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운 (2)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취선향(聚仙香)이라는 향이 있다.
침향(沈香), 단향(檀香), 소합향(蘇合香).
세 가지의 향을 정성스럽게 섞어서 만드는 향.
흑도와 마주한 고수들이 그 향들과 닮았다.
“허, 뒷골목에서나 거들먹거리던 놈들이 여기까지 대가리를 들이밀어?”
무림맹에 뒤늦게 합류한 금모도왕 팽사환.
그는 성질이 매서우나 속은 따뜻하여 침향을 닮았고.
“무림맹의 무인들은 마교도가 하나도 빠져나가는 일이 없게, 신속하게 진을 구성하여라!”
무림맹주 남천웅은 은은한 단향처럼 흑도의 도주를 감싸 안아, 도주로를 차단한다.
하면 여러 가지 향을 섞어서 끓인 소합향은 누구인가?
‘세 고수가 모여 잡귀를 처단하니, 취선향과 다를 바 무어 다를까!’
진무신검은 부드럽게 웃었다.
여러 가지 향이 도문의 무학을 뜻한다면, 섞어서 끓인 것은 태극에서 이룬 조화와 극성(極成)을 뜻하니.
“서문 후배에게 많은 빚을 졌으니, 우리도 할 일을 해야겠지.”
진무신검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백선신검을 쥐었다.
……꽈악!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가득 실렸다.
증오스러운 마교도와 싸우는 일이었으나, 오늘따라 패검(佩劍)의 흐름이 경쾌했다.
“좋소이다!”
“우리가 약관도 못 된 후배에게 밀릴 순 없지!”
진무신검은 공력을 끌어 올리는 두 상승고수를 보며 실없이 웃었다.
저 자신 있는 외침이 진무신검의 내심을 따뜻하게 했다.
언제나 마교와 싸움을 함께할 동지요, 정의맹의 이름 아래에 뭉친 아군이었기에 울림의 폭이 컸다.
스르릉……!
검의 검명이 울리니 태극의 파도가 경쾌한 흐름을 탔다.
경파의 묘리가 담긴 태극이 마교도를 전방위에서 내리쳤다.
꽈르르!
“크아악!”
“커헉!”
돌로 쌓은 담장이 무너지고 거목의 허리가 잘린다.
마교의 마공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진무신검의 의지가 행하는 대로, 흐르려는 공간에 막히는 것이 있다면 그저 강하게 밀어붙여서 부술 뿐.
그렇게 진무신검이 중위(中位)에서 홀로 마교도를 격파할 때에 팽사환이 도를 뽑았다.
“하, 어디 한번 힘 좀 써 볼까!”
철검칠식.
여러 싸움에서 상승의 경지를 이룬 그가 무수한 강기를 흩뿌렸다.
화르르르……!
날개에 불꽃을 머금은 나비처럼, 사납게 휘둘러지는 도 속에 접무(蝶武)의 표상이 있었다.
분천지와 오악세가 연달아 펼쳐지자 후방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졌다.
“후웁!”
단번에 머금은 숨이 기해혈을 거쳐 허리를 받치는 지실혈까지 이어진다.
열화신공의 공력이 전신에 치미니 팽사환의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그 열양지기가 진무신검이 흩뿌린 태극의 파도마저 불사르려는 찰나에, 팽사환이 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천라진(天羅鎭).
하늘마저 벌려 놓는 열양지기가 거침없이 쏘아졌다.
“무, 무기를 놓아라!”
마교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불탄 옷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와 살이 익을 듯한 열기.
그 화기가 병장기에 미친다면 손바닥이 남아나지 않으리라.
……는 판단은 옳지 않았다.
“멍청하기는!”
콧김을 내쉰 팽사환이 왼 손바닥 중앙의 소부혈과 노궁혈에 공력을 더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한쪽 벽을 허물어 주마!”
두 손으로 붙잡은 도를 좌에서 우로 강하게 휘두르니, 운심쇄(運深鎖).
반쯤 성신을 이루었던 염화를 무력화시켰던 일 초식.
그것이 마교도의 중앙을 꿰뚫으니 사방을 피 끓은 비명 소리가 뒤덮었다.
“교주님께선 어디 계시냔 말이다!”
“우린 그저 교세를 불리는 숫자에 불과했단 말이냐!”
하나둘씩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마교도라고 한들 결국 흑도.
형세가 불리하고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니 본연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는…….”
“절강이나 강서성으로 도망치면…….”
눈알을 굴리는 소리, 도망갈 길을 살피는 시선도 눈에 띄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진무신검과 팽사환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움직일 것을 알았으니까.
“흑룡대는 사슬을 붙잡으라.”
불야성의 한가운데서 흐르는 차가운 목소리.
남천웅의 호령에 무림맹 전체가 움직였다.
흑의(黑衣)를 걸친 수십 명의 무인이 움직이니 불야성이 한순간 어두워지는 듯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
항시 밝혀져 있는 불야성.
그 위의 달과 별빛을 가렸다.
마교도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차가운 금속과 어둠뿐이다.
촤르르르……!
흑룡대가 휘두른 사슬끼리 부딪쳐 불똥이 튀겼다.
그 불꽃은 조금씩 서로 이어지며 마교도의 운신을 막았다.
흑쇄철진(黑鎖鐵陣).
신묘한 데다 꺼림칙하기까지 한 진법이 마교도를 옭아매고, 숨통을 목에 쥐는 순간.
빠각!
쇠사슬 하나가 부서졌다.
콰르르륵!
언제, 어디서.
모든 것이 불분명한 일격이 쇠사슬 전체를 동시에 타격했다.
“쿠흑!”
“웨에엑!”
흑쇄철진을 이루던 흑룡대가 각자 피를 토하며 제자리에서 무너졌다.
모든 공력을 쥐어짜서 펼쳤던 절진이 단숨에 끊어졌으니, 그 내상이 얕지 않을 터.
남천웅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뒤를 돌아보는 눈빛에 의지와 공포가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드디어 왔군.”
팽사환의 긴장감 어린 목소리가 낮게 내리깔렸다.
성신에 가까웠던 염화.
그보다 더욱 강하다는 말이 자자한 칠로두의 일인.
그의 눈빛이 삿갓 아래서 암흑을 머금고 있었다.
“언젠가 찾아오리라고 믿었지.”
강천은 진무신검을 직시하고서 물었다.
“각오는 되었나?”
“무엇이 말이냐?”
“너와 내가 싸우고 나면…… 다섯 노괴가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설득하려는 듯한 대화.
최근 검중제일이라 불리는 강천답지 않은 말이었다.
진무신검은 좌중이 충분히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마물이라는 것과 관련이 없다고 들었다.”
“그래.”
“하면 너는 왜 무림을 공격하느냐?”
“……허.”
웃은 것일까, 혹은 숨소리를 내뱉은 것일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면류관의 그림자와 강천이 자아내는 마공의 깊이가 표정을 가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강천의 목소리에는 인간다운 감정이 비어 있었다.
“나에게 너무 어려운 것을 묻는구나.”
“……?”
“천의든, 사교든, 마물이든…… 나에겐 하등 상관없는 것이다.”
“뭐?”
진무신검의 내면에 당황스러움이 번졌다.
이는 다른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짓말일 게다.]
[그래! 저놈이 오걸을 암살하고 다녔는데,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
사실상 모든 흐름이 꼬인 원인이 아니던가?
한데 일이 이렇게 되게 만든 장본인이 상관없다고 말하다니?
진무신검의 표정을 본 강천이 미소를 지었다.
백토(白土)에 둥근 선을 그려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너에게 거짓을 고하여 무슨 이득이 있을까? 나름대로 너를 인정하고 있다.”
“…….”
“그래, 운명이다.”
강천의 광망에 칠흑 같은 마기가 들어찼다.
“백야흔을 죽인 네놈과 서문놈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칠로두에게 감시받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날뜀으로써, 나를 구했다.”
과연 마도 고수다운 미친 화법이다.
진무신검은 강천의 말을 중간에 끊기로 정했다.
“……아직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 말인가?”
강천이 많은 것을 눈에 담았다.
불야성의 무수한 등불, 전각, 어딘가에서 풍기는 술 냄새.
하다못해 어느 골목에서 벌어지는 싸움까지도.
강천과 진무신검의 기감은 먼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움직임까지 잡아낼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놈은 불야성 절반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
진무신검은 검을 움켜잡았지만, 강천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흑도를 품고서 강호를 보았다. 네가 그토록 강한 이유를, 강자존이라면서 나에게 대항하려는 무인의 정신을 알고자 했다.”
강천의 시선이 잠시 팽사환과 남천웅에게 향했다.
각자 공력을 운용하여 정신을 방어했으나, 그들마저도 강천의 마기를 이기지 못하고 상단전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것을 본 강천이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무지(無知)를 깨치니 내 그릇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알았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늘이다.”
강천이 두 팔을 펼치고서 광소를 터트렸다.
“네가 말하는 천의, 마교가 행하려는 의식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 나는 괴력난신으로 임하여 모든 것을 부수겠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강천은 말없이 천무검성 유성백을 죽였고 강호를 공격해 왔다.
대의가 있었다면 강호를 공격하던 그때 밝혔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하하.”
문득 웃음이 나왔다.
진무신검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후련하게 웃었다.
“난 또 뭐라고. 너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걸까.”
혼잣말을 중얼거린 진무신검이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순간 어두워진 시야에 잊지 못한 광경들이 떠올랐다.
불타는 도덕천존의 목상.
마교의 화살 비에 맞아 죽은 학도사들.
마공에 사로잡혀 살육을 즐기는 마교도.
두꺼운 장막으로 덮어 두었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진무신검의 근본(根本)이 표상으로 떠오르는 것만 같다.
“네가 말했지, 싸우게 되면 다른 칠로두가 득을 볼 것이라고.”
진무신검이 삼단전, 천주가 축적한 공력을 일천세맥에 순환시키자 거대한 존재감이 일어났다.
태극의 파도가 일렁인다.
마교도에게 펼쳤던 것과는 궤가 다른 영성이 주위를 부옇게 했다.
진무신검은 자욱해진 태극 사이로 시퍼런 광망을 드러냈다.
“상황을 가려서 싸운다면 애초에 너와 동귀어진하려는 마음을 품지도 않았을 텐데, 머리는 장식이냐?”
“허, 말은 이미 이긴 것처럼 주절거리는구나.”
강천이 펼쳤던 두 팔을 좁히며 기수식을 취했다.
“싸울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라. 다시 죽고 싶지 않다면……!”
강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고수가 불야성의 밤하늘을 누볐다.
진무신검, 팽사환, 남천웅.
세 고수가 강천에게 돌진하는 것과 동시에 제갈세가 또한 진법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진무신검의 싸움이 무림 전체의 싸움으로 번지는 순간이었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