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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43화 (241/250)

천의 (4)

하늘은 처음부터 하늘이었다.

절대적인 존재란 보통 그러했다.

태어난 형태 그대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것이 십 년이고 백 년이고 간에, 변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완전한 존재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서문경은 달랐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아기로 태어나,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했다. 처음부터 불완전했다.

그렇기에 변화할 수 있다.

‘전생의 내가 본다면, 비웃겠지.’

무인을 무시했다.

무공으로서 등선을 꿈꾸는 도사를 비웃었다.

서문경의 상식에선 당연했다. 협사라면서 외적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꼴이 우스웠다.

허나 지금은 어떠한가?

“……후우.”

서문경이 은연중에 내쉰 한숨.

하늘은 서문경의 내기가 달라졌음을 깨닫곤 서서히 기운을 모았다.

스윽.

하늘이 숨을 가다듬었다. 시간과는 다르게, 감각은 지극히 느리게 흘렀다.

과거에 서문경이 한순간 발했던 심적권청의 순간과도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武)가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타고난 재능에 불과하다.

서문경은 그걸 보며 침묵했다.

“…….”

하늘에게서 ‘감사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기술은 수단이었고, 차가운 날붙이였다.

자신의 절기를 갈고닦는 혼(魂)과 고민, 조예(造詣)가 없었다.

서문경은 무심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이런 상대가 좋았다.

상대방의 연약함이나 과거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부터 온 힘을 다해 전력으로 부딪쳐도,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는다.

슥.

서문경의 쌍장이 모아졌다. 그걸 본 하늘의 얼굴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서문경에게는 장법의 조예가 없었다. 기운은 뭉치려는 성질이 없어, 제멋대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서문경의 쌍장에서 쏘아진 현묘한 기운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런.”

하늘은 낭패했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겨우 수십 년, 마물에게 있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문경의 변화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 거대했다.

“흡!”

하늘이 낙뢰를 강하게 내질렀다.

꽈아아앙!

땅거죽이 단숨에 뒤집어진다. 거대한 기파에 수십 개의 구름이 단숨에 흩어졌다.

그럼에도 서문경의 장력은 쇠하지 않고 하늘과 맞닿았다.

빠악!

흩어진 구름 사이로 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크윽……!”

사람의 형상으로 화한 하늘.

그의 상반신이 휘청거렸다. 마지막 순간 양손으로 막아 냈지만 온전히 흘려 낼 수 없었다.

팔뚝으로 가린 하늘의 얼굴에 놀람이 올라와 있었다.

‘무공에 심취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무공.

기껏해야 인간,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란 궁리(窮理)일 뿐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만난 검선도 십초지적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문경은 어떠한가.

본래 강건했던 육체지만, 제어되지 않았던 기운이 한곳에 응축되어 있었다.

하늘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기수식을 바로 했다.

파드득!

그와 동시에 서문경이 땅을 박차 올랐다. 중단전에서 솟아오른 한 줄기 내공은 강기가 되어 서문경의 손가락 끝에 알알이 피어올랐다.

의념이 담긴 쇄혼권(碎魂拳)은 평소보다도 무거웠고, 둔탁했다.

서문경의 의념에 담긴 것은 하늘을 죽일 수 있는 힘이었다.

하늘의 얼굴에 진중함과 심각함이 교차했다. 본능적으로 그는 서문경에게 펼쳤던 천굉을 떠올렸다.

파아앙……!

바위가 부서지고, 흙무더기가 무너졌다. 갑작스레 펼친 천굉과 쇄혼권이 부딪치며 산 한쪽이 무너졌다.

하나 두 남자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서문경의 눈동자가 깊고 어둡게, 그리고 고요하고 차갑게 가라앉아 갔다.

정련된 기운은 가히 무인들이 추앙하는 신의 영역에 달해 있었다.

서문경이 하늘의 사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늘은 반사적으로 반보를 밟아 옆으로 휘돌았다. 본능이 막기보다는 회피를 택했다는 뜻이었다.

서문경을 항상 하수로 생각했기에 굴욕스러웠지만, 머리는 냉정했다.

후웅!

칼날보다도 날카로우나 넓적한 날이 서문경의 가슴팍을 저몄다. 심적권청의 순간에 머무른 서문경조차 포착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의 팔꿈치에 피가 묻어나 있었다. 그 또한 아직 여력이 남아 있다는 방증이었다.

“…….”

그걸 보았음에도 서문경의 내심은 무심하리만큼 차가웠다. 육신이 내지르는 고통도 그의 뇌리를 어지럽힐 순 없었다.

그저 철저하게 하늘을 파괴할 뿐이라고, 서문경은 전신의 요기를 강하게 퍼뜨렸다.

“으음!”

하늘은 서문경의 움직임을 보곤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약자라 생각했던 그가 이렇게까지 대등해진 모습을 보니, 절로 긴장감이 흘렀다.

바로 그때였다.

쿠르르릉……!

맑았던 하늘이 갑작스레 어두워지며, 온갖 먹구름이 모여들었다. 마치 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같았다.

그걸 본 하늘은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된 이상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인과율이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군. 여기서 그만두는 게 어떤가?”

“그러기 싫다면?”

서문경이 호전적인 모습을 드러내자, 하늘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라지고 싶은가?”

“……글쎄.”

서문경은 하늘의 말을 곱씹었다.

인과율이란 절대적인 율법.

하지만 그 전에 하늘을 죽일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결과가 아닌가.

서문경이 기세를 죽이지 않고 다가오자, 하늘은 괜한 허세라 여겼다.

그 오판은 철저한 폭력으로 변했다.

콰직!

서문경의 주먹이 하늘의 안면을 강하게 후려쳤다. 의념절기로 때린 건 아니라지만, 육신의 강도가 칠로두와 비견되는 서문경이었다.

뼈가 부러지고 콧대가 주저앉는다. 아니, 그보다도 심한 외상이었다.

하늘이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자 서문경은 코웃음을 치며 등을 돌렸다.

“다음에 보지.”

“네 이놈……!”

하늘은 처음으로 패배의 고통을 알았다.

그것이 생각보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를 가져다주었다.

타인과의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절대적 존재.

하늘이란 보통 그러했다. 누구도 싸우려고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걸하였다.

하지만 서문경은 다르다.

“언젠가……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서문경이 살아 있는 한, 언젠가 제압하여 다음 혼란에 다시 써먹을 수 있도록.

하늘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호승심을 느꼈다.

* * *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서문경의 처소에 온기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가끔 성하민과 성하민가 청소하러 오는 것 빼고는.

점차 서문경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할 즈음의 일이었다.

“하, 그놈만 있으면 외적도 금세 물리칠 텐데.”

서문패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한 달이나 지나니 믿음도 조금씩 무너졌다. 군관들의 표정에 조금씩 심려가 깊어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성하민은 달랐다.

언제나 그렇듯, 열흘마다 서문경의 처소를 청소하곤 했다.

그걸 안쓰럽게 보는 눈도 있었지만, 서문이현이 불호령을 내리며 꾸짖어 댔다.

-자리를 항상 깔끔하게 해 두는 것이 우습더냐?

-아, 아닙니다. 그게…….

-시끄럽다!

그럴 때마다 서문이현도 내심 믿음이 깎이는 것이 보였다.

서문패는 동지를 찾은 것 같아서 그를 자주 찾아갔다.

“경이가 그렇게 괴팍했는데 말이야…….”

“허, 그랬습니까?”

“아무렴! 내가 본 군인 중에서 제일 돼먹지 못한 놈이었다!”

서문패는 히죽 웃으며 뒷말을 덧붙였다.

“뭐,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긴 했지만.”

“왜 그리 생각하셨습니까?”

“너도 서문경과 가까웠으니 알 것이다. 그놈이 한번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이룰 때까지 떼를 쓰지 않았더냐?”

“아…… 그랬지요.”

성하민의 얼굴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그러나 그 미소 한구석에는 슬픔이 있었다.

한 달이나 사라진 지금, 언제 만날지 모른다는 감정이 언뜻 드러났다.

하물며 성하민의 나이가 어느새 약관.

슬슬 혼처를 찾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건지 모르겠네요.”

“……그놈답구만. 자기 일만 우선인 놈이라.”

“돌아와도 저보다는 천하의 평안이니, 북적의 잔존 세력은 어디 있냐느니 물어볼걸요.”

그 말에 서문패가 ‘허’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야. 그놈, 영악하거든.”

“그 영악함이 천하를 평안하게 만들었다면, 영웅의 기상이라고 불려도 좋지 않겠습니까?”

“…….”

그 말에 서문패가 순간 침묵했다.

천하의 평안.

서문경이 이루고자 했던 길.

그 험난한 여정이 서문패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다가 지워졌다.

“……그랬지.”

결국엔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갑자기 무림으로 가질 않나, 마교와 갑자기 싸우러 가질 않나.

서문패는 피식 웃다가 주먹으로 바닥을 꽝 내리쳤다.

“진짜, 빌어먹을 놈이었지. 누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천마한테 이겼으면 얌전히 즐겁게 살다가 뒈질 것이지.”

“……즐거워하지 않을걸요.”

“뭐?”

“제가 봐 온 경이라면, 찝찝하다고 온종일 칭얼거리거나 성질을 부렸을 거예요. 언제 다시 마교의 후인이 나올지 모른다고 싹을 자르자고 날뛰었겠죠.”

성하민이 엷게 웃었다.

기력은 부족했지만, 눈빛은 형형했다.

“안 그래요?”

“그릇이 대접보단 종지만 한 놈이긴 했지.”

서문패는 혀를 쩝 차며 찻잔을 들었다.

‘이대로 계속 기다리다가, 끝까지 안 오면…… 직접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우습기는 했다.

인생이나 거나하게 즐기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라진 조카 때문에 또 개고생이나 할 예정이라니.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셔.’

솔직하게 말해서, 서문세가의 입문자를 가르치는 건 너무 쉬웠다.

서문세가가 가히 천하제일문파가 되면서 천하의 기재가 몰려들었다.

게다가 서문패에게 보내지는 것은 대부분 벌모세수를 마친 명가의 자식.

‘예의가 너무 똑바르면 애 같은 맛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

서문경처럼 막말하는 놈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은 순수한 척이라도 하면 뭐가 덧나나.

무학에 눈을 미친놈처럼 번쩍거리는 놈들을 보자니 기가 질릴 정도였다.

서문패는 제자들을 떠올리며 쩝쩝거렸다.

“후우…… 이렇게 한가로운 것도 참 심심하구나.”

“그리 말씀하시지 마요. 또 혼란이 일어나면 힘들잖아요.”

“그래그래. 나도 안다.”

서문패의 목소리가 한순간 진지해졌다.

“그놈이 만든 평화가 다시 어지러워지면 나도 참기가 어려워질 것 같으니까.”

“……호호.”

서문패과 성하민이 다시 찻잔을 따르는데, 문이 별안간 열렸다.

“여기서 마시고 있었구만!”

나이 든 노인.

진무신검이 술이 든 호리병들을 보라는 듯 흔들었다.

찰랑!

척 보아도 비싼 주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서문패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르신께서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주도(酒道)를 지켜야겠군.”

“허, 허…….”

자연스럽게 술로 넘어가는 서문패를 보며 성하민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다 별안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음?”

거대한 울림이 장원을 휘감았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폭풍이 가지를 거칠게 흔드는 소음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에 익숙한 기척이 있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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