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14화 (212/250)

월현 (2)

콰콰쾅!

마교도들이 던진 비도가 벽이나 땅에 처박혔다.

뒤이어 거리에 분진이 가득해졌다.

아녀자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위문엽에게는 훤히 보였다.

“붉은 눈깔들이 참으로 많군.”

말을 그렇게 뱉고 보니 불쾌함이 치밀었다.

“근데 하필이면 왜 지금 이랬냐? 달밤이 참으로 좋은데, 너희 같은 놈들이 나타나서 기분을 잡치게 하냔 말이다.”

“……야차.”

“위문엽.”

조장으로 보이는 두 마교도가 동시에 말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없었던 일로 해 주겠다.”

그 말에 위문엽이 껄껄 웃었다.

우습다 못해 측은함이 들어서 왼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아서라, 참.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우스운가?”

“남만의 주인께서 너를 쫓으실 것이다.”

“푸하하!”

두 마교도가 한 말에 위문엽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웃음기를 싹 빼고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강자가 정하는 것이다.”

“멍청한.”

“선택을.”

“남만의 주인아! 있다면 당장 나와 보아라!”

위문엽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나도 구천신검처럼 유명해져 보자! 겁쟁이냐!”

절대 지존이 능멸당하자 수십의 마교도가 땅을 박찼다.

수백, 수천 번을 연습했을 차륜전의 진.

강호에서 암약하는 동안 원숙하게 수련했을 진법이 위문엽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휘르르…….

한산했던 거리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과거 흑사문이라는 곳이 펼쳤다던 부동암형진을 방불케 했다.

‘무겁고, 어둡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흑사문이 어쩌면 마교에서 분화한 흑도 문파일지도 모르겠다.

위문엽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러다가 발밑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기에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쿠엑!”

벌레가 짜부라지는 소리가 났다.

위문엽에게는 그 정도 감흥밖에 없었으나 아녀자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질렸다.

“소리 지르지 마. 딱 붙어. 심호흡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진법의 기운에 스러진다.

위문엽과 아녀자가 숨을 내쉬면 한기 서린 입김이 피었다.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공포심과 감각의 상실을 불러오기 마련이지만, 위문엽의 걸음은 확고했다.

저벅.

한 걸음을 내딛자 어디선가 장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창이었다.

두 개의, 날이 어둡게 칠해진 특이한 무기라.

늑골을 노리는 궤적을 본 위문엽은 그저 웃고 말았다.

“시도는 좋지만, 노리는 곳이 훤히 보여서야.”

기습이라고 칭할 수 없다.

위문엽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에 쥔 무언가가 강한 돌풍을 일으켰다.

침잠한 어둠을 자아내는 마교의 절진 앞에서도 애병(愛兵)은 자기 빛을 찬연히 드러냈다.

“차!”

뜻을 알 수 없는 암어가 진 전체에 울렸다.

마교도끼리만 통하는 사어(死語).

사이한 기운이 담겨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데 정통하니.

“허억!”

평범한 아녀자가 버텨 낼 리 만무했다.

그걸 곁눈질한 위문엽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심호흡하랬지.”

“예?”

“두고 가진 않을 테니까, 최소한 움직여.”

위문엽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러면 살려는 줄 테니까.”

늑골을 노리는 창에 이어 짧은 시차로 등장한 열다섯의 칼날.

지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위에서 공격이 행해졌다.

일반적인 무학으로는 쳐 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호신강기에 의존해야 했다.

‘호신강기론 안 되겠지.’

위문엽은 오만하지만, 상대를 모르진 않았다.

명색이 마교인데 호신강기를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강호십대고수를 죽일 순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입이 무거운 편인가?”

“예? 예……!”

“말하면 너니까 살고 싶으면 평생 다물고 있어.”

위문엽이 한쪽 발을 뒤로 물리며 오른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주변이 왜곡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금속의 정체가 드러났다.

“저건!”

“허?”

철저하게 교육받은 마교도마저도 경악을 참지 못했다.

그 정체는 어떤 명칭으로도 정의할 수 없었다.

“특이한 무기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깟 흑색 창이 아니라.”

위문엽이 사납게 웃으며 공력을 운용했다.

도가와 불가가 반쯤 뒤섞인 기운이 오른손에 쥔 무기로 스몄다.

일곱 개의 단층.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게 만드는 축(軸).

끝에 있는 송곳 하나가 겨우겨우 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였다.

콰르르르!!

그 검 혹은 둔기.

뭐라고 불러도 좋았다.

위문엽만이 다룰 수 있는 기괴한 병기가 거대한 와류를 옭아맨 채 회천(回天) 했다.

마교도들이 내지른 칼날과 창 모두 무력하게 꺾였다.

‘저, 저런 걸 다룰 수가 있나?’

아녀자의 생각은 마교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무신검마저도 자기 공력으로 만든 구름을 다룬다는데, 저 와류는 자기 힘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좌도방문.

차력(借力)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건만, 위문엽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구경 잘했으면 죽음으로 갚아라.”

“……!”

“이걸 드러낸 이상, 살려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

위문엽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 * *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검이 일으킨 와류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마교도의 살이 찢어지고, 뭉개졌다.

진이 무너지는 것이야 당연지사.

위문엽은 마교도가 모두 전멸하는 순간까지 실실 웃으며 와류를 휘둘렀다.

그 모습이 마치 풍신을 떠올리게 해서 아녀자의 가슴에 깊이 남았다.

“가, 감사합니다…… 대협.”

“대협은 무슨. 내가 그렇게 불릴 위인이 아니라서 오글거리기만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위문엽의 뺨 한쪽이 불그스름했다.

얼른 더 해 달라는 것처럼 보여서, 아녀자가 눈치껏 몇 마디를 덧붙였다.

“대협이 아니었으면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었을 거예요.”

“아이참.”

“저한테는 영웅이세요. 어떤 고수보다도 강하시고요.”

“그 정도만 하라니까, 그만.”

“매일 대협을 위해서 정화수라도 떠도 될까요?”

“그거 좋…… 아니, 됐다고 했잖나. 쩝.”

위문엽은 검을 특수 제작 한 검갑에 넣고는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십대고수라면 방금 같은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있어선 안 되지, 암.”

“저, 그런데…… 대협,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편하게 이야기해.”

“그걸 휘두를 때마다 왜 그렇게 아파하시나요?”

“……눈치가 참 빠른 사람이구만.”

위문엽이 검을 조금만 빼놓았다.

손잡이와 가장 가까운 일단(一段)의 단층.

그것을 슬쩍 드러내며 궁금증을 해소할 만큼만 말해 주었다.

“이 검은 순수한 근력으로만 가동할 수 있거든.”

“……예?”

“뭐, 바람이 일어나고 나서는 무인이 수련하는 내공으로 조절할 수 있겠지만…… 와류를 일으키는 건 순수 내 힘이라는 거야.”

아녀자가 입을 쩍 벌리고는 위문엽의 팔뚝을 보았다.

피멍이 든 것처럼 붉게 물든 피부.

그 안에 끊어진 힘줄을 이어붙인 흔적이 누더기처럼 있었다.

약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위문엽은 위문엽이었다.

“팔이 떨어질 것 같으니 표정이 지랄 맞게 변하지. 안 그래?”

무덤덤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강함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위문엽.

강호가 야차(夜叉)라고 부르는 무인의 본질이었다.

* * *

제갈세가.

정의맹의 아군이길 천명한 가문에 울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상처를…….”

현천신검 제갈준.

잠시 가문에서 자리를 비웠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빈사에 가까운 상태였다.

아껴 둔 영단으로 치료에 성공했지만, 언제 깨어날진 요원한 일.

정의맹에 속한 관인 고성진과 양청교가 병석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흉수는 밝혀졌습니까?”

“아니, 아직이다.”

“허어…….”

양청교의 입가에서 한숨이 나오자, 제갈세가의 장로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제자 앞에서 착잡한 마음을 드러내기보다 발로 더 뛰겠다는 의지였다.

이에 고성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칠로두가 장문인을 노린 게 아닐까?”

“하지만 사형, 그놈이 나타났다면 진득한 마기 때문에 주변이 다 뒤집혔을 겁니다.”

“그렇겠지.”

고성진이 눈을 꾹 감았다.

칠로두를 제외하고 제갈준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고수는 한 손으로 좁힐 수 있었다.

서문경, 야차, 진무신검.

그 외엔 구파일방의 장로가 서넛 모여서 합공하는 건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가뜩이나 마교도가 횡행하는데 장문인을 해하겠다고 전력을 뺄 순 없다. 그럴 천치가 있을 리 없지.’

하물며 제갈준이 말없이 자리를 비웠던 것도 이상하다.

고성진은 발만 동동 구르며 훌쩍거리는 양청교를 달랬다.

다만 억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까드득.

고성진이 이를 가는 소리에 양청교도 애꿎은 하늘을 원망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도 잘 모르겠구나.”

두 관인이 대화를 나누는데, 제갈준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의식은 없었다.

그저 습격자의 정체를 알려야 한다는 본능일 뿐.

그가 마침내 한 단어를 완성했을 때, 고성진이 발견했다.

“알겠습니다! 장문인, 어서 무림맹과 곤륜에 전서구를 보내겠습니다!”

제갈준이 남긴 단어는 가면(假面).

고성진은 선풍인을 극성으로 펼쳤다.

* * *

‘가면이라.’

진무신검은 제갈세가에서 온 전서구로 새로운 정보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일 칠로두였다면 칠로두라 썼을 거고, 무인이었다면 별호를 적었을 텐데…….”

제갈준의 식견이라면 웬만한 고수는 다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그가 애매하기 짝이 없는 가면을 적었다는 건 정체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무신검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문엽아, 네 생각은 어떠냐?”

“뭘 말이오?”

수련에 열중인 위문엽.

아무리 진무신검일지라도 사문의 신공을 이런 식으로 유출해선 안 되나, 거대한 싸움을 두고 절차를 따질 순 없었다.

그걸 상기하니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가면 말이야. 현천신검이 그렇게 적었다면 무림인이 아닐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소. 제갈준의 성격상 아는 대로 남겼을 테니까.”

칠로두였다면 마교라고 적을 무인이 바로 제갈준이었다.

그가 ‘가면’이라고 적었다면 정말로 특징이 그거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진무신검의 인상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마교 때문에 정신이 어지러운데, 가면을 쓰고 제갈준을 습격하는 놈까지 있을 줄이야.”

“뭐, 어디서 듣긴 했소.”

“무엇을 말이냐?”

“남만교 말이요. 가면 쓰는 마교. 그들로 위장하고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흑도가 많아졌다고 들었소.”

“염병할.”

천하가 혼란하니 인의도 무너지는가?

진무신검은 가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채 돌아다닐 악한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때 서문세가에서 전서구가 하나 도착했다.

-월현.

제갈준을 습격했으리라 예상되는 이름이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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