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82화 (180/250)

겨울 (1)

사천당가가 멸문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오대세가의 한 축이 무너진 소식에 천하가 진동했다.

가는 곳마다 사천당가의 멸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문세가의 단호한 대처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혼란한 때를 틈 타 강호를 대명 아래에 복속시켜려는 게 확실하네!”

“아니, 이 사람아. 당가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지 않았나?”

“내 듣기로 아미파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하던데?”

“아니지. 마인을 만들려고 한 짓이 들킨 거지.”

이와 같은 대화였다.

개중에는 대명의 관리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소문이 있었으며, 사천당가의 멸문을 불안하게 본 오대세가가 가솔을 시킨 것 또한 있었다.

구주가 이리도 혼란했다.

마교와 외세가 천하를 억죄고, 사파가 은연중에 야심을 드러낼 때에도 뜻은 규합하지 못하고 흩어진다.

서문경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합해지는 게 없으니, 옛 황제께서 그리 단호한 대처를 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어쩌겠어. 자기 밥그릇이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인데.”

서문패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서문경을 위로했다.

그 또한 아니꼽긴 마찬가지였다.

썩을 놈들, 정말로 자기 가족이 다 죽어 봐야 뒤늦게 후회할 것인지.

……물론 서문세가가 강호의 기를 꺾어 놓고 있는 건 맞지만.

복잡한 생각을 흩어낸 서문패가 히죽 웃었다.

“그래서, 성 소저와는 잘 되고 있냐?”

“갑자기 뭔 소립니까?”

“야, 네 나이가 이제 곧 열여덟이다. 다들 장가가고 아이 낳고 사는 나이에 천하를 떠도는데…… 객사하기 전에 씨라도 남겨야지.”

“…….”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소리는 서문패뿐만 아니라 서문이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절대고수의 경지에 오른 자신이라면 엄청난 기재를 품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지만 서문경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천재 같은 게 아니라, 미리 익힌 것을 되풀이할 뿐인데.’

물론 무공사전과 천주심경의 수련을 통해 추가로 익힌 것이 있긴 했다.

그러나 삼촌이나 아버지가 생각하는 대로 칼을 쥐자마자 깨달음이 퍼뜩 나타나는 수준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전생, 관존이라고 불리던 때의 무공에 반쯤은 의존하고 있었다.

그것이 서문세가의 가전무공을 전부 익히고 있는 꼴이라, 서문휘가 제법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형은 모든 걸 익히고 숙련하는 과정에 있지 않느냐!

……면서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같은 핏줄이니 은연중에 기대를 받는 모양.

저 멀리서 서문휘가 녹초가 된 얼굴로 손을 가볍게 흔들어오기에 밝게 웃어 주었다.

그러자 서문휘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칫.”

‘뭐야?’

인사를 해오기에 받아 줬더니, 갑자기 혀를 차?

오랜만에 형제간의 우애를 다질 때가 되었나.

서문경은 서문휘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우리 동생.”

“……뭐, 뭐야?”

“뭐긴 뭐야. 거리 두는 거면 섭섭한데?”

“아니, 그게 아니라.”

서문휘가 가볍게 투덜거렸다.

“워낙 이리저리 바쁜 몸께서 못난 동생을 신경 쓸 겨를이 있냐는 거지.”

“……오.”

서문경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전생에서도 들은 적이 있는 말이다.

가주에 오른 자신에게 빈정대는 말이었던가?

지금은 상황이 완전 다르기에 피식 웃고 말았다.

“형한테 지금 투덜거리는 거냐?”

“너무 잘나서 내가 힘들어지잖아. 무공이고 전술이고, 아주 잘 배워 놔서.”

“……음. 그건 좀 미안하긴 하네. 내가 선행 학습을 했거든.”

“언제?”

“어…… 십 년 후까지?”

“농담하기는.”

서문휘가 아이답게 경쾌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전생에선 언제나 삐딱하게 곯아서는, 음침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동생이었는데.

상처가 많던 동생이 이렇게 밝아진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하, 녀석. 내가 가르쳐 주랴?”

“다른 사람한테 다 들었어. 형은 가르쳐 주는 게 형편없다던데.”

“……누가 그래?”

“주 무사.”

“주백경 그놈이?”

“솔직히 맞긴 하잖아.”

“……어, 음.”

서문경은 순간 말이 막혔다.

워낙에 혼자서 수련하는 시간이 많은지라, 웬만해선 남을 가르치기가 귀찮았던 것이다.

그래서 가문의 행사에 따라 참석하는 교습일에도 대충했다. 검이나 던져 주고 덤비라는 것이 전부였다.

주백경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서문경의 입술을 씰룩였다.

“간만에 주 무사의 수행이나 도와줄까.”

“그러지 말고.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응? 어디?”

그 말에 서문휘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묘소.”

“뭔 묘소?”

“……어머니랑 같이 가서 인사드리기로 했어. 그 자리에 형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

서문경은 그제야 서문휘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니, 알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서문경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어머니의 묘소 말이냐?”

“응.”

“언젠데?”

“내일, 정오에.”

“그렇구나.”

서문경은 잠시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쌓인 벽이 있었다.

본처와 후처. 소가주라는 유일한 자리.

특히 서문휘의 어머니인 은조영은 후처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몹시 강했고, 본처의 아들이었던 자신을 자연스럽게 적으로 여겼다.

가주의 어머니. 그 자리를 반드시 원했던 거겠지.

그래서 전생에선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었다.

서문휘의 심중에 상처가 쌓이는 걸 보고도 모른 체했다.

‘이리도 부질없는 걸 내어 주니, 벽이 허물어지는구나.’

서문세가의 소가주가 무슨 소용이겠나.

당장 마교를 무찌르지 못하면 모래성처럼 무너질 가문인데.

하물며, 서문패처럼 자유롭게 살면 그만인데.

이렇게 쉬운 걸 하지 못하고 등 돌리고 살던 것이 우스웠다.

서문경은 기억 속에 잠들어있던 어머니의 유언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가족끼리 거리 두지 말고…… 응? 잘 살아야 해.

‘…….’

서문경은 애써 웃었다.

용기를 낸 서문휘에게 다른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나도 같이 가자.”

“……정말?”

“어.”

그 말에 서문휘의 표정이 밝아졌다.

뒤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무림.

마교의 잔혹함.

사천당가에서 있었던 싸움과 소득, 독물의 악랄함.

그리고 독마까지도.

한참을 듣던 서문경이 독마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이해가 되긴 하네. 사실, 그 사람…… 원래 형의 동기처럼 생기지 않았을 거고 몸속에 독을 품진 않았을 거 아니야.”

“그 사람도 특이한 체질이었겠지.”

“가끔, 먹고 살 방법이 없어서 입대하는 사람이 있잖아. 그 사람은 선택해도 불행한데, 억지로 끌려 와서 그런 거면 얼마나 불행하겠어?”

“……허.”

서문경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기억 속의 서문휘라면 냉소를 흘리며 반드시 죽여야 할 재앙이라고 말했을 텐데.

독마의 사연에 공감하는 걸 보니 전생과 현생이 다르기는 하다.

서문경이 우물을 가리켰다.

“만일 독마가 말이야. 물을 뜨려고 우물에 손가락을 담갔다고 치자.”

“……?”

“그 우물을 쓰는 마을의 삼분지 일은 죽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기에 전염되겠지.”

“…….”

“독마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 없어. 나나 삼촌이 그 자리에서 죽이려는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건, 참.”

“불쌍한 일이지.”

서문경도 그 점에선 크게 공감했다.

누가 사천당가의 대법을 흔쾌히 허락하겠는가?

납치했거나, 가족에게 큰돈을 주고 사왔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천당가는 수많은 모략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연 하나하나에 공감할 수 없어. 북적이든, 왜구든, 하나씩 사연이나 명분을 가지고서 싸우기 마련이니까. 그들이 불쌍하다고 봐준다면 이 땅을 내어 줘야 해. 그리고 더 원하겠지.”

서문경은 군인으로 살면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다가 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운남성에, 가족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마교에 의탁한 명가가 있었어.”

“어딘데요?”

“묻지 말고 일단 들어 봐. 그래서 서문세가가 가서 사연을 들었지. 그들은 원래 관리를 배출하던 가문이니까, 어쩌다가 이리 되었냐고. 지휘관은 그들과 원래 아는 사이라서 봐주려고 했지.”

“네.”

“근데 병졸 한 명이 말한 거야.”

서문경이 목소리를 굵직하게 가다듬고는 말했다.

“운남의 산은 걷기만 하면 과육이 보이는 곳입니다. 손에 흙을 묻히기 싫어서 마교에 의존한 것이 아닙니까? 라고.”

“…….”

“사연이란 변명이 있기 마련이고, 사연이 절실해도 다른 사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잘라 내야 할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해. 내가 군인이라서겠지.”

서문경은 혹여라도 서문휘의 가치관에 관여할까봐 말을 다듬었다.

애초에 자신은 선인이 아니니까.

군인으로서 대명의 평화에 이바지하고 마교와 싸울 뿐, 대단한 사명감은 없었다.

강호의 대협(大俠)이라고 한다면 아마, 협의라고 말하겠지만.

서문세가는 대명의 천하를 수호한다.

이 대명제가 서문경을 지탱하고 있었다.

“독마가 잘 살면 다행이지만, 아마 평탄하진 못할 거야. 만약에 남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서 등에 상처를 남긴 거고.”

아직 자기 힘도 제어하지 못해서 입김에서 독이 나오는데, 일상생활은 어떻겠나.

서문경은 서문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좋은 이야깃거리였니?”

“생각할 게 많아요.”

서문휘의 표정이 몹시 진지했다.

나이 어린 동생이 저렇게 골똘히 고민하는 걸 보니 귀여웠다.

서문경은 히죽 웃고는 등을 돌렸다.

“내일 보자.”

“…….”

서문휘의 심중에 큰 파문이 일고 있었다.

가을은 여름보다 더욱 빠르게 지나가서, 겨울.

차가워지는 바람에 소년이 여물어 간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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