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40화 (238/250)

천의 (1)

“하, 하하……. 그랬구나. 그래서 너는 서문세가의 무공이 배우고 싶어서 찾아온 게냐?”

“예.”

그 말에 구상천은 제법 사내다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반쯤은 억지로 지어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서문경은 저 가문의 가정교육은 엄격한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러고서 구상천의 또랑또랑한 눈을 보았다.

“내가 너를 가르치면, 뭐가 좋아질까?”

그 말에 구상천은 끝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혹시나 하는 희망이 혀를 지배했다.

“제가 장군이 되면 서문세가에서 배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장군가에서도 사람들을 보내올 겁니다. 당연히…….”

“아니, 그게 아니야.”

고개를 가볍게 저은 서문경은 구상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보여 주는 검형을 착실하게 따라와, 기쁘게 해 줄 수 있냐는 말이다.”

그것 말고 네가 해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느냐 하고 서문경이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구상천의 품을 흘낏 살폈다.

“혼자서 아무런 재산 없이 나온 것이냐?”

“……예.”

“지금까지는 그럼 어떻게……?”

말을 하다 말고 서문경은 시선을 돌려 청하를 바라보았다.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는 걸 보니, 필시 저 녀석이 자비로 구상천을 먹여 살린 듯했다.

‘명가의 자식인 걸 알았다면 그랬을까.’

아마 먹은 찬거리를 뱉어 놓으라고 농을 던질지 모른다.

서문경은 기대에 가득 찬 구상천을 보며 차마 부정적인 말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어렵게 지낸 건 자신 하나면 족하다.

서문경의 얼굴엔 훈훈함이 가득했다.

“간단한 청소나 정리만 도와준다면 앞으로도 돈은 받지 않으마.”

“저, 정말이요?”

“단.”

서문경은 구상천이 내려놓았던 목검을 들어 올렸다.

‘오랜만이군.’

왠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었다.

서문경은 숨을 내쉬며 공력 없이 서문검법을 펼쳤다.

“우와아아!”

현격한 수준의 검형이 검무로 이어진다.

머리가 조금 굵은 청년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입을 쩍 벌린 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문경은 딸꾹질을 시작한 구상천을 바라보았다.

“깍듯했으면 좋겠구나.”

“……에.”

“청하도 눈썰미뿐이었지, 예의는 좋지 않았거든.”

그 말에 청하가 괜스레 발끈하여 외쳤다.

“에이, 형님!”

“봤지?”

서문경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목검을 넘겨주었다.

“먼저 청하에게 기본을 배우고 나면, 수련장으로 오거라.”

“공터로요?”

“그래.”

서문경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

“사람들이 자주 고치러 오거든.”

“……그거야 누구 때문인데요.”

옆에서 청하가 딴죽을 걸자, 서문경은 옆구리를 툭 치며 지나갔다.

무관의 정문 앞에 무거운 존재감이 자리해 있던 탓이었다.

드르륵.

서문경이 문을 열기가 무섭게 허름한 차림의 상인이 종이를 매만지는 모습이 보였다.

상인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아이고, 깜짝이야.”

“무관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주문한 물건의 수송 건으로 왔네.”

‘주문했던 물건이 있었던가?’

서문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의 수레로 향했다.

수레의 앞에 걸린 만금상단이라는 목패가 아련하게 비쳤다.

“이런 건 안 보내 줘도 괜찮다니까.”

서문경은 만금상단주 조원양을 나무라며 물건을 가린 거적을 벗겨 냈다.

대부분 아이가 연습용으로 쓸 만한 가벼운 목검이었고, 흙도 많았다.

그 사이에 조심스레 끼어 있는 서신을 보고 서문경의 손이 향했다.

찌이익.

편지를 봉한 인장을 찢어 내니 서두와 끝말이 드러났다.

[서문경 대협께.

조윤 배상(拜上)]

“배상이라니, 한 표국의 주인은 함부로 허리를 굽혀선 안 되는 것인데.”

그러면서 서문경은 내용을 읽었다.

과거 만금상단의 상인 중 하나에 불과했던 자신이 호광성의 표주로 임명받게 된 일.

마교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도와줬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제야 진짜 마무리가 된 거구나.”

부드럽게 웃었다.

많은 목숨이 스러지고 나서야, 마교가 모두 절멸했다.

그 속에서 서문경은 행복을 되찾았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행복해졌으면.’

서문경은 청하를 시켜 수레에 든 짐을 모두 받게 한 뒤, 조윤에게 답장을 써 냈다.

[지금 보내는 편지에 인장을 찍을 터이니, 황실에 직접 연서(聯書)를 보내 재물을 받아 내시오.

그 재물로 그들을 보살펴 주시오.

서문경.]

* * *

황실에 보낸 연서가 통과되고, 열하루째 되던 날.

서문경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직도 아이가 없어서야, 거참, 무공은 그리 뛰어난데 후계가 없다고? 이래서 군인은 문제라니까.”

“…….”

서문경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목검을 들어 올렸다.

그것만으로 위문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허, 농담이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목검을 다시 아래로 늘어뜨리는 서문경.

그 모습을 본 위문엽은 왠지 모를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명히 천마와의 싸움에서 무공에 흥미를 잃었다고 말했었는데, 서문경의 기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거, 거짓말 아냐?’

서문경이 언젠가 천의에게 도전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진짜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늘.

위문엽이 약간의 호승심을 느끼려던 찰나에 서문경이 먼저 말했다.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뭘 말이오?”

“그냥, 남기고 싶어서 한 말이죠.”

“…….”

위문엽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무인이 가려고 하는 길.

그것도 서문경의 뜻에 괜히 방해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존경했소. 진심으로.”

“그래, 고맙다.”

서문경은 부드럽게 웃고는 위문엽에게 등을 돌렸다.

신비한 무공사전을 내어 준 천의와 마주하러 가기 전에,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길 생각이었다.

그날 밤.

서문경은 방에 홀로 앉아서 턱을 괴었다.

‘어떤 편지를 남기고 가야 할까?’

사실상 유서가 될지도 모르는 기록이 아닌가!

이 백지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깊게 고민하다가 첫 줄을 기록했다.

[고맙다.]

거기까지 쓰다가 지웠다.

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쓰려니까 고민이 되었다.

다 쓰자니 자질구레하고, 부끄러웠다.

첫 줄을 채우기가 이렇게 어렵다.

서문경은 한숨을 쉬었다가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창가 밖, 위문엽이 떠난 자리에 적막과 어둠만이 있었다.

그놈도 어렴풋이 알아차렸을 터였다.

자신이 어디론가 멀리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그 예의 없는 놈이 ‘존경한다’라고 말한 건 그 이유였을 것이다.

“……말리지 않고 갔단 말이지.”

예전이었다면 자기랑 한참 싸워 달라고 했을 텐데.

서문경은 피식 웃다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번 조화를 이룬 천주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늘과 한순간 맞닿았던 감각이 선명했다.

종결식.

천마에게 휘둘렀던 그 감각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았다. 상단전이 하늘을 발판으로 삼아 승천하던 순간이었다.

그 직후에 이어진 무명식엔 혼을 담았다.

‘내공은 없어도 돼.’

한순간이었지만, 깨달았다.

내공이나 영기, 선기든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힘.

무인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무공을 익힌다.

무학(武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또한 무공을 익히면서 자기를 알아 가기 때문이다.

그 끝에 하늘이 있었고.

서문경은 그 하늘을 넘었었다. 그래서 천마를 이겼었다.

‘그때의 감각만 다시…… 내가 체현할 수 있다면.’

천의와 직접 담판을 지을 수 있으리라.

서문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목표를 떠올리니 백지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많은 말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미련한 짓, 해 봐야.”

각오만 줄어들 뿐이다.

서문경은 피식 웃고는 짤막하게 썼다.

[서문세가의 첫째아들, 무림제일고수, 천무검왕, 소가주의 형으로서 남긴다.

금방 돌아오마.]

이곳에 남길 말은 이것으로 족하다.

서문경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생애 마지막, 천의를 향해 방황하는 길.

그 길에 도착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길 테니까.

찰나에 불과했지만, 육신을 천하에 두고 온 듯한 해방감이 전신을 휘돌았다.

잠들어있던 또 하나의 감각이 처음 보는 심상을 떠올렸다.

“……오, 이런. 저곳이구만.”

인연의 이끌림.

하늘로부터 되찾고자 하는 사람의 기운이 드높은 곳에서 느껴졌다.

그곳에 천의(天意)가 여러 영혼과 함께 있었다.

서문경의 입술이 씰룩였다.

“누가 못 갈 줄 알고?”

천의가 서문경을 되살렸듯, 이번에는 서문경이 천의를 끌어당길 차례다.

서문경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지극한 숨소리가 심상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신공으로 쌓아 올린 내공은 하단전에 없었다.

신단으로 얻은 영기는 중단전에서 씻은 듯 사라졌다.

선기마저 천마와 싸울 때 모두 써 버렸다.

서문경의 몸엔 이제 어떠한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천의를 담은 심상에서 서문경은 그저 힘을 잃은 방랑자에 불과했다.

수상비(水上飛)는커녕 초상비조차 불가능.

……그러나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무인인지라.

“자,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서문경은 인간의 껍데기를 벗었다.

무인으로서 히죽 웃으며, 의지로 의념을 끌어 올렸다.

그 의념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광활한 허공에 존재하는 천의를 향해 발을 뻗었다.

……쿵!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계단 같은 것이 밟혔다.

“…….”

기절초풍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서문경의 표정은 평온하고 정신은 명정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하늘만이 드높은 의념을 주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뭐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구만.”

서문경은 씨익 웃으며 발을 재차 내디뎠다.

콰앙!

포탄을 갈긴 듯한 폭음이 길게 퍼졌다.

서문경의 힘이 되돌아와서도, 천의의 방해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오직 서문경의 정신.

의념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허공에 새로운 구조물을 창조하고 있었다.

서문경은 하늘을 향해 말을 걸었다.

“내가 곧 그곳으로 가겠소.”

천마와의 싸움에서 한순간 닿았던 상천(上天)의 경지.

천애의 협로 너머, 인간이라는 소우주(小宇宙)를 넘어서 커다란 굴레에 손끝이 닿았다.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선 서문경에게 이제 내공이나 영기, 선기 따위는 무용했다.

“어디 한번 얼굴이나 보자고. 어째서 신비한 무공사전을 나에게 주었는가 물을 테니.”

서문경은 또다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이번에는 큰 고통이 찾아왔다.

“……크윽!”

망념이 쏟아진다.

신비한 무공사전을 한때 차지했던 자들의 기억, 그리고 집착.

쿵…… 쿠웅!

이번에는 두 걸음.

거리가 먼 것을 생각해서 보폭을 크게 넓혔다.

위로 올라설수록 소음이 너무 커져서 이명이 머리를 때릴 정도였다.

“……끄으.”

귀에서 진물이 흐르고, 내부도 진탕되어 입가에서 핏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나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삐이이-!

이명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서문경이 좁디좁은 계단에서 할 수 있는 발버둥이라곤 가끔 몸을 비틀거리거나, 고개를 내젓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정신이 흐트러지진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떨어질까 보냐?”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에 집념이 있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무인의 눈이었다.

‘죽음조차 극복하겠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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