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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30화 (228/250)

사특한 술수 (2)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검을 제대로 손본 적이 없다.

그걸 떠올린 서문경은 불현듯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왜 웃나?”

“그냥, 그게…… 갑자기 말입니다. 노장께서 찾아온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어서, 웃었습니다.”

“천의?”

도철이 인상을 한가득 썼다.

“나는 내 발로 여기까지 온 것이야. 하늘이 개입할 데가 어디 있단 말이냐?”

“헛소리처럼 들리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우연이 여러 번 겹쳐서였습니다.”

“단순히 행운이라고 생각하진 않느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서문경은 천하를 돌보지 않은 하늘을 늘 원망했지만, 우습게도 그놈은 서문경을 돌보고 있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그 물건 덕분에 서문경은 과거로 돌아왔고, 후회로 점철된 기록을 모두 고칠 수 있었다.

그러한 만남이 있었기에 어린 나이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언젠가 천마마저 무릎 꿇린다면 죽어도 좋으니.’

마교의 뿌리까지 불태우리라.

서문경은 호방하게 말했다.

“저는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이어진 악연을 끊을 사람이니까.”

호방하게 말했다.

두 번의 삶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답지 않게, 청운의 꿈이 눈동자에서 넘실거렸다.

도철은 그 눈에서 식어 버린 일생을 다시 덥힐 열기를 보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흥, 이룬 성취에 비해 아직 젊군 그래. 자네가 무슨 무적인 줄 아는가?”

“무적이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뭐야?”

도철은 순간 당황하여 되물었다.

무슨 애도 아니고, 자기가 무적이라고 말하는 꼴이 천하제일인답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서문경이 뒤이은 말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적이어야 할 때, 무적이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서문경은 불가능한 싸움을 이어 갔다.

단신으로 화산파를 부순 백야흔, 천마를 부활시키려는 청마와 월현, 그리고 황실을 어지럽히는 흑향까지.

강호의 누구도 대적하지 않으려는 마인과 싸웠다.

“……과연.”

무적이어야 할 때 무적이었으니, 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도철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터무니없는 궤변이었다.

“강호에서 패배란 곧 죽음인데, 자네 말대로라면 모든 무인은 무적이란 말이 아닌가?”

“그러면 더욱 좋지요.”

“……?”

“여기에 무적인 무인이 수십 명이나 모여 있잖습니까. 그럼 천마를 죽이고 굴레를 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도철은 어설프게 실소했던 것에서 벗어나 크게 웃어 젖혔다.

말이 우스웠으나 가볍지는 않았다.

대의가 그에게 있으며, 하늘이 돕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여기까지 온 것이 하늘의 뜻일지도 모르겠다고, 진지하게 믿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도철은 웃음을 멈추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하면 나는 왜 돌봐 주지 않았단 말인가?”

“…….”

서문경은 가볍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지은 표정에서 깊은 사연과 망념이 느껴졌다.

천하제일장인.

도철이 황실에서 은둔하고 있었던 까닭이 저 물음에 있으리라.

‘속이 훤히 보이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아.’

저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달콤한 말을 가려내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서문경은 솔직하게 답했다.

“내가 왔잖습니까.”

“뭐야?”

“많은 짐이 보이지 않습니까?”

“무슨 헛소리를…….”

도철은 서문경을 꾸짖으려다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보았다.

세간에서 말하는 천하제일인.

누구보다 강하다는 무인의 어깨인데 왠지 모르게 좁게 느껴졌다.

“자네.”

도철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에 서문경이 피식 웃었다.

“천하제일장인이라는 명성이 거짓은 아니었나 봅니다.”

“…….”

“노장이 보았다시피, 내가 좀 숙제가 많습니다. 마교한테 얽힌 한이나 복수, 미련 같은 걸 풀어 줘야 해서요. 그것 때문에 한 번 더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문경은 짧게 심호흡하고서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노인장.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내가 그놈들한테 배로 쳐서 갚아 주겠습니다.”

“……허.”

도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밖으로 향했다.

거대한 용광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황군들.

그사이에 고명한 숯쟁이가 도철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명(偉名)에 걸맞은 열기가 있었습니까?”

“열기? 열기라…….”

도철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도 나처럼 재였다.”

“그랬군요.”

숯쟁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도철이 연단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르신이 보기에 천무검왕은 부족했군요.”

“아니다.”

“……예?”

“재가 되었던 사람이 다시 열의를 태우고 있지 않느냐.”

도철은 평생 쌓은 강철의 업(業)으로써 서문경의 어깨에서 또 다른 업을 보았다.

한번 실패하였던 경험.

그 경험은 사람을 좀먹게 하고,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서문경에게도 그러한 과거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자기를 의심하며 살았을 터.

그런데도 여기까지 왔다.

도철은 서문경의 의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용광로를 달궈라.”

그 말에 숯쟁이가 진심으로 기쁘다는 웃음을 보였다.

바야흐로 삼십 년.

도철이 다시 망치를 드는 순간이었다.

* * *

따앙! 따아앙!

화기가 올라오고, 불길이 용솟음쳤다. 망치가 검을 두들길 때마다 불똥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

뚝. 뚝.

땀이 도철의 뺨을 타고 흘렀다.

검을 두들기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도철은 알지 못했다.

오로지 검 하나를 빚어내는 데 전념을 기울인다.

고검을 다시 명검으로 빚어내는 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까앙! 깡!

망치로 검을 때릴 때마다 혼이 진동하고, 골이 패는 것 같았다.

매번 고통에 정신이 짓눌렸다.

-도와주십시오, 노인장.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내가 그놈들한테 배로 쳐서 갚아 주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만은 살아가십시오!

-찌르세요.

-아아악!

여러 목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랜 고통을 자극하는 목소리이자, 혈기가 왕성했던 도철을 재로 만든 과거였다.

그것이 삿된 소리임을 알면서도, 도철의 시선이 좌우로 사납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망치를 쥔 손에는 힘이 풀리지 않았다.

까앙!

검이 모루에 부딪치며 서글프게 울었다. 손아귀에서 울리는 힘이 손아귀를 사정없이 찢어 놓았다.

그 고통에 엄지손가락 끄트머리가 자그맣게 떨렸다.

도철이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이놈이……!”

마기와 맞부딪치며 쌓인 독은 검의 날을 삭게 만들고, 뼈대 자체를 탁하게 물들였다.

이것을 고치려면 망치로 두들겨선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한번 녹였다가 다시 재구축해야 했다.

그건 삼십 년 동안 망치를 놓았던 도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아들을 잃은 악몽에서 벗어나야 했다.

“후우, 후우…….”

도철은 가쁜 숨을 내쉬며 망치를 위로 들어 올렸다.

무려 삼십 년인가.

제단을 만들려던 천마신교의 추적을 황실의 도움으로 뿌리쳤다.

그렇게 아들을 잃고서 복수할 마음마저 꺾인 채로 살아왔다.

‘실로 구차한 삶.’

도철은 망치가 머금은 열기에 살이 익는 것도 모른 채 눈에 집념을 담았다.

그의 시선이 가까운 과거로 향했다.

달밤이 하늘에 가렸을 때였던가.

천마신교와 한패인 칠성교가 황제를 세뇌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전에 황상을 죽이면 적어도 마교에게 굴욕은 줄 수 있을 거란 얕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침소로 몰래 침입하여 만난 황제는 이제 겨우 예닐곱이나 먹었을 법한 어린아이였다.

“……!”

챙강!

도철은 깜짝 놀라 칼을 떨어트렸다. 하지만 황제의 얼굴은 차갑고, 무덤덤했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흑향에 홀렸을까봐 나를 죽이러 온 자객인가요?”

“그럴 생각이었지만, 바뀌었다.”

“아니요.”

텁.

황제는 읽던 책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철에게 다가갔다.

정확하게는 도철이 떨어트린 칼을 줍기 위함이었다.

스윽.

도철이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손잡이 반대 방향으로 칼을 집은 어린 황제를.

도철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찌르세요.”

“……뭐?”

“그래야 많은 선민이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도철은 황제의 무표정한 속의 울분을 잊지 않았다.

깡!

망치가 부딪치고, 불꽃이 너울 뛴다. 검신의 흔들림은 거칠어지다 못해 모루에서 벗어나려는 듯 커져 갔다.

‘그래도, 아직.’

독기로 점철되었을지언정 집념은 남아 있다.

도철은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팔뚝이 부풀어 오르며 핏줄이 도드라졌다.

까앙!

도철의 입가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가 평생토록 쌓은 강인함은 핏물 몇 방울 흘렀다고 하여 스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건해졌다.

까아앙!

팔뚝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에 도철은 인상을 한가득 썼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침습하기 시작한 과거가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불꽃이 점차 혼을 태우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대로 검을 계속 두들기다 보면 완전히 하늘로 승천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도철일지라도 천상의 일은 알지 못했다.

그저 하늘에게 바쳐질 뿐이라고, 아는 것만을 말해 주었다.

“…….”

그럼에도 도철은 망치를 놓지 않았다. 불이 옷깃을 태우고,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갈지언정 묵묵히 두들겼다.

스아아악……!

검이 새로이 만들어지며 찬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철은 그에 만족하지 못했다.

오로지 바라는 것은 전보다 더욱 강인하고 날카로운 칼날이다.

집념이 깃든 망치질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핏물은 손등을 타고 망치와 쇠를 적셨다.

그러다 마침내.

턱.

도철이 망치를 놓았다.

* * *

“이게 완성품이네.”

“…….”

서문경은 수척해진 도철의 모습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검을 받아 들었다.

드는 순간 느낀 감상은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검의 기본이 되는 무게중심부터 시작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칼날의 예기, 하물며 단단함까지.

후자의 경우에는 남천이나 위문엽의 무기에 부족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건만, 지금은 완전히 보강되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서로 편하게 말하기로 할까?”

도철은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었다.

“언짢긴 하지만 말이야, 배분은 서로 비슷하지 않나.”

“고마워.”

“…….”

도철이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이, 서문경은 검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마디를 툭 던졌다.

“잠시 검무를 추어도 괜찮겠나?”

“내가 보아도 괜찮다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문경이 보폭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후우…….”

숨을 가볍게 들이쉰 순간 온 태청진기가 서문경에게 집중되는 듯했다.

무시무시한 중압감이 반경 삼 장을 덮쳤다. 하지만 서문경을 바라보는 도철의 눈은 진지하기만 했다.

자신이 새로이 벼려 낸 검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도철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피곤을 무릅쓰고 대지에 섰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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