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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47화 (245/250)

신비한 무공사전 (1)

“이랴! 이랴!”

강한 빗줄기가 철갑으로 무장한 혈마대의 투구를 때리고, 서늘한 창날을 두들겼다.

뿌각!

혈마대가 한차례 돌격하자 창날에 시뻘건 핏물이 맺혔다.

정련된 창과 무공, 기마술이 결합된 파괴력은 그야말로 경천동지.

절정에 이른 고수조차도 기마돌격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절명했다.

이를 본 장군 서문열은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전세는 이미 확고하게 갈렸다.

서문휘와 적마를 중심으로 한 절대고수끼리의 결투.

그리고 무인과 병사들의 전쟁.

전자는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후자는…….

‘압도적으로 불리하군.’

서문열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애초에 숫자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면, 무인의 강함이 병사보다 우월하리라는 판단이었다.

‘한데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서문열은 섭선으로 입가를 가렸다.

분명 처음에는 유리했다.

검과 검이 부딪쳤을 때, 무인들은 어렵지 않게 병사를 제압했다. 개중에는 짧은 시간 안에 배운 포박술을 자랑하는 이도 있었다.

하나 혈마대가 등장했을 때부터 전황이 달라졌다.

겨우 팔십이 기.

전황을 뒤바꾸기엔 턱 없이 모자라는 숫자라고 생각했다.

그 착각 때문에 철책을 설치하는 데 시간이 예상보다 더 소요되었으며…….

‘아군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서문열이 책임을 통감하던 그때,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기세가 어찌나 거칠던지, 서문열은 반사적으로 혈마대가 뒤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가주님!”

서문열의 외침에 서문이현은 군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걸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하나 이미 말떼들이 지근거리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서문이현의 머릿속에 온갖 복잡한 생각이 나열되었다.

‘허망하게 죽진 않겠다!’

서문이현은 칼을 빼 들며 최후의 저항을 선택했다.

그러다가 옆을 바라보니, 서문열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깜짝 놀랐구나!”

서문열이 보라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자,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사내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했다.

그제야 서문이현이 활짝 웃었다.

“경아!”

“급하니까 미안하다는 말은 접지.”

서문경은 씨익 웃으며 현성창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자, 제 상대는 누굽니까?”

“혈마대라고…… 검은 투구를 쓴 기마창술부대야. 적마가 언제 저런 걸 키웠는지 모르겠군.”

“마창이라.”

서문경의 눈동자에 흥미가 돋아났다.

“세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말에서 펼쳐지는 창술은 무인의 창술과 본질 자체가 다르다고?”

“그거야…….”

서문열은 하려던 말을 어물거렸다.

당연한 말이었다.

무인의 창술은 개인이라는 면을 찌르는데 그치지만, 기마창술은 면을 깨부순다.

편대를 통째로 갈아 버리는 창술.

그러면서도 장수의 목을 베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그걸 저 사람이 모를 리가 없지.’

서문열은 서문경의 눈동자에 돋아난 호승심을 보았다.

“뒤에서 잠자코 구경이나 하세요.”

휘르륵!

서문경이 창을 가볍게 휘돌렸다.

“창법이란 게 무엇인지 보여 줄 테니까.”

서문경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쿵!

대지를 짓누른 소리가 뒤늦게 전장을 찍어 누르고, 혈마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존재감.

서문경의 전신에서 강한 기도가 넘실거렸다.

“덤-벼라!”

서문경이 창을 앞으로 휘두르자 압력을 이기지 못한 병사들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 창끝이 혈마대의 대장, 곽우명에게 향했다.

“창의 고수인가.”

제자리에서 멈춰선 곽우명은 투구를 벗었다.

“이름은?”

“서문경!”

그 말에 곽우명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들어보았다. 네가 그 고금제일인라지?”

“누구의 창이 매서운지, 한번 해 볼 테냐?”

서문경의 도발에 곽우명은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아쉽게도 나는 지존의 명령만을 따르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싸워 주지 않으면 어쩔 테냐?”

“내가 가는 수밖에 없겠지.”

곽우명의 시선이 서문경의 두 발로 향했다.

“폄하하는 건 아니다만… 사람의 발로 말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

“까짓 거,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아니겠느냐?”

“호기는 좋구나.”

곽우명은 공력을 강하게 끌어 올렸다.

“네가 내 목을 따는 게 빠를지, 아니면 내가 병력을 전멸시키는 게 빠를지. 한번 해보겠느냐?”

“좋지.”

서문경은 씩 웃었다.

“너무 빨리 끝나면 재미가 없으니, 어디 한번 열심히 해 보거라!”

“하, 이랴!”

곽우명이 먼저 출발하자 서문경의 신형이 바람으로 화했다.

스걱, 팡!

서문경의 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관군의 시신이 두세 구씩 생겨났다.

곽우명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꼬비를 강하게 잡아챘다. 철갑을 두른 말에 부딪칠 때마다 무인의 뼈가 토막 나는 소리가 일어났다.

일각이 흐르고, 이각에 가까워진 순간.

스걱!

서문경의 창이 혈마대의 무인을 베었다.

“슬슬 익숙해지는구나!”

“……놈!”

곽우명은 서슬 퍼런 분노를 드러냈으나, 서문경에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저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의 무위에 어느 경지에 다다랐는지 알아차렸다.

‘정면으로 싸우면 진다!’

빠른 속도를 이용해 차륜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곽우명의 손이 더욱 바빠졌다.

“끄아악!”

곽우명이 무인의 목을 베고, 고삐를 비틀어 말의 방향을 바꿨다.

그때부터였을까.

서문경의 창이 말의 행로에 끼어들었다.

캉!

곽우명이 황급히 창을 휘둘렀다.

‘말이 죽으면 안 된다!’

곽우명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가까스로 서문경의 창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지만, 창대를 타고 흐르는 힘이 손아귀를 찢어 놓았다.

이대로라면 무인을 죽이는 것도 힘들어진다.

‘제기랄!’

곽우명은 강하게 직감했다.

이제는 일각도 버티기 힘들어졌다는 걸.

“서문경, 네 이놈!”

“발악이라도 해 보지 않겠느냐?”

바로 등 뒤에서 사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틈이 보이질 않는군.’

서문휘는 검을 뒤로 물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칠로두의 행동은 무척 단순했다.

일단 위문엽을 죽이고 나서, 연준호와 자신을 노린다.

속이 훤히 보이는 공세인데도, 적마의 마공은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이를테면 창과 방패 같았다.

‘적마의 초식은 창이요, 방패다.’

특히 적마의 마기는 단단하기가 불도에서 말하는 금강과 같았다.

단순히 비교하자면 예전에 마주했던 이무기보다 더하다.

서문휘의 옆얼굴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돌파하는 수밖에 없나.’

서문휘의 공력이 검에 집중되었다.

콰드드……!

의념으로 내공을 끌어 올리자 허공에 큰 파문이 일어났다.

그걸 본 적마가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놈!”

적마는 반사적으로 쌍장을 모아 앞을 후려쳤다.

꽈광!

합기가 돌풍을 밀어내며 무혼이 빚어낸 파문을 흩뜨렸다.

그 틈을 타, 연준호가 적마의 옆으로 접근했다.

‘대체 무슨……!’

마물의 감각을 속이다니?

적마의 의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졌다.

연준호의 장법, 매화장이 적마의 복부에 적중했다.

“커헉!”

적마는 검붉은 핏물을 토해 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문엽 못지않게, 연준호 또한 강력한 복마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걸 본 적마가 진력을 드러냈다.

촤아아!

내리던 빗줄기마저 굴절시키는 내력.

그것뿐만 아니라, 젖어 있던 옷이 적마의 내력에 단숨에 말라 버렸다.

적마의 보인 무위에 위문엽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내가 저것에 패배했네.”

위문엽이 보낸 경고에 서문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바요.”

“예상?”

적마는 앞으로 나선 서문휘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걸 보여 줘야겠구나.”

“어리석은 말을 하는군.”

검의 칼날에 검강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한데 그 색이 무척 순청하여, 마치 도가의 무공처럼 느껴졌다.

서문휘는 왼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하늘은 오직 단 하나뿐이거늘.”

바로 서문경.

형에게 배운 무공을 진실 되게 펼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무섭게 몰아치던 빗줄기가 점차 개기 시작했다.

단순한 우연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이 자리에 있는 무인이라면 모두 알았다.

‘적마의 능력을 없애 버렸다.’

연준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조잡한 술법이라면, 절정 고수의 검기나 검강으로 찢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변화는 달랐다.

적마처럼 핏줄을 타고 나거나, 한평생 지맥에서 수련해야 가능한 신술이었다.

‘그걸 단순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없앤다고?’

어떻게 없앤 건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연준호가 두 눈을 끔뻑이는 사이, 적마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서문휘를 노려보았다.

“같잖은 잔재주를……!”

“한번 시험해 보겠나?”

서문휘가 검을 겨누자, 적마의 검이 그대로 달라붙었다.

적마가 곧바로 검을 당겼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착(着)의 묘리인가.’

어찌나 절묘한지, 막대한 공력으로도 풀리지 않았다.

적마는 서문휘가 정면승부를 펼치려 함을 깨달았다.

“좋다.”

적마의 공력이 공간을 좀먹었다.

영검무변.

적마가 펼친 일초가 순식간에 세 무인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콰콰쾅!

좀먹은 공간에서 생겨난 강기 덩어리가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을 일으켰다.

“……!”

강맹함이 극에 이르면 하늘이 무너진다던가?

위문엽은 돌풍이 흔들리는 걸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혼란을 틈타, 한 명이라도 빨리 제거해야 한다!’

돌풍이 순식간에 적마의 명문을 향해 휘둘러졌다.

빠악!

가까스로 중도에 막아 낸 적마는 엄청난 고통에 이빨을 악물었다.

“암습은…… 오걸로서 할 짓은 아니지 않나?”

“서로 싸운 지 몇십 초가 지났거늘. 멍청한 놈이군.”

위문엽이 흘낏 곁눈질하자 연준호가 곧바로 합공을 시작했다.

-서문 소가주! 적마는 우리가 붙들어 놓겠네!

위문엽이 보낸 전음에 서문휘가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끄덕일 시간도 없었다.

진력을 드러낸 적마는 지금까지 만난 모든 강적보다 한 수. 아니, 몇 수는 위였다.

“전음이 왔는데, 대답하지 않고 뭐 하나?”

“……그게 들리나?”

서문휘의 손아귀가 땀으로 젖었다.

‘역시, 예상대로인가.’

적마는 육신통에 통달해 있었다.

이는 즉 자신이 무슨 초식을 펼치든 기맥의 형태를 보고 미리 알아챌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지금의 궁리도 엿보고 있을 확률도 높았다.

“하하.”

적마가 비웃음을 흘리자 서문휘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패배할 전쟁을 가지고 어떻게든 이겨 보겠다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서 말이지.”

적마의 검 끝에서 한 자가 넘는 검강이 빚어졌다.

“내가 그 번민을 끊어 주지.”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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