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3)
저렇게 자유로운 무형의 연환 검술이라니!
자하신공이나 대주천복마검조차 이루지 못한 미답의 경지가 서문경에게 있었다.
하물며 천마조차도 감탄을 아끼지 못했다.
“과연…… 예전보다 지금은 무학이 눈부시게 발전하였구나!”
하지만 여기서 끝날 수 없다는 듯, 천마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여흥이다. 과거의 도사에게도 펼치지 않았던 절기를 보여 주마.”
쿠르르……!
모산과 맞닿은 언덕과 절벽이 크게 흔들렸다.
아주 사소한 틈.
바위와 바위 사이에 물이 흘러 만들어진 길에 마기가 침투했다.
그 길이가 무려 한 마을을 시꺼멓게 만들고도 남을 경력이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힘 앞에서 서문경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천마가 행하려는 행동이 무엇인지 상단전의 감각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감이 좋구나.”
천마가 좌수를 좌에서 우로 휘둘렀다.
“이것이 만마의 주인이 행하는 힘이요, 권능이로다.”
쩌적, 쿠르르르릉……!
거대한 암반이 허공에 떠다녔다. 서문경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암반의 그림자에 어둡게 물들었다.
그 사이에서 오직 청마만이 천마의 힘에 전율하곤 짙은 미소로 화답했다.
“역시! 만마의 종주이십니다!”
천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수를 아래로 내리쳤다.
암반이 서문경과 침투조를 향해 낙하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네놈!”
“피하려거든, 네 뒤에 있는 놈들은 죽게 두어야 할 것이다.”
천마의 말에 서문경이 인상을 찡그렸다.
균천관일의 무학을 담은 일검적심과 쌍마멸천장.
거대한 암반의 낙하.
천마와의 다투는 일까지.
하나같이 어려운 일이었으나 해내야만 했다.
침투조 전원이 상승 고수라고 한들 마기가 깃든 암반을 쳐 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바로 그때.
성하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최대한 암반을 쳐 낼게.”
“하지만……!”
“한눈을 팔 상대가 아니야. 얼른!”
성하민의 목소리에 서문경은 정신을 집중했다.
천마, 그리고 그가 펼친 쌍마멸천장.
서문경의 검이 유려하게 곡선을 그렸다.
스르릉!
강기에서 이어지는 서문검법이 천마를 압박했다.
그때마다 천마가 역습을 꾀하곤 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암반이 문제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해 주겠지.’
암반을 밀쳐 내지 못하면 꼼짝없이 죽을지도 모르는 간극에 있었다.
하지만 불안하진 않았다. 이곳까지 온 동료를 신뢰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청마가 입술을 열었다.
“제가 놈들을 방해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여라.”
천마의 동의가 떨어지자 청마가 땅을 박찼다.
서문경의 옆을 지나면서 순식간에 부적을 여러 장 흩뿌렸지만, 별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갚아 주었다.
‘서풍광아.’
서문경의 경력에서 떨어진 비검이 청마의 오른팔을 베었다.
“끄아악!”
비명을 내지른 청마가 서문경을 노려보고는 침투조를 향해 달려갔다.
서문경은 그 모습이 그저 우습기만 했다.
만일 부적을 흩뿌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빈틈이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서문경은 그에게 시선을 떼고서 천마에게 한층 더 집중했다.
쌍마멸천장이야 균천관일에 계속 천주를 주입한다면 손쉽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장본인이다.
“후우…….”
숨을 지극하게 고른 서문경이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눈은 천마의 전신을 누볐다.
근육의 사소한 움직임.
체중이 쏠리는 방향.
그 하나하나가 천마의 움직임을 읽게 해 주었다.
서문경이 천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무학의 발전이요, 무학으로 공들여 쌓은 경험과 무공이라는 탑이었다.
그에 반해 천마는 어떠한가.
“잔재주가 언제까지 통할 성싶으냐……!”
쿠쿠쿠쿵!!
가공할 만한 마기가 서문경의 전신을 억눌렀다. 기혈이 뒤틀리고, 관절이 짓눌리는 통증이 덮쳤다.
그러나 버텨 냈다.
천주가 단단하게 버티는 삼단전의 공능으로, 두 번째 삶을 가열하게 살아가는 정신으로…… 두 눈을 부릅뜨며 버텼다.
“크, 결국 하는 짓거리가 힘자랑이라면.”
거대한 힘 앞에서 대항할 수 있는 수단.
그것이 바로 무공이다.
서문경의 몸이 한 바퀴 휘돌았다.
지렛대를 이용해서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고, 바퀴로 움직이듯.
서문경은 어릴 적부터 배우고 익힌 무학의 신묘한 기예를 천마 앞에서 펼쳤다.
사량발천근(四量發千斤).
넉 냥의 힘으로 천 근의 힘을 튕겨 낸다는 고등한 기예다.
무당파에게 배운 태극의 무학과 경파를 천주로 절묘하게 뒤섞었다.
쩌적!
서문경의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그걸 본 천마가 희미하게 웃었으나, 뒤이어 인상을 찌푸렸다. 표정 안에 담긴 감정은 짜증과 분노였다.
“네, 놈.”
두 음절을 말하기도 전에 마기가 천마를 덮쳤다.
꽈앙!
크나큰 파음이 모산 정상을 뒤덮었다.
찰나의 순간에 자기 기운을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충격까지 흡수하진 못한 것을 보았다.
서문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가라!’
스각!
두 마룡을 찢어발긴 균천관일의 검기가 천마를 재차 덮쳤다.
서문경의 발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하!”
천주가 담긴 검의 검봉에서 희끄무레한 검경이 맺혔다.
허공에 서린 흐릿한 기운이 제단과 함께 천마를 씹어먹으려는 듯,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절기를 연거푸 펼치는 과정에서 암반은 깨끗하게 잊었다.
‘여기서는, 하민이를 믿는다!’
사오 년.
짧다면 짧다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소심하고 어렸던 꼬마는 자기 의지를 갖추고서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고수로 장성했다.
‘그 아이라면, 아니 내 제자라면 할 수 있어.’
서문경은 피식 웃으며 안력을 돋웠다.
아직도 기력이 쇠하지 않은 채, 천마가 검붉은 안광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구나.”
“모두…… 짜부라뜨려 주마……!”
천마의 마기가 사방으로 폭사했다.
그 기운은 모산 전체에 맞닿아서 생기를 빼앗고, 뒤틀었다.
그건 저 멀리서 낙하하고 있는 암반도 마찬가지였다.
* * *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건물 하나를 거뜬히 뭉개 버리고도 남을 암반.
감히 대항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규모에 팽사환이 연준호에게 재차 물었다.
“방법이 있느냐? 있다면 따르마.”
“그건…….”
딱히 없다.
연준호는 그 말을 담지 않았다.
다만 품고 있던 한 가지 예감을 내뱉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말이냐?”
“아니요, 제가요.”
연준호가 당차게 한 말에 다른 십대고수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힘을 모으는 것도 아니고, 너 혼자서 말이냐?”
혹여 마기가 상단전을 침습한 것이 아닐까?
그 의문이 한껏 들어 있는 물음에 연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 걸음을 걷고서, 맨 앞에 있는 성하민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민아.”
“……?”
“한번 해보자.”
“어떻게?”
“경이가 추구하는 무(武)의 재주(術)가 있었고, 나만의 길을 만들었으며(道), 축적하여 무언가를 만들었다면(功) 우리도 가능한 일일 테니까.”
연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모산을 그림자로 물들이는 암반을 보고서 서문경이 한때 흘러가듯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무술은 그저 재주.
무도는 일신의 재주로 체계를 만든 수준이며.
무공은 하나의 업(業)을 이루고도 남는다고 하였다.
연준호는 자기가 이룰 업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먼 옛날, 검선 여동빈이 마룡을 참하였던 것처럼.
“지금은 나의 무공을 증명할 때야.”
연준호는 검을 쥐었다.
서문경처럼 고금제일의 무재를 가지거나 천의를 이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 없다고, 기연이 없다고 하여 주저앉을 생각은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화산의 도사, 연준호이기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연준호는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청마와 낙하하는 암반을 보며 자하신공을 운용했다.
청마와 암반.
두 문제를 두고서 연준호가 한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저 마인은 선배님들께 맡기겠습니다.”
믿고 맡긴다.
이곳에 있는 십대고수들과 양대호법이라면 청마쯤은 간단하게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은 그저 입에 담은 대로, 암반을 부수는 것을 행하면 된다.
‘모든 걸 내가 할 필요는 없어.’
서문경의 등 뒤를 보면서 늘 생각했다.
어째서 혼자서 모든 걸 하려고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조금씩 짐을 넘기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은 여전히 연준호 안에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하니까.’
사람마다 질 수 있는 짐에 한계가 있다.
서문경은 그저 자기가 질 수 있을 만큼 들었을 뿐이었다.
그 짐이 천마라서 모든 걸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들지 못한 것도 있었다.
연준호는 그가 남긴 짐을 대신 들고자 했다.
“저는 저것을 부수겠습니다.”
“그래.”
누가 대답했는지조차 듣지 않았다.
연준호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거대한 암반.
모산을 향해 낙하하고 있는 재앙을 향해 연준호가 발을 내디뎠다.
발아래에서 청마와 무인들이 생사를 다투고 있는 소리가 들렸지만, 마음이 급박하거나 들뜨지도 않았다.
명정을 유지했다.
어떻게 해야 저 암반을 부술 수 있을까, 깊고 숙하게 고민하면서 매화보를 무의식중에 펼쳤다.
퉁, 퉁, 퉁.
조금씩 위로 더 솟구칠수록 발이 허공을 울리는 소리가 거칠어졌다. 내공이 금방이라도 바닥을 드러낼 듯 휘청거렸고, 눈앞이 아득했다.
그러나 발아래에 천주가 있었다.
천마와 싸우면서 물방울처럼 튄 공력 한 줌, 한 됫박이 자하신공을 운용하는 연준호의 등을 떠밀어 주고 정신을 청량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가능했다.
“……후우.”
조금 더, 크게, 아래는 바라보지도 않고서 계속 위로.
검을 휘두르면 닿을 정도가 돼서야 연준호의 매화보가 멈췄다.
그러나 쉴 수는 없었다.
의식을 놓치면 그대로 나동그라져서 죽어 버릴 높이였으니까.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평생 동안 익히고 펼쳐 온 무공이었다.
삼보.
매화보를 펼치면서 쌓인 바람이 발아래에서 휘몰아쳤다.
서문경의 천주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지만, 허공에서 자세를 잡기에는 충분한 바람이었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