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42화 (240/250)

천의 (3)

전생에도 어렴풋이 느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천마라는 적 앞에서는 모두 단결했다.

이번 생도 마찬가지.

마교가 아무리 속에서 진흙을 내던져도 하나로 뭉쳐서 싸웠다.

하늘의 의지만이 고매하지 않다. 그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서문경은 이것을 말하며 덧붙였다.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은 정말로 감사히 여기고 있어. 하지만 앞으로는, 하늘이 작은 단서만 주더라도 단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야. 누군가를 조종하지 않아도, 그런 시대가.”

-너무 희망적이군.

“내 뜻을 강요하는 게 아니야. 애초에 강요당할 존재도 아니고, 이해해 달라는 거지.”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지금 검을 들었다.

서문경의 말에 하늘은 가볍게 비웃었다.

-고작 핏줄이 귀하다는 핑계로 황제를 추대하여 따르는 벼슬아치가 자유를 논하느냐? 참으로 실망스럽도다. 절대적인 존재에게 미물의 선함을 믿으라고?

꽈르릉!

구름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뇌성벽력이 내리쳤다.

깊은 실망이다. 하늘은 서문경을 내심 이해자로 여겼다.

오로지 자기 자신, 홀로 모든 운명을 이겨 내야 하는 고독과 압박감.

-어리석다. 실로 어리석다. 어찌하여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이해하지 못하는가?

“…….”

서문경은 쓰게 웃었다.

이상한 건 자신이었다.

대명의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는 시대에 하늘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모순이나 마찬가지였다.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 자유란 사치.

절대적인 지식과 힘을 지닌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실제로 마교와 싸우기 위해서, 미래를 아는 서문경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이제 와서 자유를 들먹이는 것이 고깝게 보일 수밖에.

그러나 서문경의 의지는 굴하지 않고.

“……후우.”

깊고 정심한 호흡.

모든 힘을 쥐어짜기 직전, 무심코 행하게 되는 행위.

서문경의 검에서 진기가 거미줄처럼 번졌다.

줄기 하나하나에서 흩날리는 신광에 담긴 격은 천하의 어느 무인보다도 높고 고귀하였다.

하늘은 한탄했다.

-어찌하여 너 같은 자가 하찮은 미물을 대변하려고 하는가?

“…….”

-너라면 알 것이다. 기생하는 것들을, 남의 괴로움을 이득으로 삼으려는 것들을, 자기 자식조차 아무렇지 않게 팔아넘기려는 것들을. 보았을 것이다. 환멸이 날 정도로.

“알고, 보았지.”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삶부터, 천의의 은혜를 입고 되살아난 지금까지도 볼 꼴 못 볼 꼴 전부 보았다.

오히려 마교의 존재를 일찍 앎으로서 원래 알던 역사보다 더 빠르게 변절한 자들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환멸하지도 않았다.

협을 꿈꾸던 무인이나 도사였다면 절망했을지도 모르지만, 서문경의 태생은 추락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조차 품는 것이 의무요, 책무일 뿐.”

군관.

대명의 치안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서문세가의 가업이었다.

수십, 수백 년 전. 천하의 주인이 한족이 아니었을 때조차 후일을 도모하며 암약했다.

그 후예가 어찌 쉽게 닳겠는가?

‘나도 저 하늘처럼 수천 년을 산다면 달라질 수야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가르침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존경하는 아버지 서문이현에게 수많은 이야기와 기록, 그리고 많은 곳을 누볐다.

인간에게 실망하더라도 금세 잊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의무의 무게를.

“설령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멈추지 않아.”

그저 자신이 맡은 책무를 다할 뿐.

서문경의 눈동자가 맑아졌다.

정심하고 깨끗한 진기가 전신을 휘돌고, 또 휘돌았다.

-결국, 이런 식인가.

꽈르릉……!

개벽한다.

밝음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자욱해지다가 일순, 수천의 낙뢰가 하늘을 수놓았다.

하늘의 분노가 권태를 앞지른 탓이다. 뇌성벽력이 단숨에 서문경의 망막을 불태울 듯했다.

이에 서문경은 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비검절우.”

낮게 읊조리는 낱말에 담긴 것은 깊은 의념.

하늘과 대적하려는 무인의 오만과 자기확신.

푸른 빛의 검격이 위로 치솟아 수천의 낙뢰에 맞섰다.

불순물은 없었다. 서문경이 펼치는 검법에 다른 신공절학은 섞이지 않고, 오로지 서문의 무학만이 무한했다.

콰르르르! 쩌정!

푸른 광채가 마침내 낙뢰를 쪼개자.

-……!

자길 절대적인 존재로 논하였던 하늘마저도 깜짝 놀라 머뭇거렸다.

서문경에게 있어 유일한 기회.

“후우.”

몸과 정신에 새긴 수천의 길을 그대로 체현한다.

신비한 무공사전으로 쌓은 업과 배움을 행한다.

감극.

하늘이 절대적인 힘을 드러낸다고 한들, 망막이 타서 사라져도, 상관하지 않는다.

‘무인의 소우주는 대우주를 부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처음 들었을 땐 터무니 없이 오만하다고 여겼다.

저 대우주를 대명의 황제로 여겨, 첫번째 삶에선 무인을 배척하고 밀어내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천주심경을 창안한 도사가 말했듯, 무인이란 향상심에 굶주려사는 존재라는 것을.

자신 또한 하늘과의 투쟁을 내심 즐기고 있음을…….

“일검적심.”

꽈아앙!

감극과 의념, 천주로 유형화한 시퍼런 강기가 순식간에 하늘을 난도질했다.

본래라면 내공이 무한하지 않기에 불가능할 운용이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의념이 강할수록, 의지가 뚜렷할수록 더더욱 또렷해질 뿐.

그러나 하늘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서문경을 가엽게 여겼다.

-모든 것을 이루고도, 내 뜻 하나를 꺾기 위해 제 몸을 바칠 작정이더냐?

“…….”

서문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목의 내관혈이 타오르는 듯 쓰라리다. 인간의 몸으로 불가능한 행공을 펼치기에 덧없이 사라질 것 같다.

‘그게 뭐 어떤가.’

피식 웃은 서문경은 지체없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죽어도 좋다. 지금 당장 하늘의 뜻을 꺾을 재능이 존재하길 갈구했다.

꽈르르릉……!

하늘이 재차 낙뢰를 쏟아 냈다. 단순하지만 압도적이다.

인간의 몸으론 도저히 받아 낼 수 없는 절대적인 중량.

받아 내는 순간 짓눌리기에 손목으로 기교를 부렸다.

“검견불퇴.”

정신력을 박박 긁어모아 또렷해진 감각으로 낙뢰를 쳐 냈지만, 전부 흘리지 못해 팔뚝과 종아리에 깊은 상처가 자리잡았다.

서문경의 검이 또다른 흐름을 그린다.

“번검유회.”

다시 한 번 서문검법.

수많은 검의 잔영이 벽을 이뤘다. 하늘이 쏟아 내는 낙뢰마저도 검막을 뚫고 전진하지 못했다.

-검선마저도 이루지 못한 경지를…….

하늘의 목소리에 수심이 깊었다.

이런 자를 정녕 죽여야 하는가?

잘 설득해서. 아니, 제압해서 후일의 혼란에 다시 써먹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때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 널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

“혼란에 빠진 천하를 되돌리는데 무슨 방법이라도 써야지. 대명의 군인으로서 공감하는 바야.”

-그렇다면, 이렇게 투쟁할 필요는 없을 터다.

하늘은 낙뢰를 흩뿌리는 걸 멈추고서 서문경을 설득하기 위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남으면 된다. 대명의 사람이 나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싫다면, 네가 도우면 된다. 그걸로 의견을 좁힐 수 있지 않겠느냐?

“하, 하하하…….”

-무엇이 우습느냐?

“도사 놈들은 하늘이 무정하다고만 했지, 억지가 심하다곤 하지 않았는데.”

서문경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걸 다시 겪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냐, 어쩔 수 없구나.

꽈르르릉!

하늘에서 낙뢰가 수없이 떨어졌다.

* *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편지를 남긴 서문경의 행적은 완전히 끊겨서는 어디서 사라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성하민과 주백경의 마음만 답답해졌다.

“대체 어디서 사라진 거람.”

“공자님…….”

서문이현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 일주일은 아주 평온했다.

언제나 그랬듯, 갑자기 자리를 비웠다가 금세 돌아올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한 달이 지나자 개방을 비롯한 관인에게 서문경의 행적을 되짚었다.

‘대체 무슨 허깨비 짓을 한 거냐…….’

아무리 서문경의 보신경이 뛰어나다지만, 천하를 속일 순 없는 법인데.

서문이현은 아들의 행방이 너무나도 걱정되고 심려스러웠다.

남들이 들으면 우스울 일이다.

천하제일인.

과장을 보태자면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리는 서문경인데, 천마가 죽은 이 세상에 누가 누굴 걱정하겠는가?

하지만 그 아이가 남긴 편지를 보면 ‘천의’와 싸운다고 했다.

‘사람이 어찌 하늘과 싸우겠는가. 괜한 무리나 안 했으면 좋으련만.’

당장 서문경 단 한 명을 보고 서문세가에 어린 아이나 후기지수를 보내는 문파와 가문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이야 잠깐 출타 중이라고 해서 이해를 받지만, 그것이 석 달이 넘어가면 어떨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서문경이 없는 사이에 서문세가의 가전무공을 탐하려는 족속이 생길지도 모른다.

서문이현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그때.

“아버지.”

“오, 휘야. 무슨 일이더냐.”

“너무 걱정 마시지요.”

“……?”

“형이 없더라도 제가 있지 않습니까?”

서문휘는 무덤덤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아버지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했다.

비록 서문경처럼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리지는 못하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웠기에.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녹록하게 보여서 안 된다.

서문세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언제나 강하게 보여야 한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서문이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허, 내가 이제 둘째 아들한테도 이런 위로를 받고…….”

철인 서문이현.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장군이 요즘 들어 인간답게 변해 가고 있었다.

“내가 아들들을 잘 뒀구나.”

“별말씀을요. 식객으로 들인 고수 또한 많지 않습니까? 이제 마교도 없는 마당에, 서문세가를 적으로 돌릴 세력이 있겠습니까?”

“그건 쉽게 단언할 수 없다.”

“……?”

“사람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고, 은혜는 금방 잊는 것이 사람이다. 마교와 천마를 쓰러뜨린 경이의 무공을 탐하고 싶어 하는 자들 또한 많겠지.”

서문이현은 붉어진 눈시울을 슥슥 비볐다.

어느새 평소처럼 차가운 인상으로 변했다.

“경이가 돌아올 때까지 서문이 서문으로 있도록 하자꾸나.”

“예, 아버지.”

서문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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