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91화 (189/250)

날사이 (3)

처음에는 쉬운 말로 거절하려고 했다.

본가 내의 행사로 인하여, 그리고 군문의 규율에 의해서 불가의 인사(人士)를 오랫동안 두기가 어렵다는 둥.

거절할 말은 많았다.

서문세가의 규율을 제대로 알 만한 문파는 없을뿐더러, 아미파가 억지에 가까운 부탁을 한 것은 마찬가지니까.

“불가의 무공을 군문에서 제대로 수련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가?”

서문이현은 당연한 의문을 품었다.

불가의 무공은 본래 자애(慈愛)와 자비(慈悲).

하물며 여승의 문파인 아미파는 예로부터 호신(護身)의 무공을 갈고 닦았다.

오로지 살생을 위해서 발전한 서문세가의 무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유화의 뜻은 아미파의 공적인 전서에 덧붙여져 있었다.

-저 또한 살인의 도(道)를 배우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문구였다.

그것도 불가의 공적인 전서에 적혔다니, 가히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정신을 가꾸는 불가에서 저런 문구를 덧붙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서문이현의 탄식에 서문패가 피식 웃었다.

“요 꼬마애가 중간에 전서구를 붙잡아서 덧붙여쓴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서문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험악하고 어지러울지언정, 아미파가 저런 글귀를 허락할 리가 없었다.

검봉 유화의 개인적인 생각일 터.

그게 아니라면 아미파라는 거목에 병이 든 것이라고 봐야 했다.

‘우리와 뜻은 달라도 불가의 가르침은 존중할 만한 것이니.’

마교와 싸우기 위해서 거대 문파의 정신을 꺾는 건 서문이현에게도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갑자기 변질된 세력은 삽시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서문경과 서문패는 이를 두고 답답하다고 했지만, 오랫동안 가주에 있었던 서문이현에게는 ‘정신’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임을 알았다.

따라서…… 유화에게도 자연스럽게 걱정이 쏠렸다.

‘아들 또래의 아이가 저렇게 번민하는 걸 보고도 모른 체하기가 껄끄럽군.’

하물며 유화는 서문경과 동문(同門), 동기(同期)가 아닌가?

군인에게 있어 동기란 때때로 목숨을 맡기고 하는 값진 사이.

서문이현은 깊이 고민했다.

삼 년 전이었다면 곧바로 거절하고 말았을 일이란 건 알았다.

서문경이 계속 잠에 빠져 있고, 내부 정비를 더욱 철저하게 할 시기였으니까.

‘내 마음이 유약해진 건가, 아니면 외부 세력인 무림과의 공조를 내심 계산하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유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유화를 불러들여서 얻을 말은 많았다.

마교와의 싸움에서 완승을 거뒀지만, 건재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서는 명숙을 초대하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나.

유화와 함께 아미파의 장로를 초대한다면 신뢰를 빠르게 살 수 있다.

서문이현은 서문패의 의중이 궁금해졌다.

“패 장군은 어떻게 생각하나?”

“초대요? 뭐…… 하민이를 제외하고 군식구가 느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만, 실리를 취하자면 들이는 게 낫지요.”

서문패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유화 자체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언뜻 보기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아미파의 잘못이 될 수 있어도 천재는 스스로 발전할 줄 아는 법.

무인다운 의지가 부족했다.

서문패의 심기는 거기서 반쯤 토라져 있었다.

“오면 일단 개고생부터 시킬 겁니다.”

“손님을?”

“배우려고 왔다지 않습니까? 불가의 대자대비를 배웠다고 살인의 도가 그리 쉽고 가볍지 않다는 걸 알려 줘야죠.”

서문패가 입술을 달싹였다.

“도망치면 거기서 끝. 오히려 귀찮음이 덜어지는 셈이고, 나중에 이런저런 잡소리를 해대면 전서를 공개하고요.”

“아미파의 체면을 깎으려는 건가?”

“뭐 어떻습니까, 사천당가에서 큰 빚을 졌는데.”

서문패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서문이현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한순간 웃을 뻔했으나 서문패의 발언은 아주 작은 선을 넘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한 집단과 앙금을 쌓는 일이다.

그러나 서문패의 강함은 쇠고집과 옹졸함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서문이현은 동생을 잘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꾸짖으면 나중에 술에 취해서 한참을 붙잡힐 것 같았다.

“좋아. 그리하자.”

서문이현의 말에 서문패가 히죽 웃었다.

아미파에서 오는 어린 천재, 유화.

그녀를 어떻게 잘 굴려서 발전시킬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차가 멈춰 섰다.

잘 깔린 길 위로 온갖 사람들이 서문세가의 정문에서 줄 서고 있었다.

유화는 마차에서 사뿐히 내려서 멍하니 서문세가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앞으로 삼십 일.

적다면 적고, 길면 긴 시간 동안 지낼 장소였다.

대명의 군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곳이니, 멍청하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사저,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이제 와서 그런 고민이니?”

은정사태가 헛웃음을 지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장문인이나 장로에게 많은 걸 배워 오겠다고 열변을 토했던 검사가 낯선 곳에서 긴장하는 걸 보니, 이제야 제 나이 또래 같았다.

유화의 어깨가 움츠러든 것이 보였다.

수많은 인파야 호북성에서 봤겠지만, 한 문파의 정문 앞에서 저리 긴 줄을 선 건 처음 보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저 줄을, 자기는 무시해야 한다.

은정사태의 걸음이 앞으로 향했다.

“뭐 하고 있니, 따라오렴.”

은정사태는 본산에서 짓던 부드러운 웃음이 아니라, 딱딱하고 엄중한 얼굴로 유화를 대했다.

공적인 자리.

서문세가에게 부탁하여 한 달 동안 몸을 의탁하러 온 유화와 동행한 아미파의 장로로서 행동했다.

하지만 유화의 생각은 다르게 흐른 듯했다.

“……그리 화내실 필요는 없는데.”

강호의 경험이 일천하여 자리마다 행동거지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은정사태는 처음으로 유화를 너무 무디게 대했나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뭔가를 가르쳐 주기도 전에 서문세가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안쪽에서 예식용 갑주를 차려입은 서문패와 군인 몇몇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은정사태와 유화를 똑바로 직시하고는 철컥철컥 걸어왔다.

“아미파의 여협을 뵙습니다. 서문세가의 장군, 서문패라고 합니다.”

무인이 흔히 하는 포권은 없었다.

그저 가볍게 목례하며 군인의 예를 지켰다.

이에 은정사태는 자연스럽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아미파의 장로, 은정사태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전서로 말씀드렸던 유화입니다.”

“……으음.”

서문패의 시선이 잠시 유화에게 향했다.

그 눈빛이 왠지 모르게 토끼를 바라보는 사자와 같아, 유화는 한순간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물러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꽉 쥐고는 마주봤다.

“좋군.”

작게 중얼거린 서문패가 입술을 씰룩였다.

앞으로 어떤 훈련이 있을 건데, 유약해서야 하루도 못 버틸 터.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었다.

딱 이대로,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타협할 수 없는 존재로 있을 작정이었다.

유화의 성정을 확인한 서문패는 곧바로 뒤로 돌았다.

“가주께서 기다리십니다. 가시지요.”

“예.”

은정사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문패의 뒤를 따라갔다.

이에 줄을 서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여러 말을 쑥덕이기 시작했다.

“아미파가 서문세가에?”

“마교와 싸우고 아무 피해도 없었다는 게 진짠가 본데, 어디가 망가져 있으면 서문세가의 체면이 망가지잖아.”

“서문세가로 투신하러 온 게 다행이야.”

서문세가에 볼 일이 있어 찾아온 상인과 양인.

그리고 군문에 투신하기 위해 찾아온 사내들이 아미파의 방문을 두고 신기하게 여겼다.

자연히 행렬 주위에서 서성이던 호사가 또한 은정사태와 유화의 이름을 종이에 적으니.

‘우리를 초대한 게 이런 뜻도 있었구나.’

은정사태는 서문세가의 심계를 두고 속으로 감탄했다.

마교를 성공적으로 막아 낸 거야 사천성 사람이라면 다 알지만, 타지에서는 빠르게 퍼지지 않았다.

서문세가가 공격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만 퍼졌지, 그 이후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역시 군문이군. 무림의 생각과는 달라.’

공격을 당해서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힘을 과시한다.

은정사태는 이 광경을 눈으로 담으며 아미파에 고언할 것을 기억했다.

반면에 유화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저, 우리가 구경거리가 된 것 같지 않아요?”

“앞으로 겪게 될 일이란다.”

“앞으로요?”

“마교와 싸우게 되면 필연적으로 명성을 얻고, 칭송을 받을 테니까. 이전까진 우리가 성도에 가질 않아서 몰랐던 거지.”

은정사태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워낙 가진 재능이 뛰어나, 항렬을 무시하고 같은 스승을 모시게 된 어린아이였다.

저도 모르게 애정 섞인 분위기가 드러나니, 앞에서 걷던 서문패가 말했다.

“참고로, 앞으로 유화와 다른 숙소에서 지내게 되실 겁니다.”

“예? 하지만…….”

“죄송하지만, 방침이 그렇습니다. 따라 주십시오.”

“…….”

막무가내에 가까운 요구였다.

같은 문파에서 온 제자를 따로 둔다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은정사태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유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애초에 유화가 귀 가문에 배우러 온 자리가 아닙니까? 제가 있어서 눈치가 보일 일이 있겠지요.”

물론 은정사태는 유화가 악독한 훈련에 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그렇듯, 서문세가의 수련을 지켜보거나 초식을 보고 고칠 점을 말해 주는 정도에 그치겠지.

그 상상은 서문패에게 통하지 않았다.

서문패의 머릿속에는 온갖 악독한 훈련이 담겨 있을 뿐.

“좋습니다.”

서문패는 저도 모르게 크게 웃을 뻔할 것을 꾹 참았다.

은정사태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이제 유화를 서문세가의 훈련장에 두고서 굴리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경이가 깨어난다고 해도 만나게 해 주진 않을 거다, 욘석아.’

서문패에게 성하민은 반쯤 가족이나 마찬가지.

이제 와서 아리따운 여성인 유화와 서문경을 만나게 해서 어렵게 할 필요는 없었다.

서문패의 투구 아래, 입술이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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