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15화 (213/250)

월현 (3)

그 길로 위문엽과 진무신검은 서문세가로 향했다.

“월현이라는 놈을 아시오?”

“……알지.”

“최근 저잣거리에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놈인데,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고, 어디 태생인지도 모를 놈인데…… 너처럼 젊은 놈이 안다고?”

그 말에 서문경이 즉답했다.

“칠로두 중 일인이야.”

“마기가 느껴진 일이 없다고 하던데.”

“눈속임이지.”

“어찌 확신할 수 있지?”

“내가 직접 마주한 적이 있으니까.”

비록 전생이지만.

서문경의 말에 위문엽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뭐?”

“말 그대로요. 마주친 적이 있소.”

“어떤 놈이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단련된 삼단전에 공력은 조금 탁하긴 했지만…… 그놈이 가진 특징이야. 가면으로 기색을 숨기는 짓이 탁월하지.”

가만히 듣던 위문엽이 사납게 웃었다.

“참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군.”

“……과연.”

서문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문엽처럼 확신에 차진 않았지만, 뭔가 기묘한 부분이 많은 놈이라는 건 맞았다.

‘월현이라. 까다로운 상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맹에서 새로운 전서구가 도착했다.

[현재 무림맹에 새로운 상승 고수로 확신하는 ‘월현’라는 이가 도착해 있습니다.

그의 정체를 명확하게 해 주게.

-무림맹주 남천웅]

“잠시 서문세가에서 떠나야겠군.”

서문경은 서둘러 떠날 계획을 세웠다.

* * *

정의맹에 거주하는 구파일방의 장로들.

종남의 목허도장(木虛道長).

개방의 무영개(無影丐).

점창의 독검군(獨劍君).

무당의 무의진인(無疑眞人).

소림의 공저대사(空貯大士).

황산파의 통천옹(通天翁).

구파일방의 중진이 모두 모였다.

무림맹에서 조금 떨어진 외지에서 말이다.

이에 독검군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아무리 세상이 혼란해도 그렇지 대접이 이래서야 되겠소?”

“끌끌, 성질 좀 죽이게. 현천신검도 중상을 입은 와중에 자네가 무슨 자신감으로 대접 타령이야?”

무영개가 아픈 부분을 꼬집자, 독검군이 토라졌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거지가 한번 붙잡은 놀림거리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자기도 십대고수에 오르겠다느니, 점창의 사일로 복마검을 꺾겠다느니 하던 포부는 어디 가고…… 사내다운 웅심은 주름살이 다 먹어 치웠는감?”

“시끄럽다.”

“맹주가 말하기를, 젊은 상승 고수가 등장했다잖아. 어떡하나? 그놈은 출신도 불분명한 놈인데, 크캬캬캬.”

무영개가 거칠게 웃어 젖히자 독검군은 아예 몸까지 돌렸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통천옹이 이빨 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흘흘…… 다 젊어서 그런 걸세. 혈기가 아직은 무인으로서 자존하길 바라는 게지.”

평생 수련한 외공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나이.

고희를 넘긴 통천옹은 세상만사에 초탈한 눈으로 다른 장로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자네들도 마찬가지야.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으나 마교를 막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닌가? 사소한 다툼이야 이해하지만, 대의는 잊지 말게.”

“……큼,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나도 아오.”

무영개와 독검군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목허도장과 무의진인이 입을 열었다.

“한데 무의진인, 서문경이 자기 가문에서 후기지수를 가르친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그렇소. 직접 가르쳐 준다고 들었소.”

“허.”

목허도장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서문경에게 딱히 호의적인 마음은 없었으나, 왜 하필 종남의 후기지수가 없단단 말인가?

곤륜파의 무학은 직접 본산에서 배웠으면서!

“허, 흠. 종남의 무공도 궁금해하던 것 같은데.”

체면을 덧붙이려고 한마디를 중얼거린 차에 무의진인이 칼같이 대답했다.

“그 아이가 종남에 간다는 말은 못 들었소.”

“아니, 그런 것 같다고 말한 거요.”

“사실…… 화산파에 여러 번 들르면서 종남산도 들를 기회가 많지 않았소?”

무의진인의 묘한 어조에 목허도장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타문의 선배에게 무학을 알려 주는 것으로 우열이 갈린단 말인가?

‘아무리 그놈이 칠로두를 이겼다지만……. 끅.’

서문경의 업적을 속으로 나열하고 나니 울컥했던 마음이 분통으로 변했다.

“이게 다 첫인상이 안 좋아서 그렇지! 내가 직접 알려 주면 달라질 거요!”

“허허, 누가 들으면 뭐라고 한 줄 알겠소.”

“아니라고 할 셈이오?”

목허도장이 눈을 흘겼으나 무의진인은 자연스럽게 흘릴 뿐.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공저대사가 찻잎을 달이며 말했다.

“연이 있다면 언젠가 올 것을, 목허도장은 뭐가 그리 급하시오?”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불도의 울림이라.

잠시 드잡이질을 고민했던 목허도장도 더운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음.”

목허도장이 헛기침하자 다른 장로들도 불현듯 고요해졌다.

단순히 대화의 흐름이 끊겨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모인 외지의 모처.

남궁진 말고는 아무도 몰라야 할 그곳에 천천히 다가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단 한 사람.

여유로운 발걸음에서 목허도장은 불길함을 읽었다.

“방심하지 마시오.”

“…….”

무언의 동의가 다섯 장로를 거쳤다.

각자 공력을 그러모으고 언제든 초식을 펼칠 수 있도록 정제하던 순간.

드르륵.

갑자기 정문이 젖혀졌으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에 목허도장이 신중한 어조로 말하기를.

“불청객은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지.”

문 너머가 아니라 천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콰지직!

장로들의 한가운데로 떨어진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목허도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가면?”

불길함의 정체는 바로 제갈준을 습격한 악한이었는가.

여섯 장로가 곧바로 절초를 펼치자, 가면을 쓴 사내가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손님을 맞이하지는 못할망정.”

불평을 논한 사내.

월현은 주먹을 쥐었다.

* * *

“내가 먼저 떠나지.”

“뭐라고요?”

서문경은 위문엽을 흘겨보았다.

“볼 일이 다 끝났다는 겁니까?”

“말 참 섭섭하게 하긴, 서문세가야 안전하다지만 다른 곳은 영 아니잖아!”

“저번에 구했다던 여자처럼?”

“……누가 들으면 여자라서 구한 줄 알겠소.”

“흥.”

말은 툴툴거렸지만 내심 흡족하였다.

진무신검, 야차, 금모도왕.

이 셋만 강호를 돌아다녀도 많은 수의 양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은 가문을 돌볼 생각이었다. 아니, 가문에 기거하는 후기지수와 다른 문파의 제자들까지도.

‘정말 아쉽지만, 휘는 마교도와 싸울 재목까진 아니야. 내가 없는 동안 서문세가를 지키는 정도가 한계지.’

어쩌면 이 그림을 위문엽이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걸지도 모른다.

서문경은 위문엽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손님 대접은 제대로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 젊은 고수에게 술잔이나 받지!”

“……그러겠습니다.”

위문엽은 피식 웃고는 등을 돌렸다.

* * *

호광성에 평지풍파가 일고 있을 때.

서문세가는 치열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저 향상심을 불태우는 열정.

매일매일 수련에 매진하는 무인들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세 단전을 엮는다는 거지?”

“의념을 유형화시킨다는 건 대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막힐 때면 언제나 서문경에게 가서 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수가 없을 테니까.

어쩌다가 가끔 모두가 잠자리에 든 밤에 서문경의 처소를 찾아가는 제자도 있었다.

“자니?”

“안 잔다.”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

“들어와라.”

자다가 깨었음에도 서문경의 목소리엔 불쾌함 한 점 없었다.

이에 연준호가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예를 표했다.

과거에 가볍게 굴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져, 제법 도사처럼 보였다.

“세 단전을 엮는 ‘천주’의 구결을 알려 주셨는데, 어떻게 합일하고 조화를 이뤄야 할지 모르겠어.”

“고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무론과는 수준이 다른 이야기니까.”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각자 쓰임이 있어 나뉘었을진대 어찌 한 번에 엮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 사이에 있는 대맥까지 어찌 조화롭게 한단 말인가?

불가능하다는 상식이 팽배한 강호에 오직 유성백만이 답을 내놓았다.

“나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봐라.”

“그래.”

연준호이 등을 보이고 앉으니 서문경도 숨을 숙하게 골랐다.

자하신공으로 오랜 시간 공력을 다스린 도사다.

너무 깊고 무거운 기운으로 건드렸다가는 단전의 그릇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서문경은 신중히 기운을 골랐다.

태청신단을 비롯해 귀한 영단을 먹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예였다.

스르륵…….

연준호의 명문혈과 지실혈을 통해 공력이 침입했다.

“으음…….”

위화감을 느낀 연준호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서문경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경고했다.

“입 벌리는 일 없이 집중해.”

“…….”

연준호이 침묵으로 대답했다.

엄하긴 하지만 필요한 경고였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들, 아직은 나보다 한참 여리다.’

입을 헤벌리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태청신공을 운용하면 어떻게 될까?

최소한 주화입마다.

자신의 공력을 흡수하곤, 머지않아 자기 몸 안에서 밀어 내기 위해 몸부림칠 터였다.

서문경은 분심조화결을 이용해 연준호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공력을 움직일 테니, 너는 틀림없이 기억해라.]

“…….”

[아파도 참아야 해.]

“……!”

깜짝 놀란 것인지 연준호의 눈썹이 위로 들렸다.

그러나 서문경에겐 보이지 않았다.

콰르르르!

공력을 세차게 위로 움직였다.

단단하기로 따지자면 강호일절이라 불릴 만한 연준호이지만, 이렇게까지 거칠게 움직여서야 벽에 긁힐 수밖에 없었다.

연준호의 어깨가 오한으로 떨렸다.

“……윽.”

뒤이어 꽉 다문 잇새로 신음이 나왔다.

여기가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더 참아야 한다.]

역혈(逆血) 혹은 역천(逆天).

어느 쪽이든 좋았다.

서문경의 공력은 일반적인 운용 방향에서 역으로,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속도로 대맥을 질주했다.

주르륵.

연준호이 고통을 참다가 살을 씹었는지 핏물이 줄줄 새었다.

그 냄새를 맡은 서문경은 전음으로 간략하게 설명했다.

[나야 의념으로 삼단전을 조율할 수 있었지만, 너 같은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어. 그러니…… 몸으로 익혀야지.]

당연하지만 연준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 고통이 빨리 끝나거나 고함이라도 속 시원하게 질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다만 서문경이 운용하는 행로만은 머릿속에 똑똑히 담았다.

[어찌 보면 무식하지만, 네 재능을 믿고 하는 일이야.]

“…….”

덜덜덜.

거듭된 고통과 오한이 연준호의 어깨를 파르르 떨리게 했다.

하지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지는 않았다.

타고난 체력과 신체가 가까스로 버티는 것일 텐데.

[이렇게 되면 한 번에 진행해도 되겠는데?]

“……!”

서문경의 전음에 연준호이 눈을 부릅떴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등에 맞닿은 손바닥엔 강한 인력(引力)이 담겨 있었다.

발가락 하나 꿈틀거릴 수 없을 정도로.

[끝까지 인내하고 외울 수 있다면, 마교도와 싸워도 되겠지.]

“…….”

고통으로 신음하던 소리가 멈췄다.

시련에서 벗어나려고 아등바등하던 눈빛도 천으로 닦아 낸 것처럼 명정해졌다.

그 기색은 서문경도 알 수 있을 만큼 극적이었다.

[좋아.]

공력이 다시 세차게 가속하기 시작하고.

세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서문경은 등에서 손을 떼었다.

“……후우.”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자신과 다르게 연준호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위태했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제 그 또한 십대고수에 근접한 고수가 되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