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81화 (179/250)

독마 (6)

창왕의 기예, 그리고 경험으로 축적한 임기응변.

서문경은 심상에서 가히 무한한 시간을 보냈다.

그를 꺾을 때까지, 완벽하게 무학을 습득할 때까지.

창을 궁구하게 익힌 서문경이라는 가능성.

신비한 무공사전과 천주심경이 불러왔을 또 다른 서문경의 강함을 몸에 새겨 넣기까지 얼마나 힘겨웠던가.

“뭐, 이런…….”

당연하지만, 독왕은 이를 알지 못한다.

서문경의 손바닥 안, 겨우 두 치에서 세 치 안에서 일어난 현상을 보고서 전율하고 신음했다.

“칠로두 외에도 이런 괴물이……, 저 나이에!”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었다.

독왕의 눈빛에서 불티가 번뜩였다.

사천당가가 백 년이 넘도록 이루지 못한 비원과 격이 같은 무예와 기예.

그 편린이 저 돌풍에서 보였다.

눈이 유난히 좋은 독왕이었기에 보였다.

이무기가 마침내 용이 되어 승천하려는 듯한 창날을.

저 뾰족한 살기가 독마에게 닿으리란 예감까지도.

“인정할 수 없다. 아니, 그럴 순 없어!”

독왕이 이를 뿌득 갈았다.

독마가 당장 한 명이 아니라 두셋이었다면,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너무 서둘렀나? 서문경이 타 지역에 출타했을 때를 노려야 했나?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과 공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 직후에 두 가지로 걸러졌다.

천무의 재능을 타고난 유화보다도, 더욱 불합리한 존재에 대한 절망과 분노.

그리고 저놈을 이용해서 만들 독마가 어떨까 하는, 비원을 연구하는 자로서의 호기심.

독왕의 눈에 욕망이 일렁였다.

“……다시는 빛을 볼 수 없게 만들어 주마.”

“흥. 누가 할 소리를.”

서문경은 허세를 잔뜩 부리며 창을 휘저었다.

사실, 완벽하게 파훼하지는 못했다.

연기가 물체도 아니고 어찌 걷어치울 수 있겠나.

‘따갑군.’

손등의 피부가 따가웠다. 머지않아 짓무를 거라고 확신했다.

고수는 제 몸을 완벽하게 알기 마련이기에.

‘창왕도 독 쓰는 놈이랑은 싸우지 말라고 했었지.’

창은 검이나 도보다 훨씬 긴 장병기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독보다 길진 않다.

풍랑에 따라서 고수의 창보다도 더욱 빠를 수도 있다.

그 사실이 서문경의 심경을 짓눌렀다.

가문에서 가져온 해독약이 있긴 하지만, 사천당가가 작정하고 만든 극독까진 방비할 수 없을 터.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였다.

“……삼촌.”

“안다.”

서문패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늘 자기가 맡는 역할을 잘 알았다.

길을 여는 것.

서문세가의 영광과 힘이 적에게 닿도록, 있는 힘껏, 용력을 다하는 것.

서문패가 크게 웃었다.

흰 이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였다.

“따라 와라.”

그 말을 끝으로 서문패가 땅을 박찼다.

독연 안으로 뛰어드는 꼴이었기에 독왕과 독마가 손을 휘둘렀다.

사방팔방, 어디로 몸을 퉁겨도 피할 수 없도록 암기를 흩뿌리는 기예.

천수나타를 방불케 하는 암기술에 서문패는 실눈을 떴다.

피하지 않는다.

서문의 방벽이자 선봉대장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나방처럼 맹진했다.

“……!”

가공할 만한 돌진에 독왕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독마는 무심한 얼굴로 서문패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아직 완성되지 얼마 되지 않은 개체.

전투의 경험이 부족했다.

독왕이 가르친 대로 행할 뿐이었다.

절명수(絶命手).

보라색으로 물든 장심을 서문패에게 휘둘렀다.

지척이었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이마에 손가락 끝이 닿을 듯했다.

서걱!

“……윽.”

처음으로 느끼는 통증에 독마가 신음했다.

잘려나간 손목에서 피가 흩뿌려지는 사이, 서문패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두 번째.

한번 휘둘러진 칼이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독마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당했잖아.”

서문패의 눈동자가 흐물흐물해지고 있었다.

독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녹아내린다는 뜻이기에.

독마는 저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았다.

대법을 겪으면서 몇 번이고 기절하고 쓰러졌다.

그러나 눈앞의 서문패는 아무렇지 않게 움직였다.

이를 꽉 깨무는 기색마저 없었다.

“어떻게, 그러지.”

독마의 눈동자가 커졌다.

서문패의 칼날이 목을 향해서 솟구치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

독왕이 황급히 독마의 옷깃을 잡고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암기를 흩뿌렸으나, 서문패가 검을 빠르게 휘둘러 쳐 냈다.

바로 그때였다.

“삼촌!”

등 뒤에서 들려온 서문경의 목소리.

서문패는 본능이 말하는 대로 몸을 뒤로 뉘였다. 완벽하게 펼쳐진 철판교 위로 한 줄기 그림자가 지나갔다.

장창(長槍).

서문세가의 십팔반, 그중 하나가 독왕을 향해 날아갔다.

‘과연, 좋은 판단이다.’

독마야 쉽게 죽일 수 있으니, 독왕의 도주를 막는 것이 상책.

서문패는 똑바로 서고는 결과를 지켜보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네, 네가 어떻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독왕의 심장을 관통한 장창, 누군가의 등을 뒤에서 밀친 듯 어정쩡한 자세의 독마.

어떻게 됐는지 명약관화했다.

독왕은 표독스러운 얼굴로 독마를 노려보았다.

“감히 나를……!”

“……가르치지 않았나요.”

독마가 샐쭉하게 웃었다.

“언제든 살아남으라고. 사천세가의 동량을 방패로 삼아서라도.”

“……!”

“독마는 나로 충분해요. 더 있는 꼴을 보았다간, 늦을 것 같거든.”

독마의 손이 예리한 살기를 담은 채 쏘아졌다.

촤악!

독왕의 가슴팍에서 보라색 피가 터져 나갔다.

절명수에 담긴 오독의 합일.

본래 붉은색이었을 전신의 피가 단숨에 독으로 화할 정도다.

서문패는 지독한 독기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전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기에 이를 꽉 물었다.

“살아남을…… 것 같으냐!”

“거래하죠.”

독마의 목소리는 나른했다.

사천당가가 전부 죽어 나가고, 불타는 와중에도 눈동자에 생의 갈망이 가득했다.

아직 겪지 못한 일.

싸움과 투쟁, 소소한 식도락에서 오는 즐거움.

그것을 모두 좁은 암실 안에서 말살당했다.

때때로 동정심을 품고 오는 가솔에게 듣는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독왕의 귀에 들어가면 다시는 찾아오지 못했다.

아, 죽었구나.

그렇게 가늠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독마의 원한은 상상 이상으로 지독했다.

독왕이 품은 야망만큼이나. 생존하고 싶었다.

“당신과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과 손이 녹을 거예요.”

“……각오하고 한 일이다.”

서문패가 꼿꼿이 선 채로 독마를 노려보았다.

절대 굴하지 않을 의지 그 자체.

독마는 자연스럽게 그 뒤에 있는 서문경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는 서문패와 다르게 고민을 품고 있었다.

“삼촌.”

“언제든 재앙으로 화할 놈을 보내자는 거냐?”

“여기서 우리가 눈이나 손을 잃으면…… 막을 방도가 사라집니다.”

“……음.”

서문패는 침음했다.

여기서 독마를 죽일 수야 있지만, 마교는 어찌할 것인가?

그 고민이 서문경에게서 전염되었다.

“한 가지 약속할 수 있겠느냐? 네 생존이나 존재를 걸고.”

“무엇인가요?”

“사람을 죽이지 마라.”

그 말에 독마가 아주 쉬운 약속이라는 듯 빙긋 웃었다.

“나라고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이렇게 되었을까요?”

“……믿기진 않는군.”

“아, 그리고.”

독마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유화에게 향했다.

유화 또한 시선을 느끼고서 고개를 돌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 증오심이 있었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는 점이었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할 정도로.

독마는 그 감정에서 어느 정도 타협했다.

“저 여자와는 마주치지 않게, 동쪽으로 향하지요.”

“……서문세가와 멀어진다만.”

“의심이 많으시군요.”

“흥. 사특한 대법으로 만들어진 놈에게 어찌 인의나 도리, 양심을 바랄 수 있으랴.”

서문패는 코웃음을 치며 독마에게 칼을 겨눴다.

어느덧, 독기가 눈 안쪽까지 치밀어서 시야가 흐릿했다.

“여기서 널 죽이고 해독제를 찾는 게 낫겠지.”

“응, 그걸 생각하셨나요.”

독마는 방긋 웃으며 독왕의 가죽 주머니에서 해독제를 꺼냈다.

“이게 유일한 것이에요. 워낙 믿는 사람이 없어서, 자기만 가지고 다니죠.”

“……!”

“믿어 주세요. 나는, 살려고 이런 거니까. 어쩌면 마교가 완전히 이 땅을 밀고 들어올 때…… 아군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음.”

서문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문경에게 향했다.

별동대장은 자신이긴 했지만, 이런 중요한 국면에선 늘 서문경의 판단이 옳을 때가 많았다.

나이가 어리긴 해도 배울 점이 많은 조카니까.

그 믿음에 서문경은 짧게 답했다.

“……그럽시다.”

“저 말을 믿느냐?”

“청마를 겪어 보셨으니 아시겠지요. 애매한 거리가 있더라도, 마교와 대적할 고수가 한둘이라도 필요합니다. 하물며.”

독마는 오걸에 가까운 고수를 둘에게 치명상을 입힐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나.

어쩌면 칠로두에게 닿을지도 모른다.

서문경의 시선에 독마가 깔깔 웃었다.

“이제야 서로 믿음이 생긴 건가요?”

“믿음은 무슨, 독왕을 가차 없이 찌른 게 자유를 찾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르는데.”

“…….”

그 말엔 독마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독왕의 대법에는 자기 말을 듣게 만드는 좌도방의 술법이 있었으니까.

그가 살아있는 한 사람답게 살 수 없다.

그것이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독마는 뒤늦게 표정을 수습하고는 가죽 주머니를 흔들었다.

“어쨌든,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받아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흥. 그래. 넘겨라.”

서문패는 마뜩찮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서문경의 말대로, 아직 자신이나 별동대는 쓸 곳이 많았다.

여기서 사지 중 하나를 잃을 인재가 아니었다.

마교와 오대세가, 혹은 구파일방의 일익까지 상대해야 할 테니까.

서로 뜻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한 독마가 가죽 주머니를 허공에 던졌다.

“……!”

그와 동시에 서문경이 보신경을 펼쳤다.

허공을 유영하는 운룡대팔식에 따라서, 가죽 주머니를 단숨에 움켜잡고는 도망치는 독마에게 장법을 펼쳤다.

쩌억!

가공할 만한 파공성이 독마의 등에 꽂혔다.

꺼윽, 하는 소리와 등에 손바닥 자국의 상처가 생길 정도.

그러나 도망치는 속도가 줄지는 않았다.

서문경은 혀를 가볍게 찼다.

“……어딜 가서도 등에 손바닥 자국의 내상이 있으면 온전히 섞이지 못하겠지.”

추적할 단서를 몸에 완벽하게 새겨 둔 셈.

지면에 착지한 서문경은 주머니에서 해독제를 꺼내 모두에게 나눠 주었다.

그사이에 사천당가는 정리가 끝나 있었다.

“오늘 부로 사천당가는 천하에서 사라진다!”

서문패는 주먹을 꽉 들고는 승전보를 외쳤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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