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마 (3)
* * *
당가의 가장 높은 곳.
사천성의 성도가 훤히 내다보이는 마천루에서 한 중년인이 차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번잡스럽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웃는 자가 있는가 하면 울거나 인상을 찡그리는 얼굴도 얼핏 보였다.
중년인은 그들을 한참 관찰했다.
다만,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개미와 다를 바 없구나.”
적어도 중년인이 보기엔 그러했다.
가지지 못하고, 강하지 못한 주제에 살겠다고 버둥거리는 꼴이 비참하고 가여웠다.
그래서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하찮은 것을 기르면서 소유하느니, 열심히 사는 꼴을 보면서 품평하는 것이 편했으니까.
중년인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기감이 당가의 가장 낮은 곳, 지하실에서 일어난 소란을 잡아냈다.
“본가에 쥐새끼가 나타났군.”
“…….”
그 말에 중년인의 발치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장로들이 고개를 숙였다.
아랫것들의 잘못이란, 곧 장로의 실수.
특히 지하실에서 일어난 소란은 무겁다.
그곳에 존재하는 독물과 대법은 당가의 오랜 역사이자 숙원이었다.
“즉시, 전력을 다해 소탕하겠습니다.”
왼눈에 안대를 쓴 장로가 대답했다.
강호에서는 냉철심(冷鐵心), 당가 내부에선 천수독안(千手獨眼)으로 불리는 초절정고수.
비록 십대고수에 들진 못했지만, 그들과 비견될 정도.
천수독안 당각은 오대세가의 전력을 논하자면 꼭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중년인은 입술을 달싹였다.
“당각.”
“하명하십시오.”
“네가 막을 수 있겠느냐?”
“예, 그렇습니다.”
당각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을 감추기 위해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이 노괴가…….’
당각의 춘추가 쉰하고도 다섯.
다른 오대세가에서도 가주 내지는 장로 중 윗줄에 속하는 나이였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당각조차도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중년인에게 대항할 생각을 품지 못했다.
중년인이 바로 지하실의 주인이므로.
당가의 지하실에 존재하는 독물과 대법, 즉 당가의 숙원을 전부 짊어진 장부(丈夫)가 바로 중년인이었다.
그의 시선이 당각에게 향했다.
“너 혼자론 어림도 없다. 아니, 다른 잡졸들도 마찬가지야.”
“하면…….”
“총력을 다해라. 그러지 않으면 패퇴할 테니까.”
“……!”
당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천당가의 존망이 지금, 야밤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게 달려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의심을 덧붙일 순 없었다.
지금까지 중년인은 잔혹하고 냉정할 뿐, 거짓말을 하진 않았으니까.
그 사실이 당각의 어깨에 힘을 잔뜩 들어가게 했다.
“알겠습니다. 가주님까지 대동하겠습니다.”
중년인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당각을 비롯한 장로들이 서둘러 마천루에서 내려갔다.
홀로 남은 중년인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천의(天意)를 품은 고수가 대성에 이르기 전에 꺾어 놓아야겠지…….”
마침, 천무의 기재에게 뽑은 피로 얻은 성과를 시험해 볼 때.
‘그것이 완성되면 마교, 너희도 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마조차도 자신의 발아래에 꿇리리라.
중년인은 끌끌 웃었다.
* * *
당가를 멸하라.
남자, 서문경의 하명은 신속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무림이 가질 수 없도록 금지한 무기.
활, 방패, 화약.
이 세 가지가 당가의 암기와 독물을 단숨에 태우고 무너뜨렸다.
“지상까지 길을 뚫어라!”
그 말에 별동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들 또한 서문경의 뜻을 알아들었다.
사천당가가 지하를 포기하는 순간, 격벽을 닫고서 독물을 쏟아 낼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서문패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굳이 급할 필요가 없어.”
“……?”
“당가가 왜 이렇게 깊이 지하를 파 놨겠어.”
서문패는 아주 오랫동안 사천당가와 척을 졌고, 그들을 조사했기에 잘 알았다.
스윽.
한쪽 벽면의 닳은 곳을 만지작거리자.
쿠쿵, 하고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공간이 열렸다.
수십, 수백에 달하는 도자기가 완벽히 고정된 채 닫혀 있는 광경.
서문경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이건…….”
“당가가 존속하는 동안 계속 수집한 독물들이지. 이게 있는 한, 지하를 포기할 수 없어.”
서문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하 어딘가에 당가의 비보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까지 취하면 설설 기게도 만들 수 있을 걸. 또.”
“독마가 있겠지요.”
“……전설이야. 솔직히 말해서, 착각이었을 가능성이 커.”
그 말에 서문패가 유화를 흘낏 바라보았다.
유화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지만, 입술을 우물거렸다.
“저녁마다 제 피를 뽑아 가선, 독마의 재림을 중얼거리는 말을 했어요.”
“죽일 사람한테 왜 그런 정보를 흘려?”
“……그것도 아녜요. 저는 꼭 살려야 한다고 했거든요.”
“거짓말이면?”
“이보세요, 삼촌.”
서문경은 중간에 말을 끊고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대로라면 말꼬리 잡기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서문패의 시선에선 유화도 결국 흔하디흔한 무림인 중 하나였다.
그것도 아미파의 촉망되는 인재.
언젠가 무림을 활보하며 사고를 친다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시선이 곱지 않았다.
“뭐, 그래도 생사람 피를 뽑아 가진 않았을 테니까. 뭐가 있겠지.”
“아버지께 들은 거 없어요?”
“듣긴 했지.”
서문패는 서문이현에게 은밀히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저 어린 소저가 천무의 기재라고 했던가?
듣긴 했지만, 믿진 않았다.
무림인끼리 서로 천재니 천랑성이니 하는 짓거릴 너무 많이 봤다.
‘이 소저도 마찬가지겠지. 쯧, 괜히 부담감만 안겨서 힘들었겠어.’
그 헛소문 때문에 독마의 연성이라는 대법에 엮여서 붙잡히지 않았나.
무림인 왈패인 건 싫지만, 납치당한 사건에 대해선 유감이었다.
서문패는 신경질적으로 칼을 두들겼다.
사적인 감정을 다른 곳으로 치웠다.
“어찌 됐든, 다른 사람을 납치해서 피를 뽑고 사특한 대법을 행한다는 명분이 생겼으니…… 사천당가를 발본색원할 기회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부숴 버리든지 해야지.”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네가 정의맹을 세워서 뭘 한다는 말은 들었다만, 사천당가는 그럴 놈들이 아니니까.”
서문경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로부터 사천당가는 치안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늘 골치 아픈 일을 불렀으며, 자신보다는 서문패가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지하로 곧바로 침입한 것도 삼촌 덕분이지 뭐.’
만일 혼자서 유화를 구해야 했다면 일방적으로 담을 타 넘는 수밖에 없었다.
들키는 거야 당연하고, 무의미한 소모전으로 체력을 낭비했겠지.
서문경은 서문패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차피 당가의 힘은 오랫동안 축적된 독물의 지식이야.”
서문패는 강하게 단언했다.
“지하를 완전히 불태우고, 독물을 키우는 밭과 후원까지 짓밟으면 끝장이지. 뭐, 개중에 씨앗이나 모종을 가지고 도망치는 놈도 있겠다만…… 서문세가가 나선 이상 멀리는 못 갈 거다.”
그 말과 동시에 서문패가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사천당가 전도(全圖).
얼마나 예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개개인의 숙소와 경비 구간, 시간까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그중 절반도 채 쓰지 못하기에.
“속전속결이다.”
서문패는 두건을 천천히 눌러썼다.
독기를 짓누르기 위한 약재를 안쪽에 발라서 입맛이 썼지만, 독에 당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와 동시에 유화와 은명사태, 서문경까지 눌러썼다.
“위로 단숨에 올라가서, 불을 붙이는 데 집중한다.”
지하에 있을 독물과 가산, 서적까지 전부 다 없애리라.
서문패는 당가의 가주가 울부짖는 걸 상상하고는 히죽 웃었다.
그러나 일 각 뒤.
서문패와 서문경은 상정한 것 이상으로 끔찍한 것을 보게 되었다.
“끄아악!”
“……으윽, 으으윽!”
“미친놈들.”
서문패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서문경도 마찬가지로 인상을 한가득 썼다.
유화와 은명사태는 눈조차 제대로 뜨질 못했다.
지하의 화약에 불을 붙이고 나서 나타난 지옥이었다.
“끄아아악!”
불씨로 달려드는 놈이 있는가 하면, 물과 모래를 붙이고서 지하 안쪽으로 향하는 놈이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졸아 드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서문패는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이 쓰레기들, 사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멈춰라, 이 악한들아.”
당각을 비롯한 장로들이 보신경을 펼치고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서문패와 서문경을 쓰레기 보듯 쳐다보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문경은 그들에게 물었다.
“이게 정상적인 일인가?”
“무엇이?”
“사람이 불을 끄려고 저렇게 몸을 내던지도록 교육한 것이 너희잖느냐.”
그 말에 당각이 웃었다.
“사람 구실도 못하는 놈들, 저렇게라도 써먹으면 다행인 일 아닌가?”
“…….”
“힘이 없으면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 바로 무림이지 않나.”
강자존.
당각이 무림의 오랜 법칙을 입에 담았다.
서문경과 서문패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였다.
대명의 군관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법식이기에.
“힘이 없으면 죽으라는 건가?”
“아니, 죽어도 별수 없다는 뜻이지.”
“그렇군.”
서문패가 클클 웃었다.
“그럼 너 또한 죽어도 별수 없으렷다.”
스르릉.
서문패를 비롯해서 서문경, 별동대가 동시에 발검했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