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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46화 (244/250)

살아남은 악의 (3)

“기다리느라 지치는 줄 알았다.”

“……흥.”

적마와 서문휘.

둘이 한 전장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모든 무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둘의 격돌이 전쟁의 승패에 크게 관여하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 두 사람의 싸움이 전쟁의 행방을 가리냐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한 무인이 오소소 돋아난 닭살을 쓸었다.

‘직접 목도하니 믿을 수밖에 없군.’

두 고수가 기싸움을 시작했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인데도.

거친 풍파가 전장에 몰아치고, 땅이 점진적으로 흔들렸다.

이에 아무렇지 않게 대응할 수 있는 건 위문엽과 남천웅, 그리고 천무학관의 기재들밖에 없었다.

나머지 무인들은 내상을 피하는 데 집중했다.

심지어 무림맹주인 남천웅과, 구파일방의 장로마저도!

‘무시무시하구나! 서문휘, 저 아이도 엄청난 성취를 이뤘어! 하지만…… 이길 수 있을까?’

남천웅은 머릿속에 치든 불안감을 애써 고함으로 바꿨다.

“전원! 진군하라!”

남천웅이 사자후를 외치자 기수가 저마다 깃발을 흔들었다.

그 과정 속에서 오대세가가 슬쩍 발을 뒤로 하려고 했으나, 위문엽의 제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다.

오대세가의 군세가 앞으로 향하자 적마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군…….”

“간악한 짓을 저지르려 하기에 사전에 차단했지.”

적마와 서문휘 간의 거리가 수십 장보다 멀었음에도, 바로 옆에서 말한 것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벽을 깨고 새로운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무인.

십대고수보다 윗줄에 있다 일컬어지는 유이(唯二)한 고수였다.

적마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자 이 자리에 나타났다.

“선수를 양보해 주지.”

“그럴 여유가 있던가?”

서문휘의 말에 적마가 히죽 웃어 보였다.

“다를 것이다.”

서문휘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저놈과 대화를 이어 가다간 하류 잡배 같은 대답을 해 버릴 것 같았다.

‘저놈의 의도대로 말이지.’

서문세가를 급습한 과거를 계속 끄집어내서 사기를 낮추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서문휘가 전의를 다지자 적마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디 한번 얼마나 달라졌는지 봐볼까? 도망자?”

“흥!”

서문휘의 전신이 한 달음박질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걸 본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활에 화살을 재었다.

“허, 허!”

구파일방의 장로들은 깜짝 놀라 헛숨을 내뱉었으나.

서문휘에게 기수식이란 이제 형(形)에 국한되지 않았다.

친형, 서문경에게 배운 신공이 있었다.

무공을 펼치고자 한다면 펼칠 수 있다.

피슈슈슉!

수백 발의 화살이 서문휘를 향해 쇄도했다. 개중에는 강골의 병사가 쏘아 낸 화살이 미세한 시간차로 거리를 좁혔다.

그걸 본 서문휘는 오른 어깨를 안쪽으로 강하게 당겼다.

휘르르…… 팡!

한껏 당긴 어깨를 바깥쪽으로 휘두르자, 풍파가 서문휘의 내공을 먹어치우며 회오리로 일변했다.

서문휘를 향해 날아가던 화살 모두 회오리에 휘말렸다. 단 하나도 서문휘의 살갗에 닿지 못한 채 떨어졌다.

“이 무슨 개세(蓋世)의 무공이란 말인가……!”

“서문의 무학이 날로 발전하여 강호를 위진시키고 있다더니, 허명이 아니군!”

병사와 무인 모두, 적아를 불문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단신으로 회오리를 일으키는 무위는 십대고수에게도 보지 못했으니까.

‘이대로라면, 조금 짜증 나는데.’

이를 좌시하지 않은 적마가 암표(暗鏢)를 발출했다.

철식용아(鐵食龍牙).

작은 암기에 불과했던 물체가 용명진기로 부풀어 올랐다.

쿠르릉!

비구름을 불러 모으는 용의 형상!

서문휘의 눈가가 좁혀졌다.

‘저게 무슨 무학이지?’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겨져 있던 적마의 무학이 세상에 드러나자, 서문휘의 눈길이 면밀해졌다.

본질은 암기에 불과하지만 특별한 진기로 인해 철의 비늘을 지닌 용으로 유형화했다.

‘한번 견식해 볼까.’

서문휘의 손아귀에서 검이 휘돌았다.

서문검법 일초, 비검절우 백열.

내리는 폭우마저 양단하는 쾌검이 용에게 짓쳐들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진기를 담았다.

캉!

검이 뒤로 물러나며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충격이 일었다.

서문휘의 얼굴에 고집이 어렸다.

‘한 번 더.’

마물의 무학 따위가 제갈세가의 무공을 꺾을 순 없다.

서문휘가 또 다시 같은 초식을 펼치자 적마가 비소를 머금었다.

“인세의 무공으로 어찌 하늘을 베려 하느냐!”

적마가 강한 확신을 드러내자 자연스레 마인의 사기가 올라갔다.

그 과정을 지켜본 구파일방의 장로는 내심 초조했다.

‘적마에게 막히면…… 상정한 계획이 무너지고 말 텐데!’

그 걱정은 일거에 무너졌다.

스가각!

검의 칼날이 순식간에 용의 목을 양단하고, 서문휘의 진형으로 앞으로 솟구쳤다.

“……!”

깜짝 놀란 적마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교차했다.

자신의 피부에 돋아난 피갑으로 막아 낼 작정이었다.

하나 그건 오판이었다.

서문휘와 단 한 번도 싸워 보지 못한 약자의 오판.

서문휘는 검에 두 손을 모았다.

서문검법 이초, 일검적심 천경.

검의 예기가 일점에 모였다.

“……큭!”

적마의 손바닥이 칼날에 꿰뚫렸다.

믿었던 피갑은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용명진기가 흩뜨려졌다.

‘이게…… 서문세가의 무공인가?’

무혼이라 했던가.

거기까지 기억해 낸 적마는 발로 서문휘의 손목을 밀어냈다. 이대로 꿰어져 있다가는 상반신이 양단될 거라는 판단이었다.

서문휘의 입술이 비틀렸다.

“어딜!”

서문휘는 보법을 펼쳐 적마의 움직임을 뒤따라갔다.

뒤이어지는 초식은 적마의 숨통을 끊기 위한 결정타였다.

번검염천.

서문휘의 공력에서 분화한 수십 갈래의 검영이 허공을 점했다.

의념으로 길만 터 준다면 적마의 전신이 검영으로 난도질되리라.

“이, 이놈!”

위기를 느낀 적마가 용명진기를 십분 끌어냈지만, 서문휘의 행동이 더 빨랐다.

“갈!”

서문휘의 의념이 단숨에 적마의 백회혈에 모였다.

그에 따라 번검염천의 검영이 움직였다.

인지를 초월해, 심적권청의 순간이 아니라면 피할 수조차 없는 일격이었다.

그렇게 적마의 정수리가 꿰뚫리려는 순간.

“감히 어린놈이……!”

적마가 서문휘의 목을 향해 수도를 휘둘렀다.

서문휘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살을 내주고 자신을 죽이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흥, 죽어라!”

주제를 모르고 나섰으니 죽어도 싸지 않냐는, 그런 웃음이었다.

서문휘는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몸을 빼낼 것이냐, 아니면… 적마의 팔을 베느냐.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문휘는 최적의 검무를 떠올렸다.

퉁!

“……허?”

적마는 걸레짝이 된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단 한순간이었다.

적마의 손등을 꿰었던 검이 뒤로 퉁겨졌었다.

손잡이 쪽에 막강한 내공이 담겨 있는 채로 말이다.

적마의 표정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그건 무슨 초식이지?”

“이름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서문휘는 검을 회수하며 대답했다.

“단순한 임기응변이지.”

“……그런가.”

뽑혀진 순간 가슴팍이 헤집어진 건지, 쓰러진 적마 주위로 피가 웅덩이져 있었다.

‘죽진 않았지만, 시간이 필요한가.’

만일 그가 마물이 아니었다면 즉사했으리라.

적마는 나쁘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어쩔 텐가? 적의 심장부까지 와서 살아가겠단 말은 하지 않겠지?”

“그건 그렇군.”

서문휘가 옆을 흘낏 돌아보니 적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마를 죽이지 않고 무력화시킨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를 즉사시킬 일격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역시 형처럼은 안 되네.’

서문휘는 숨을 가볍게 몰아쉬었다.

“똑같은 상황이군.”

“뭐가 말이냐?”

적마의 말에 서문휘가 검을 바로잡았다.

“저번의 설욕을 되갚아 줄 때가 되었다는 뜻이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문엽과 천무학관의 기재들이 서문휘에게 합류했다.

적마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저번보다는 여러 명이 더 늘지 않았나?”

“너희 숫자가 더 많지 않나.”

서문휘의 말에 적마는 유쾌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지.”

적마의 말을 끝으로 대화는 단절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마가 말하는 중간에 위문엽이 선수를 펼쳤기 때문이다.

화르륵!

갑작스레 펼쳐진 돌풍이 적마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의 단호함은 옆에 있던 서문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제법 거리가 있던 적마로선 아예 반응조차 못했다.

“……놈!”

그걸 본 적마가 강한 분노를 드러냈으나, 위문엽은 무심한 표정을 드러낼 뿐이었다.

“나는 적을 제거한 것뿐인데, 왜 그리 발작하는지 모르겠군.”

그 말에 서문휘가 그답지 않게 머쓱한 표정을 보였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서야 우리가 정파 같지가 않군.”

“무력화시킨 적을 그대로 놔두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있나?”

게다가 적마는 일각이면 멀쩡한 몸으로 재생하는 칠로두다.

위문엽이 완전히 불태우지 않았으면 언제고 전투에 끼어들어서 귀찮게 할 여지가 있다.

‘확실히, 그 판단이 맞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서문휘가 적마를 도발하기 위해 히죽 웃었다.

“할 말은?”

“……일단 저놈부터 죽여 놓는 게 좋겠군.”

적마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서문휘의 도발 때문이 아니라, 위문엽이 지닌 무공이 무척 거슬렸다.

‘서문휘조차도 마물을 죽이려면 의념을 집중시킨 검으로 목을 베어야 하건만, 저놈의 무공은… 닿기만 해도 치명상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피하는 것뿐.

하물며 적마 자신은 마물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돌풍에 닿기만 하면 전신이 핏덩이가 되리라.

적마의 시선이 위문엽 옆에 있는 연준호에게 향했다.

“내력을 보아하니 화산파의 무인인가?”

“…….”

연준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적마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인연이군. 어찌 보면 내가 그대의 선배일 테니까 말이야.”

“괜한 말로 미혹시키려거든, 아무런 말도 하지 마세요.”

연준호의 얼굴엔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겠군.’

적마는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은 채, 기수식을 취했다.

자신이 위문엽의 돌풍에 휘감겼을 때 느낀 고통.

그 고통은 전보다 더욱 뜨거워져 있었다.

적마가 공력을 운용하자, 서문휘 또한 공력을 십분 발휘했다.

쿠르릉……!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강한 빗줄기가 대지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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