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10화 (208/250)

암운 (6)

“남길 말은?”

“아쉽다.”

강천이 혀를 쯧 차며 웃었다.

“처음에 네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

진무신검의 시선이 잠시 먼 곳으로 향했다.

마기로 인해 어두워졌던 불야성의 등불이 다시 빛을 발하고 흔들린다.

그것만으로 없어졌던 활기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역시나.’

앞으로 살아갈 무림에 마도란 없어야 한다.

진무신검은 그 사실을 가슴속에 되새겼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천간투.”

호천풍연에서 이어지는 파형(波形)의 변초.

검경의 파도가 강천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 * *

“쉽지 않겠구나.”

멀리서 강천의 죽음을 지켜본 월현이 가면을 고쳐 썼다.

‘언제 저렇게 강해졌단 말인가.’

진무신검과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이 봄.

지금이 가을임을 생각하면 해를 넘긴 것도 아니다.

월현는 진무신검이 펼쳤던 세 초식을 떠올렸다.

단순한 무공이 아니라 의념에 심상을 실어서 펼친 것 같았다.

“내가 상대했다면 어땠을까?”

월현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긴 그때.

진무신검의 시선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눈빛이 마주친 듯했다.

‘……설마 내 위치를 알아챘다고?’

월현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가면에 담긴 권능, 성류(星類)는 무인의 기감 따위로 알아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높은 이능.

천이통과 같은 신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터인데.

‘무당의 제일고수를 지금까지 너무 우습게 본 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칠로두를 넘을 수 없는 놈.

그렇게 판단했던 것이 조금씩 후회로 되돌아옴을 느꼈다.

‘청마를 채근하는 수밖에.’

월현의 가면 아래에 시퍼런 광망이 번뜩였다.

* * *

뚜둑, 뚜두두둑…….

삿갓이 힘없이 떨어졌다.

절대자라고 여겨졌던 강천.

그의 죽음은 만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초라하고 조잡했다.

“…….”

“…….”

본래 흑도였던 마교도들은 말없이 강천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그들의 눈동자에 당황과 두려움이 치솟는다.

“나, 나는 이용당한 것뿐이야!”

“난 저자에게 속았…….”

심지 없는 거짓말들이 요란했다.

누구 하나 자기 잘못을 논하는 놈이 없었다.

그저 강해지고 싶었다며, 무인에겐 달콤한 유혹이 아니겠냐며 같잖은 소리를 주절거렸다.

귀가 피로해진 진무신검은 검을 들었다.

“내가 너희를 죽이는 데 얼마나 걸릴까?”

“…….”

흑도는 힘의 논리에 익숙하다.

강천에게 충성을 바쳤듯,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무신검은 이들의 처우를 남천웅에게 맡기기로 했다.

“당장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만, 여기까지 온 무림맹주의 면은 살려 주어야겠지.”

“……줄로 모두 묶어라.”

남천웅이 잔뜩 피곤함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무림맹과 관부에 의해 단전이 폐해지고…… 관노로 살아갈 것이다.”

남천웅의 결정은 단호했다.

마교가 벌인 혼란을 저놈들이 정리하게 만드는 수완이라.

진무신검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팽사환에게 물었다.

“너는 할 말 없냐?”

“무슨?”

“뭐라도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라는 거다.”

“염병.”

팽사환이 씩 웃으니 피로 물든 앞니가 번들거렸다.

“내가 뭐 공명심이라도 있었으면 문파를 만들었겠지. 태산검문이라는 좋은 간판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귀찮소.”

그 말에 진무신검도 피식 웃었다.

“내가 선배인데 말이 가볍네?”

“대우받고 싶소?”

그렇게 되묻는 팽사환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해, 진무신검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아니다, 내가 낭인한테 예의를 바란 게 잘못이지.”

“선배한테 쓴소리를 들으니 이게 더 힘들구만.”

팽사환이 자기 허리를 툭툭 두드리곤 한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발목을 다쳤는데도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다음에 부를 일 있으면 부르시오.”

“그러지.”

진무신검의 말에 팽사환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가 무엇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수련이겠지.’

부족한 공력과 숙하게 익히지 못한 무학.

그 후회가 아른거려서 서둘러 자리를 뜬 것처럼 보였다.

‘녀석.’

보다 보면 옛날의 자신이 떠오른다.

진무신검은 팽사환에게 시선을 거뒀다.

자존심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후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구만.’

호광성의 불야성.

불 꺼질 날 없는 곳에 많은 이가 들어오고,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각자의 밤을 즐기기보다 강호의 역사가 바뀌는 것을 보고자 많은 이들이 모였고, 떠나던 발걸음도 멈췄다.

“무림의 영웅이시군.”

“정말 대단하십니다!”

진무신검을 올려다보는 시선에 많은 감정이 있었다.

모두가 존경을 품지는 않았다.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시선이야 늘 존재했다.

그러나 진무신검은 그들을 이해했다.

무인이라는 종자라면 강자를 상대로도 꺾이지 않는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있어야만 마교를 상대로 물러섬이 없다.

무인은 자기 터전을 지킬 때 더더욱 강해진다.

‘내가 그랬으니, 이들 또한…… 모두가 아니더라도 몇몇은 그러겠지.’

진무신검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많은 군상이 모인 자리다.

무림맹, 제갈세가, 낭인…… 하다못해 불야성의 파락호와 호사가들까지.

강천을 죽인 절대고수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하며 자기 예상을 떠들어 댔다.

이에 진무신검은 숨을 지극하게 골랐다.

“후우…….”

호흡은 곧바로 천주와 일천세맥을 휘돌았다.

뒤이어 눈을 크게 뜨니, 밝은 정광이 담긴 눈빛에 만인이 압도되는 듯했다.

“…….”

“…….”

시끌벅적하던 좌중이 금세 고요해졌다.

진무신검이 답을 정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진무신검은 그들의 예상을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차이를 알겠나?”

“……예?”

“강천이 나타났을 때도 지금처럼 똑같이 조용했지. 그 차이를 알겠나?”

호광성에서 가장 유명한 호사가, 주서자가 대답했다.

“대화가 통하는 것이오.”

“또?”

“이렇게 다가갈 수 있지.”

“옳다. 강천이라면 다 죽이고도 남았을 거다.”

진무신검은 고개를 힘 있게 끄덕였다.

“아직도 마교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버려라. 상관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여기 죽은 강천 같은 놈이 남아 있다는 것이지.”

“…….”

“그놈들에겐 대화가 통하지 않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양민이고, 관인이고 모두 죽일 테지. 지금까지 이룬 터전이나 명예 같은 것도 물거품이 될 거요.”

그 말에 많은 이들이 고민에 빠진 듯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저런 말을 할 줄 알았다며 중얼거리고는 자리를 떠났다.

진무신검은 그의 얼굴을 기억했다.

그러던 와중에 마교도 사이에 있던 무인이 손을 들었다.

“누구냐?”

“……나다.”

마교도를 밀쳐 대며 나타난 무인은 진무신검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흑마……?”

과거 마교에게 이용당했던 사대악인.

흑마가 이곳까지 나타난 연유가 무엇이든, 진무신검에겐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마교의 주구 노릇이었나?”

“아니, 아니다. 나도 강천에게 붙잡혀 있었던 거다.”

흑마가 억울하다는 듯 한쪽 손을 내밀었다.

보아하니 자기 내력을 확인하라는 뜻인데,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진무신검은 그의 내관혈을 붙잡았다.

태청신공의 웅혼한 공력이 흑마의 전신을 투과하니, 흑마가 핏물을 울컥 토해 냈다.

“커헉!”

“마교의 마공은 익히지 않았군?”

“벽촌에서 은거하고 있던 것을, 강천이 끌어냈다.”

“……그렇다고 내가 사정을 봐줄 필요가 있던가?”

진무신검의 눈동자가 차가워졌다.

마교의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한들, 흑마는 사대악인의 일원이며 사특한 무공을 익힌 놈이었다.

살려 줄 이유라고는 조금도 없다.

그 생각을 읽어 냈는지, 흑마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너, 너도 알다시피 마교에게 부려 먹히지 않았더냐! 마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돕겠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살려 다오!”

“……말이 짧아.”

팽사환이 가벼운 어투를 쓰는 건 봐줄 수 있지만, 흑마에게 그럴 의리가 있던가?

진무신검이 내관혈에 공력을 집중시키자 흑마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사, 사죄하겠습니다, 선배!”

‘사실 고개를 숙였어도 어떻게 처리할진 똑같았겠지만.’

진무신검의 시선이 남천웅에게 향했다.

[이자는 특별히 관리해. 자기가 말한 대로 가진 바 실력은 있으니 마교와 싸우는 데 도움은 될 거야.]

[어찌하든 상관없겠습니까?]

남천웅의 말에 정파답지 않은 음습함이 있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흑마 정도의 고수를 다루려면 엄청난 제약이 필요할 테니까.

진무신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라. 나는…… 무당으로 돌아가겠다.]

강천을 무찌른 대가가 얼마나 클까?

그것으로 마지막 대전을 준비할 작정이었다.

[서문경이 강호로 나오면 나에게 알려 주게.]

* * *

각지에서 벌어진 싸움.

정의맹을 중심으로 한 오걸과 십대고수들은 저마다 빨리 모이지 못한 것을 더욱 애석해했다.

강천에게 암살당해 죽은 고수가 다섯은 넘었기 때문.

그러나 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칠로두 월현의 위치를 파악했다!”

“흑향과 결탁한 네 이놈! 내 칼을 받으라!”

각지에서 분연히 일어난 협행.

서문경은 서문세가에 있으면서 많은 소식을 전해 받았다.

감동적이었다.

“내가 한 일은 의미 없지 않았어.”

전생에선 무기력하게 패배했던 무림이 스스로 몸을 일으켜 자기 몸을 방어하고 있다.

서문경은 크게 웃었다.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장성하는 것이 빠를까, 천마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빠를까…….”

천마.

아직 등장하지 않은 그가 어떻게, 어떤 연유에서 은거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찌 보면 칠로두를 죽이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일.

서문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늦게라도, 조금씩 알아봐야겠어.”

그 날, 서문세가에서 여러 전서구가 하늘을 날았다.

마교에 속한 중진 혹은 외세의 대장.

그들이라면 천마의 재림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 알 테니까.

“천마의 싹을 제거한다면 이 혼란이 쉽게 끝날지도 몰라.”

서문경의 눈동자가 별빛을 받고 빛났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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