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35화 (233/250)

침투 (3)

마음이 놓였다.

마교의 술법에 당했으나 위기란 기분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코웃음이 나왔다.

“청마 그놈, 나 말고는 나머지를 아주 개무시한 모양인데.”

팽사환의 무공은 형을 부순 파격에 강점이 있고, 위문엽은 근본부터 달라진 아미복호검의 진정한 후예다.

하물며 진무신검과 제갈준, 양대호법은 어떠한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무가의 고수로서 이곳에 섰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꺾이거나 무너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함께 온 친우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아이들이라면, 잘해 줄 거야.”

확신이 있었다.

자신을 그토록 따랐고, 한때는 동경했으며, 지금은 앞지르기 위해 노력하는 후기지수들.

그들이라면 자신이 없더라도 힘내 줄 것이다.

‘나도 뭐,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냥 망연히 누가 구해 줄 때까지 주저앉아 있을 생각은 없다.

서문경은 머릿속에서 단전과 내공심법, 수많은 기혈을 지웠다.

그저 순수하게 근육을 쥐어짜듯이 움직였다.

“후우…….”

근육을 한 올 한 올 풀어 내리는 작업.

지루하고 길었으나 서문경에게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었다.

그렇게 몸을 완전히 풀고 나서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조금씩 방향을 달리해서 내리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종의 궁리였다.

‘마인을 상대로 할 때와 천마를 상대로 할 때의 검격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천마는 무인이 평생 상대해 보지 못한 규격의 괴물.

최대한 삼 층 전각의 규모라면 베는 방법이 다르고, 찌르는 것 또한 달라야 했다.

하물며.

“나에게 신비한 무공사전이 온 이유가 천의에 있다면, 그 안에 천마를 죽일 방법이 있다는 거겠지.”

빌어먹을 천의였지만, 하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서문경이 지닌 무학은 마물에게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을 전제로 생각하면서 수련하고, 궁리하고, 고찰했다.

궁리와 고찰의 근거는 다른 도문의 무학에서 가져왔다.

‘공동파의 경파는 만상을 부르고, 화산파의 매화는 천변만화하여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온다…….’

같은 근간.

그러나 다른 심상.

그 안에서 서문경은 무학의 발전과 또 다른 가능성을 느꼈다.

위문엽의 기묘한 무공도 마찬가지였다.

‘틀에 가두지 말자. 가두지 말자는 생각 또한, 흘려보내자.’

쉽지 않은 일이다.

저런 고행을 누구나 이룰 수 있었다면 고승이 왜 존경을 받겠는가?

‘나 참, 어느 누구보다 잡생각 많은 내가 선도를 이뤄야 한다니.’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

정을 닦아서 기를 깨치고, 기를 닦아서 신을 목도하는 단계까지는 이루고도 남았다.

이제는 환허.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경계를 부술 차례다.

“하나부터, 천천히.”

바깥에 있는 이들을 믿는다.

서문경은 깊게 심호흡하곤 검을 쥐었다.

처음 검을 쥐었을 때, 기쁨으로 씰룩거리던 입꼬리를 떠올렸다.

그 만족감으로 가슴이 쿵쾅거리던 과거로 되돌아갔다.

* * *

“허억, 허억.”

제갈준은 제자리에 칼을 꽂았다.

성명절기를 연거푸 펼친 탓에 온 반동이 전신을 덜덜 떨리게 했다.

그러나 한껏 뜨거워진 눈빛은 전방의 싸움을 끊임없이 주시했다.

“크윽!”

손가락 두 마디가 잘린 팽사환, 왼팔이 기이하게 꺾인 위문엽.

연준호의 상태도 좋진 않았다.

피 칠갑을 한 채로 자신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젠장!”

이를 앙다물고서 애꿎은 허벅지를 때렸다.

그토록 노력하고 수련하였는데, 청마에겐 범접하기 어려웠다.

“뭐야, 이게 전부냐?”

청마의 가면 아래에 흐르는 사이한 청색 기류.

그 기류에 알알이 박힌 별빛마다 만신의 기운이 있었다.

과거 만금상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요현과 백상, 청요귀까지.

수하의 가면에서 회수한 힘이 그에게 넘실거렸다.

“역시 서문경만 없으면 일이 쉬워지는군. 청마!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조금이면 된다.”

청마의 말이 모산 정상에서 들려왔다.

이에 청마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었는가? 너희의 노력은 허사였다. 나와 함께 지켜보아라. 우리가 천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노력한 결과를, 만마(萬魔)의 강림을……!”

“허튼소리!”

정파로가 피를 한 됫박이나 토하며 외쳤다.

“내가 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화산은 물러서지 않는다!”

“……과거에 죽이지 않았던 벌레가 아직까지 있었군.”

청마가 진득한 살기를 흘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방향은 정파로와 정중산이 있는 곳. 그리고 실신한 상태인 낙매신검이었다.

그것을 본 성하민이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서문도래…….”

서문경을 부르는 암구호.

필사적으로 중얼거렸지만, 풀썩 쓰러진 서문경은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성하민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했다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무릎이라도 꿇고 싶지만…… 그런 기적은 없어. 내가 뒤를 쳐야 해!’

필사적인 염원은 기적을 만들기 마련인가.

툭.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리는 기척에 성하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순간에, 눈빛이 소름 돋을 만큼 차가워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재능의 개화.

우뚝.

그와 동시에 청마의 발걸음도 멈췄다.

“너는…….”

“더는 말하지 않아도 돼.”

성하민은 삼단전의 기틀을 완벽하게 정립하고서 말했다.

“그 혀뿌리부터 잘라 줄 터이니.”

성하민이 깊게 심호흡했다.

그 숨결의 끝에서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을 느꼈다.

생(生)이었다.

“……하.”

가벼운 숨을 몰아쉬는 것조차 은혜다.

혈액이 전신을 투과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감각.

그 찰나 동안 청마가 움직였다.

“한낱, 실험에서 탄생한 가짜 재능 따위가!”

“가짜.”

성하민은 마물의 주구가 주절거리는 것을 곱씹으며 피식 웃었다.

“내가 가짜라면, 너는 쓰레기야.”

느릿하게 검을 들었다. 그러나 손아귀에 실린 힘은 태산과 같았다.

삼단전의 합일, 천주.

성하민은 내력을 천주에 실었다.

어떠한 마기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지상에서 하늘을 떠받치듯이 굳건하게 뿌리박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후우.”

숨을 지극하게 내뱉었다.

다른 무인이 보기에는 그저 간단해 보일 뿐이지만, 성하민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완성된 무학을 몸에 품고 있으므로.

쩌적!

딛고 있던 땅이 움푹 패는 것과 동시에 성하민의 검이 휘둘러졌다.

주변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위문엽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건……!”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구파일방의 무학이다.

그러나 강맹함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성하민이 은연중에 옆에서 지켜보면서 익힌 검법은 멸마에 범접했다.

콰콰쾅!

검기가 벽력이 되고, 간단한 호흡조차 돌풍이 되는 경지.

경천동지할 성하민의 일검에 청마이 양팔을 교차했다.

“양팔을 내어 주더라도 여기까지 도달하겠다?”

가소롭다는 듯, 청마를 비웃은 성하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수로 대응했다.

“어디, 이건 어떨까?”

텁.

성하민의 좌수가 청마의 멱살을 붙잡았다.

“……!”

청마는 깜짝 놀랐으나 도리어 기회라고 생각했다.

가까워지면 결국 마공을 익힌 육체가 더욱 강력하고, 상대의 정신을 어지럽힐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상대는 성하민이었다.

“그딴 잔재주가 통할 것 같으냐?”

천주를 이룬 무인은 몸뚱이 하나만으로 명검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검합일처럼 그럴듯한 단어와는 아예 달랐다.

적어도 성하민이 생각하기에는 ‘신검합일’은 멋을 내기 위한 단어였다.

합일이라고 칭하려거든, 수도를 내리치는 것만으로 금강석을 베어야 하는 것이 전제다.

성하민은 그것을 갑자기 완성한 상승 고수였다.

“어디 얼마나 단단한가 볼까?”

성하민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꽈꽝!

“커헉!”

청마가 경천동지할 힘으로 땅에 때려 박혔다.

피를 한 됫박이나 토한 탓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 모습을 본 십대고수들이 제정신을 차리고서 일어났다.

-지금이 아니면 몰아붙일 수 없다!

성하민 안에 스며든 것이 누군지는 몰라도 마교와 함께 싸울 동지인 건 틀림없었다.

하물며.

“꼬맹이가 다 해 먹는 걸 두고 볼 순 없지.”

위문엽은 입 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 내며 전의를 다졌다.

그 모습을 본 성하민이 피식 웃었다.

“서문경이 돌아오기 전에 이놈은 우리끼리 처리하죠.”

“우리가 다 끝내 놓자?”

“아니요.”

성하민의 시선이 제단으로 향했다.

쉬지 않고 흘러넘치던 아지랑이가 멈춘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 상대는 저기, 따로 있으니까.”

청마를 상대하느라 힘을 빼게 할 순 없다.

하물며 청마는 월현의 힘까지 흡수한 상태로 보였다.

‘설욕전이 되겠군.’

과거 칠로두에게 패배했던 과거를 깨부술 기회다.

성하민은 검을 쥐었다.

그러나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 때는 다가왔다.

* * *

“됐다!”

청마는 제단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보며 광소를 터트렸다.

“드디어 부활한다! 이제…… 청마 따위는 필요 없다!”

천마.

마물.

지고의 이형(異形).

시대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 만마의 주인이 제단을 통해서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고오오……….

천하가 어두워졌다.

누구도 이기지 못했던,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던 마물이 지상에 강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문경은 말했다.

어두컴컴한 구름이 화창하게 개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하늘을 맞이할 수 있는 법이라고.

쩌적!

허공에서 실금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청마를 물리친 침투조 전원이 제단 앞에 도착했다.

“늦지 않게 도착했구나.”

성하민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리저리 터진 실금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서문경. 이제 네가 나설 차례야.”

“서문도래……!”

연준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희망의 불씨.

그것이 허공에서 터진 실금과 함께 불현듯 떠올랐다.

“경아!”

진심이 담긴 외침에 저 멀리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먼데도, 모두가 그것을 또렷하게 들었다.

“……이게 무슨.”

무계봉신술의 술자.

청마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빠르게 쏟아 냈다.

“어찌 저렇게 빨리? 빌어먹을 천의가 도왔단 말인가?”

“하하! 이제 속이 좀 타느냐?”

팽사환이 히죽 웃으며 외치자, 위문엽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처먹었으면 슬슬 실패할 때도 됐지. 애새끼처럼 징징거리기는.”

“쓰레기들 따위가……!”

진노를 드러낸 청마의 전신에 가공할 만한 마기가 감돌았다.

그것을 본 성하민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린 건가?”

“호오…… 어린놈 주제에 안력이 뛰어나구나!”

제단에서 흐르던 아지랑이와 마기.

마물을 강림시키기 위해 모았던 기운의 찌꺼기가 청마에게 깃든 것이다.

신비한 무공사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