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13화 (211/250)

월현 (1)

강호십대고수.

강호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열 명의 고수들.

그들의 천하는 본색을 드러낸 마종(魔種)으로 인해 몰락하고 있었다.

“열 중 넷이 죽었다……?”

남천웅의 침중한 목소리에 군사인 제갈후 또한 침을 꿀꺽 삼켰다.

“예, 남은 네 명 중 소재가 파악된 것도 신창 양전과 야차(夜叉) 위문엽(韋門葉) 둘뿐입니다. 척안룡은 여전히 행적이 불분명하지요.”

“큰일이구나.”

“양전은 그래도 신창양가에 기거하지만, 야차는 강호를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위문엽은 곱게 말하면 듣지도 않을 남자거늘……. 척안룡은 어찌하고 있는가?”

“가끔 정의맹에 들러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 외에 접촉하기 어렵습니다. 마교도가 워낙 많아서 의심스럽다는군요.”

“허!”

어리석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남천웅은 양전과 척안룡이 어리석다고 여겼다.

‘양전이야 섣부른 생각으로 사라질 위인이 아니라서 금방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위문엽과 척안룡은 아니다.’

언제까지고 자기가 살아간 행적에 따라 움직일 두 사람.

그들이라면 누구도 없는 음지에서 마교에게 죽을 위험이 컸다.

남천웅이 주먹을 으스러져라 꽉 쥐었다.

“무슨 애도 아니고 하나하나 챙겨 줘야 하는 꼴이라니……!”

“일단은 위문엽이 향했다는 지역에 무림맹원을 보내 놓았습니다. 개방과 협력하여 찾을 예정입니다.”

“척안룡은?”

“장강 쪽을 중심으로 뒤지고 있습니다.”

“이제 곧 마교와 전면전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 그들의 손 하나하나가 아쉬울 때가 올 것이야.”

남천웅은 천장의 칠성을 흘낏 바라보았다.

금으로 한 땀씩 장식한 사치품.

한때는 그것을 보며 부자로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무림맹주로 지내면서 강호의 판도를 휘어잡으리라 각오하기도 했다.

‘한데 하필이면 내 대에 환난이 일어날 줄이야.’

머리가 아파 왔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사태를 보고도 회피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강호의 영웅과 친분을 나눌 기회이기도 했다.

‘이마저도 계산적으로 다가가게 되는구나.’

남천웅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머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낭인답지 않게 지금의 자리와 처세, 권력을 지향하게 된 것은.

짧은 회한이 드니 인상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잠시 나가 있게, 생각을 정리할 것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제갈후가 맹주실을 나가니 남천웅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맺혔다.

불과 몇 주 전, 팽사환과 함께 강천에게 대항했을 때.

그때가 남천웅에게 몇 없는 ‘무인다운 시간’이었다.

강자와 싸움에 있어 물러서지 아니하며, 매 순간마다 최선의 수를 떠올리고 몸으로 행하였다.

“피가 끓었었지.”

남천웅이 허심탄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그러나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 모순적인 기억.

하물며 이제 앞으로 남은 적은 황실에 숨어 있다는 흑향과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를 청마 같은 놈들.

‘강천처럼 다른 칠로두가 또다시 암살하려고 든다면…….’

강호십대고수 이하의 무인은 일수에 핏덩이가 되리라.

그 예견을 떠올린 남천웅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나로선 부족하구나.”

잠시 한탄했다.

하지만 길지는 않았다. 무인으로서는 그들과 대적하지 못할지언정 무림맹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았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규합하고, 강호십대고수를 지켜 내는 것.

남천웅은 깊은 숨을 내쉬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제대로 된 일을 시작할 때였다.

* * *

술시(戌時)를 살짝 지난 밤.

귀주의 한 객잔에서 두 남자가 술에 거나하게 취해 소문을 안주로 삼고 있었다.

“이봐, 자네 그거 들었나? 호광성에서 일어났던 일전 말일세.”

“호광성? 거기서 싸우는 사람이 뭐 한둘인가?”

“그런 흔한 이야기가 아니야! 강천이랑 진무신검이 싸웠다니까!”

“오…… 누가 이겼나?”

“나도 아는 사람한테 건너 들었는데, 글쎄 진무신검의 절초가 그렇게 대단하다지 뭔가!”

“최근에 청라(靑羅)라는 놈도 그렇게 허세가 심하다던데, 대단하다고 해 봐야 뭐 무인끼리의 허풍이겠지.”

“무림맹주랑 금모도왕이 아주 형님으로 모셨다던데?”

“아예 세족이라도 해 줬다고 하지 그러나!”

“해 달라고 했으면 해 줬을걸.”

“에라이!”

두 사내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가는 동안.

식사를 비운 남자가 객잔 밖으로 나갔다.

‘어딜 가나 강천, 진무신검의 이야기군.’

남자는 무료했다.

검갑을 대놓고 길바닥에 질질 끌고 다녀도 시비를 걸어오는 놈 하나 없으며, 소문으론 조 승상의 백만 대군이라던 마교도 습격하는 일이 없었다.

한데 그 이유를 정작 본인이 알지 못했다.

“인상이 참…….”

“건드리면 사지가 성하질 않겠어.”

정돈된 기도, 사나운 인상,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체구.

그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시비를 걸 사람이라면 죽고 싶은 사람 말고는 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는 그래도 선량하게 생긴 편이지. 누군지 몰라도 참 더럽게 생겼나 보군.’

자신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뿐더러, 남의 말을 제대로 들어 먹질 않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낭인 패조차도 위문엽을 끼워 주지 않았고.

‘팽사환, 꼴좋구나, 클클. 어린놈 발이나 닦아 주게 되다니.’

금모도왕 팽사환과의 사이도 최악.

다른 십대고수와 친분은 없다시피 하여, 위문엽의 지우를 자처하는 사람은 그 강함에도 불구하고 다섯도 되지 않았다.

물론 장본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든 적(籍)을 두게 되면 귀찮아지는 법인데, 팽사환 그놈은 그 나이를 먹고도 깨치질 못했구나.”

팽사환이 들으면 발끈할 소리를 주절거리고서 팔자걸음으로 걸었다.

“천하는 혼란하다는데 달은 기가 막히게 밝아…… 떠돌이 혼자 술을 비우는데 외롭지가 않다!”

뒤이어 유명한 경구를 중얼거리고서 한 걸음.

거리가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쾌청한 달아! 떠돌이를 어디로 데려가려느냐!”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에 가판대 천막이 펄럭였다.

달빛이 찰나 동안 어둠에 잠긴다.

가냘픈 신음이 펄럭이는 소리에 먹혔다.

그때 위문엽이 움직였다.

콰콰콰쾅!

거리의 지면에 거대한 파도가 일렁였다.

모래와 자갈, 돌로 이루어진 땅바닥임에도 그러했다.

기괴한 일렁임 뒤에 낮고 불쾌한 음성이 덧붙었다.

“모르는 척 지나갔다면 피를 보지 않았을 터인데, 다섯 푼짜리 실력을 믿다가 죽게 생겼구나.”

“다섯 푼? 너무 짜다.”

위문엽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세간에서 말하듯, 야차답게.

“그보다 백만 배는 붙여 줘야지!”

콰르르르!

시뻘겋게 달아오른 금속의 울음소리가 파문처럼 일렁였다.

울음소리의 정체는 흑의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 주변을 왜곡할 만큼 강렬하고 장중한 힘이 메아리쳤으니까.

“검? 아니면 도?”

흑의인의 혼잣말이 아녀자의 귓가에 감돌았다.

그와 동시에 두 명의 그림자가 위문엽에게서 열다섯 보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무엇이든 좋다.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당장 이년의 목을 긋겠다.”

“협박이냐?”

“그렇게 들렸다면 협박이겠지.”

“하면…… 네 마음대로 해 보아라.”

위문엽의 눈가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야!”

“멍청한 놈!”

흑의인은 위문엽의 행동을 비웃었다.

산 제물은 가치 있는 자만이 필요하다.

이 여자의 시체는 피를 채울 용도로 쓰면 족했다.

다만 한 가지는 놀라웠다.

‘정말 망설임이 없는 놈이군.’

달밤의 그림자가 짙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정파 무인은 아니리라.

생각을 정리하고 손목에 힘을 주려는 순간.

“……!”

움직이지 않는다.

손목이 만근의 족쇄로 붙들려 있는 것만 같았다.

흑의인은 그제야 자신에게 달려든 무인의 얼굴을 보았다.

“네, 네놈은!”

스걱!

흑의인의 목이 힘없이 나뒹굴었다.

여태껏 무인을 수십이나 죽여 온 마교의 전투원이 일 초에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위문엽은 흑의인이 얼마나 강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이봐.”

“……예?”

아녀자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올려다보았지만, 위문엽은 배려 따위는 눈곱만치도 없는 무인이었다.

“제정신 차렸으면 나한테 멀리 떨어지지 마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아무래도 잡놈이 한둘이 아닌 것 같으니까.”

위문엽의 쌍소리에 아녀자도 눈물을 훔치고서 주위를 흘깃거렸다.

공포와 오한이 어깨와 등골에 치밀었다.

붉은색 안광.

철혈공을 몸속 깊이 새겨 넣은 마교의 전투원이 수십 명이나 있다.

“아, 아으…….”

막대한 살기에 아녀자가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그 순간에 위문엽이 그녀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죽고 싶으면 여기 있고, 싫으면 작대기라도 짚으면서 따라와.”

마치 죽는 것도 네 선택에 달려 있다는 듯.

온정은 조금도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녀자에겐 따스하게 들렸다.

“제, 제가 걸음이 느려도 괜찮을까요?”

“상관없어.”

위문엽은 콧김을 흥 뿜으며 손잡이를 붙잡았다.

“저런 반푼이들은 수백 명이 있어도 못 이겨.”

“……예.”

아녀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위문엽이 쥔 것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주변이 왜곡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금속’.

신비한 무학의 일부인 것 같았다.

“궁금해?”

위문엽이 갑작스레 던진 물음에 아녀자가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요.”

“가르쳐 줄 수도 있어.”

“……네에?”

깜짝 놀랐다.

무공이라면 미친 듯이 탐구하고 집착하는 무인이 할 수 있는 말인가?

혹시 자신을 시험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 아녀자가 눈을 슬며시 내리까니 위문엽이 피식 웃었다.

“싫음 됐어. 내가 무슨 협박이라도 한 것 같네.”

“……아, 아니에요.”

“여튼.”

양어깨를 크게 편 위문엽은 붉은 안광을 번뜩이고 있는 마교도들에게 말했다.

“내가 가길 원하느냐, 너희들이 올 테냐?”

여유가 한껏 넘치는 미소로 물었으나, 마교도들의 대답은 비도(飛刀)였다.

쉬익-!

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선명했다.

한계까지 단련한 외공, 철혈공이 만들어 내는 경력은 소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위문엽이었다.

“비열한 것이 장기냐?”

처음 흑의인을 베었을 때처럼 위문엽의 눈가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고통을 참거나 표면 위로 떠오른 광기를 정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녀자의 생각은 둘 다 옳았다.

“하!”

비웃음을 터트린 위문엽이 오른손에 쥔 것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대지가 기괴하게 일렁거렸듯, 허공도 장강의 파도처럼 일렁였다.

콰르르르!

파도와 부딪친 비도가 내던진 자에게 되돌아가는 반탄의 일 초식.

위문엽은 마교도들이 황급히 엄폐하는 것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대가리를 땅에 박고, 큰 몸뚱이를 벌레처럼 오므리는 거.”

위문엽의 웃음소리가 사악했다.

“참 어울린다고 생각해.”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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