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12화 (210/250)

재림 (2)

“천마와 대적한다?”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서문패의 시선과 마주치니, 진의를 제대로 묻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를 너무 고평가하는군요.”

“뭔 소리야? 그러려고 지금까지 나댄 것 아니었어?”

“……하하.”

진지한 표정의 서문패를 본 서문경은 숨을 내뱉었다.

하얀 입김이 시야를 한가득 채웠다가 사라졌다.

진지했던 그의 표정이 어느새 엷은 웃음으로 변해 있었다.

“부담스럽냐?”

“제가 원래 큰 그릇이 아니어서요.”

서문경은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그냥 적당히 소가주나 물려받고, 나랏일에나 충성하면 다 될 줄 알았던 게…… 마교를 알고 나서 완전 글렀구나 싶었거든요.”

전생의 일.

서문패가 알지 못하는 일을, 서문경은 허심탄회하게 토로했다.

“큰 뜻은 없고. 그냥…… 마교와 싸워서 공적이나 세우자. 그런 생각이었는데.”

다른 문파나 세가가 말하듯, 공적으로 자리를 잡겠다는 생각을 처음엔 품었었다.

서문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도사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고, 그냥 군인처럼 굴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그걸 건져 준 사람의 이야기까지.

“시대가 저를 바꿨죠.”

“시대라면…….”

“마교와 싸우면서 겪은 일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해 줬어요.”

전생.

이십 년에 이르는 싸움과 고통이 있었기에 마음을 달리할 수 있었다.

서문경은 숨을 내뱉었다.

“저라고 목숨 걸고 싸우고 싶겠습니까. 다만…… 서문의 사람이기에 여기에 있는 거죠.”

“그러냐.”

서문패는 서문경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난 나쁘게 생각 안 해. 원래 의무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러면서 자리를 잡는 거지.”

“…….”

그 말에 서문경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전생. 서문패의 마지막 뒷모습이 순간 뇌리에 떠올라서.

그래서 근거 없는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누구도 죽는 일 없이 끝낼 겁니다.”

“그게 가능하면 좋겠네.”

두 군인은 직감했다.

칠로두와 천마가 남아 있는 이상, 그런 미래는 찾아오지 않으리란 걸.

* * *

“하아.”

서문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들였는데…….’

서문경은 또 어디서 그렇게 강해졌는지,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다.

하나의 초식 안에 변화를 섞고 숨겼던 청운을 펼쳐 냈거늘.

‘어느 하나 먹히지 않았어.’

스으윽.

서문휘는 발로 연무장의 바닥을 긁었다.

기이하게도 그 움직임은 서문경의 보보(步步)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하나하나, 형님의 움직임을 발가벗겨 보자.’

서문경과 똑같은 서문세가의 무학을 익혔다.

그러나 그 속에 무언가 다른 것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가끔 보이는 생경한 묘리가 자신을 압도했음을 보았다.

그것을 안 이상, 알아내야 한다.

베끼고 모방하여…… 무학의 길을 갈고닦아야 한다.

서문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걸음이 무당파랑 비슷한데?”

대련하는 도중에 볼 수 있는 건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어디서 신공을 깨쳤는지, 관절과 공력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 벅찼다.

이른바 삼단전의 초고속 순행.

서문경의 상, 중, 하단전이 합쳐진 것 같았다.

‘공력을 기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짧은 의지로…….’

수 싸움의 속도부터 현저히 차이가 난 이유.

그것을 나름대로 예측하던 서문휘는 자신 옆에 주백경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언뜻 보니까 답답해 보여서.”

“하아…… 주 무사님이 보시기에도 그런가요?”

“나도 자주 얻어맞아.”

주백경.

형의 호위무사가 히죽 웃으며 서문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문휘는 그저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하하, 하하하…… 형이 강하기는 하죠.”

“아무렴. 서문패 장군도 공자님을 이기긴 어려울 걸.”

주백경의 말에 서문휘는 말을 순간 더듬었다.

“그, 그거야 당연한 일이죠.”

그렇게 말해 놓고서 후회했다.

당연한 일.

영웅이라 불리는 서문경에 비하면 약한 것이야, 당연한 일.

그 생각을 기저에 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당연함이었다.

‘이래서였나.’

뇌리에 벼락이 친 것 같았다.

‘붙기 전부터 질 것을 상정하고 있었으니…… 약할 수밖에 없었어.’

이래서야 착한 동생이 될 수 있을진 몰라도, 의지할 수 있는 무인은 될 수 없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서문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뒤이어 하늘을 보았다.

과거에 서문경과 함께 보았던 별빛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검게 물든 하늘, 겨울이 부쩍 가까워져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황량해진 산의 정경에 서문휘라는 무인이 헤매고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답을 두고서, 방황하고 있었다.

“……주 무사님.”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주백경을 불렀다.

“왜?”

타고난 근골로 빠른 쾌검을 펼치는 주백경.

그를 본 서문휘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인상과 무공을 모두 지웠다.

그저 처음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형을 이길 작정으로 싸웠어요?”

“당연하지.”

“어떻게요?”

“그러지 못하면 남겨질 걸 알았거든. 삼 년 전부터.”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서문휘가 허심탄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긴다기보다 형님에게 성취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죠. 그저, 내가 개척한 서문세가의 무도를 보이고자 했고.”

“…….”

“너무 약하게 군 것 같아요?”

“예.”

주백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서문휘는 웃었다.

이해했다. 서문경과 비견될 경지에 오르겠다니, 말만 앞선다고 욕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형님께 다가가겠다는 게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죠.”

“경지라는 건 남의 말에 귀 기울여서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주 무사님, 어찌 감히 형님 옆에 서겠다고 상상할 수 있겠어요?”

서문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 무사님은 아시겠지요. 칠로두의 강함을. 그들과 직접 싸운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전 정말 모르겠거든요. 소문은 더 무섭게 퍼지기 마련이니까.”

“…….”

주백경은 즉답할 수 없었다.

사실, 칠로두와 직접 싸워 이길 자신은 아직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긴다는 생각으로 싸워야지. 그게 군문의 자세니까.”

죄없는 양민들을 살육하던 마교도들.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잊을 만하면 꿈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놈들에게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끝나는 건, 싫다.

주백경이 보인 의지에 서문휘가 빙긋 웃었다.

“저도 언젠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주백경의 눈이 커졌다.

서문휘라면 소가주로서의 대의를 말할 줄 알았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서문휘의 발언에 굳어 버렸다.

“그게, 저.”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고, 서문경에게 들었던 가르침이 이제야 다시 생각났다.

주백경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졌다.

이에 서문휘도 껄껄 웃었다.

“주 무사님도 저를 약하게 봤나 보네요.”

“그, 그럼…… 이공자님도 마교와 직접 싸우실 겁니까? 소가주로서 가문에서 자리를 지키셔야지요!”

“지킨다고 달라질 건 없을 거예요. 마교는 언젠가 들이닥칠 테니까”

서문휘는 짧게 대답하고는 땅을 보았다.

“서문의 땅으로.”

“……이공자님.”

“그걸 말씀해 주신 것도 형이고. 언젠가 대비해야 한다고 일러 준 사람 또한 형이에요.”

서문휘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하늘은 맑았으나 마교가 비일지배하게 어지럽히는 천하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이 알알이 떠올랐다.

“서문세가의 군인으로서 움직일 겁니다.”

“어른이 되셨군요.”

주백경이 무심코 뱉은 말에 서문휘가 피식 웃었다.

“언제까지 애처럼 굴 순 없으니까요.”

서문휘의 눈이 태청신공의 공력을 머금고 시퍼렇게 빛났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예?”

“처음부터 형은 싸우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동생으로서 항상 양보를 받고 있었던 거지.”

이걸 삼 년이나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서문휘는 야속하게 흐른 시간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으니까.

그 자긍심을 가지고서 입을 열었다.

“형이 언제까지 여기 계실지 모르니 떠나시기 전에 확실하게 각인시켜 드릴 거예요. 우리가 마교와 싸울 수 있는 재목이고 고수라는 걸 말이야.”

“예.”

주백경도 자연스레 ‘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표정엔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칠로두를 무찌른 서문경에게 인정을 받자?

“……허.”

주백경의 머릿속이 벌써 복잡해졌다.

그것을 본 서문휘가 히죽 웃었다.

“주 무사님 무공을 봐주시겠어요?”

“이, 이 밤에요?”

주백경의 되묻자, 서문휘가 그 뒷모습을 턱짓했다.

“소가주의 무공을 봐달라는 게 그리 어려운 부탁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 다음에는 주 무사님이에요! 형에게 배운 무공을 보여 주세요!”

“아니!”

주백경이 무언가 변명하기 전에 서문휘가 보신경을 펼쳤다.

서문보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움직임이었으나, 주백경 또한 타고난 근골과 가전무공으로 금세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문세가의 무인들은 거목과 호수가 되어 갔다.

* * *

서문세가에서 후기지수가 고수로 변화하는 동안.

마교는 드디어 찾아냈다.

“천마재림.”

청마가 끌끌 웃었다.

“드디어 지존이 돌아온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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