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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28화 (226/250)

행진 (3)

“나는 본래 모산의 도맥을 잇던 후예요.”

“모산?”

서문경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모산이라면 현재 마교가 마물의 부활을 꾀하고 있는 영산이었으니까.

이자가 도움을 주고 있다면 당장 붙잡아서 주리라도 틀어야 한다.

서문경이 은연중에 공력을 운용하자, 남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마교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남자가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안을 열어 보지 않아도 눈과 코로 알았다.

피로 완전히 젖어 버린 여러 사람의 머리카락이 주머니 안에 있었다.

서문경은 내공을 운용하던 것을 멈추고서 남자를 보았다.

시야가 넓어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 있었다.

“많이 다쳤군.”

월현이 손짓으로 펼치는 무공, 편혼지.

그 흔적이 남자의 관자놀이에서 뒷머리까지 번져 있었다. 피부가 완전히 뒤집어져서 평생 동안 남을 상처였다.

서문경은 남자를 경계하던 것을 조금 줄이고는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를 왜 찾아왔나?”

“어중이떠중이가 가 봐야 마교에게 붙잡힐 뿐이오.”

“이곳에 있는 건 무림 전체를 살펴도 손꼽을 고수들인데도?”

“이보시오. 칠로두와 직접 싸워 봤을 사람이 정녕 그리 생각하시오?”

남자는 냉소적인 미소를 흘렸다.

“당신을 포함하여 십대고수들 정도. 그만한 경지가 아니면 그의 술법에 저항할 수도 없고, 월현에게 붙잡혀서 어떤 지경이 될지 모르오.”

“……음.”

서문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나?”

“사문이 불탔는데 남길 이름은 없소. 명예도 잃었으니 당신을 감히 선배라고 부를 자격도 없지. 죽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서 여기까지 왔소.”

남자가 덜덜 떨리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보시오. 월현을 비롯한 칠로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 지경이오. 추하게 보이지 않으시오? 하하…….”

“그건 언젠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지.”

“노력해 보겠소. 그리고 두 가지를 기억하시오.”

“……?”

“모산에는 반드시 십대고수 이상의 고수만 데려가서 침투하시오. 그들이 아니면 단순히 술법에 당할 뿐이오. 그리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가 눈을 질끈 감고서 말했다.

“당신이 가진 천주. 그 심상을 언젠가 해체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거요.”

“뭐라고?”

서문경이 깜짝 놀라서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에 번개가 쳤다.

꽈꽈꽝!

도사들이 말하는 천벌이 과연 이러할까?

수차례나 내려친 번개가 주변을 휩쓸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서문경을 포함한 정예는 모두 무사했다.

단지 깜짝 놀라서 넘어진 몇몇만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서문경은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신이 말한 건, 그러니까…… 천주를 해체하면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

남자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지엄한 천상이 지켜보고 있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서문경은 그렇게 이해했다.

“도움을 줘서 고맙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소.”

“…….”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얼핏 보이는 표정이 무척 어둡고 침잠되었다.

어딘가에서 목을 매달아 버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살아가시오. 내가 모산에서 놈들을 쫓아내면, 다시 돌아가면 되지 않소.”

그 말에 남자가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는데 무엇 하러……?”

서문경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금세 말을 만들어 냈다.

“새로 만들면 되는 일 아니겠소?”

“말을 그리 쉽게……!”

“나도 그랬소.”

이번에는 남자의 말문이 막혔다.

서문경의 일생이야 강호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이야기였고, 저잣거리에 나도는 영웅담처럼 처연하고 불굴한 것이었다.

천무학관에서 새로이 만든 인연들, 그리고 정의맹의 수장.

그것이 지금 다시 부흥한 서문세가였다.

남자는 잠시 입술을 어물거리다가 말했다.

“……시간을 두고 고민하겠소.”

“건성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것보단 낫군.”

서문경은 피식 웃고는 남자에게 예를 표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남자의 신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 *

“사문에 양대호법이라는 분들이 계십니다. 두 분이 오신다면 도움이 될 겁니다.”

진무신검의 말에 서문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산파에 그런 고수가 있다는 소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화산파의 성지인 매화비원에서도 말이다.

“양대호법?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름이군.”

“정파로와 정중산이라는 이름을 쓰고 계십니다. 모르는 것이야 당연하지요. 백련교주가 나타났을 때도 은거에서 나오지 않으셨으니…….”

그렇게 말하는 진무신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척 보기에 어두운 과거가 나올 것 같아서 캐묻지는 않았다.

다만 조심스럽게 묻기만 했다.

“어렵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닙니다. 마교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어렵다고 손을 외면하겠습니까? 이미 전서구를 보내 놓았습니다.”

“백야흔이 화산을 무너뜨릴 때도 침묵했던 사람이 오겠나?”

“장문인이 명령하셨습니다.”

“……허.”

전부터 느꼈지만, 진무신검과 칠지검협은 강단이 강했다.

말을 저렇게 한 만큼, 화산파의 양대호법이 반드시 오게끔 조처했을 터.

서문경은 진무신검이 큰 결심을 했음을 깨달았다.

“괜찮다니까 더 말은 안 하겠지만, 귀조차 기울일 생각이 없는 사람한테 심력 쏟지 마라. 곧 모산에서 싸울 전우니까 하는 말이야.”

“알겠습니다, 선배.”

진무신검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본 서문경은 막연히 하늘을 보았다.

과연 이 싸움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모산파의 후예가 한 말처럼 검해를 해체하여 남천웅 선배나 사형을 꺼낼 수 있을까?

그 고민이 제법 깊었는지, 옆에서 전음이 들려왔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갑자기 뭡니까? 언제는 저한테 십대고수들이랑 싸울 때 부럽다면서.]

[그야 내가 그냥 한 말이지.]

남천웅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큰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들려서, 서문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기운 빠지게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야 그렇지. 근데 후배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야.]

남천웅은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지금 당장은 대의에 힘써라. 우리의 생존은 그다음이야. 괜한 말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에만 집중해도…….]

[또 그러신다. 걱정이 그렇게 많으니까 늙었단 소리나 듣는 겁니다.]

[뭐야?]

남천웅이 짐짓 화났다는 듯 쌍심지를 켰다.

이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저것이 농담인지 진짜인지 알았다.

서문경은 진짜로 믿는 척이라도 할까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답하기로 했다.

[가능하면 앞으로 오래 봅시다.]

[……그래, 가능하면 그러는 거지, 가능하면.]

그렇게 말하는 남천웅의 대답이 유독 느렸다.

그 심정을 대강 알아차린 서문경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저 모산 근처로 향하는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상승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 일제히 펼치는 보신경.

부지런히 걸어서 수십 일이 걸릴지 모르는 거리를 사나흘로 줄였다.

“허억…….”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게. 내가 좀 도와주겠소.”

체력이 떨어지는 몇몇 장로는 다른 동도의 어깨를 빌렸다.

그러면서 조금씩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경계가 줄었다.

진정으로 마교와 함께 싸우는 동맹으로 완성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 * *

“후우…… 드디어.”

고수들이 제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상승의 경지일지언정 지칠 만했다.

잠은 하루에 한두 시진, 내공이 완전히 바닥을 보일 때까지 보신경.

뒤처지면 그만큼 시일이 늦어지는지라 고수들은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 행로는 은연중에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다.

“황보세가가 힘만 기른다더니 발재간은 영 별로군.”

“클클…….”

“이보게!”

당연하지만 주먹다짐까지 가는 일은 없었다.

대부분 장난일뿐더러, 여기에서까지 자존심을 세울 만큼 나이가 어리지도 않았다.

다만 서문경의 고민은 깊어졌다.

‘나와 십대고수들만 침투한다면 여기까지 데려온 정예는 무엇을 시키는 게 좋을까?’

아예 되돌아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온 고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사기가 완전히 꺾일 테니까.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제갈후에게 지도를 주고서, 혹시라도 도망치는 마인이 없도록 고수들로 이루어진 초소를 만들면 괜찮겠어.’

말을 들으면 실망할 고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많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모산으로 같이 침투하여 술법에 당한다면 더욱 끔찍한 일이 생길 뿐이었다.

문파의 중추가 모두 죽어 버린 화산파.

그 꼴을 다른 문파나 세가가 겪길 바라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그들의 행동이 괘씸하긴 했지만…….’

그대로 되갚아 줘서야 마교나 다를 바 없는 짓이 아닌가?

서문경은 결정을 마치고서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선배께 간청할 게 있습니다.”

현천신검 제갈준.

그가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듯한 표정으로 서문경에게 부탁했다.

“지금 막 도착해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선배와 대련하고 싶습니다.”

“대련? 어느 정도 말이냐?”

“검 없이, 누구 하나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제갈준의 말에 서문경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아는 한 그는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의무인가?”

“제갈세가의 어른으로서 가문을 책임져야 하니까.”

“그거 참 좋은 울림이군.”

서문경은 제갈준에게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렸다.

천막 밖으로 나가고는 인적이 드문 곳까지 향한 뒤, 검을 땅에 꽂았다.

“여기가 좋겠어.”

“…….”

제갈준은 말없이 기수식을 취했다.

서문경과의 대련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때 시작되므로, 미리 대비하겠다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이에 서문경은 곧바로 태청진기를 운용했다.

“시작.”

주먹에 휘감긴 청운이 제갈준의 턱을 향해 내리꽂혔다.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빠악!

제갈준의 정신이 한순간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턱이 돌아가고, 상반신이 비틀어졌다.

본능적으로 충격을 흘려 내지 않았다면 이 일격으로 혼절했을 터였다.

“……후.”

어딘가 아쉽다는 듯, 한숨 소리가 제갈준의 귓전을 찔렀다.

그것이 수면 속에 잠겨 있던 제갈준의 의지를 꼿꼿이 일으켰다.

탓.

서문경이 후려친 힘을 그대로 살려서, 제갈준은 허공에서 전신을 휘돌렸다.

뒤이어진 초식은 월야반강(月夜頒罡).

제갈준의 발등이 칼날처럼 곧게 세워지더니, 서문경을 향해 내리그어졌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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