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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172화 (170/250)

등장 (6)

황군도래(皇軍到來).

그 말에 흑향의 눈이 번쩍 떠졌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가 청마에게 재차 물었다.

“거짓말은 아니지?”

“직접 확인할 테냐?”

“…….”

흑향은 말없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기에 물들어 연보랏빛이던 입술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떠나기 싫어.

마침내 다시 마주한 오라버니를 붙잡고, 저 어린 것을 죽이고 싶어.

집착과 아집 등 여러 가지 욕망이 눈동자에 투사되었다.

그 시선에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미친×.”

창왕이 이르기를, 흑환(黑幻).

흑향의 비틀린 본성이 투영된 마공은, 강기공이 아니라 마성(魔性)에 가까우니 마음이 흐트러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지금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담정을 수집하고 싶어서, 최대한 힘을 억누르고 싸운 것처럼 보였다.

황군이 온다는 사실 역시.

“네가 있으면 군부 계파에서 물고 늘어질 거다. 당장 도망쳐. 나도 몸을 뺄 테니까.”

청마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흑향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문경을 죽이거나 붙잡아서 마인의 세작으로 심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때가 좋지 않다.

‘황군이 진심으로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본교의 힘으로도 어렵다.’

마교가 중원 무림을 압박하는 것 역시, 흑향이 황실의 눈을 가려서 가능한 일.

그 사실을 모두 앎에도 이해하기 싫을 만큼, 흑향의 감정은 좋지 않았다.

“너랑 나, 둘이서 일각이면 충분하잖아.”

“다음 기회가 있을 거다.”

“청마, 너……!”

“대업이 중요하지 않은 거냐?”

“…….”

흑향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섬뜩한 살의를 담은 채 번들거렸다.

“다음. 다음이라고.”

담정, 그리고 서문경.

흑향이 두 남자를 눈에 담은 채 자리에서 물러섰다.

서문경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녀의 형체가 사라져 있었다. 신속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직후에 청마의 음성이 나지막하게 울렸다.

“하늘이 너를 살렸구나. 다음에는 이런 천운 따윈 없을 것이다.”

“……×까.”

서문경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역도(逆徒)는 오랏줄을 받으라!”

황군(皇軍).

화려한 복식의 장군이 남궁세가 정문에 똑바로 선 채 외쳤다.

“역도 남궁명은 당장 나와 무릎을 꿇으라!”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없었다.

장군은 입술을 씰룩였다. 역시나, 한 번에 좋게 나오는 법은 없었다.

여느 때처럼 직접 붙잡아서 죄를 물을 뿐.

장군의 발이 앞으로 향했다. 주먹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뒤로 날아갔다.

저 너머에 결의를 다지고 있는 무인들이 보였다.

“남궁세가의 검단(劍團)이라고 했던가?”

“…….”

“역천을 노리는 놈에게 충정을 바치고 싶으냐?”

“……오로지 가주의 뜻에 따른다.”

무인의 목소리는 음울했으나, 흔들리진 않았다.

그저 잘못된 주인을 따른 탓이리라.

동정심이 들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가주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 붙잡고 따져야 올바른 충정이었다.

장군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교 따위와 야합하여 대명의 천하를 어지럽히는 역도가 있어, 군웅(群雄)이 이곳에 왔음을 천명하니!”

“…….”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있다.”

장군이 주먹을 꽉 쥐었을 때, 휘하의 부하가 자연스레 병기를 들었다.

수십 전(戰), 수십 승(勝).

수많은 전장을 떠돈 천제의 군대가 남궁세가를 향해 칼날을 들었다.

“전군, 진군하라!”

“와아아아-!”

군사 수백이 앞으로 내달렸다.

군기(軍氣)는 충천하여 하늘에 닿을 듯하고 개개인의 무력 또한 검단에게 뒤지지 않았다.

무공은 무림인만의 것이 아님을, 천하가 깨달을 날이다.

장군의 눈이 빠르게 남궁세가를 훑었다. 자신을 노리는 칼날은 즉시 쳐 내고, 도살했다.

“죄인 남궁명은 나와서! 오라를 받들라!”

장군은 시시때때로 외치며 칼을 휘둘렀다. 서슬 퍼런 강격이 지나갈 때마다 허리 잘린 무인이 속출했다.

요참(腰斬).

장군의 눈에 남궁세가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역도였고 죄인이었다.

시체를 남기는 것 따위도 사치.

하물며 이들을 죄인으로 만든 남궁명이라는 놈은, 선대의 재산이 귀한 줄 모르고 망친 쓰레기 망나니라.

“네 가족이 죽는대도 모르는 척할 테냐!”

장군의 고함이 남궁세가 바깥에도 들릴 만큼 쩌렁쩌렁했다.

그는 군부 가문에 속한 자가 아니었다.

황실.

그것도 황족이 직접 친위대로 기르고자 젖먹이 때부터 상승 무공과 영약으로 기른 천재.

비밀리에 금의위와 장군이라는 이중관직(二重官職)을 가진 정위경(正偉境)이라는 고수였다.

“나오지 않을 테냐!”

정위경은 남궁세가 곳곳을 불태우며 남궁명의 위치를 찾아 헤맸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무림인은 없었다. 심지어는 남궁세가의 일검단주조차도 정위경의 칼질 두 번을 버티질 못했다.

가히 천하십대고수.

황실이 기른 칼날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강건했다. 자비를 비는 말조차 귓가에 들리질 않았다.

하물며, 정위경은 혼자 오지 않았다.

“후방에서는?”

“누구 도망친 자 없답니다!”

“척후는?”

“조금 전에 서문 공자와 무림인을 발견하고 사정 청취 중이랍니다!”

“그나마 낫군.”

정위경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역도의 잔당을 죽일 뿐. 머리는 일찍이 도망간 것 같았다.

“무림의 명가라고 한들 쥐새끼. 결국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살아남을 순 없는 법이지.”

“쥐새끼?”

정위경이 고개를 돌렸다.

사방이 불타는 와중에 그림자로 뒤덮였던 건물.

그곳에서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위경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용모파기로 본 얼굴 그대로였다.

“네가 역도 남궁명이렷다?”

“취소해라.”

“무엇을 말이냐?”

“쥐새끼라는 말도, 역도라는 말도.”

“허, 네가 벌인 짓거릴 말한 것뿐인데…… 자존심이 상했느냐?”

정위경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웃음소리는 컸지만, 가는 눈으로 남궁명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워 온 습관이자 생존하는 방법이었다.

‘우수검(右手劍)에 마공을 배운 듯 눈가가 검고 짙다. 어리다고 경시했다간 목이 위험하겠어.’

만인장에 가까운 경험이 순식간에 남궁명을 관통했다.

그와 동시에 섬뜩한 기분이 들어, 검을 쥐었다.

카앙!

손목이 떨어져 나갈 듯한 통증이 정위경을 강타했다. 입술이 꽉 다물렸다.

눈앞에 남궁명이 있었다.

“큭, 이놈.”

정위경은 늘 그랬듯 입술을 씰룩였다.

그러자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이 쇠 화살을 쏘았다.

포물선이 아니라 직선.

천근의 바위마저 든다는 용력(勇力)으로 쏘아 낸 쇳덩이였다. 수많은 무림고수와 북적의 목숨을 빼앗은 명사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궁명은 가볍게 어깨를 트는 것으로 피했다. 오히려 전진했다.

칼날이 정위경의 뺨에 가까워진다.

정위경은 허리를 크게 누이는 것으로 피하고는, 힘을 역으로 이용하겠다는 듯 팔꿈치를 휘둘렀다.

쩍,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남궁명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나 통하지 않는다. 칼날이 또다시 정직하게 정위경을 노렸다.

“다시!”

정위경의 호령에 부관을 비롯해서 여러 병사가 화살을 쏘았다.

제각기 다른 시간에 도달하는 화살들.

그 사이에 화약 주머니가 묶인 것이 있었다. 남궁세가에 도달하기 전에 지시한 것들 중 하나였다.

-처음에 통하지 않으면 화약을 섞어서 쏘아라.

상대가 엄청난 고수라는 뜻이니, 정위경 또한 상처 입어도 괜찮다는 결의였다.

‘뒈져라.’

정위경은 남궁명의 복부를 차곤 호신강기를 운용했다.

황실의 재산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얄팍했다.

목숨을 걸었다면.

호신강기를 운용하지 않고 남궁명을 붙잡았다면.

‘상처 입어도 좋다’와 ‘같이 죽어도 좋다’는 달랐다.

남궁명의 몸에 푸르스름한 강기막이 퍼졌다.

“각오가 부족했군.”

“……!”

남궁명이 정위경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바닥에 처박고 짓밟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궁세가 전체를 불사르는 화마.

그 불길이 정위경에게 닿았다.

“아아악……!”

살이 타는 냄새와 고통스러운 고함이 장내에 휘돌았다.

수많은 전장을 함께한 황군은 동요하지 않았으나, 도리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제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적을 산 채로 불길에 내던지는 남궁명의 잔인함과 냉정함.

그 광경이 남궁세가의 발을 멈췄다.

남궁명은 그것을 보고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각오가 부족한 건 이자뿐만이 아니었어.”

실망스러웠다.

하늘의 주인을 갈아치우자는 대의를 공유할 만큼, 자신의 가문은 굳세지 않았다.

‘이게 다 아버지가 잘못 가꾼 거겠지.’

남궁명은 자신의 아버지가 한심스러웠다. 한때 그리워하거나 존경하던 마음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이제 훌륭한 마인이었다.

“너희는 이제 필요하지 않아.”

남궁명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누구 하나 듣지 못한 사람이 없게끔, 기예에 가까운 술수였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무공에는 진척이 없었는데, 사특한 술수라고 멀리한 마공에 재능이 있을 줄이야.

남궁명은 자조하듯 끅끅 웃다가 등을 돌렸다.

“네놈의 주인은 챙겨가라.”

“…….”

그 말에 부관이 정위경을 챙겼다.

얼굴의 반이 화상으로 뒤덮였으나, 생명은 위험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정위경 대신에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다음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 쓰레기 망나니.”

“쓰레기 망나니라……. 이젠 그렇게 불려도 할 말이 없나.”

남궁명은 부관의 말을 곱씹고는 남궁세가를 떠났다.

자신의 가문을 버린 마인이 마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 * *

황군이 왜구와 남궁세가를 토벌.

대외에는 이렇게 알려졌으나, 황군과 서문경끼리 두 가지를 공유했다.

“……남궁명, 이놈.”

인간의 도리를 완전히 저버린 마도 고수의 탄생을.

백야흔의 죽음으로 공석이 생긴 칠로두에 또 다른 거두가 생겨날 거란 예감을.

서문경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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