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73화 (171/250)

등장 (7)

사망자 전무(全無).

부상자 넷, 그마저도 경상에 준하니.

황군은 완벽하게 남궁세가와 왜구를 토벌했다.

마교의 고수를 놓친 건 아쉬우나, 황실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정위경은 침통한 표정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명, 그자를 놓치면 안 됐는데.”

“…….”

“서문 공자에겐 미안하게 됐소. 우리는…… 그가 그토록 강할 줄 몰랐소. 전력을 상정하지 못한 셈이지.”

자기를 아는 것이 첫 번째요, 상대를 아는 것이 두 번째라고 하였다.

정위경은 자신이 십대고수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고수임을 알았다.

하지만 남궁명이 마공을 팔성(八成)이나 성취했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병법의 기초부터 틀려먹은 셈.

정위경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피고름을 머금은 붕대가 너덜거렸다.

그를 심유한 눈으로 바라보던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행차해 주신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에 관해 할 말이 있소.”

“……?”

“이번 출진은 전적으로 서문 가주께서 책임지고 지시했소.”

그 말에 서문경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책임.

관직에 자리한 자라면 누구도 좋아하질 않을 단어.

게다가 현 정세가 너무나도 어지럽기에, 무관의 중심이란 위치가 얼마나 귀한 줄 아는 서문이현이었다.

‘아버지께서 큰 도박을 하셨구나.’

주기적으로 하던 연락이 끊겨서였을까, 혹은 남궁세가의 정황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황군.

그것도 정위경만큼의 고수를 보낸 건 무언가 확증이 있었을 터.

서문경은 서문세가가 가진 가장 뛰어난 패를 떠올렸다.

“혹시…… 같이 온 사람은 없습니까?”

“누굴 말하는 거요.”

“서문세가에 속한 서문패 장군이요.”

정위경이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그분이라면 늘 그렇듯,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걸세.”

“설마…….”

“예. 그분은 애초에 따로 행동하기로 했소. 나밖에 알지 못하는 정보이니, 유출될 일도 없지.”

그 말에 서문경도 웃음을 머금었다.

서문패.

한족의 무신이 가장 돋보이는 건 선봉장이 아니라, 은밀한 곳에서 급습하는 강습조(强襲組)에 있을 때니까.

* * *

화마가 멀어졌다. 남궁명의 얼굴에서 열기가 걷혔다.

뒤따라 찾아온 것은 부쩍 가까워진 한기.

가을의 싸늘하고 고적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아쉽고 통탄스러웠다.

‘개벽(開闢)이 코앞이었는데.’

애석함보다 한숨이 앞섰다.

가주가 가려고 하는 길을 가솔이 따라오질 못했다.

그 한심함과 아버지를 향한 미움이 명정한 정신을 어지럽혔다.

이것이 남궁명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심마와 평정심의 경계가 일찍이 무너져, 마공의 수련으로 화하고 있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손바닥에서 마기가 부옇게 올라왔다.

장심의 강기가 둥글게 말렸다가 펴지길 반복해, 검붉은 반점이 피부에 새겨졌다.

적혈마공을 적합한 사람이 익히지 못하면 생기는 병폐라고 했던가.

아무렴, 상관없다.

남궁명은 실소를 터트리며 점차 어두워지는 북녘을 바라보았다.

“저곳인가.”

당장은 안휘성의 남궁세가가 멸문당했으나, 새로운 땅에서 다시 광명을 되찾으리라.

남궁명의 걸음이 앞으로 향했다.

적혈마공에 대연신공, 천뢰기를 덧붙인 신공으로서 아버지를 뛰어넘을 것이다.

여러 가지 포부가 도망친다는 상황 자체를 망각시켰다.

패잔병 같던 분위기가 점차 대장부처럼 변했다.

그 흐름을 끊는 목소리가 있었다.

“거기 서라.”

남궁명은 제자리에 멈춰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서늘한 가을바람 속, 검붉어진 눈동자가 석양에 물든 채 타올랐다.

마공의 단계를 일컬어 극마(極魔).

진정한 마도 고수까지 한 꺼풀이었다.

계단 하나를 남겨두고서 허사가 되느냐, 초마(超魔) 혹은 탈마(脫魔)에 이르느냐가 달렸다.

그 마지막 제물이 찾아왔음을, 남궁명은 직감했다.

“너는 누구냐.”

“나? 나로 말하자면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과 풍향, 지면의 미세한 진동까지.

극마에 오른 남궁명의 감각은 초인에 가까웠다.

화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궁명이 땅을 지르밟았다.

탕.

일보(一步).

한 걸음을 내딛은 발아래의 나뭇잎이 조각조각 찢기고 타버렸다.

주체하지 못하는 마기를 마구잡이로 발산하고 있었다.

벽을 넘느냐, 죽느냐.

그 단계에 이르렀음을, 목소리를 흘린 남자도 알아차렸다.

다만 정직하게 싸워 주진 않는다.

남자가 껄껄 웃었다.

“쏴라.”

단 두 음절의 호령에 화살 수백 발이 남궁명을 향해 비산했다.

한순간 하늘의 석양마저 그림자에 가려졌으나 남궁명은 비릿하게 웃었다.

겨우?

저딴 나뭇가지로 극마의 돌진을 어찌 막으랴.

가당찮다는 미소였으나, 첫 순(巡)이 몸에 닿았을 때 깨달았다.

“……!”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뒤로 밀렸다.

속았다. 겉은 나무처럼 칠해졌지만, 속은 아주 단단하게 주물 된 강철시(强鐵矢)가 존재했다.

게다가 화살에 담긴 기운까지 예사롭지 않다.

평생 궁술만 연마한 사람처럼 정밀하고 무겁다.

남궁명은 밀려나가는 몸을 억지로 멈췄다.

사나운 시선이 남자와 적들을 관통했다.

“같잖은 것들이……!”

“같잖아?”

남자가 재차 껄껄 웃자, 숲에 숨어 있던 병졸들까지 배를 잡고 웃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들어 본 경멸이었다.

무림인과 부딪친 적이 없다 보니, 이런 식으로 욕을 들을 수가 있구나.

나쁘지 않았다. 상대가 무지하다는 것은 곧 무기일 테니까.

‘무림인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겠어.’

‘패 장군님께서 말한 그대로군. 아직 무림과 마교는 우릴 알지 못해.’

그들은 병졸이되, 병졸이 아니었다.

남들을 속이기 위해 병졸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혹여나 간자가 편제(編制)를 들추더라도 병졸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서문세가의 별동대(別動隊) 일조.

그들은 일반 병사와 함께 훈련을 받다가, 반드시 필요한 때 차출 혹은 휴가라는 명목으로 가문 밖을 나온다.

지휘자는 오롯이 하나.

가주인 서문이현도, 소가주라고 불리는 서문휘도 아닌.

“나는 서문패(西門覇)다.”

“……경이가 보냈나?”

“하하, 조카가 뛰어나긴 해도 나를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는 아니지.”

서문패가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이래 봬도 한족의 무신이라고 불리거든.”

“웃기는 소리군.”

남궁명은 그와 반대로 비웃음을 흘렸다.

오걸이나 천하십대고수조차도 무신이라는 칭호를 붙이진 않는다.

무의 신.

그것을 자칭하려거든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성취를 이루거나, 기적을 행해야 할 테니까.

적어도 남궁명이 보기에 무신의 풍모를 갖추지 못했다.

듬성한 수염을 가진 중년인일 뿐, 그다지 강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인의 기본은 은닉(隱匿)이요, 정확한 타격에 있으니.

서문패가 칼을 뽑았다.

“휴우…….”

거추장스러운 족쇄를 풀 듯이 대맥을 조이던 매듭을 푼다.

과거에 검치와 싸울 때와 마찬가지.

강대한 존재감이 주변을 짓누른다.

별동대의 병사들은 익숙한 구역질을 참아 냈지만, 적수로 삼은 남궁명은 달랐다.

“……크윽.”

극마에 올랐다고 하나, 초마와 탈마에 이르지는 못했으니.

오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문패에게 다다를 수 있으랴.

서문패는 남궁명에게 검을 겨눴다.

천천히, 한없이 무거운 살기를 흩뿌리면서.

“제 아비와 가족, 형제를 역반(逆反)하고 대명을 배신하고 얻은 것이 보잘것없는 마공이더냐?”

“……역반? 웃기지 마라.”

남궁명은 주먹을 꽉 쥐었다.

검붉은 강기가 서문패의 압력을 밀어냈다.

“일가의 가주로서 더욱 찬란한 광휘를 쟁취하려고 했을 뿐, 그 의지에 충실한 것이 모반이고 역반이라면…… 서슴없이 나아갈 것이다.”

“역적이 흔히 하는 말이지.”

서문패가 칼을 가볍게 휘돌렸다.

서슬 퍼런 칼바람이 남궁명 주위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것이 신호였다.

꽈앙!

대지가 쩍 하고 울렸다.

반절쯤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 사이로 두 검객이 맞부딪치고 별동대의 화살이 쏘아졌다.

한 치에서 두 치.

숨소리마저 귓가에 스치는 거리에서 육박전이 일어났다.

팔꿈치가 서로 부딪치고 칼등을 때린다.

서문패가 발을 앞으로 뻗으면서 남궁명의 발등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남궁명은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마기가 호신강기를 이루기 때문이다.

서문패는 그것을 확인한 즉시 칼을 고쳐 잡았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붙잡아 우에서 좌로 휘둘렀다.

“후욱!”

힘이 잔뜩 담긴 숨소리.

남궁명이 놀란 소리를 냈다.

다급히 상체를 뒤로 뉘였으나 서문패의 무릎이 남궁명의 사타구니를 때렸다.

아프지는 않아도 대뜸 급소를 얻어맞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남궁명이 비틀거리며 다리를 빼내려고 할 때, 서문패는 자세를 낮추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극에 이른 박투술.

날카롭고 뾰족한 일점이 남궁명의 갈비뼈와 근육을 부수고 찢는다.

“으윽.”

남궁명은 신음을 흘렸다.

호신강기마저 예리하게 파고드는 일격.

이에 뒤따르는 강철시의 비.

‘이대로는 죽는다.’

남궁명의 눈가가 좁혀졌다. 뒤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선천진기까지 끌어서 마공을 격발시키는 수밖에.

……쿠구궁!

서문패마저 움찔할 수밖에 없는 힘의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나 서문패는 이마저도 예상했다.

마교와 수없이 부딪친 경험치로 전략을 꾸렸다.

“쏴라!”

그 호령에 남궁명이 하늘을 보았다.

강철시의 비.

날카롭고 둔탁하긴 하나 잠력을 격발시키는 것까진 막지 못하리라.

남궁명의 마음 속에 안일함이 생겼다.

서문패와 병졸에 큰 피해를 준 뒤에 몸을 내빼야 한다는 판단만이 남았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저것은!’

천룡포(天龍砲.)의 탄두.

관군이 특별히 관리하는 화약 덩어리가 남궁명을 향해 날아갔다.

서문패는 진즉 전력으로 몸을 내뺀 지 오래였다.

승리를 자신하는 미소가 남궁명의 망막에 맺혔다.

꽈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뜨거운 바람이 서문패와 별동대를 휩쓸었다.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강한 화력 이후.

재와 불길.

그것만이 남아서 타오를 뿐이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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