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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49화 (247/250)

신비한 무공사전 (3)

“내가 그때는 몰라봐서 죄송하게 되었소, 그러니까…….”

“사과를 받아 줄 필요가 있나.”

위문엽은 문지기의 청을 일거에 거절하며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서문경이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한껏 널브러진 목소리.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바짝 얼어붙어 있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겨울이 봄이 되었다.

서문경의 눈치를 살핀 문지기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다행히 기분이 좋으신가.’

속에 쌓여 있던 시커먼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다.

문지기가 그렇게 안심하는 사이, 위문엽이 목소리를 냈다.

“여기 옆에 있는 사람이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하더군.”

“돈도 많은 사람이 생색내서 뭐 하게?”

“협박을 하더군.”

“뭐?”

서문경은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천하의 오걸을 상대로 협박할 뿐만 아니라, 돈을 빌리려 들어?

그 시선이 문지기를 훑었다.

당연하게도, 서문경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하하, 하하하……! 종놈이 되더니 저런 문지기한테 돈이나 뜯기고 다니나?”

“시끄럽다.”

위문엽이 툴툴 대는 모습에 문지기는 다시금 안심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조용히 넘어갈 것 같구나. 다음부터는…….’

“그래도 그건 그거지.”

문지기의 생각을 딱 자른 서문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순히 서 있을 뿐인 데도, 문지기는 서문경이 칠 척 장신의 거인처럼 느껴졌다.

기세나 기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오른 경지가 상천(上天)에 가까워, 범인으로서는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자연스레 문지기의 어깨가 좁아졌다.

“저, 그, 그건 오해가 있었습니다.”

“왜. 저런 종놈이 오걸인 줄 몰라서 저질렀나?”

서문경은 곧바로 정론을 짚었다.

“오걸이 아니라, 평범한 종놈이었다면 얼마나 괴롭혔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 서문세가엔 언제부터 있었나?”

“하, 한 달 전입니다.”

한 달이라…….

그때를 떠올린 서문경이 손뼉을 쳤다.

“아, 그때인가.”

전쟁 직전이었나.

서문세가의 무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문지기를 평범한 무인으로 세워 두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제도를 손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대로일 수밖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군.’

서문경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놈 말고, 다른 놈한테도 그런 적 있나?”

“어, 없습니다!”

“신중하게 대답하게.”

서문경의 말에 문지기는 재차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기이한 눈.

서문경에게 압도된 문지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손아귀가 축축해져 있었다.

“이, 있었습니다.”

“그랬군.”

거기까지 들으면 됐다는 듯, 서문경의 고개가 다시 창가로 향했다.

겨울 중, 오랜만에 만끽하는 햇볕이다.

이런 시간을 저런 작자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서문경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위문엽에게 하명했다.

“저놈한테 십대고수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줘.”

“지금은 종놈인데?”

위문엽의 말에 서문경가 혀를 가볍게 찼다.

“그럼 종놈의 방식을 보이라고.”

“그것도 괜찮지.”

위문엽의 무신경한 눈이 문지기에게 향했다.

그는 전날 밤에 보았던 싸움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열다섯 대만 때리지.”

“자, 잠깐……!”

멱살을 잡힌 문지기는 위문엽에게 질질 끌려갔다.

이윽고 가주실의 문이 닫히자, 서문경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했다.

평화로운 고요와, 따스한 햇볕이 서문경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 *

한편, 같은 시각.

북적의 후예 이한승은 삿갓을 깊게 눌러쓴 채 절강의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큰 전쟁을 앞두고 십대고수를 바깥으로 돌리다니…… 외적의 급습을 막기 위해서였나.’

의외를 넘어서 파격.

한 번의 전쟁으로 강호가 뒤집어질 상황에 십대고수들을 각각 다른 곳으로 보낼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 때문에 이한승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서둘러 도망치고 있었다.

‘하나 다음에는 가능하다.’

어린 황제의 기반은 아직 연약하기 그지없고, 서문세가의 분위기는 평안하기만 했다.

이 틈을 절묘하게 노린다면 다시 분열을 부추길 수 있다.

이한승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본국으로 가서, 아버지와 함께 방도를 모색한다.’

이한승이 여러 생각을 곱씹는 와중에 건장한 체격의 선주(船主)가 크게 외쳤다.

“출발할 시간이오! 모두 올라타시오!”

드디어 돌아갈 시간인가.

이한승이 판자를 통해 올라타려던 그때.

“일각만 멈추지.”

한 사내가 이한승 앞을 막아섰다.

그걸 본 선주가 발끈해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이거면 되겠소?”

휙.

선주는 반사적으로 사내가 던진 물건을 받아 들었다.

“……!”

선주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단순히 금전도 아니고, 금원보!

중소 상단을 한 달 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이었다.

선주가 금원보를 주섬주섬 챙기자 사내가 피식 웃으며 이한승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같이 이야기할 거리가 있지 않소?”

“……놈! 대체 누구냐!”

이한승의 주먹이 사내의 얼굴을 후려쳤다.

깨나 강맹한 공력이 담긴 일격이었으나, 사내는 상관없다는 듯 맨몸으로 받아 냈다.

찌직.

손상된 인피면구가 나풀거리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내의 정체를 본 이한승이 눈을 부릅떴다.

“너, 너는!”

“오대세가를 아무리 들쑤셔도 나타나질 않아서 말이오. 마중이라도 나왔소만.”

서문패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바다 냄새를 만끽했다.

“소왕(小王)의 자제라는 놈이 헐레벌떡 도망칠 거라는 생각은 못했소.”

“소왕?”

이한승은 분노로 순간 눈을 부릅떴으나, 머리는 냉정했다.

‘여기서 발이 묶이면 개죽음뿐이다!’

여기서 도망칠 수 있다고 해도, 강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개방의 추격을 받게 된다.

이한승의 판단이 빠르게 굴러갔다.

‘진퇴양난인가.’

이한승은 곧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키잉…… 콰쾅!

어디에선가 쏘아진 철구가 바람을 찢어 갈랐다. 궤적이 소리보다 빨랐다.

하나 서문패의 눈은 그 궤적을 조금씩 먼저 따라잡고 있었다.

“이게 그 가주들이 말한 잡기술인가?”

서문패의 장법에 공력이 흘러들어갔다.

한껏 고양된 뇌정이 싯누런 기운을 방출했다.

“누가 더 빠른지 한번 해 볼까!”

스릉…!

뒤늦게 뽑힌 칼이 철구의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철구에 비하면 턱 없이 느리다.

하지만 그 움직임 뒤에 강렬한 기운이 따라붙고 있었다.

쩌저적!

응집된 내공이 뇌구가 되어 칼날에 휘감겼다.

뇌정지검.

서문패의 깨달음으로 빚어진 새로운 절초가 세상에서 빛을 발했다.

그렇게 검과 철구가 부딪쳤을 때.

꽈아앙!

커다란 소음이 귀청을 짓이겼다.

선주는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르고 망연히 서문패의 등을 바라보았다.

‘누가 이겼는가.’

그건 이한승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으윽, 크으윽……!”

그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비해 서문패의 어깨는 바다에 이는 파도처럼 널찍했다.

“자, 어쩔 텐가?”

서문패의 말에 이한승은 스스로 가슴을 내리쳤다.

앞으로 굴욕을 당하느니 미리 자진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멋대로긴.”

서문패의 내공이 이한승의 가슴팍을 타격했다.

충격으로 멈췄던 심장이 다시금 활기를 띄었다.

“가지.”

그 말이 이한승의 희망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다른 곳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구 놈 거기 서라!”

“……하하, 척안룡이 여기까지 쫓아올 줄이야.”

담정이 왜구를 격퇴했고.

“혼인은 언제 올릴 건가, 동생?”

“시꺼!”

서문열은 자신을 구해 준 정가장의 여인, 정하민과의 혼인 준비에 한창이었다.

서문이현이 놀릴 때마다 얼굴을 붉히는 꼴이, 평소의 서문열답지 않았다.

그리고 무림맹주 남천웅은 미뤄 두었던 마음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했다.

“이제 네가 해 주면 안 되냐?”

남천웅에게 지목당한 차기 맹주는 사율현.

낭인끼리 해먹느냐는 말이 나돌긴 했지만, 남천웅의 업적이 너무도 큰지라 반발할 수가 없었다.

가장 결정적인 건 한 남자의 개입이었다.

“어서 끝내지 않고 뭘 하나?”

강호에서 철인이라 불리는 서문경의 아비, 서문이현.

그가 다짜고짜 무림맹에 쳐들어와서는 남천웅과 함께 낚시를 다니겠다며 깽판을 치고 있었다.

……물론, 이게 남천웅의 부탁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겨울은 흘러가 봄이 되어 간다.

고였던 피가 개울가로 흘러, 없던 일처럼 변해 간다.

서문경이 그토록 바랐던 재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빠르게 찾아오고 있었다.

* * *

“형님! 가르쳐 주시기로 했잖아요!”

서문휘의 채근에 서문경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도리질했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무공을 접었다고.”

“접어도 이미 배우신 건 남아 있잖아요!”

“그것도 버리기로 했다.”

서문경의 말에 서문휘는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거렸다.

“뭘 버려요?”

“검도 그렇고, 내 무공 비급도 동혈에 모셔 놨지.”

서문경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던졌지만, 서문휘에겐 다소 충격이었다.

‘정말 가져다 두셨다고?’

서문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서문경은 하려던 말을 덧붙였다.

“무림의 시대는 끝날 거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저, 저도…….”

서문경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기에, 서문휘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다만 아쉬웠다.

자신 또한 다른 형들처럼 검으로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

이런 어린 마음이 서문휘에게 남아 있었다.

그걸 알아차린 서문경이 피식 웃었다.

“검을 무림이 아니라 바깥에서 찾아오는 적에게 휘두르는 건 어떠냐?”

“최전방으로 가라고요?”

“그래. 그게 대명에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사실, 서문경은 이미 마음을 정해 두고 있었다.

칠로두에 의해 약해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강력한 힘과 많은 돈이 필요했다.

서문세가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앙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서문세가가 어려웠을 때 선황께서 나서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서문이현과 서문패가 예전부터 황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서문세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거다.

서문경은 애써 앙금을 털어 내며 서문휘에게 다시 제의했다.

“앞으로 검을 나라를 위해 쓰는 건 어떻겠느냐?”

“……으으음.”

“그거라면 내가 도와주마.”

서문경이 도와준다는 말에 서문휘가 화색을 띠었다.

“저, 정말이요?”

“물론이지.”

서문경의 말에 서문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금제일인 서문경의 가르침이라니!

서문휘가 과하게 기뻐하자 서문경은 옅게 웃으며 경고했다.

“내 가르침은 좀 엄한데, 괜찮겠느냐?”

“물론이죠!”

서문휘는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저는 형님을 능가할 거니까요!”

“청출어람이라.”

서문경의 시선이 철검으로 향했다.

과거에는 그렇게 쥐기 싫어했고, 벗어나고 싶었던 물건이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했다.

그리고 현재.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서문경은 평범한 철검을 쥐었다.

철검을 쥔 손등에 따스한 햇볕이 감돌고 있었다.

《신비한 무공사전》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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