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05화 (203/250)

암운 (1)

며칠 뒤.

소규모의 행렬이 복건성 용해로 향했다.

이를 본 무인 몇몇이 혀를 쯧쯧 차 댔다.

“부잣집 도련님인가?”

“허! 풍류라도 즐기러 왔나 보군! 이 판국에 말이야.”

무공을 배우지 않은 듯 얇은 손목.

새하얀 혈색의 얼굴.

탄탄한 체형을 제외하면 별것 없는 사내가 무인들 사이에서 걸음을 터벅터벅 옮기고 있었다.

한데 무인들이 모두 처음 보는 외지인이지라 지나가는 거리마다 길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오불관언(吾不關焉).

이 행렬이 일으킬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 분위기가 거리마다 팽배했다.

강호에서 오래 살기에 딱 좋은 모습들이었다.

하물며 그 모습은 무림인이라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인피면구인가?”

“인피면구를 쓴 고수들에 평범한 사내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군.”

이곳에서 고수라고 거들먹거리는 이들조차 시선을 거두니, 행렬의 중앙에 있는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사내의 웃음소리는 거리마다 흘렀다.

현 강호를 조롱하는 것 같기도 했고, 모든 강호인이 모여 있다는 복건성의 호기(浩氣)가 이 정도에 불과했냐는 실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씩 옆에 있는 무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래서야 내가 여기까지 끌고 온 보람이 없군! 여기 있는 잡것들도 술이나 처마시고 노는데, 어찌 자네 탓을 하겠어?”

“…….”

무서우리만큼 정련된 기도를 지닌 무인조차 사내의 무례에 대꾸하지 못했다.

사내의 신분이 생각보다 더 높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무인들은 더더욱 거리를 벌렸다.

그때 한 명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누군데 우릴 함부로 말하시오?”

주취가 옷과 입술에 덕지덕지 붙은 무인이었다.

그 행동을 보고 많은 이들이 무인들에게 얻어맞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무인들 중심에 있는 사내.

그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드러내며 되물었다.

“술을 그렇게 처마시는 이유가 뭐냐?”

“그걸 왜 물으쇼?”

“마교가 사방에서 날뛰고, 의로운 협객조차도 흑도에게 공격받는데…… 무인이라면 누구나 손을 도와야지!”

“가서 죽긴 싫소.”

무인은 딱 잘라서 말했다.

“딱 까놓고 말해서 구파일방이나 무림맹, 관군만 움직이지 않소? 그들이 언제 태도를 달리할지 모르는데, 당신이 말한 것처럼 나 같은 잡것이 목숨을 내놓을 이유가 뭐요?”

“……호오.”

“고귀하신 핏줄이 어쩌다 여기까지 행차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일장 훈계를 하려거든 부하한테나 하시오!”

무인의 일갈에 주변에서 환호가 들렸다.

속 시원한 소릴 잘 긁어 줬단 칭찬과 아까운 놈이 죽겠다는 핀잔이 얼핏 들렸다.

사내는 그걸 가만히 듣고서는 껄껄 웃었다.

지금까지 남을 조롱하듯 웃었던 것과는 달리 유쾌한 음색인지라, 두 부류 모두 의아해했다.

바로 그때.

사내가 입을 열었다.

“네가 낫다.”

“……?”

“도리를 다하여 외면받았던 문파보다 낫고, 그걸 방치하고 실리를 취했던 쥐새끼보다 낫다!”

그렇게 말한 사내의 얼굴이 언제 웃었냐는 듯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어리석구나. 너 혼자 살아서 잘 먹고 잘 살 줄 아느냐?”

“하면 황상의 아들이라도 되란 말이오?”

“아직 술기운이 안 가신 모양이군.”

그 말에 무인이 분기탱천하여 외쳤다.

“하, 그래! 취했다! 죽일 테냐?”

“아니.”

사내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취해서 현실을 못 보니, 내가 깨워 줄 참이다.”

“……!”

쩌억!

사내의 장심이 무인의 가슴팍을 때렸다.

그러자 술 냄새 가득한 분무가 그의 입가에서 토해졌다.

“푸웃!”

주취를 비롯하여 주정(酒精)까지 토해 내는 데 일 초식.

무인이 내공을 익혔을 것을 생각하면, 가히 신기에 가까운 운용이었다.

술에서 깬 무인이 손을 덜덜 떨며 물었다.

“어, 어디에서 온 고인이신지요?”

“나? 나 말이냐?”

사내는 씨익 웃고는 기상천외한 대답을 흘렸다.

“마교의 칠로두, 강천이다.”

“……예?”

주변이 문득 고요해졌다.

어디에든 마교도가 암약한다는 것쯤이야 누구나 유추하고 있다.

단지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뿐이다.

“허…….”

한데 사내가 그것을 꼬집었다.

어찌 그뿐일까?

칠로두라 함은, 마교에서 가장 강한 마두 일곱을 일컫는 말일건대.

“저. 아니, 나, 나는…….”

“술이 깨니 제정신이 드느냐?”

무인이 발악하듯 외친다.

“제발 살려 주시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무인이란 놈이 저렇게까지 구차해진다.

저놈에겐 햇살보다는 무덤가가 어울린다.

강천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는 안 무섭고, 마교는 무섭더냐?”

“내, 내가 실언을 했소! 부디 용서해 주시오!”

무인의 말에 강천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하하하……! 세상 무서운 것 없는 놈처럼 굴더니, 백도와 마도의 차이는 아는 모양이구나.”

백도한테는 몇 대 얻어맞으면 그만이지만, 마도가 나타난 자리엔 주춧돌 하나 남지 않는다.

당장 남궁세가의 몰락을 보라.

수백에 가까운 역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 사실을 강천도, 무인도 알았다.

“누군가의 방패가 되기 싫다고 했지? 이제 자기 몸을 지킬 방법을 찾아보면 되겠구만!”

뒷짐 지고 지켜보는 꼴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한다.

강천의 진의를 눈과 귀로 확인한 무인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왜…….”

“자격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야. 마도가 강호를 제패하면 가만히 관망하고 있던 놈들한테 감사 인사라도 할 것 같나?”

강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무슨 행동인가 싶어 좌중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갔다.

복건성 용해에 은거하고 있던 오걸 중 일인.

노해광(怒海廣)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네가 감히 복건성에 발을 들이밀어?”

그 말에 강천은 차가운 웃음을 머금었다.

“마도천하가 곧 도래할 것이다.”

“너 같은 미물이?”

미물.

노해광의 도발에 강천의 웃음이 짙어졌다.

“어디 한 번 개미한테 짓밟혀 죽어 봐라.”

탁.

소리를 놓고 왔다. 강천의 신형이 사라진 뒤에야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극상승에 오른 고수의 풍모일까?

아니, 그것과는 다르다.

오걸에 속한 노해광에게도 강천의 성취는 궤가 달랐다.

쩌억!

‘미물’이라는 단어를 나불거렸던 노해광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어찌나 강하게 때렸는지 뺨에 피멍이 들고, 반쯤 쓰러질 듯한 모습.

“……이!”

노해광가 분노로 이빨을 꽉 앙다물었을 때에, 다시 한 번.

쩌억!

정면에 선 강천이 따귀를 날렸다.

그 충격으로 부서진 이빨조각 따위가 부스럭거리고, 뺨 내부를 찢었다.

피와 침 섞인 것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강천은 그것을 무정한 눈으로 보았다.

“아프지는 않더냐?”

“전혀!”

단순한 허세 같지는 않았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전신에 감돌았다.

강천은 아무 거리낌 없이 수도를 휘둘렀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노해광가 바닥에 뒹굴었다.

“그사이에 늘었군.”

강천의 기감에 여러 무인이 잡혔다.

사방팔방.

강천을 중심으로 정의맹의 무인이 집결하는 듯했다.

주변의 무인들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으나 강천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도 떨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군.’

강천은 검을 가볍게 잡았다.

마교의 굴레는 먼 옛날부터 이어졌다.

지면 멸문하였고, 이겨도 명맥을 이어 가는 것이 힘겨울 정도였다.

강천은 헛웃음을 지었다가 얼굴에서 지웠다.

“나, 나는 관련이 없소…….”

“오불관언하겠소.”

스리슬쩍 자리를 피하려는 복건성의 무인들.

그들을 보니 옛 무림이 떠올랐다.

강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나를 잡겠다고 꽤 많이 모였구나.”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주변을 휘어잡았다.

도망을 치려던 몇몇 발걸음이 멈추는가 하면,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놈도 있었다.

이에 지체가 높은 듯한 노해광 하나가 껄껄 웃었다.

“이제야 알겠느냐! 네가 죽을 곳임을!”

“하하하!”

기를 꺾어 놓으려는 듯 웃어젖히는 노해광.

그들이 일제히 운용하는 공력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크윽……!”

“모두 공력을 운용해라!”

모두가 정순한 공력으로 사특한 기운을 막아 내는 가운데, 강천이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저벅.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사내가 발을 옮기는 것 같았으나, 그 소리가 나무로 쇠를 내리치는 듯 장중하게 울렸다.

뒤이어 강천의 불타는 듯한 눈동자가 노해광의 심력을 불태웠다.

어디 그뿐일까?

쿠르르……!

강천의 마공에서 비롯된 검은색 구름이 태양을 가린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노해광이 주변을 경계하는 순간.

강천은 한 음절, 한 음절, 목소리에 공력을 담아서 말했다.

“과거의 마교는 너희에게 패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강천의 뒷말은 소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꽈르르릉!

거대한 경파가 노해광을 일제히 휩쓸었다.

“끄아악!”

“이, 이 무슨!”

강천의 무학으로 이루어진 파도.

마교도라고 무시할 수 없는 기예가 경파의 묘리를 머금은 채 노해광을 내리쳤다.

스윽.

강천의 발바닥이 바닥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삼단전에 마공이 깊게 스민 탓이라.

강대한 공력을 이겨 내지 못한 바닥과 대기가 강천의 존재감에 속절없이 밀려 나갔다.

그 힘이 강천의 우수(右手), 수양명대장경에 이르렀을 때.

“……온다!”

전선을 겨우겨우 버텨 내던 노해광이 비명을 외치듯 했다.

꽈앙!

강천의 보신경이 펼쳐지자, 신형이 허공에 녹아들었다.

극도를 넘어선 무언가.

강천을 한순간 놓친 노해광이 두 팔을 교차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익힌 외공을 신뢰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도에 그쳤다.

“끄아악!”

두 팔이 잘린 상흔이 등아래에 있는 지실혈까지 도려냈다.

아직 강천이 진정한 절기를 펼치지 않았는데도 그러했으니, 노해광의 불안과 공포가 극에 달했다.

“자, 다음은 누구냐!”

강천이 당당히 서서 외치자 노해광의 눈빛이 결연해졌다.

그러나 패색이 짙은 건 누구나 알 수 있었으니.

다음 날.

노해광의 죽음이 마교와 연루된 흑도에 의해 강호로 퍼져 나갔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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