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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186화 (184/250)

겨울 (5)

남을 베려거든,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팔과 검의 길이.

일보로 좁히는 거리.

일검에 소모하는 내공과 체력, 그 횟수까지도.

고수는 강박적으로 자기 자신을 기억하고 매일 갱신한다.

수련 도중에 싸우는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싸울 수 있도록 숙지해야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하나 절대고수는 다르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검에 닿는 공기의 흐름까지도 감각적으로 느낀다.

타인이 허공을 볼 때 절대고수는 공간을 인식하고, 땅은 곧 융단이나 마찬가지다.

직관의 변화는 틀에 박힌 인식을 바꾸고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게 한다.

화살이 어디서 쏘아졌는가, 또, 얼마나 빠른가.

이 정도야 눈을 감고도 알아챌 수 있는 것이 절대고수이나…….

‘모르겠어.’

서문경은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의 심상임에도 타지에 온 것처럼 낯설기만 했다.

‘저놈은 날개라도 달린 건가?’

제아무리 절대고수여도 허공에 평생 체류할 순 없는 법이다.

특히 병장기를 든 무인이라면, 대지를 통해서 회전의 힘을 칼끝에 더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궁수일지라도 집중하기 위해서는 상승의 보신경을 항시 펼치는 건 불가능하건만.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불청객은 상식을 가볍게 비웃었다.

“……흥.”

목소리는 육합전성이라도 쓴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역시나, 위치를 특정할 만한 틈은 주지 않았다.

……피잉!

극히 작은 소리가 빠르게 가속한 순간, 서문경의 몸이 잔상이 되어 흩어졌다.

흩어진 잔상은 곧바로 허공으로 모여들었다.

운룡대팔식이었다.

곤륜파의 보신경이자 천하의 정점이라 불리는 경공술.

무형희 화살은 서문경을 맞추지 못하고 재가 되어 흩날렸다. 하지만 불청객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깟, 한 수.”

하나쯤 있으리라 여겼다며,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겉모습은 어려도, 무시할 수 없겠지. 그야…….”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삼켜졌다.

서문경의 귓가를 찢어 버리는 듯한 소음이 퍼졌기에.

끼기기긱!

수십 마리의 새가 청동 방패를 긁는 것 같았다.

서문경의 인상이 자연스레 찡그려지고, 귀에서 피가 흘렀다.

단숨에 내공으로 보호했음에도 이 지경이다.

창왕이 그랬듯, 이자 또한 음공에 조예가 있는 듯했다.

이윽고 허공에서 여러 마리의 뱀이 춤을 추는 환청이 보였다.

“……!”

서문경은 운룡대팔식을 펼쳐 뒤로 물러났다.

시야를 넓게 보니 뱀의 정체가 보였다.

‘화살 다섯 발, 일순(一巡)을 동시에?’

심지어 기류를 따라서 이리저리 방향이 꺾이는 것이 보였다.

속도는 이전과 같다.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꿰뚫던 그 극속(極速)이다.

까득.

서문경은 이를 꽉 다물고는 강기를 흩뿌렸다.

호신강기가 화살을 모조리 부러뜨린다.

바람의 기류마저도 부딪쳐서 깨어지고 만다.

그 강기를 손바닥에 담았다.

슬쩍 들어 올린 손에 묵빛의 장력이 휘감겼고, 홍가권의 일장이 되었다.

쩌억!

손바닥에서 터져 나간 장력이 허공을 때렸다.

“……흥!”

또다시 비웃음.

불청객은 전처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실망감을 표했다.

“무슨 짓을 하나 했더니, 결국 단순하고 쉬운 방법인가…….”

불청객의 신형이 한순간 가속했다.

서문경의 운룡대팔식보다 빠르고 경쾌한 걸음이 구름 사이를 비집었다.

쿠궁, 쿵!

거대한 파문이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퍼졌다.

그 걸음이 서문경의 코앞까지 당도했을 때, 불청객의 팔꿈치가 휘둘러졌다.

그 순간에 서문경은 칼을 휘둘렀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이 부서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

‘무슨 힘이…….’

활이 주무기가 아니었다는 걸까?

불청객은 팔꿈치를 휘두른 걸 시작으로 권각법을 펼쳤다.

허공에서 일어나는 박투가 대기를 부수고 연이어 파공성을 일으켰다.

서문경이 그에게 맞서기 위해 발을 뻗었다.

콰쾅!

운룡대팔식의 폭발적인 힘을 각법이 그대로 이어받는다.

발끝을 세우면 창(槍)이요, 휘두르면 도(刀)와 다름없다.

극에 이른 보신경에서 이어지는 박투.

서문경은 불청객의 얼굴이나 행색을 살필 겨를도 없이 주먹과 발을 찌르고 휘둘렀다.

짧은 움직임만으로 대기의 기류를 마음대로 주무르니, 폭풍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청객의 기예 또한 만만치 않다.

“도저히 따라오질 못하니, 수준을 맞춰 주마.”

오만한 어조가 어울리는 격조가 그 몸에 깃들어 있었다.

활을 놓고 들이닥친 불청객의 박투술에는 낭비가 없었다.

쩍, 하면 서문경의 심장을 두들기고.

아차 하는 순간에 폐부를 찌른다.

갈비뼈 사이를 짓무르는 손가락이 찰나의 숨을 앗아 간다.

숨을 고를 시간은 조금도 없었다.

서문경은 고통을 인내한 채 불청객과 손을 섞었다.

살의가 더해졌다.

‘관(貫).’

두 손가락을 꼬아서 앞으로 내지른다.

목젖이나 가슴팍을 찔러, 숨을 빼앗으려는 술책이나 불청객이 아래로 쳐 냈다.

반격이 순식간에 이어진다.

불청객은 입술을 이죽이고는 어깨를 퉁긴다.

팔뚝이 채찍처럼 휘둘러진다.

서문경은 무릎으로 채찍 끝을 막았다.

공방이 이어질수록 숨이 가빠지고 근육이 달궈지는 듯했다.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청객은 아니었다.

“이마저도 부족해.”

실망감이 가득한 음성이 서문경의 감정을 두드렸다.

대체 무엇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식으로 뒤흔드는 것일까.

서문경은 묻지 않았다. 무(武)로 대답했다.

스르릉……!

충분한 거리를 넓히지 못했다.

세 치에서 네 치 사이, 검을 휘두르기엔 협소한 너비에서 공간을 억지로 넓혔다.

화륜적하(火輪赤霞),

무의식중에 머릿속을 떠돌던 검의(劍意)를 아낌없이 펼친다.

매화의 색을 닮은 강기가 바퀴처럼 빚어진 채 회전했다.

불청객의 인상이 처음으로 찡그려졌다.

그러나 수세로 돌아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는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단조로운 수도를 휘둘렀다.

단 한 번 횡으로.

고작 그것뿐임에도 화륜을 멈췄지만.

‘베어 내지는 못해.’

서문경은 전진했다.

화륜이 시뻘건 강기를 흩뿌렸다. 다가가는 만큼 화륜의 위협은 커졌다.

“……칫.”

불청객이 거리를 벌렸다.

어느새 그의 손에 활이 들려 있다가, 살짝 흔들렸다.

시위가 당겨진 것도 아니고, 화살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실체를 가진 무언가가 쏘아진다.

스가가각!

다섯 발과 열 발.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가속한 화살이 불규칙한 시간을 두고서 꺾였다.

사람의 눈으로 담을 수 없는 각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문경의 검이 화살을 확실하게 쳐 냈다.

불청객의 눈동자에 이채가 띠었다.

“……!”

뒤이어 화살이 연거푸 쏘아졌다.

어느새 그의 신형은 허공에서 녹아서 사라졌다.

초월 혹은 절대.

고수라는 단어로 가둘 수 없는 수준의 기예가 서문경을 향해 쏟아졌다.

화살로 만들어진 홍수와 같았다.

아니, 설령 사천당가가 독마를 완성하고 만천화우를 펼친다고 한들 불청객에게 따라갈 수 없으리라.

화살을 한참 동안 쳐 내던 서문경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대는 누굽니까?”

“나? 나는…….”

불청객은 한순간 대답을 망설였다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일개 궁사와 다를 바 없지.”

“……그렇습니까.”

회한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그 또한 창왕처럼 천마에게 패배한 자임을 깨달았다.

죽음은 그 순간에 찾아왔다.

푸욱!

서문경의 심장이 꿰뚫리고, 암흑이 찾아왔다가 또다시 광명이 찾아왔다.

불청객. 아니, 궁사는 말했다.

“다시.”

“…….”

서문경은 말없이 기수식을 취했다.

* * *

보름 뒤.

서문세가에 한 가지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일공자님께서 요즘 두문불출하시다면서?”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다던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수련동에 식사 거리를 들고 가는 게 보여야지.”

“음…… 전에 사천당가에서 고생하셨다고 듣긴 했네만.”

서문경의 행방이 불분명하다.

혹은 갑자기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은둔했다.

어느 쪽이든 좋지 않은 소문이었다.

강호에 퍼지지 않은 건 서문세가 내부의 결속력 덕택이었다.

다만, 서문세가에 일정 기간마다 방문하는 정의맹 관련 인사나 강호의 무인까지 완벽하게 속일 수는 없는 법.

서문이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진맥 결과는 어떠한가?”

“건강하십니다. 워낙 고수시고 건강하시니…… 향후 보름은 물만 먹여 주신다면야 몸이 나빠질 일은 드뭅니다.”

“언제 일어나느냐고 물은 걸세.”

그 말에 의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저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가?”

서문이현의 이마에 깊은 상심이 남았다.

서문경이 오랫동안 잠에서 일어나질 않는다고 하여, 황실에 청해서 데려온 의원이건만.

그 또한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독성이 약한 약이나 어떠한 기운이 강한 영약을 먹이면 곧바로 일어나실 것 같습니다만, 위험한 선택입니다.”

“가만히 두라는 건가?”

“예. 지금 당장은…….”

“으음.”

서문이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의원 말고도 서문경을 걱정하여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서문패부터 시작하여 성하민, 서문휘에 은조영까지.

서문경의 존재가 워낙 중요하여 극소수만 알도록 했으나, 언제까지 지켜질지도 몰랐다.

‘차라리 우리가 군문이라 다행이군. 무가였다면 금방 퍼졌을 텐데.’

그러나 오랫동안 두문불출하면 의심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

서문경의 부재는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게 뻔했다.

특히 정의맹의 설립에 참여한 문파나 가문 중에서 서문경에게 의존하는 면이 강한 곳이 많았다.

최근에 합류한 아미파가 특히 그러했다.

‘네 영향력이 이토록 커졌는데, 정작 네가 이런 식으로 가만히 있으면 어쩌라는 것이냐.’

수련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병증이라면?

그 생각이 드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서문이현답지 않은 긴장감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경이의 현 용태는 함구하시오.”

서문이현은 이 말을 끝으로 방에서 나갔다.

마음이 너무나도 착잡했다.

그날 밤.

서문세가의 담장 주위에 흑의인이 모여들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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