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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17화 (215/250)

월현 (5)

“조용한 것이 참 좋다.”

위문엽은 그동안 쌓인 불안과 짜증을 고독하게 다님으로써 해소했다.

“이번에 또 마교랑 엮이지는 않겠지? 에이, 설마.”

그땐 상대가 오합지졸이라 아녀자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었지만, 한번 실력을 드러냈으니 더욱 강한 놈이 찾아올 게 뻔했다.

위문엽이 생각하는 마교의 강자란 단 하나.

‘월현이라…… 불안정했을 때면 몰라도, 지금은 이길 수 있을지도?’

킬킬 웃으며 검갑째로 이리저리 휘둘렀다.

월현과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으나 상상으로 싸우는 건 쉬웠다.

어쨌든 자기보다 약할 테니까.

그렇게 위문엽의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던 순간이었다.

“설마 하면 진짜 이루어진다더니만.”

위문엽이 혀를 가볍게 찼다.

수십 명의 마교도와 눈빛이 흐리멍덩한 무인들.

전자는 오합지졸이었으나 후자는 만만치가 않았다.

한때 강호에서 신진 고수라고 불리던 자들.

그들이 남만의 주술에 걸린 채 맹목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인형으로 사느니 내가 숨을 끊어 주는 것이 사리에 맞겠지.”

자신의 무공을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마음을 긍정적으로 고친 위문엽이 검갑에서 검을 뽑자, 허공에서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났다.

“야차가 아니신가?”

“…….”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호광성으로 가는 거라면 내가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은데.”

“……허.”

위문엽이 실소를 터트렸다.

“누군지 몰라보라고 그딴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은데, 나 같은 놈은 워낙 쩨쩨해서 말이야.”

“무슨 허세를…….”

“월현, 이놈아.”

한껏 여유롭기만 하던 남자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위문엽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사실은 잘 모르는데 낚아 본 거야. 찔려 하는 걸 보니까 맞는 모양이네.”

“……놈!”

“근데 전부터 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긴 했어. 얼마나 싫었으면 좆같다고 기억했겠어.”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기도.

걸핏하면 사람을 얕잡아 보는 행태와 무인답지 않게 손목을 내미는 모습.

위문엽은 월현을 딱 한마디로 요약했다.

“넌 무인보다 남색을 파는 게 어울려.”

……으득.

이빨을 꽉 앙다문 월현이 사이한 기운을 흘렸다.

그러자 마교도를 비롯한 무인들이 위문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위문엽이 빙긋 웃었다.

“역시, 내 말은 틀린 적이 없어. 화내는 방식까지 구역질이 나오네.”

콰콰콰!

위문엽의 검에서 거대한 와류가 솟구쳤다.

마교도와 무인을 모두 처리하기까지 한 식경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 네 차롄가?”

위문엽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사납게 웃었다.

위문엽의 전신에 은은히 흐르는 불기와 도기.

서로 상충하였던 기운이 지금은 나선의 형태를 이루어 한 하늘 아래에서 강제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를 기감으로 읽어 낸 월현이 감탄성을 흘렸다.

“호오…… 제법 달라졌구나. 예전에는 저 와류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많이 달라지긴 했지.”

위문엽의 웃음이 더더욱 사나워졌다.

월현이 위문엽을 읽었듯, 위문엽 또한 월현의 기운을 읽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거냐!’

계속해서 변화하는 공력.

월현의 무위는 일견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기를 바람으로 휘감아 감추듯, 저놈도 신묘한 무학이나 법식을 가지고 있다.

“마음에 안 들어.”

위문엽이 입술을 씰룩였다.

“남만의 지존이라고 불린다는 놈이 결국 한다는 것이 마교 똥꼬나 빠는 것이냐?”

“……놈.”

월현의 표정이 굳었다.

위문엽은 그 모습을 보고 ‘푸핫’ 하고 웃어 버렸다.

“집에서 엽전 몇 개 들고 나온 철없는 것들은 널 보고 존경심을 품었을 텐데…… 하는 짓거리가 그런 애새끼들만도 못하구나. 돌아갈 집구석은 있나? 봉양할 부모는 계시고?”

“시끄럽다!”

“하하, 서로 근본 없긴 마찬가진데 뭐가 그리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고 그러냐?”

“……그래, 네놈이랑은 대화를 길게 해선 안 됐는데, 쯧.”

혀를 가볍게 찬 월현이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모습.

위문엽이 슬그머니 공력을 운용하는데, 월현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는지, 한번 볼까?”

“……?”

스르륵!

월현의 기운이 가리고 있던 막이 한 꺼풀 떨어졌다.

위문엽과 월현 사이.

막이 떨어진 그곳에 수십 명의 부랑자와 양민, 억류당한 무인 따위가 철창에 갇혀 있었다.

위문엽이 그들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월현이 눈에 진한 옥빛을 띠고서 입을 열었다.

“셋을 세겠다.”

“……미친놈!”

월현의 의도를 이해한 순간, 위문엽은 쌍욕을 내뱉었다.

포성이 주변 열 장을 지배했다.

쿠콰콰!

코를 파고드는 작약의 냄새.

관인만이 만질 수 있는 화약의 존재가 위문엽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가만히 멈춰 있지는 않았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악!”

“아.”

작약의 냄새에 이어지는 것은 비명과 탄식, 비애 섞인 한숨 소리라.

위문엽은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천둔심여공(天遁心如功)을 극성으로 운용했다.

‘이름만 화려한, 삼류의 심법이지만.’

지금은 이름에 걸맞게 움직이길 바랐다.

무적이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었으니까.

하지만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빠드득!

팔뚝과 허벅지, 종아리에 엄청난 통증이 일어났다.

인내심이 강한 위문엽마저도 어금니가 부서져라 깨물 정도였다.

그렇기에 위문엽은 철창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꽈콰쾅!

위문엽이 휘두른 와류가 포탄을 쳐 내고, 월현의 후속타까지 깔끔하게 절단했다.

그것을 본 월현이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대단하군. 너라면 마지막 산 제물이 되기 충분할 거다.”

“……좆 까.”

“하지만 너무 본능대로 움직이지 않았나? 나 같으면 무시했을 텐데.”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냐?”

위문엽이 따져 물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

날카로운 창날이 살을 파고드는 통각과 촉각.

“……하.”

옆구리를 관통당한 위문엽은 웃고 말았다.

억울할 때나, 세상사가 좆같아서 죽고 싶을 때나 웃었다.

그때가 지금이었다.

“인질 사이에 심어 두었구나.”

위문엽의 시선이 철창 안의 마인에게 향했다.

그놈의 표정, 증오에 찬 눈빛이 웃겨서 웃었다.

“나는 몰랐지. 날아오는 포탄부터 쳐 내야 했으니까, 저 사람들 중에 마인을 확인할 겨를이 있을 리가.”

“……나한테서 시선을 떼면 여기 있는 사람을 하나씩 죽이겠다.”

마인이 주절거리는 소리에 위문엽이 끅끅 웃었다.

폐부에 남은 웃음소리를 토해 내려는 듯, 부조리한 상황에 부닥친 자신을 비웃듯.

크게 웃어젖힌 위문엽이 자신의 가슴을 쿡 찔렀다.

“내가 그토록 정의로워 보이냐? 막, 여기 사람들을 살리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아?”

“…….”

“잘 훈련된 놈이군. 자기가 한 말은 뚝심 있게 지키겠단 거지?”

마인과 대화를 이어 가려는 사이에 등 뒤에서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드러났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월현이 자신을 노리려는 것일 터다.

위문엽은 철창 안에 갇힌 사람들을 보았다.

“제발…….”

“살려 준다면 이 빚은 잊지 않고 갚겠소.”

갈구하는 눈이 보였다.

어쩌다가 마교와 얽혀서, 가치 있는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처절하게 얽혔다.

그것은 곧 동심원이 되어 파문처럼 일렁였다.

적어도 위문엽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나는, 남 말 듣지 않기로 아주 유명한 놈이거든.”

위문엽은 마인에게 말을 건네면서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

강한 와류가 철창과 위문엽을 휘감았다. 천둔심여공의 공력이 사지의 근맥을 꽉 조였다.

갑자기 침습한 고통이 머릿속을 하얗게 달궜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서 참았다.

다만 손바닥에 파고든 손톱이 붉게 물들 뿐.

그거라면 족하다.

꽈과과광!

월현이 펼친 무언가가 와류를 뚫지 못하고 튕겨졌다.

위문엽은 그걸 확인조차 하지 않고서 말했다.

“살고 싶어?”

“……예!”

“당연하오.”

사람들은 위문엽을 영웅 보듯 했다.

자기 목숨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눈.

그 시선들을 향해 위문엽은 말했다.

“이 대치는 길지 않아. 언젠가는 풀릴 거고, 난 이 상황을 만든 월현의 목을 베러 갈 거다.”

“……!”

“서너 명은 죽을 각오를 해. 어차피 내가 손을 떼면 모두 죽잖아?”

위문엽은 어느 때보다 냉정한 눈으로 마인을 노려보았다.

“철창 바깥으로 저놈을 어떻게든 끌어내. 그러면 해결해 주마.”

야차 위문엽.

그의 별호를 통감한 양민들이 벌벌 떨었다. 어떻게 마인을 상대하냐는 무력함이 몸에 밴 탓이었다.

그러나 무인은 달랐다.

쇠사슬로 묶인 몸으로도 팔다리를 비틀어 댔다.

“역시 무공을 익힌 놈이 오기가 있어.”

위문엽은 사납게 웃으며 철창 안을 지켜보았다.

‘많이 죽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방법이야.’

마인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죽일 순 없다.

무려 자기 우두머리인 월현의 말에 반하는 것이다.

마교의 위계에서 명령이란 절대적.

갈팡질팡하는 마인에게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 * *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이지?’

월현은 위문엽과 철창 전체를 휘감은 와류를 보고 기가 찼다.

지금까지 봐 온 십대고수와 위문엽은 무언가 이질적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제갈준보다는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거늘.’

물론 제갈준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대주천복마검을 토대로 쏟아 내는 검풍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위문엽이 발하는 와류만큼 이질적이진 않았다.

‘저걸 무학이라고 볼 수 있나?’

남만의 지존으로서 수많은 무학을 공부하고 습득한 월현마저도 위문엽의 무공을 종잡을 수 없었다.

요체는 그가 들고 있는 무언가.

필시 그것이 핵심일 텐데, 아무리 안력을 돋워도 보이질 않는다.

“일단은 한 번 더…….”

전력을 다한 번마염천(繁魔染天).

그 초식을 장심에 담아서 펼치는 순간에 와류가 걷혔다.

월현의 입술이 가늘게 벌어졌다.

“……미친놈!”

철창에 가둬 놓은 사람 반수가 죽어 있는 상황이라니!

그걸 보고도 위문엽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 정도면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의기양양함마저 있었다.

“미친놈? 사람들을 마인과 함께 가둬 놓은 주제에, 네가 날 가르치려고 들어?”

어조에 묻어 나오는 강한 분노와 증오.

위문엽의 오른손에 붙잡혀 있는 와류는 곧 폭풍이 되었다.

힘줄이 피부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팽창하는 모습.

‘수가 떨어졌다.’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십대고수와 싸우지 않기 위해 두 가지 공작을 벌였거늘, 모두 수포가 되었다.

월현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여기서 이놈을 죽인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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