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45화 (243/250)

살아남은 악의 (2)

“이게 무슨 짓거리요!”

갑자기 들려온 고함에 맹주실에 있던 무인들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청을 위시한 가주들이 저마다 살기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걸 본 서문휘가 환히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한 시진 전부터 본가에서 연락이 오고 있지 않소! 자네들이 벌인 짓이 아니면 무엇이겠소!”

제갈청이 강한 어조로 캐묻자 서문휘는 오른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뭐가 말인가!”

“말만 들으면 황실이 그랬는지, 칠로두가 그랬는지 조사도 하지 않고 오신 것 같은데……?”

서문휘의 말에 제갈청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하나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수도 없는 일.

제갈청은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 들 듯이 경박하게 굴었다.

“그래, 터놓고 말하지. 무림맹과 정의맹은 지금까지 오대세가를 꺼리지 않았소! 그러니 이번 전쟁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순 억지투성이.

근거라곤 하나도 없는 조잡한 모함.

서문휘는 제갈청의 손아귀에 잡힌 검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내기 하나 하지.”

공손했던 어투가 단숨에 낮게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문파의 가주로서 존대를 하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그게 뭔가?”

제갈청은 울컥한 마음에 서문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갈 가주가 먼저 검을 뽑고, 내가 뒤늦게 뽑지. 그리고 무조건 한 번은 막겠소.”

“그래서?”

“일초 반식.”

서문휘는 검의 손잡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 안에 제갈 가주의 선제를 막아 내고, 팔을 사선으로 베어, 목을 쳐 내겠소.”

서문휘가 서슴없이 거론한 말은 무척 잔인했으며, 흉포했다.

이곳이 무림맹주실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오가면 안 되는 대화였다.

하나 제갈청 또한 무인.

한번 받아들인 도발을 무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못한다면?”

“여기서 즉시 자진하고, 제갈세가를 오대세가에 내놓지.”

그 말에 남천웅이 깜짝 놀라 서문휘의 팔을 붙들었다.

“자, 자네!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황실이 코앞에 있는데!”

서문휘는 남천웅의 말을 무시한 채, 하려던 말을 이었다.

“그 대신에 내가 이기면…… 오대세가는 무림맹에 복속되시오.”

“미친놈!”

제갈청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다른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리 그가 십대고수과 준하는 고수라 할지라도 너무 오만하군.

-제갈청은 우리들 중에서 가장 고수가 아니던가?

-아니, 하물며 그 적마도 장로의 팔을 베는데… 삼초식이 걸렸거늘. 어찌 단칼에 죽인다고?

대화는 번잡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주장하는 바는 같았다.

서문휘가 아무리 십대고수에 준하는 고수일지언정 불가능하다.

설령…… 그가 성공해도 다른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다.

후자는 제갈청을 제외한 다른 오대세가 가주들의 생각이었다.

제갈청은 이를 모른 채 호기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그 오만을 꺾어 주지!”

“꺾겠다? 당신이?”

불가능한 소리를.

서문휘는 대놓고 제갈청의 무공을 비하하며 조롱했다.

애초에 그가 기수식을 취하는데도, 검에 손가락 하나 가져가지 않았다.

옆에 있는 남천웅이 보기에도 엄청난 도발이었다.

한데 위문엽의 표정은 달랐다.

‘전혀 긴장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

오히려 서문휘가 어떻게 제갈청을 죽일지 기대하는 눈치다.

남천웅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전쟁이 코앞인데…… 이런 미친 작자들!’

무림맹주라는 자리에 있으니 무인이 얼마나 상식이 없는지 알게 된다.

남천웅은 눈을 꽉 감았다 뜨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이 약속은 무림맹주인 본인이 공증하겠소!”

“……!”

그 말에 다른 가주들의 표정이 변했다.

무림맹주인 남천웅이 직접 공증하는 이상 지키지 않으면 대다수의 무인이 지탄을 보내올 테니까.

하나 이마저도 무시할 생각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했다.

‘내 지역 바깥으로 안 나가면 그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가주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청이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후우우.”

무슨 초식을 펼칠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저런 애송이를 단숨에 꺾을 절초란 오로지 와룡검결.

무림의 숱한 검객들 사이에서 중검(重劍)의 최강이라는 자리를 지켜 온 무공이었다.

쿵! 콰직!

제갈청이 바닥을 박차자 판자가 일거에 찌그러졌다.

그 힘은 순식간에 전신을 휘돌아, 칼끝으로 향했다.

“음.”

그걸 본 서문휘가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제갈청의 얼굴에 비소가 맺혔다.

‘지옥문이 보이더냐!’

와룡검결의 중검을 정면에서 받아치는 건 설령 무열이어도 힘들다.

그렇게 자신한 제갈청이었으나.

“무거울 뿐인가.”

짧은 감상평을 읊조린 서문휘는 뒤늦게 검을 뽑았다.

검견불퇴.

한계에 오른 감각이 제갈청의 검로를 읽어 내고.

서문휘의 손목이 우로 뒤틀렸다.

까각!

제갈청의 중검을 흘리려는 듯하자 다른 가주들은 저마다 득의의 미소를 머금었다.

‘제갈세가의 검법을 단 한 번도 견식하지 못한 건가.’

‘멍청하기는!’

제갈세가의 중검은 단순히 무거운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끌어내린다. 그 말이 정확하리라.

“……오호.”

서문휘는 검이 아래로 짓눌리는 감각에 감탄성을 흘렸다.

‘신기하군.’

청성의 검경이 그러하듯 제갈세가 또한 남다른 검법을 창조해 낸 건가?

서문휘의 반신이 우로 기울자 제갈청은 승기를 확신했다.

“패배를 인정하겠나?”

“아직 힘도 주지 않은 참이오.”

서문휘는 빙긋 웃었다.

그걸 본 제갈청이 서문휘와 마주 웃으며 훈계하려 입을 열었다.

“괜한 허세를…… 헉!”

몸이 들린다?

제갈청이 내리친 자세 그대로 위로 들려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남천웅과 가주들은 눈을 비볐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모두가 경탄과 경악을 보이는 상황 속에서 위문엽만이 유일하게 당연히 여겼다.

“서문 가주를 얼마나 하수로 여긴 건지.”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천웅의 물음에 위문엽은 짧게 일축했다.

“저런 건 나도 가능해.”

‘검법의 고수인 위문엽도 가능한 거였나, 저게?’

남천웅의 시선이 되돌아가기가 무섭게 검이 세차게 움직였다.

캉!

중검을 밀쳐내고, 그대로 사선으로 올려 긋는다.

“커억!”

제갈청은 반쯤 베인 목을 붙잡았다.

멀어져 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른 가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깥을 향해 외쳤다.

“의, 의원을 불러라!”

“한시가 급하니 빨리……!”

“그만.”

서문휘가 그들의 말을 끊었다.

“제갈 가주의 걱정을 하기 전에, 약속을 지킬 궁리나 하는 게 좋을 텐데.”

“눈앞에 사람이 죽어 가는데!”

“사람?”

서문휘의 얼굴에 조소가 어렸다.

“마물과 손잡고 세상을 어지럽히겠다는 놈들이 어찌 사람이지?”

그 말에 가주들이 도리어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제는 되도 않는 협잡질로 우리를 악인으로 몰아세울 작정인가!”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벼랑까지 몰린 상태에서 적마와 손을 잡은 사실까지 밝혀진다면 완전히 어둠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모두가 제갈청의 빈사 상태를 잊을 정도로 화를 내는 와중에.

파드득!

한 마리의 전서구가 창문을 두드렸다.

“기다리던 게 왔군.”

서문휘가 아무렇지 않게 전서구를 안으로 들이자, 가주들은 본능적으로 얼어붙었다.

저 다리에 묶인 전서가 파멸의 단초다.

그걸 느낀 가주들 중 모용후가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

기합과 함께 막강한 풍압이 전서구를 향해 날아갔다.

아예 전서구와 함께 전서까지 가루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나 서문휘의 반응이 더욱 빨랐다.

스겅!

검의 칼날이 풍압을 벤 직후 모용후의 손목까지 날려 버렸다.

“크아악!”

모용후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뱉었지만 어느 누구도 수습해 주지 못했다.

“거기까지 하지. 바깥까지 소란스러워지긴 싫으니까.”

위문엽을 위시한 남천웅이 가주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젠장할.”

가주들의 전의가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이리하여 칠로두가 짠 모든 계략이 허물어졌다.

‘이제 남은 건 싸움뿐인가.’

서문휘의 시선이 적마가 있을 서쪽으로 향했다.

* * *

“오고 있느냐…… 버러지들을 끌고서.”

서문휘의 시선을 감지한 적마가 히죽 웃었다.

이번 싸움을 위해 그는 육신통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고, 유일한 골칫거리인 서문경까지 확인했다.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갑자기 천하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패배는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고수란 것들 모두 죽이면 그만이다. 내가 후일, 천마로 불릴 존재가 되겠다.’

다른 무인이 말했다면 미친놈처럼 들리겠지만, 상대가 적마였다.

그의 계획은 간단했다.

‘살아남은 마인의 숫자는 수천. 숫자로 이미 완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그걸 뒤집을 수 있는 자만 제거하면 끝이지.’

그게 바로 서문경.

천마를 홀로 상대하여 꺾은 그만 없다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

‘뭐, 위문엽이나 오걸 같은 족속이 있긴 하지만…….’

대계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적마는 다가오고 있는 무림 연합군을 느끼며 명상에 잠겼다.

* * *

한편, 같은 시각.

서문세가의 장군, 서문강은 초연과 함께 황실에 잠입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황상께서 위험에 처한다.

그 생각 때문에 서문강은 마인의 암습이 좌초된 직후 전속력으로 황실에 향하고 있었다.

한데 초연은 왜 동행하게 되었나?

-당장 꺼지라고 했을 텐데?

서문강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할배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걸 제가 감시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여기서 너를 죽인다고 해도 말이냐?

서문강이 강한 살기를 드러냄에도 초연은 아무렇지 않게 흘려냈다.

-죽으면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죠, 뭐.

-이, 이놈이……!

-년이라고 해 주실래요?

초연의 대답에 서문강은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떨쳐 내자니 초연의 신법이 더 뛰어나서 안 되고, 죽이자니 발생할 뒤탈이 문제였다.

‘사실, 어떻게 내가 빠져나가는 걸 미리 알았냐고 묻고 싶지만.’

묻는다고 솔직하게 말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서문강의 인상이 사나워지자 초연은 저도 모르게 거리를 벌렸다.

‘아, 왜 하필 이런 걸 시켜서…….’

초연은 서문강을 쫓으라 시킨 자를 떠올리며 울상을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년아!”

“에…… 예?”

“이것부터 받아라.”

서문강이 옷가지를 던지자 초연은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옷감.

금색과 지도가 그려진 형상은 초연으로선 처음 보는 옷이었다.

애초에, 볼 인연이 없었다.

‘이건…… 황족이나 입는 옷인데?’

초연이 황망해하는 사이, 서문강이 퉁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네 이름은 주초연이다. 알겠느냐?”

“그, 그러는 할배는요?”

초연의 물음에 서문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주천강.”

“전에 쓰시던 이름보다 훨씬 어순이 자연스러운데요?”

“시끄럽다.”

서문강. 아니, 주천강은 초연을 내버려 둔 채 어두운 복도로 향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황상을 구출할 수 있다면, 피를 줄일 수 있다.’

주천강의 눈에 강한 정광이 흘렀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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