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16화 (214/250)

월현 (4)

“뭐가 저렇게 세졌지?”

연준호가 하룻밤 사이에 달라졌다.

공력을 운용하는 속도부터 시작해서 몸을 움직이는 몸놀림까지 고수에 가까웠다.

무공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준호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영약이라도 우리 몰래 먹은 거냐?”

평소 함께 어울리던 또래가 물었으나 연준호는 그저 피식 웃고 말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주 큰 고통 뒤에 얻을 수 있었지.”

“뭘 얻었는데?”

“동기의 가르침?”

“……우와!”

동기들이 감탄하는 모습에 연준호가 웃었다.

각오와 기개가 남다르다곤 하나 아직은 청년.

입이 무거울 나이가 아니었다.

이를 뒤늦게 들은 서문휘가 턱을 매만졌다.

“나한테는 그대로 정진하면 된다더니…….”

솔직히 조금은 서운했다.

서문경이 바쁘고 고된 운명을 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자신과 예전부터 알고 지내지 않았나?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연준호가 하룻밤 만에 발전한 만큼 서문경의 독문 초식을 배우고 싶었다.

백야흔을 쓰러뜨렸다던 초식 태허검결.

‘그걸 배운다면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서문휘가 기대를 품고서 묻자, 서문경이 고개를 내저었다.

“가르쳐 줄 수 없어.”

“왜, 왜요?”

“내가 독자적으로 만든 초식을 그걸 너한테 억지로 끼워 맞출 수도 없고, 오히려 그게 발전을 가로막는 게 되어 버려.”

“…….”

“섭섭하냐?”

“아뇨!”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대답하니 서문경이 피식 웃었다.

“섭섭하겠지. 나한테는 뭐 안 가르쳐 주나 하고 말이야.”

“……예, 솔직히 그랬어요.”

“휘야.”

서문경은 서문세가를 중심으로 크게 휘도는 구름을 보았다.

“저 구름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단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면 산짐승이 살 수가 없고, 초목을 썩게 할 것이야.”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서문경은 아주 예전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가르침을 그대로 서문휘에게 공유했다.

“정종의 무공 또한 그래. 천 근의 무게가 담긴 검은 허투루 휘둘러서도 안 되고, 무작정 빨리 펼쳐서도 안 된다. 조금씩 가다듬고…… 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야.”

“…….”

“하하, 얼굴을 보니 이해한 것처럼 보이진 않네.”

서문경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사실 나도 그 말을 듣고 이해가 안 갔어. 사문의 가르침은 너무 답답하다고 강호로 뛰쳐나갔거든.”

그 말에 서문휘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언제 그랬어요?”

서문경이 순간 아차했다.

뛰쳐나간 건 전생에 있었던 일이니까.

다급히 말을 거둬들였다.

“뭐, 마음이 그랬다는 거지.”

“에이…… 그게 뭐예요? 하하.”

서문경은 서문휘와 담소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옛이야기, 가전무공, 마교, 칠로두.

서문휘는 서문경의 이야기를 설화처럼 받아들였다.

강호 경험이 적은 그로서는 너무나도 거대한 이야기였다.

“그럼 대체 그놈들은 언제부터 암약한 거예요?”

“나도 잘 모르지. 하지만 이번에 막지 못하면 아마 완전히 부활할 거야.”

“마물이요? 형이라면 이길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

서문경은 순간 얼버무렸다.

확실하게 이긴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속으로 다짐했다.

‘저 웃음을 지켜야 해.’

여전히 확신은 없었다.

다만 이정표는 세웠다.

적어도 밀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마물을 몰아세울 것이다.

일찍이 옛 선배들이 후인을 위해서 몰아냈듯이.

서문경은 서문휘에게 억지로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간만에 검법이나 봐줄까?”

“좋죠!”

서문휘가 희희낙락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은 자기만의 초식을 만들 수 없었지만, 반평생 동경해 왔던 서문경처럼 강해질 생각이었다.

두 형제는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피로 물든 제단.

정확하게는 여러 사어가 피로 적힌 제단이었다.

현시대에서 이렇게까지 제단을 구축할 수 있는 마인은 오직 하나.

“이 정도면 제단의 준비는 끝났다.”

청마가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산 제물이 하나 더 필요해.”

“그런가?”

월현은 제단 옆에 매달린 네 명을 무감정하게 훑었다.

강호십대고수라고 불리는 상승 고수들.

그들 중 넷이 목숨을 겨우 유지한 채 매달려 있었다.

“열흘이면 충분하겠군.”

“그래도 길을 충분히 열려면 시간은 더 걸릴 거다.”

“아무렴 상관없어. 지금까지 기다려 온 천몇백 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니까.”

그 말에 네 명 모두 몸을 흠칫 떨었다.

월현이 얼마나 강한 줄 알기에, 무엇보다…… 제단을 짓고 나서 벌어질 일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차라리 자진하였다면…….’

‘원망스럽구나!’

‘이런 식으로 죽는다면 선대 장문인을 무슨 낯으로 뵌단 말인가!’

각자 망념을 떠올리자 제단에 기기묘묘한 빛이 떠올랐다.

그렇게 사교의 대계는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슬슬 가 볼까.”

위문엽이 떠난 지도 어언 사흘째.

이제 호광성으로 갈 때가 되었다.

마교와의 대전쟁을 준비하기 전에 정의맹이나 구파일방과 조율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서문경이 봇짐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서문휘를 비롯한 동기들이 모였다.

“우리는 언제 불러 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청년들의 표정이 몹시 결연했다.

마교를 상대로 동귀어진이라도 할 기세인지라, 서문경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실력도 안 되면서 불러 주기를 바라?”

“하지만……!”

“시끄럽다!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아무런 말이나 가르침도 주지 않을 거야.”

차가운 독설을 내뱉었으나 진심은 아니었다.

다만 전생의 일이 떠올랐다.

불타는 강호, 마교에 대항해 필사적으로 싸우던 친우들.

그들을 생각하면 저렇게 어린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기 싫었다.

그러나 한 명은 달랐다.

“형, 저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요.”

서문휘였다.

소년이던 시절부터 지켜봐 온 녀석이 어느새 장성해선 같은 전장에 서고 싶다고 간청했다.

“넌…….”

서문경은 순간 말을 잊었다.

언제는 잘 가르쳐서 마교와 함께 싸우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때가 되니 데려가기가 싫었다.

그냥 조용히 여기에 두고 가고 싶었다.

“넌…… 아버지를 잘 모셔야 하지 않냐? 소가주잖아.”

“그건 삼촌에게 맡기면 돼요.”

“소가주라는 놈이 전쟁에 나서겠다?”

“형은요.”

서문휘가 처음으로 한 말대답에 서문경의 눈이 커졌다.

“뭐?”

“형이야말로 가문에서 가장 귀하신 몸이잖아. 가전무공을 전부 발전시킨 사람인데.”

“…….”

궤변이었다.

천의를 이은 이상, 마교와의 싸움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그걸 알고 있는 녀석이 저렇게 말하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 하하하…… 이제 머리가 굵었다고 제법 입심이 강해졌구나.”

“형.”

“삼촌이 칭찬 좀 해 주셨다고 고수가 된 것 같으냐?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 지금 네 수준으로는 마교도 하나 제대로 이기지 못할 거야.”

“……잘 봐.”

서문휘가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 걸음에 추억이 있었다.

서문경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재능의 편린.

바람을 담고, 돌풍을 일으키는 걸음이 발아래에서 껑충 널뛰며 구름을 자아냈다.

“…….”

서문경은 묵묵히 표정을 굳혔다.

어떤 무공을 펼치든 입을 꾹 다물 생각이었다.

필시 그러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내 비검절우야.”

검을 뽑은 서문휘가 발을 놀렸다.

대성을 이룬 보신경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점을 찍었다.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공력이 존재했다.

점으로 이루어진 계단 혹은 기운.

그 위에 서문휘의 검이 휘둘러졌다.

“……아.”

보신경에 검기를 뒤섞어 점으로 만든 것일까?

추억이 아스라한 곳에서 터졌다.

쌓고, 휘돌고, 몰아치는 바람이 서문휘의 검에 겹겹이 쌓였다.

그와 동시에 구름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서문세가의 훌륭한 무학이었다.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휘파람을 불고 싶은 것을 참았다.

자신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조차 모른 채 무정한 목소리를 자아냈다.

“겨우 그것뿐이냐? 남을 죽이지 못한다면 겨우 검무에 불과한 것이다!”

억지라는 것은 서문경이 알았다.

아마 무공을 펼친 서문휘도 알 터였다.

큰 목소리로 따져도 이상하지 않았고, 감내할 각오도 있었다.

하지만 서문휘의 걸음은 점을 찍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텅, 텅, 텅!

허공을 세 번을 걷어차고서 구름 위로 올라섰다.

한순간 정검세(正劍勢)를 취하고서 연무장을 보았다.

“……그렇구나.”

서문경은 서문휘가 무엇을 어떻게 펼칠지 깨달았다.

그토록 아낀 동생이 펼치겠다는 가전무공.

그 정체는 서문검법의 상승 무학과 옛 추억을 조화롭게 뒤섞은 경천의 초식이었다.

“보십시오.”

점에서 일어난 바람이 수십 갈래로 퍼져 구름을 불러오고, 그 구름은 태청신공의 공력에 적셔져 검게 일변한다.

구름을 휘감은 검이 완전히 검게 물들었을 때.

서문휘는 연무장을 향해 내질렀다.

“저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콰콰콰콰!!

가공할 만한 기파가 서문경을 감동하게 하고, 다른 동기들을 압도했다.

저 어린 나이에 겸비한 무공이 너무나도 뛰어났기에.

땅바닥에 착지한 서문휘가 부드럽게 웃었다.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아십니까, 형?”

“……옛날 생각을 나게 만드는구나.”

서문경이 천무학관으로 떠나기 전, 보름.

그동안에 서로를 편하게 불렀다.

그런 때가 있었다.

“각오는 된 거겠지?”

“예.”

“……그래, 짐 챙겨서 와라.”

서문경은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 * *

호광성, 무림맹.

한창 떠들썩해야 할 곳에서 묘지와 같은 음산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유야 간단했다.

“……군사, 이 정보가 유출된 적은?”

“없습니다.”

“하아.”

남천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구파일방의 장로를 숨긴 모처에 또다시 가면을 쓴 괴한이 침입하고, 그들을 납치할 줄이야.

가장 큰 문제는 정보가 바깥으로 샜다는 것.

‘이대로라면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균열이 생기고 말겠지.’

가면을 썼다는 그놈이 노린 게 그것이리라.

현천신검 제갈준에게 중상을 입힌 놈이 아무도 죽이지 못했다는 건 어딘가 이상했으니까.

‘물론 다른 무인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월현을 단독으로 붙잡을 가능성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남천웅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졌다.

“외나무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구나.”

“…….”

군사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입술을 달싹였다.

“천무검왕 서문경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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