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93화 (191/250)

날사이 (5)

“몇 살인가?”

중년인은 다짜고짜 서문경에게 질문했다.

과거에 회한과 조소가 가득한 얼굴.

창왕과 궁사가 보였던 반응과 비슷했다.

서문경은 가벼운 예를 취했다.

“올해 나이로 열일곱입니다.”

“어리군. 하지만 뛰어나.”

중년인의 우묵한 눈이 서문경의 전신을 훑었다.

손등에 보이는 근육의 결부터 팔다리의 길이, 신장에 이르기까지.

서문경의 진체(眞體)를 탐색했다.

중년인은 능히 그러할 능력을 지녔으며, 필부(匹夫)를 장성으로 만든 과거가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지독하게 노력했겠지. 잠을 줄여가면서, 혹사에 가까운 수련을 했을 거야. 그러다 상단전 심상이라는 수련으로 흘러들어왔고.”

“……!”

서문경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중년인이 짚어낸 것은 전생의 수련이었고, 현생의 선택이었다.

혹사에 가까운 수련을 한 이유는 후회였으며 심상 수련은 후회를 없애기 위한 또다른 시도였다.

그것을 어찌 한 번 본 것만으로 알아냈을까?

육신은 아직 전생에 비하면 여물지 못한 상태일진대.

서문경의 표정을 본 중년인이 짧게 웃었다.

“그 어리고 여린 몸으로 최상의 신체를 만들었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궁리가 있었을 거라 여겼다. 왜, 신기하더냐?”

“……그다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위안을 얻었다.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인정해주는 자가 이리도 많았다.

당장 강호에 나가면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고 치부하는 호사가가 산더미처럼 많지 않았나.

그들에 비해 중년인은 서문경을 직시하고서 판단했다.

그 사실이 조금은 기꺼웠다.

하지만 서문경에게 있어 중년인은 뛰어넘을 또다른 벽.

서문경이 기수식을 취하려던 그때, 중년인은 뜻밖의 행동을 보였다.

“보기보다 나이가 많을 줄 알았더니, 제 나이보다 훨씬 성급하군. 일단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나 하지 않겠나?”

제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대화를 권하다니?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했다. 서문경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 채 되물었다.

“이야기를?”

“하하, 아직 어려서인가. 아니면 심중에 여유가 없어서인가. 손을 섞으려거든 누구와 섞는지는 제대로 알아야지.”

중년인은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 앉길 권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두 술잔이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자신의 심상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을 줄이야.

서문경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중년인의 말에 따랐다.

“무슨 사술입니까?”

“사술이라니, 어차피 서로 비슷한 혼을 지니고 있지 않나.”

“……?”

“나 이전에 몇 명과 싸웠을 것 아닌가. 뭐, 내 이름은 서문광(西門光)이라고 하네만.”

그 말에 서문경은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창왕이든 궁사이든, 마지막에 자기 이름은 서문경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서문경이 아니었다. 아예 다른 이름을 가진, 이인(異人)이 천주심경의 심상에 침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비슷한 혼을 지니고 있다 했지.’

그 사실을 도대체 어찌 확신하는진 모르겠지만, 서문경은 잠자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는 서문경입니다.”

“경(經)? 좋은 이름이군. 나는 조금 불만이었거든, 너무 단순해서 말이야.”

서문광은 두 술잔에 술을 따랐다.

차분히 따르는 오른손의 소매에 무엇인가가 비쳤다.

거무튀튀하고, 단단한 금속.

서문광이 소매 안에 숨기고 있는 것은 완갑(腕鉀)이었다.

‘팔뚝을 공격했다간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크겠군.’

서문경은 술잔을 받아들이고서 쭉 들이켰다.

호탕하게 잔을 비우는 모습에 서문광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어쩌고 저쩌고 할 사람은 아니었군.”

“군문의 장자 아닙니까. 술을 못하면 안 되지요.”

“역시, 나이에 비해서 늙었어.”

“늙은 건 그쪽 아닙니까?”

“그쪽? 하하하……!”

서문광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완전히 드러난 틈.

서문경은 반사적으로 칼에 손을 가져갔다. 발도는 신속하게 기류를 갈랐다.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 빠른 일검.

일천벽검의 일초가 서문광의 목을 향해 쏘아졌다. 살기마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바로 그때.

서문광의 팔뚝을 통째로 감싸고 있던 완갑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

오른팔이 크게 휘둘렸다.

촤아악!

목을 덮치던 강기가 통째로 베어졌다.

서문광은 팔뚝에서 튀어나온 칼날을 다시 완갑 안에 집어넣고서 왼손을 흔들었다.

콰가각!

수십 개의 쇳조각이 쏘아졌다. 손톱만 한 크기의 날붙이였다.

서문경은 즉시 번검유회를 펼쳐 날붙이의 궤적을 바꾸었다.

그 직후, 서문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고 하지 않았나?”

목소리에 노기(怒氣)가 서렸다.

호의를 자기 발로 걷어찬 후학(後學)에게 보내는 짜증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짜증은 상대적이었다. 서문경에게는 숨이 막히는 살기처럼 느껴졌다.

‘이 무슨……!’

창왕이 기예로 강자를 꺾고, 궁사가 불가사의에 가까운 보신경과 냉정한 사격을 가졌다면, 서문광은 처음부터 강한 무인이었다.

심지어 기물의 힘을 빌리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서문경은 내심에서 솟아난 호승심을 꾹 내려앉히고 시치미를 뚝 뗐다.

“실력이 부족해서 이야기나 하자는 건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넘어가겠다?”

서문광이 코웃음을 쳤다.

서문경의 심계는 참으로 좁고 얕아서 눈에 훤히 보였으나, 넘어가면 속 좁은 어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없지.

서문광은 술잔을 들었다.

“시간은 많으니 이야기나 하지.”

“무슨 이야기입니까?”

“음,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집어치우지. 아마 나 이전의 놈들한테 숱하게 들었을 테니까.”

서문광은 술을 들이키고서 중얼거렸다.

“성공담이야.”

“성공담?”

“나보다 이전의 놈들은 어쨌을지 모르지만, 나는 천마를 제외한 칠로두 전원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

그 말에 서문경은 눈을 크게 떴다.

창왕과 궁사. 그 둘은 칠로두와 단신으로 싸워서 이기는 둥 큰 전공을 냈지만, 모두를 이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문광은 달랐다.

그는 천마를 제외한 전부를 죽였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서문경의 호기심이 호승심을 잡아먹었다.

“어떻게요?”

“서문세가의 장자라면 당연히 알겠지. 뛰어난 한 명보다 잘 훈련된 군대가 더욱 무섭다는 것을.”

“그거야 잘 알지요.”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나는…… 죽기 전에 군신(軍神)으로 불렸다.”

군신.

서문경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상식적으로 대명의 천자나 문신이 저런 칭호를 생전에 허락할 리가 없었다.

가능성은 단 둘이었다.

“……스스로 황제가 되었거나, 반역을 한 겁니까?”

그 말에 서문광은 잠시 입을 꾹 닫았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선택지가 없었어.”

“대명의 군관이 어찌 그런 짓을!”

“너도 알고 있겠지. 서문세가의 힘으로만 마교와 싸울 수 없다는 걸. 그 사실을 일찍 깨달았을 뿐이야.”

“……당신!”

“아버지가 준 이름은 스스로 버릴 수밖에 없었다. 너도 알잖냐, 황제의 이름은 나라에서 쓸 수 없도록 한다는 걸. 그래서 경보다는 잘 쓰이지 않는 외자로 했다.”

그것이 바로 광(光).

서문광은 씁쓸하게 웃었다.

“반역을 한 건 아니야. 다만…… 그렇게 됐지.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흑향이 벌인 일입니까?”

“너희에겐 그리 불리나? 우리한텐 천악(天惡)이었다. 천자를 죽인 악인이라고 말이야.”

“……!”

서문경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쩌면, 서문이현이 일찍 손을 쓰지 않았다면. 그리고 다른 신하가 돕지 않았다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서문광이 황제가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

서문경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천자께서 승하하셨어도…… 어찌 서문세가가 보위에 오른단 말입니까?”

서문경의 어조가 저도 모르게 높아졌다.

황제.

비록 옳지 않은 일로 올라갔을지도 몰라도 그 위치에 올랐다는 것이 서문광을 대하기 어렵게 했다.

그 모습을 본 서문광이 입술을 씰룩였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난세를 평정할 사람으로 점찍어진 거지. 나도 언제 자리에서 내려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사냥개입니까?”

“황제에게 사냥개라니 너무하잖냐. 뭐, 마음대로 이해해라.”

서문광은 여기서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매일 음식과 사람, 잠을 자는 순간에도 의심을 하고 살던 나날이었다.

대신에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야.”

“뭡니까?”

“아마 너도 서문세가의 힘으로는 부족해서 강호나 다른 외세의 힘을 빌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것 자체는 옳아. 가능성이 좋아. 하지만, 천마는 이기지 못할 거야.”

“……?”

“천마는…… 인지를 넘어섰다. 뛰어난 군대와 수많은 천재도 이기지 못할 거다.”

서문광의 술잔이 덜덜 떨렸다.

공포심.

천마와 대면하여 싸운 전장의 광경이 서문광의 정신을 괴롭혔다.

그를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수없이 고민한 끝에 나온 건 딱 하나였다.

“내가 황제가 되어 접한 전설 중에…… 하나의 책이 있었다.”

터무니 없는 전설.

있을 리가 없는 책의 존재를 찾아서, 서문광은 몇 년을 소비했다.

그 사실을 어린 서문경에게 말하고 싶었다.

“모든 무공이 적혀있다는 사전. 그걸 취해서 무예십팔반을 전부 습득하여…… 천마를 단신으로 능가하는 수밖에 없어.”

“……!”

그 말에 서문경은 크게 놀랐다.

서문광이 말한 것이라면 바로, 신비한 무공사전 밖에 없었으니까.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마음속 갈등이 깊어졌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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