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37화 (235/250)

천마 (2)

하늘에 닿을 만큼 진화한 천주심경.

아니, 이제는 서문경의 천주였다.

천주라는 거대한 기둥 상부, 상단전에 담긴 의념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경지.

서문경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의념을 집중하는 과정조차 생략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행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손으로 떠서 휘두른다는 느낌으로.’

무학(武學)의 경계를 부순다.

단순히 무(武).

강한 일격을 펼쳐서 상대를 무찌를 수 있다면, 누구보다 더욱 강한 것을…… 서문경은 가지고 있었다.

천주.

이름도 모르는 선배가 만든 심상(心象)이자 심원(心源).

그곳에 서문경의 모든 것을 담았다.

무학을 단련하고, 궁리하여 새로이 만든 초식을 담았다.

무림맹에서는 다른 도문의 무학을 새로이 배웠다.

‘담고, 고쳤다.’

그저 앞을 보았다.

천마의 무심한 얼굴을 부수고 싶은 마음, 이 지긋지긋한 마교의 굴레를 끊고자 하는 의지가 커졌다.

서문경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이것이, 무공이다.”

쏴아아…….

자그마한 물결이 파문을 그린다.

천주의 심상.

서문경의 상단전에서 시작된 파문은 경계를 부수고서 밖으로 조금씩 고개를 들이밀었다.

촤아아아……!

강철의 기둥이 모산 정상을 휩쓸었다.

“크윽……!”

후방에 있는 침투조조차 몸을 지키는 것이 한계인데, 정면의 천마와 청마는 어떠하겠는가?

천마의 안색이 처음으로 달라졌다.

감정 따윈 모른다는 것처럼 무심하던 얼굴에 실금이 그어졌다.

“이건 종잡을 수 없군.”

종잡을 수 없다.

분명하지 않은 낱말이었으나, 천마는 핵심을 보고 있었다.

천주에 녹아 있는 것은 서문세가의 가전무공을 중심으로 한 모든 무학.

서문경은 그것을 퍼다 휘둘렀다.

언뜻 보기에 무성의하고, 형식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체계가 있었다.

‘비검절우.’

한 줄기 검강이 비검처럼 쏘아졌다.

허공이 스스로 길을 비키고, 천하를 어둡게 물들이던 구름이 찢어졌다.

“이건……!”

천마의 낯빛이 굳어졌다.

비검술이란 무엇이던가?

결국은 꾀(術)에 불과하다.

내공이든, 의념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날아갈 뿐인 칼날이었다.

한데 서문경의 비검술은 뭔가 달랐다.

진무신검이 휘두르는 태극의 검법과 비교해도 판이하게 높은 수준이었다.

“영기와 선기인가.”

신단으로 쌓은 영기와 성지에서 얻은 선기가 파도에 생(生)을 불어넣는다.

서문경이 휘두른 비검에 무학의 일부분이, 혹은 대부분이 담겨 있었다.

도문의 무학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 이상, 깰 수 없다.

본질을 꿰뚫어 본 천마는 방법을 정했다.

“깨부숴 주는 수밖에.”

“생각한 것이 겨우 그거냐?”

서문경은 피식 웃고는 천주에 손을 담갔다.

찰랑이는 파도, 파도끼리 부딪치며 생기는 거품 하나마다의 알갱이.

사소한 물줄기에도 무학이 잠들었다.

서문경은 그것을 자기 의지대로 퍼서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대로 해 봐라, 어디 한번.”

크게 퍼서 휘둘렀다.

손을 담구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적인 행동일 뿐. 퍼 가는 양에 대한 제한은 없었다.

구파일방의 수많은 도사가 가꾸고, 서문경이 완성한 힘.

천주의 강철이 천마와 청마를 덮쳤다.

“큭……!”

콰콰콰콰!

물보라가 휘몰아쳤다.

파도이자 폭풍이었고, 무학의 집합체였다.

지금까지 수백 혹은 수천 년 동안 쌓은 업.

무학의 역사가 두 마인을 밀어붙였다.

이것이 바로 서문경이 천주를 다루는 두 번째 법식.

‘이식(二式), 일검적심.’

검기가 또다른 하늘이 되어 적을 짓누른다.

부처의 손바닥이 손오공을 짓눌렀듯, 압도적인 힘이 뒤섞였다.

그러나 한계는 있는 법.

천마가 마기를 한껏 흩뿌리다가 억눌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두 비워 내면 끝날 힘이구나……!”

“…….”

서문경은 어떠한 부정도 하지 않았다.

천마의 말이 옳았다.

천주란, 천의를 이루기 위해 망검이 만든 서문경만의 심상.

닳아서 없어지게 된다면 다시 채울 수 없다.

서문경이 근본으로 삼은 심상이 쩍쩍 말라붙는 셈이었다.

-더 이상 무인이라 칭하기도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문경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어쩌라는 거냐.”

“……뭣?”

“나는 너를 죽이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것 외에 생각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결의.

서문경은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를 어렴풋이 느꼈다.

제법 컸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벼웠다.

천마를 죽이고 천주를 해체하고, 쪼개서…… 천마를 없앤다.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거뜬히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짐.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볼까?”

서문경이 오른손으로 쥔 검.

칼날의 끝에서 천주로 이루어진 불투명한 강기가 맺혔다.

척 보기에는 검강처럼 보이지만, 평범한 것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저건!”

“……!”

강기의 정체를 알아차린 두 고수의 표정이 굳었다.

제갈준과 진무신검.

두 문파를 대표하는 무학의 정수가 서문경이 자아낸 강기에 있었다.

“대주천복마검을……?”

“허, 아니, 자하신공을 어찌 서문세가의 무학처럼 사용한단 말인가!”

천주에 담긴 것들.

다른 도문이 보면 피를 토하거나 눈을 부릅뜰 무학이 연거푸 강기 안에서 메아리쳤다.

그 강기를 본 천마가 실소를 터트렸다.

“……그렇군. 힘을 소모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다룰 수 있다는 건가.”

서문경이 펼친 두 초식은 천주를 소모하여 펼치는 기예지만, 저 강기는 검에 두르고서 휘두를 수 있었다.

하물며 검은 도철에 의해 고검(古劍)에서 명검으로 재탄생한 상태.

무르거나 단단하기만 하지 않다.

서문경은 천마에게 승리를 선언하는 것처럼 당당하고 굵은 목소리로 기예의 이름을 말했다.

“파결(波訣). 너와 맞붙기 위해 만든 천주의 일식(一式)이다.”

무인이란 자기가 가진 것을 무작정 휘두르기보다 다루길 바라는 족속이다.

천결과 해결은 결국 파결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펼치기 위한 방도일 뿐.

서문경의 선택한 검은 천주 그 자체였다.

“자, 그럼…… 끝을 내볼까?”

마물과 도문.

천마와 서문경.

수백, 혹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지긋지긋한 굴레와 역사를.

서문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진기가 온몸을 휘돌고, 천주를 거쳐 일천세맥에 다다랐다.

꽈악.

검을 쥐는 것만으로 모산의 정경이 휘청거리고, 나뭇가지가 내려앉는다.

서문경은 천마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절제되지 않은 기운이 주변을 휩쓸고 있건만, 보신경엔 산보를 나온 듯 고요했다.

그 광경을 본 천마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과연, 악연을 끝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대다.”

악연.

천마에게도 무언가 뒷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서문경이란 무인에게 그저 천마는 적이요, 격퇴해야 할 마인일 뿐이다.

천마 또한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피차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와라. 선수(先手)는 양보하겠다.”

“사양하진 않으마.”

서문경은 검을 쥔 채 달려들었다.

놀라우리만큼 재빠른 보신경에 여러 무학과 묘리가 녹아 있다.

그 모습을 본 청마가 가볍게 혀를 차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천마를 돕기 위한 주술을 짜 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장본인이 원하지 않았다.

“하찮은 짓으로 끼어들지 마라.”

“커헉!”

한마디에 담긴 경력에 청마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잠시나마 천마의 기운에 취한 채 침투조 전원을 동시에 상대했던 그로서는 전신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아무리 강대한 고수일지라도 단숨에 절명시키고도 남을 힘.

그 강대함을 다시 체감하고서야 확신했다.

“역시…….”

이 싸움은 반드시 천마가 이긴다.

제아무리 서문경이 천의를 잇고서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한들, 고대로부터 생존해 온 천마와 비견될 수 없다.

무(武)란 시간으로 깎기 마련.

재능 또한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무수한 시간을 살아온 만마의 주인과…… 일개 도사 따위가 비견될 리가 없지!’

청마가 품은 확신은 첫 격돌에서 증명되었다.

“음.”

서문경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공력의 우위를 넘어서 육체의 차이가 컸다.

서문경은 결국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고, 천마는 가히 석산(石山)에 가깝다.

하물며 내부가 진탕되는 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후.”

서문경은 숨을 골랐다.

지극하게, 깊게, 그리고 옆 사람조차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고요하게.

위기가 가까웠기에 처음으로 돌아갔다.

처음 호흡을 배울 때, ‘무공’에 가장 집중하던 때로.

초심으로 천주를 떠올렸다.

콰르르……!

검이 의념을 토했다.

“다시…….”

서문검법의 일초, 비검절우.

서문경의 검은 거침없이 천마에게 나아갔다.

“……으음.”

천마가 침음을 흘리며 양팔을 휘둘렀다.

낡은 장포가 허공을 누비는 곳마다 불길한 마기를 흩뿌렸다.

천마신공.

고대에 만마가 힘을 합하여 만든 신공엔 ‘한 걸음으로 군림하는 걸음’이 있었고, ‘장강마저 증발시키는 장법’이 있었다.

그러나 서문경이 펼친 검 앞에서는 손색이 있었다.

“이토록 막강했던가.”

천마는 휘둘렀던 양팔을 모으고는 앞으로 내질렀다.

쌍마멸천장.

거리 하나를 송두리째 없애 버리고도 남을 잔악한 마공이 모산 정상에서 펼쳐졌다.

꽈꽈꽝!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고서 전진하는 두 마리의 마룡.

서문경은 그 앞에서 꼿꼿하게 섰다.

“……가 부족해.”

엄청난 소음 탓에 앞의 목소리가 가려졌다.

하지만 서문경 뒤에 있는 연준호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궁리가 부족하지 않나.”

“역시.”

서문경이 씨익 웃었다.

궁리.

무인을 떠나서 사람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필요한 것.

그 궁리가 천마에게는 없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강자였던 이에게 궁리란 불필요했다.

저만한 마기, 마공을 가지고도 힘을 그대로 휘두르는 것이 끝이라면 얄팍하게 보일 뿐이다.

천마는 여전히 고대의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배워 봐라. 수백, 수천 년 동안 도문이 축적한 궁리를…….”

서문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마룡과 균천관일이 부딪쳤다.

쩌적, 쿠구구궁!

마기로 이루어진 두 마룡이 균천관일을 머리로 밀어냈다.

그대로 되돌려 주겠다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바로 그때 천마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인정하마, 그대는 강하다.”

“……!”

“하지만 결국은 피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한계가 있을 터.”

천마가 다짜고짜 팔뚝을 휘둘렀다.

반원으로 휘둘러진 팔꿈치에 절벽을 무너뜨리고도 남을 경력이 실려 있었다.

서문경의 오감이 강하게 맥동했다. 그가 의도하는 것을 시선과 기색으로 읽어 냈다.

‘흩뜨리겠다는 건가.’

그것이 정신이든, 육신이든 어느 쪽이든 무너지면 서문경이 패배할 터였다.

전자라면 균천관일이 무너져서 마룡이 서문경에게 내리꽂히고, 후자라면 천주가 무너질 테니까.

서문경은 어느 쪽도 질 수 없었다.

‘승패를 떠나서, 저런 놈에게 질 것 같으냐……!’

이름은 천마지만, 고작 오래 산 마물일 뿐이다.

저놈을 이기지 못한다면 천주를 해체하여 모든 걸 되돌리는 것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서문경의 의념이 천추했다.

쿠구궁……!

강기의 일부분이 옆으로 떼어졌다.

천마의 눈동자가 잠시 옆으로 돌아갔다가, 그의 몸이 옆으로 뉘었다.

그 순간에 서문경이 펼친 비검술이 천마의 옆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

격전을 지켜보던 이들의 얼굴에 놀람이 스쳐 지나갔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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