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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190화 (188/250)

날사이 (2)

운룡대팔식은 보법이자 경공이었다.

대부분의 보신경이 그러하듯이 운룡대팔식은 환(幻)과 쾌(快)의 극을 추구했고, 정(停)보다는 동(動)을 우선했다.

그러한 운룡대팔식은 곤륜파의 무공을 익힌 도사에게 최적의 무공이었으니.

청겸은 운룡대팔식과 태청검을 동시에 펼쳤다.

……까드득!

허공에 검을 휘둘러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쇠못을 철판에 긁듯 기괴한 울림이 남자, 금철군의 귀와 공포를 자극했다.

“이 무슨…….”

이윽고 청겸의 신형이 순식간에 수축하고 펴졌다.

일검을 휘둘렀던 손목이 기이하게 비틀리더니, 불가능한 각도로 휘둘러졌다.

까앙!

막기에 급급했다.

금철군의 몸이 다섯 장이나 밀려 나가며 팔뚝의 근육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금철군은 포달랍궁의 기괴한 무예를 떠올렸으나 금세 뇌리에서 지웠다.

실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사람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가……?! 너무나도 빨라서,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다니……!’

극한의 환, 그리고 쾌.

청겸은 운룡대팔식을 전력으로 펼쳐서, 검을 빠르게 휘두르기만 했다.

그것이 금철군의 눈에는 허공이 휘어지거나, 손목이 꺾이는 것처럼 보일 뿐.

실체가 보이니 거리가 더욱 아득해졌다.

금철군의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크윽!”

재능 있는 후기지수.

하물며, 그가 구파일방에 속한 도사임을 깨닫자 열등감과 분노가 치솟았다.

금철군이 마교에게 목숨을 내놓고 마인이 된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장벽과 재능을 꺾기 위하여.

금철군은 더 이상 청겸을 좌시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막기만 해선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선공. 선공이 답이다.’

공간이 접힐 만큼의 쾌, 자연스럽게 덧붙여지는 환.

고등한 수준의 무예에 대항할 수단은 금철군에게 없었다.

이럴 땐 단순한 힘의 싸움이 나았다.

콰르르르……!

금철군의 생채기에서 핏물이 방울처럼 튕겨 나왔다.

적마에게서 수여 받은 적혈마공의 기운이 칼날에 머금어졌다.

“으아아!”

금철군이 고함을 내질렀다.

타고나지 못한 몸으로 펼치는 마공, 고통이 필연적으로 뇌리까지 치솟았다.

고통으로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으나, 청겸이 자리한 공간이 어딘지는 정확히 알았다.

시뻘건 강기가 칼끝으로 휘감겼다.

청겸은 그것을 보면서도 검을 멈추지 않았다.

적혈마공과 검이 부딪치니.

꽈아앙!

충격을 이기지 못한 금철군의 무릎이 굽혀졌다.

지면이 통째로 주저앉으며 움막을 이루던 나무토막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러나 운룡대팔식의 행공은 멈추지 않는다.

울혈이 턱 끝까지 치솟아도 청겸은 허리를 비틀었다.

기이하게 꺾인 칼날이 금철군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까드득!

금철군의 목이 꺾이면서 몸이 붕 떠올랐다.

청겸은 저도 모르게 의문을 품었다.

‘깊이가 얕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핏줄을 단숨에 끊을 위치에, 정확한 힘을 가했다.

그러지 못한 것은 적혈마공의 존재 때문이다.

피딱지처럼 굳은 마공이 청겸의 칼날을 막고서, 금세 뿌리쳤다.

호신강기를 펼치지 못하는 수준의 무인임에도 적혈마공은 이를 가능케 했다.

청겸의 등줄기에 오한이 치솟았다.

‘겨우 이류 수준 남짓한 무인이, 마공을 익혔다고 이 정도라면…….’

강호에서 고수라고 불릴 만한 무인이 마도에 입문한다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 의문이 청겸을 두렵게 했다.

천무학관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뒀던 남궁명이 강호를 배신할 까닭을 머릿속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심정은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화가 불쑥 치밀었다.

“무인이라는 자가, 스스로 이루지 못하고 사특한 힘에 의존하다니.”

작은 속삭임이 금철군의 귓가를 스쳤다.

금철군이 눈을 잠시 크게 뜨고는, 어금니를 꽉 다물었다.

그의 주먹에 검붉은 강기가 맺혔다.

주먹에 담긴 무게는 무거웠다.

꽈아앙!

낮게 떠오른 몸으로 휘두른 일격이라기엔 너무나도 강력했다.

청겸의 몸이 뒤로 날아가 폐허가 된 움막 안쪽으로 날아갔다.

금철군은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는 청겸이 처박힌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방금 공격으로 청겸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랬다.

……탁.

나무판자를 지르밟은 발소리.

금철군의 전신에 오한이 스쳤다.

마인이 되기 전이라면 느끼지 못했을 날카로운 예감이 뇌리까지 치솟았다.

콰르르르!

건물 내부에서부터 흩어진 파편이 금철군의 시야를 막았다. 금철군은 반사적으로 양팔을 휘둘러 파편을 모조리 쓸어냈다.

깨끗해진 시야에 청겸은 없었다.

“……!”

금철군이 뒤늦게 눈을 가늘게 떴을 때, 청겸은 그의 뒤에 있었다.

운룡대팔식에서 이어지는 분광검(分光劍).

타문의 검법에도 흔히 존재하는 분광검이나, 청겸의 손아귀에서는 실로 빛을 나눌 정도로 빨랐다.

서걱!

적혈마공의 호신막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베였다.

금철군의 양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끄아악!”

비명을 지른 금철군은 치솟는 핏물을 놓치지 않았다.

목숨을 내다 버릴 작정으로 청겸과 동귀어진할 심산을 품었다.

염정화기(染淨火氣).

금철군에게 허락되지 않은 적마의 절기가 펼쳐졌다.

화르륵!

엄청난 열기가 청겸의 눈가를 찔렀다.

한순간 청겸의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하, 하하!”

금철군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저승사자처럼 험악하게 웃고는 검을 사선으로 올려쳤다.

옆구리부터 어깻죽지까지, 단숨에 베어서 죽일 작정으로.

지극히 날카로운 살기가 청겸의 살갗에 닿자, 청겸은 본능적으로 보신경을 펼쳤다.

지난 백오십 일. 아니, 그 이전부터.

정심하게 갈고 닦은 운룡대팔식의 걸음이 위로 치솟았다.

까마득한 높이까지 다다르고 나자, 열기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청겸은 속으로 생각했다.

‘진심으로, 사문의 은혜란 갚을 길이 없이 깊구나.’

사문이 베푼 무공이 이토록 뛰어나고 깊었음을.

청겸은 뒤늦게 깨닫고서 눈시울을 붉혔다.

곤륜파의 무공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을 목숨이었다.

“돌아가서 보은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청겸의 시선이 땅에 쓰러진 금철군에게 향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미쳤다.

“……수련은 이만하면 됐으니, 돌아갈 때라도 옷을 갖춰 입는 것이 제자로서 제대로 된 차림새가 아닐까?”

백오십 일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증명을 맛본 청겸은 겉치레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아직 그의 나이가 열일곱.

잿밥에 관심이 많을 청춘이었다.

* * *

“유화야, 오늘은 여기서 멈추지 않겠니?”

“……예.”

유화가 아쉽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는 검을 회수했다.

검에서 늘어진 그림자가 어느새 길어져선, 아미파의 본당에 닿을 듯했다.

그녀에 반해 은정사태는 숨이 거칠었다.

‘사천당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

안 그래도 수련에 미쳐 있던 사매가 아침저녁으로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도 날카로워서 비무에서도 살갗에 상처를 남기는 것이 흔했다.

아미파의 후기지수끼리 유화와 비무하는 건 피할 정도였다.

그래서 장로 혹은 장문인이 직접 손을 섞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마저도 힘에 부칠 정도였다.

‘은명사태가 그리 된 일이 큰 충격이었겠지.’

천무의 기재를 타고났음에도 싸워야 할 시기를 놓치고, 서문경에게 큰 도움을 받고 말았다.

이 부채의식 또한 유화의 마음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지금만 봐도.

“서문 공자처럼 강해지려면 아직 멀었는걸요.”

“화야…….”

“다른 어르신께 여쭤봐 주시면 안 될까요?”

“네 검에 점차 살기가 짙어지는 건 알고 있니?”

“…….”

그 말에 유화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이야 있었다.

살기를 담지 않은 검으로 어찌 마인을 이길 수 있겠냐는 투덜거림이었다.

그걸 어찌 은정사태라고 모를까?

은정사태는 부드럽게 웃으며 유화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화야. 네 뜻은 잘 알겠지만…… 아미의 검은 남을 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 몸을 지키고 수양하기 위함이란다.”

“하지만…….”

“네 조급함이 점차 칼끝을 예리하게 해서야, 나중엔 자기 칼에 찔릴지도 모른단다.”

“……그래도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덧붙이고 싶은 걸까.

유화는 아직도 침상에서 끙끙 앓고 있는 은명사태를 떠올렸다.

자신이 약하지 않았다면, 만약 서문경처럼 단신으로 칠로두와 맞서 싸울 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그 막심한 후회가 그녀 안에 있었다.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천무의 재능이니, 천랑성으로 불렸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내가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야.’

천무학관에서의 삼 년은 값졌지만, 중간에 그만둔 서문경의 성장이 더 눈부시지 않았나.

서문경을 떠올린 유화는 자연스럽게 입술을 달싹였다.

“저, 몇 달 동안이라도 서문세가에서 지내보고 싶어요.”

“……뭐라고?!”

은정사태는 눈을 크게 떴다.

평생 아미산에서만 지낸 유화가 꺼낼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서문세가는 군문이 아닌가?

불가의 가르침을 들은 그녀가 있을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들은 나라의 명령으로 살생을 마구잡이로 행하는 악귀나 다름없었으니까.

은정사태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깃들었다.

“화야 하지만…… 안 된다는 건 알잖니.”

“배울 점이 있다면 가야 해요.”

유화의 뜻은 도저히 꺾일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은정사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혼자서 결정하고 말해 줄 사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유화가 한 달 동안 지내러 온다고?”

성하민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직은, 서문경이 심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날사이에 벌어진 소동이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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