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얘 살리라고 데려왔더니
주환은 나리의 팔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엥?”
주환의 가슴에 폭 안긴 나리는 연습 중에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분명 주환의 주위엔 소음도 없고 냄새도 없고 피부 위를 간지럽게 하던 감각도 없는데, 그의 향이 났고 그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가이딩이 진행될수록 시원하던 주환의 기운은 점점 홧홧하게 변하며 나리의 파장을 움직였다.
쓰나미에 휩쓸린 듯하다. 잡힌 손목에서부터 기댄 어깨까지 혈류를 따라 아드레날린이 빠르게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쾅쾅 뛰는 심장 때문에 나리는 얼굴을 붉혔다.
“바, 박주환 소령님, 저…….”
저 기분 이상해요. 놔주세요.
강과 일한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주환을 밀어 내서 빨리 제대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나리의 시신경이 경고하고 머리로도 반응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 소리치는 일한과 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혀가 딱딱하게 굳고 멍하니 벌어진 입에선 흥분한 숨이 뭉텅뭉텅 새어 나왔다.
“아으으…….”
주환이 나리의 동그란 어깨를 꽉 끌어안자 나리가 흠칫 잘게 떨었다.
“미친! 쟤, 뭐 하는 거야!”
강이 소리치며 나리에게 달려갔다.
두우웅!
베이스처럼 둔탁한 울림이 퍼지며 반투명한 쉴드가 그의 기운뿐만 아니라 발까지 막았다.
“나리 중사!”
강을 뒤따라온 일한이 나리의 파장을 흩트리려고 했다. 너무 견고하게 짜여 단단한 철을 만지는 것 같았다.
“오, 오올…….”
“너 지금 감탄사가 나와?”
쉴드 안도 철벽처럼 촘촘하게 막아 놔서 강도 순간 이동 할 수 없었다.
박주환 소령, 대단한데?
“공간 접어 볼까?”
“안 돼. 나리 어빌리티에 차단이 있어. 저긴 안 접혀.”
“흐음.”
하는 수 없이 일한은 주환을 사납게 쏘아보며 천천히 제 소매를 접어 올렸다.
그리고 더욱 불투명해진 나리의 쉴드에 두 손을 대었다. 손바닥 안으로 빠르게 고동치는 심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박 소령, 몇 대 때릴 거야?”
가이딩하기 전에 물어봐야지.
강은 으드득 이를 갈면서 잇새로 날 선 기운을 나지막이 흘려 내보냈다.
“몰라. 네가 알아서 말려.”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람 살려 보겠습니다.”
일한은 똑소리 나게 대답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눈을 감고 철사가 엉켜 있는 듯한 파장을 빠르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와…….”
주위에 있던 가이드들은 일한의 정교한 컨트롤에 입을 떡 벌리며 몰려들었다.
반면에 에스퍼는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저기에 함부로 발을 디뎠다가 자신의 파장도 순식간에 해체될 거 같아 뒤로 물러났다.
“다치기 싫으면 꺼져.”
강이 뒤돌아서 몰려든 가이드한테 경고했다.
“헛, 아! 네!”
넋 놓고 구경하던 가이드들이 화들짝 놀라 열 발짝 뒤로 물러났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에스퍼들이 페어를 챙겨서 더 멀찍이 도망쳤다.
사람들이 물러난 것을 확인한 강이 일한이 벌려 놓은 틈에 손끝을 끼웠다. 그리고 온 힘을 손끝에 주고 쉴드를 찢어 버렸다.
그그그그극.
나리와 주환을 감싸고 있던 10m 지름의 쉴드 위로 금이 갔다.
“…….”
주환은 나리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로 강을 노려보았다.
“이나리! 너……! ……하면 어떻게 해! ……끼야! 안 놔?”
금이 간 시야 속에서 펄펄 열을 올린 강이 뭐라고 소리쳤다.
주환은 나리가 듣지 못하게 귀를 막고 자신을 공격하는 파장을 흘려 버렸다.
퍽, 퍼억, 쾅!
강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쉴드는 얼음이 수증기가 된 것처럼 폭발했다.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일한은 쉴드를 해제했다.
파아아앙!
충격파가 퍼지며 창문과 건물을 뒤흔들었다.
“으윽!”
일한은 두 팔을 들어 충격파를 막았지만 나리가 없으니 고스란히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저만치 밀려나고 말았다.
“콜록, 이런 건 나리 중사가 다 막아 줬었는데…….”
제 소중한 부하―방패막이―를 뺏긴 일한은 눈물을 글썽이며 매운 기침을 콜록거렸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번개가 내리치는 듯이 파동이 번쩍번쩍 쏘아지는 훈련장을 쳐다보았다.
멀쩡했던 땅이 사정없이 파이고 야구 경기장에서 뽑아 온 대형 전등과 벤치들이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아아……. 저거 복구하려면 어디 예산을 건드려야 하나.”
일한은 제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열 손가락을 펴고 숫자를 셌다. 파격음이 하나씩 울릴 때마다 손가락을 접었다.
강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주환은 나리의 파장으로 막아 냈다.
가장 단단하게 쉴드를 둘렀는데도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제 손바닥과 팔이 불에 덴 것처럼 얼얼했다.
“박 소령님…….”
나리가 실낱같이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미친 망아지처럼 펄떡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내쉬며 주환의 어깨를 잡았다. 손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쭉 미끄러졌다.
“하아, 하, 나 되게 어지러워요.”
“……?”
“그냥…… 연대장님께…… 맞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꽥.
가까스로 유언을 남기고 기운을 다 소진한 나리는 두 눈에 흰자위를 보이며 고개가 뒤로 꺾였다.
“이 중사? 큭!”
강은 쓰러지는 나리의 허리를 낚아채면서 주환을 걷어찼다.
그나마 봐준 거였다. 힘이 쏠린 주먹이 쉴드 안 친 가이드 얼굴을 때렸으면 사망이니까.
“씨발, 누가 가이딩 그따위로 하래.”
주환은 맞은 배를 움켜쥐고 컥컥 고통을 토해 냈다. 강은 나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바다에서 굴러 들어온 돌부리를 뻥 찼다.
“으윽!”
최강한테 맞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주환은 몸을 새우처럼 말고 강의 발길질을 막아 내느라 입 안에 고인 피도 뱉을 수가 없었다.
“얘 살리라고 데려왔더니, 죽이려고 작정했어?”
“……!”
“내가, 내가……!”
일한은 자신의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을 재확인하고 주환의 앞으로 순간 이동 했다.
“강아, 그만 됐어.”
일한은 기가 실린 강의 발을 붙잡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들끓는 힘을 빼려고 가이딩했지만, 녀석은 화가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검은 번개 같은 파장이 따끔하다 못해 일한의 손을 매섭게 할퀴었다.
“억, 어어! 아이고, 연대장님! 그만하십쇼! 이러다 사람 하나 잡겠습니다.”
일한은 강의 다리를 끌어안고 제 뒤에서 반쯤 죽어 가고 있는 주환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박 소령님. 뭐 하십니까? 빨리 저희 연대장님께 잘못했다고 비세요!”
갑자기, 이 무슨 발연기란 말인가.
여태껏 친구처럼 강을 부르다가 깍듯이 연대장님이라니.
“…….”
자존심 센 주환은 일한을 노려보며,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을 떠올렸다.
❖ ❖ ❖
저 남자가 싫다.
주환은 의무실 침대에 걸터앉아서 턱을 괸 채로 일한을 노려보았다.
일한은 무릎 위에 태블릿을 놓고 주환의 앞에 바르게 앉아 있었다.
“…….”
“……큼!”
일한은 잠긴 목을 가다듬더니 주환에게 물었다.
“박 소령님, 치료 다 끝나시지 않으셨습니까. 숙실로 가서 쉬십시오.”
“…….”
“제가 숙실까지 부축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럼 저기 누워서 쉬십시오. 오른팔이랑 갈비뼈 3대나 부러지셨는데, 왜 불편하게 나리 중사 침대에 앉아 계십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유 소령님은 할 일 없으십니까?”
“이게 제 할 일인데요?”
“…….”
“…….”
아, 신경 쓰여.
상급 가이드가 둘인데, 왜 속은 메슥거리고 오만 가지가 다 신경 쓰이는 걸까…….
나리는 퀭한 얼굴로 요즘 들어 부쩍 친근해진 의무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결론을 내렸다.
아, 진짜 내가 군복 벗을 때가 됐구나. 안주머니에 소중하게 품은 따끈따끈한 백 번째 전역 지원서, 연대장님이 안 받으시면 육군 참모 총장님께 드려야겠다.
“소령님…….”
수액을 맞고 있던 나리가 힘없이 소령님을 찾자 두 남자가 동시에 대답했다.
“예.”
“나리 중사,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밖에 나가서 사 올게요.”
그러고는 서로를 살벌하게 째려본다.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리는 제 팔뚝으로 똑똑 떨어지는 수액 백의 물방울을 보면서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저, 어떻게 된 겁니까. 죽을 때가 된 건가요?”
“이 중사가 죽긴 왜 죽습니까? 제가 있는데.”
“컨트롤 리밋도 모르는 형편없는 가이드랑 페어가 되어서 그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푹 쉬고 잘 먹으면 전보다 괜찮아질 거예요.”
아, 그렇구나.
나리는 입을 틀어막고 자꾸 입 안에 고이는 쓴 물을 삼켰다.
“토할 거 같아요.”
이런.
일한이 나리를 부축해 일으키고, 주환이 침대 밑에 있던 쓰레기통을 앞에 대 주었다.
속에 있는 걸 다 게워 내도 어지럽기만 했다. 시큼한 냄새와 역한 맛이 뇌를 찌르는 것 같아 나리는 눈물이 팽 돌았다.
주환은 미안한 마음에 나리의 발끝만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내가 손대도 되는 걸까, 물어보고 대야 할까? 일한은 그냥 부축하던데…….
몇 번이고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주환은 제 손을 말아 쥐었다.
“……미안합니다. 이 중사.”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 하아.”
일한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리, 릴렉스으…….
착해지자. 유일한.
“자아, 여러분? 잘 들어 보세요.”
나리와 주환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귀는 열려 있을 테니 일한이 잔소리로 귀퉁이를 때려 줄 차례였다.
“박 소령, 내가 페어의 어빌리티를 이용하라고 했지, 언제 기운을 다 소진하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나리 중사도 왜 가만히 있어요? 둘 다 운 좋게 같은 등급인데, 박 소령 가이딩 싫으면 싫다, 하지 마라, 기운 끄면서 브레이크 걸 수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나와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두 분…… 제게 할 말 없습니까?”
일한은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웃는 얼굴로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잘하겠습니다.”
창밖을 보고 있던 나리가 힘없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요. 유 소령님.”
“예. 나리 중사.”
“브레이크가 전혀 안 됐어요.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아무것도 안 들리고, 눈앞이 점점 뿌옇게 흐려지더니, 갑자기 막,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내 몸인데 왜 조절이 안 되는 거죠?”
“그건…….”
일한은 무릎 위에 놓은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좀 전에 통제실에서 보낸 영상과 분석표의 수치가 적혀 있었다.
최종 매칭률 88.9%라고 했던 숫자는 일한이 테스트 도중에 멈춰서 나온 값이었다. 혹시 저 남자와의 매칭률이 90% 이상이 될까 봐, 자신이 나리 옆에 설 자리를 잃게 될까 봐.
그리고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일한은 태블릿을 들고 있는 손끝에 힘을 주고, 나리의 뒤통수를 보며 애써 웃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알아볼게요.”
일한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