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1)
청마는 힘에 도취한 채 양팔을 늘어뜨렸다.
흑향을 제외한 칠로두를 흡수하여 얻은 힘.
그 행동만으로 모산의 영맥이 검게 물들어, 흙이 퍼석하게 변했다.
성하민의 표정이 굳었다.
“호신(護身)에 주의를……!”
“……!”
침투조 전원이 공력을 끌어 올린 순간.
콰콰콰!
마기를 한껏 머금은 가시가 솟구쳤다.
“……큭!”
“흠!”
호신강기를 펼치거나, 각자 장기로 삼은 보신경으로 피하거나.
침투조는 자기가 가진 기예를 펼쳐서 방어했다.
그러나 청마의 공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흐흐! 흐하하!”
마기가 골수까지 치민 것일까?
완전히 풀어진 눈으로 침투조를 쏘아 본 청마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기는 그 간단한 행동을 가장 파괴적인 형상으로 표현했다.
“……큭!”
연쇄적으로 솟구치는 가시, 칼날, 창극(槍戟).
마물의 기운을 빌린 탓인지 평소의 청마와는 완전히 달랐다.
쩌적!
호신강기는 뚫렸으며.
스각!
화려한 보신경은 유형화한 마기에 따라잡혔다.
특히 큰 상처를 입은 팽사환과 위문엽의 상태가 위중했다.
그러나 무인의 자존심은 때로 정신력을 넘어서는 법.
“염병할!”
위문엽은 모든 공력을 오른팔에 돌렸다.
진기와 천둔심여공을 억지로 뒤섞어 출력을 높였다.
콰르르르르!
미친 듯이 휘도는 단층들.
그 안에 상승 무학, 수경을 때려 박았다.
아주 예전에 팔이 찢어질 뻔하여 펼치지 않았던 필사의 절초였다.
“피가……!”
억지로 힘을 집중한 만큼이나 출혈이 심했다.
저대로라면 일다경이 지나기도 전에 쓰러져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위문엽은 이를 악물었다.
“그놈이 오기 전에, 모두 죽어 있으면…… 얼마나 쪽팔린 일이야!”
서문경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살아서 버티자.
안일한 생각처럼 보이지만, 마물의 힘을 빌리는 청마 앞에서는 유일한 목적이자 목표였다.
-힘을 빌리는 게 저 정도라면…….
-청마가 기운에 휘둘릴 만큼 강대한 존재란 말인가?
은연중에 서로가 시선을 교환했다.
천상에서 강림하고 있는 마물의 강함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힘을 합하세!”
진무신검이 자하신공을 운용하며 검봉을 청마에게 휘둘렀다.
그러다 일부분이 위문엽의 돌풍에 휘말렸다.
여러 신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좋아!”
위문엽이 고통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러한 합공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역시, 무림맹 수련장에서 있었던 비무 덕분이다.
“이 정도라면……!”
청마 정도는 치워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위문엽은 팔이 찢어지려는 고통을 인내하기 위해 심호흡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졌다가는 돌풍을 붙잡고 있는 고삐를 놓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청마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다른 고수도 휘말리고 만다.
그것을 옆에서 보고 알아차린 팽사환이 미리 정해 두었던 암구호를 외쳤다.
“전호(全戶)!”
기운에 능숙하지 않은 이때, 확실하게 제압한다.
팽사환의 외침에 십대고수들과 곤륜도 둘이 청마에게 절초를 펼치며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위문엽이 돌풍을 휘두를 수 있도록 천원(天元)을 열어 두었다.
무림맹에서 서로의 무공을 봐둔 덕택에 가능한 합공이다.
“……음.”
“우리가 끼어들었다간 어그러질지도 모르겠구만.”
양대호법은 자연스럽게 합공을 펼치는 무인들 뒤에서 마공을 견제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 과정을 본 청마의 눈가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마물의 기운에 완전히 잠식당하여, 철혈공을 익힌 마인들보다 훨씬 흉측해져 갔다.
“크하하! 부나방 같으니!”
제단을 활성화하기 전의 청마가 보았다면 기가 찰 일이었다.
기운을 통하여 마물의 정신을 제압할 주술을 만들 작정이었는데, 도리어 자기가 당하다니.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마인답게, 힘에 집착하다가 역으로 당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마저도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합형(合形)!”
진무신검이 악을 지르듯 외쳤다.
이번 암구호는 세 화산파 도인의 합격.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익힌 도사만이 가능한 공세였다.
“십이 초부터!”
매화점개(梅花漸開), 매화가 점점 피어난다.
진무신검의 진기가 태극을 그렸다.
“허튼짓을!”
청마가 사이한 눈을 드러내며 좌장을 휘둘렀으나, 제갈준이 핏물을 흘리며 성명절기를 펼쳤다.
대천행(大天行).
고절한 무공과 초식이 담긴 절기가 청마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조금 전, 팽사환의 금도가 깎아 낸 호신강기를 두들긴 탓에 청마가 몸을 비틀거렸다.
그 순간에 두 무인이 손을 휘둘렀다.
“비켜!”
“매화점점(梅花漸漸)!”
천원의 방위에 뒤섞이는 위문엽의 돌풍과 정파로의 자하진기.
처음에는 서로를 밀어내는 듯 보였지만, 돌풍에 진무신검의 기운이 있었기에 서로를 잡아당기며 강해졌다.
사방을 갈기갈기 찢는 기괴한 검과 천변만화하는 자하신공의 조합이라.
“……크윽!”
청마는 비틀거리던 모양새 그대로 세 절초를 얻어맞았다.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부러졌지만, 여전히 꼿꼿이 선 상태였다.
“아예 설 수 없게 만들어!”
위문엽의 외침에 잠시 힘을 비축하고 있던 성하민과 연준호가 검을 쥐었다.
그때 성하민이 낮은 목소리로 연준호에게 말했다.
“어디 한 번, 경이가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볼까?”
“……하. 감탄하지나 마.”
연준호는 삼보를 차분하게 밟으며 자하진기를 끌어 올렸다.
자하강기가 좌수에 얽히고, 차분히 밟은 삼보 아래에 매화보가 뒤섞인다.
서문경 앞에서 보였던 매향지경의 일격이 청마를 향했다.
“커헉!”
하복부가 꿰뚫린 청마가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나, 마물의 기운이 어찌나 지독한지 전의가 가득했다.
“죽여 버리겠다!”
마기가 다시 침투조 전원을 겨냥한 순간.
“잘 봤다.”
성하민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쥐었다.
저 나이에 저런 초식을 펼칠 수 있는 건 늘 앞에서 끌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좋은 걸 보았으니, 나도 보여 주어야겠지.’
지금 이 몸으로 펼칠 수 있는 극도(極度).
성하민의 숨이 잠시 멈췄다.
삼단전의 조화인 천주에 모든 공력이 집중되자, 일천세맥이 단번에 넓어졌다.
요컨대 삼단전을 내력의 심장으로 삼은 셈이다.
‘며칠 동안은 요양이 필요하겠지만.’
뭐, 알아서 잘 다스려야겠지.
성하민은 가벼운 웃음을 머금으며 검을 휘둘렀다.
무의 기술(術)은 길(道)을 거쳐 공(功)으로 우화한다고 하던가?
쩌적!
천주를 중심으로 퍼진 일천세맥의 공력이 일검에 담겼다.
검격이자 검기, 검기이자 검강.
어느 범주로도 잡을 수 없는 성하민만의 절초가 청마의 미간에서부터 하복부까지 내리그었다.
“……!”
청마가 입술을 뻐끔거렸다.
마지막 한숨을 내쉴 때가 되어서야 마물의 기운에서 벗어나, 개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파스스슥…….
제단이 스스로 무너졌다.
바윗덩어리가 우수수 쓰러진 형상이 마치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무언가를 맞이하기 위한 계단처럼 보였다.
“아…… 만마의 주인이시여…….”
청마의 얼굴에 환희가 어렸다.
천마신교의 초대 교주이자 주인.
칠성교의 가면을 만든 대장장이이자, 성화교에게 ‘불씨’를 남긴 황제 살해자.
수많은 이명과 악명을 가진 한 남자.
“…….”
표홀히 나타난 천마(天魔)가 청마와 여러 무인을 굽어보았다.
무심한 얼굴에 한 점의 감정조차 없었고, 어딘가 깡마른 체구엔 쇠사슬로 묶여 있었던 자국이 가득했다.
“저자가…….”
“마물이라고?”
고대의 도사들이 목숨을 바쳐 가며 밀어냈다던 마물이 사람이었다니?
하물며 태양혈이 밋밋하여 무공을 익힌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공이라고 느낄 기운조차 없었다.
분명히 그러하였을 텐데.
“제사장, 수고하였다.”
청마를 제사장으로 칭하는 목소리에 강대한 울림이 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통하지 않았다고?”
청마의 미간부터 하복부까지 정확하게 베었던 성하민의 일검.
그 검흔(劍痕)은 천마가 등장하였을 때 완전히 사라졌다.
아예 휘두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성하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천마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네놈의 이름은 뭐냐?”
“들을 자격이 없다.”
“……뭐?”
“땅을 기어 다니는 미물에게 이름을 논한 적이 있느냐?”
천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없다. 대화가 통하는 것이 조금 신기하긴 하다만, 그것이 전부야.”
“……!”
“의문은 풀렸으니, 이제 그만.”
사라져라.
천마가 강기공을 운용하자 뒷소리가 묻혔다.
폭음을 넘어선 무언가가 침투조 전원을 덮쳐 갔다.
“모두……!”
“압니다!”
천마 앞에 선 모두가 검을 휘둘렀다.
그 앞에선 재지 넘치는 위문엽의 무학도, 화산파의 고절한 자하강기도, 연준호와 성하민의 절초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둘씩 사라질 뿐이다.
자하강기로 빚어진 매화가 파스스 흩어지고, 돌풍은 무너지며, 뇌창과 천주의 일격은 스스로 힘을 잃었다.
콰콰콰쾅……!
죽음이 모산의 정상을 뒤덮는 순간.
“서문도래……!”
마지막 순간을 예감한 연준호가 서문경을 부르는 암구호를 외쳤다.
암구호를 듣고 나타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서문경일지라도 이렇게 먼 거리를 격하고 나타날 거라 여기지 못했다.
그러나 영웅은 달랐다.
천의를 잇고, 신비한 무공사전을 통해 완벽의 무를 완성한 남자는 나타날 때를 알았다.
“고생했다.”
그렇게 한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암구호, 잘 들었다. 네가 말한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서문경은 연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걸음에 확신이 있었다.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면 누구든 갖게 되는 흔한 자신감 혹은 궁구하게 익힌 무학에 대한 자존심.
그것이 서문경의 걸음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꺾어 부술 수 있겠다는 확신.
천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상대할 가치가 있겠군.”
침투조를 휩쓸기 위해 휘둘렀던 마기의 파도가 어느새 사라진 것이다.
천마의 시선에 서문경은 바다를 두르고 있었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분명히 그러했다.
“하늘과도 같은 무학을 지니고 있구나.”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