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92화 (190/250)

날사이 (4)

왜 이렇게 많이 먹이는 걸까?

유화는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는 서문패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무심했다.

하물며, 은정사태와 헤어지고 나서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앞으로 잘 먹기가 어려울 텐데, 지금부터 많이 먹어 둬야지.”

“……예?”

“어, 들렸나?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닌데.”

일부러다.

유화의 눈이 의심스러워졌다.

서문패만 한 고수가 저런 걸로 실수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보호자라고 볼 수 있는 은정사태와 헤어진 직후에 한 말.

겨울에 접어든 추위가 피부를 두들겼다. 닭살이 돋았다.

사천당가에서 싸운 이후로 부쩍 예리해진 오감과 육감이 서문패를 경계하라는 듯 수차례 경고했다.

“저어, 서문패 장군님.”

“네가 끼워 보낸 글귀는 잘 읽었다. 불가에 귀의한 제자가 바랄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어. 너도 잘 알지?”

“네.”

“사문에 몇 번이라도 요청했으리라 믿는다. 너도 이제 애가 아니니까.”

“……물론이죠.”

유화는 서문패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아미산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말했다.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살인의 검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한 일과 남몰래 하산하여 아미산 주위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산적을 무찌른 것.

서문패에게 강한 의지를 보이고 싶다는 심산이었다.

장본인에게도 뻔히 보이는 언사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쭉 들은 서문패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꾸짖으려고 한 게 아니야. 그냥, 궁금했던 거지.”

“노력했거든요.”

“앞으로 한 달 동안 더 노력해야 할 텐데?”

“네?”

서문패의 말에 담긴 웃음소리에 유화가 눈을 크게 떴다.

한참 전부터 경고해 온 오감과 육감.

그것들이 하나 같이 서문패와 멀어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문패가 손이라도 뻗으면 당장 땅을 박찰 것 같았다.

하지만 유화는 끝끝내 버텼다.

몸서리쳐지는 불안함을 견뎠다.

그 과정을 찬찬히 지켜본 서문패가 손가락을 들었다.

“저길 봐라.”

“……?”

언제부터였을까?

서문세가의 건물보다 거대한 장벽이 가까워졌다.

매끄러운 반석에 여러 손자국과 손톱 조각, 피 얼룩 따위가 남아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든 시련에 한순간 어깨가 움츠러들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압도되었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이게, 서문의 수련장인가?’

그때, 서문패가 입술을 달싹였다.

“많이 먹인 이유를 이제 알겠나?”

손님을 대하는 격조는 사라지고 하대가 목소리에 뱄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서문패가 위고 유화가 아래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으라는 듯, 서문패의 기세가 유화를 강하게 압박했다.

“……!”

준비가 되지 않았던 유화가 한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순식간에 기세를 풀어내고서 손을 검에 가져갔지만, 거기까지였다.

주르륵.

어느새 서문패의 칼날이 유화의 목을 짓눌렀다.

한줄기 핏물이 옷깃을 적셨다.

서문패가 물었다.

“살인의 도를 배우고 싶다고 했었지?”

“……예.”

“언제부터 그것을 구분지었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화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서문경에게 많은 것을 들었다.

서문세가의 무공은 전장에서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노라고, 향상심이 아니라 도구로서 발달한 학문이라고.

그 이야기가 서문패의 입에서는 달랐다.

군문의 장군이 도리어 불가의 선문답처럼 말했다.

불행히도, 서문패는 서문경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오르면서 생각해 봐라.”

서문패가 거대한 장벽을 가리켰다.

그곳엔 장년과 중년, 청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장병이 안간힘을 쓰며 반석을 오르고 있었다.

“내공을 쓰면 안 돼. 자기 힘으로만 해 봐라.”

“……그건 불가능해요.”

“왜지?”

“맨몸으로 오르기엔 너무 미끄럽고, 사람이 많잖아요.”

유화의 안력이 수련에 숨겨진 고난을 어렵지 않게 읽었다.

반석 최상층에서 뿌리는 물은 장벽을 더욱 미끄럽게 했고, 떨어지는 사람끼리 뒤엉켜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오르는 동안 밥이나 물은 어찌 해결하겠나?

오르기 직전에 챙길 벽곡단과 호리병밖에 없었다.

물자가 한정되어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이건 무공을 수련하는 장소가 아니야.’

심신(心身).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정신과 신체를 기르는 수련이었다.

내공으로 충분히 쉽게 오를 수 있는데, 구세대에 사라졌다는 미련한 수련법처럼 보였다.

유화가 무언가 항변하기 전에 서문패가 먼저 발을 뻗었다.

“……!”

섬전처럼 달려 나간 서문패는 장벽에 성큼 달라붙더니, 순식간에 상층을 향해 기어올랐다.

그렇게 중턱.

유화가 우려하던 상황에 봉착했다.

“앗, 사람이……!”

서문패가 오르는 행로에 위치한 중년인.

그는 가만히 쉬면서 호흡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서문패로선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유화의 상식이었다.

꽈악.

서문패의 팔이 중년인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는 꼼짝없이 아래로 퉁겨져 나가, 최하층에 위치한 군관에게 구조받았다.

그 와중에 서문패는 중년인의 물자를 뺏었다.

“물이 달군.”

물을 단숨에 마신 서문패가 빈 호리병을 아래로 던졌다.

유화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이게 무슨……!”

“설마, 단순히 오르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나?”

서문패가 히죽 웃고는 다시 위로 올라갔다.

심신의 단련, 그리고 독기(毒氣).

사납고 모진 기질이 서문패의 눈빛에서 드러났다.

체력이나 타고난 품성이 약한 병졸은 스스로 길을 비켰다.

하지만 상층부터는 달랐다.

“여기서는 계급장이고 뭐고 없거든.”

안 그래도 잘 만났다는 듯.

사나운 웃음을 드러낸 장정이 서문패를 향해 발길질했다.

처음에는 왜 체력을 소모하나 의아했지만, 곧 이해했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아까처럼…… 잡아당기겠지.’

매끄러운 반석을 맨손으로 오르는 것보다 사람의 옷깃이나 발을 잡아당기는 것이 체력을 덜 소모한다.

서문패와 장정은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장벽을 쉽게 오른다는 건, 체력을 온전히 보존할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몇 사람을 희생하건.

서문패가 장정을 향해 고함을 터트렸다.

“네이놈, 감히 장군의 얼굴에!”

“같은 훈련 중인 사람끼리 상하가 어딨어!”

“……하하, 잘 아는구나!”

서문패는 후련하게 웃고는 어깨를 한쪽으로 틀었다.

장정의 발길질을 비스듬하게 피하고는 순식간에 붙잡는다.

그 일련의 동작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림의 금나수도 저렇게 재빠르지 않았다.

유화는 장벽의 훈련에 담긴 또다른 뜻을 깨달았다.

‘……기예의 숙련과 대응인가.’

어떤 식으로 기예를 펼쳐야 위에서 펼쳐지는 공격을 피하고 역공할 수 있나.

그리고 주변의 위협을 얼마나 빠르게 감지하나.

얼핏 무식하게 보이던 수련에 많은 뜻이 있었다.

물론, 아미파의 기조와 맞지 않았다.

‘엄청나게 비겁하고, 무식해.’

만일 제일 아래에 있는 군관이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한다면?

내공의 운용이 미숙한 병졸은 단숨에 머리나 사지의 뼈가 박살 나고 만다. 너무나도 위험했다.

하물며 지금까지 본 서문경과 서문패의 성정이라면 비가 온다고 이런 훈련을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유화가 여러 생각을 품는 사이에 서문패는 최정상까지 올라갔다.

“좋아, 쉽구만.”

“심심하실 때마다 와서 병졸 괴롭히는 짓은 그만하십시오.”

“야, 이게 다 일상처럼 이뤄지는 훈련에 긴장감을 주는 거야.”

서문패는 최정상에 위치한 장군과 시시한 농담을 나누고는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어느새 유화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배울 자세가 갖춰진 후기지수라.

‘좋은 재능을 타고났다고 게으를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나.’

서문패는 유화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세상 사람이 말하는 팔부기재 중에서 둔걸과 운룡만 봐도 게으름뱅이와 사라진 놈 아니었던가?

유화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미산 안에서 가만히 독야청청하다가 사천당가에게 잘못 걸린 어린 아이라고 여겼다.

‘기죽으라고 보여 준 건데, 오히려 의욕이 생겼나.’

서문패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이게 끝이 아니야. 시작이지.”

“……네?”

“설마 저런 거 하나 넘었다고 훈련이 끝났을 것 같아? 아직 한참 멀었지.”

“하루에 그런 훈련이 몇 차례나 있나요?”

“저걸 포함해서 여섯. 그리고 자유 대련.”

서문패는 자신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특별히 나와 매일 대련할 기회를 주지.”

그 말에 유화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날 괴롭히려고 부르신 건가?’

조금 전, 목에 칼이 닿았을 때 직감했다.

아직 이 남자를 이길 날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이른 바 격의 차이였다. 오걸과 맞먹는 고수에게 칼을 휘둘러 봐야 엉망진창으로 얻어터질 뿐이었다.

하지만 서문패는 그것이 진심으로 수련이 될 거라고 여겼다.

당장.

“경이는 나와 매일 대련해서 많이 늘었거든.”

“……정말이요?”

“그래. 걔가 왜 갑자기 강해졌겠어.”

서문패는 있는 일만을 그대로 말했다.

저 말이 유화의 호승심에 불을 지필 거란 건 알았다.

경쟁이라고 해도 좋았다.

‘저 재능을 보고도 가만히 두는 건 낭비지.’

서문경이 잠에 들기 전에 말하지 않았나.

천무학관에서 만난 동기 모두 도움이 될 거라고. 재능을 꽃 피울 기회나 정신이 필요하다고.

서문패는 유화가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이러니까 경이가 주백경을 갈궜나.’

하루의 재미가 늘어났다.

서문패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맺혔다.

* * *

“후우, 후우…….”

서문경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상단전 심상에 빠져든 나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보름부터 세질 않아서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궁사 다음은 당신인가.”

창왕처럼 어쭙잖게 한 명만을 이기고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서문경은 궁사를 무찌르고 새롭게 찾아온 중년인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는 맨손이었지만, 소매가 큰 옷을 입고 있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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