 제가 하겠습니다. 안 팀장은 백업, 알파는 대기 후 투입. 해 지기 전에 끝냅니다.”

“예. 알겠습니다.”

- 예, 알겠습니다.

진형이 해가 지는 쪽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자 땅속에 숨어 있던 거미들이 눈을 들어 사사삭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미들은 다른 몬스터들에게 밀려 C9 구역까지 내려와 거미줄을 쳤다. 집은 있어도 항상 배가 고팠다. 몬스터가 거의 소탕된 땅이라 사냥할 것이 마땅치 않던 차에 사람들이 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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