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6)
재가 날렸다.
작은 부두에 탄흔(彈痕)이 잦았다.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다.
“케헥, 헥.”
“이런 X발. 화약은 반칙이지!”
콜록이는 소리 가운데 욕, 황망한 표정 따위가 어지럽게 얽혔다.
눈앞이 아찔했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테지만.
“왜놈 새끼가 우릴 건드렸구먼.”
담정의 목소리는 무섭도록 침착했다. 자길 보는 눈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평소 실없거나 미친 소릴 해대도 지휘관으로서 무능하지 않았다.
그의 외눈이 엉망진창이 된 부두와 배, 수적들을 훑었다.
시야가 넓었다. 짧은 시간 사이에 상황을 파악하고 여분의 목재, 수리 도구를 살폈다.
“부채주, 옆에 있으렷다.”
“예.”
“피해 상황은?”
“침몰한 배가 넷, 사망자는 여섯. 중상자 다섯. 경상이 스물입니다.”
“잘 살아나왔군.”
담정은 입술을 씰룩였다.
볼 안쪽에서 욕이 튀어나질 못해서 안달이었다.
하지만 분노를 드러내는 건 하수의 짓이다.
우두머리는 대가리를 후려 맞아도 눈알이 뒤집혀서는 안 된다.
담정의 손가락이 부두 구석에 그나마 온전한 배를 가리켰다.
“부채주는 본선 애들 추려서 쫓아가. 왜구 놈들이 어디로 향한지 알고, 해도(海圖) 작성해서 가져와.”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문경.”
그 말에 가만히 담정의 지휘를 지켜보고 있던 서문경이 대답했다.
“왜요.”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틀 정돈 더 걸리겠는데, 괜찮겠지?”
“이해해드려야지.”
“……너야말로 조심해라.”
“호랑이의 퇴로를 끊을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잘 아는군.”
자신을 확실하게 죽일 패가 있기에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을 끊었다는 판단.
배와 선원을 잃고도 시야를 대국적으로 본 점에서 담정의 무시무시한 자기제어가 돋보였다.
‘편으로 삼길 잘했네.’
저런 자가 자칫 마교로 붙었다면 큰 흠이 되었을 터.
서문경은 안도감과 불안함이 동시에 들었다.
“낙석하정(落石下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에 떨어진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
“예. 선배도 잘 알겠지만, 그놈들이 화약으로 멀리서 수로채의 선박을 무너뜨리고 부두를 손상시킨 건…… 이번 일로 끝나지 않겠다는 겁니다. 부채주를 보냈다가 척후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나도 알아.”
담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가까이 있는 서문경은 알았다.
외눈에서 들끓는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알면서도 척후를 보낸 이유가 뭡니까?”
“너처럼 자기 가문에서 군율과 전법을 배운 놈이야 원칙대로 행동하겠지만, 우리 같은 도적놈은 다르거든.”
“다르다?”
“복수야.”
담정은 ‘복수’를 입에 담았다.
죽지 못하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이자, 이루고자 하는 목표.
무인으로서 큰 뜻을 지닌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맹렬했다.
그 기질은 담정 휘하의 수적도 마찬가지였다.
“개새끼가…….”
“그 새끼들, 코를 베어가서 전공을 증명한다는데. 나는 X발 아주 그냥.”
담정 휘하에 있는 이상, 가질 것은 충분히 얻었다.
재물이면 재물. 힘이면 힘.
범인이 가지고 싶어 하는 걸 가지고도 수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하나 같이 질척하고 음습한 목표가 있어서였다.
그걸 이루기 전에 죽을 뻔했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솟는다.
담정은 그들과 뜻이 같았다.
“서문 공자.”
“……?”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우리의 거래 말이요. 관군이 된다는 거. 그만큼 힘을 달라는 거였어.”
담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찾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관인의 힘.”
“…….”
서문경의 등줄기에 스산한 오한이 돌았다.
평소에 미친 짓을 할 때보다 지금이 더 광기가 깊어 보였다.
그 모습은 수적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 뿐, 집념이 무척 강해서 배를 수리하는데 쉬지도 않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마교와 싸우게 되면 저들 중 대다수가 죽을 텐데.’
누군가가 손가락질할 생각임은 알지만, 그래도 서문경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수적.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아군으로 받아들였지. 태평한 시대였다면 토벌해도 이상하지 않을 적이었다.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담정 또한 서문경의 내심을 알았음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휘하의 수적이 이를 알더라도 불만을 표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무림에서 목숨을 내놓은 몸이요, 죽을 가능성이 크더라도 뜻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면 기꺼이 행할 것이니.
‘내가 죽더라도 부채주가 해 줄 것이다.’
서로 뜻을 공유한 수로채의 본선이기에.
담정은 언제나 침착할 수 있었다.
왜구가 망가뜨린 부두부터 정상으로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 직후에 한 무리가 담정과 서문경에게 다가왔다.
“우린 산으로 돌아가겠소다.”
한때 남궁세가의 고수를 업고서 억울하다고 말했던 녹림의 고수들.
그들은 상황이 X되었음을 짐작하고 녹림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남궁세가의 고수를 넘겼으니 녹림의 억울함을 어차피 풀릴 거고…….’
‘여기 있다가 뒈지면 억울하잖아.’
그들의 생각이 얼굴에서 훤히 보였다.
제발 붙잡지 말라는 듯, 억지로 웃고 있는 놈도 있었다.
서문경은 짧게 대답했다.
“가.”
“……예?”
“살아서 갈 수 있으면, 가.”
“그게. 자세히 말씀해 주쇼.”
“해로가 막혔는데 사람 가는 길이라고 정상일까?”
“……X발.”
녹림의 고수, 대호채주는 욕을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 단단히 X됐다.
* * *
“열다섯 포문. 우리도 출혈이 컸소.”
“알아. 값은 제대로 쳐준다니까.”
청마와 망검이 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너무 태연자약하여 부두를 포격하라고 명령하던 사람들 같지 않았다.
그러다 망검이 은근히 상반신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곳에 고수가 있다고 들었는데, 당신이 말한 대로 고수가 맞나?”
“중원에서 열 명 안에 든다고 해 두지.”
“다른 한 명은 부하에게 듣기로 남궁 가주와 나이가 비슷하다던데.”
“그놈이 더 세.”
“당신이 말한 고수보다?”
“어.”
“이해가 안 가는군.”
망검이 팔짱을 끼고서 인상을 썼다.
한두 시진 전에 남궁명과 전초전을 펼치고서 감탄이야 했지만, 실망이 컸던 참이다.
한데 눈앞의 청마가 그 비슷한 나잇대 청년과 싸우라고 하니……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마교에는 인재가 없나? 청년 하나를 이기지 못해서 나를 내륙까지 불러오다니.”
그 말에 여유로운 자리가 단숨에 차가워졌다.
청마를 모시는 마인들의 기세가 특히 날카로웠다.
당장 모욕을 거두지 않으면 마공을 펼칠 듯, 손바닥에서 검은색 구체가 일렁였다.
정작 청마는 끌끌 웃었다.
“하하, 하하하……!”
“내 말이 우습나?”
“아니, 아니야. 자네 말론 작은 섬에 천하의 살귀가 득실거린다는데…… 재능 있는 청년이 그리 많진 않은 모양이야? 아니지. 크기 전에 잘라 내서 그런가?”
이번에는 망검을 따르는 검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카앙!
뙤약볕 아래로 칼날이 번뜩였다.
강호의 검기와는 다른, 정신적인 기운이 푸른빛을 흩뿌렸다.
하나 망검은 웃지 않았다.
“땅 크기가 크다고 인재가 많다곤 할 순 없는 법이지.”
“농담에 그리 정색할 필요가 있나!”
“모욕으로 들렸다만.”
“그래?”
청마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자, 망검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뒤에야 소리가 울렸다.
꽈광!
언제 휘둘려졌을지도 모를 좌수(左手)가 탁자를 무너뜨리고 배의 갑판을 베었다.
온전한 것은 망검뿐.
망검 뒤에 있던 검사들은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날아갔다. 압도적인 격차였다.
“…….”
망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호랑이 앞에 선 고양이의 기분이었다.
뒤이어 손끝까지 저리던 그때.
청마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네가 무시한 그 청년이, 이런 일격을 수차례 막아 내고 반격까지 한 게…… 수년 전이란 말이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왜 거짓말하겠나! 그놈과 직접 싸울 텐데!”
청마가 크게 웃고는 망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것이 마치 자길 대신해서 싸우는 무사를 독려하는 것 같았다.
크나큰 모욕이었으나 망검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 청마가 휘두른 일격의 여파와 저리는 손끝이 열패감을 일으켰다.
청마는 말했다.
“자네를 데려온 건 말이야. 무공이 아닌 다른 힘이라면…… 그놈을 당황하게 해서 죽일 수 있나의 문제야.”
“왜 당신이 직접 하지 않지?”
“시기가 일러. 가을이 아니잖아.”
청마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거의 다 지난여름이라지만, 햇볕은 여전히 따갑고 구름이 우중충하다.
수확은 가을에 벌어진다.
씨알이 완전히 커서 가지에서 떨어질까 말까 하는 시기에 따야만 가치가 커진다.
청마는 서문경에게 그런 것을 원했다.
‘천마 따위에 정신이 빠진 놈들을 쳐 내면, 그때부터.’
서문경이 아무리 강해도 칠로두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
그러려면 지금의 성장 속도로 부족하다.
해결할 방법이라곤 각기 다른 무예를 지닌 고수와의 싸움과 시간.
그것으로 서문경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할 생각이었다.
‘결말도 미리 정해 놨지.’
천마와 동귀어진.
청마의 미소가 짙어졌다.
“망검, 새장은 잘 세웠나?”
“수로를 차단하고 곳곳에 사람을 두었으니 신호가 오겠지.”
망검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속에서 점차 원한이 깊어졌다.
‘주군의 뜻으로 왔으나 이런 창피를 당해야 하는가?’
항상 옆에 두는 수하를 잃었음에도 사과 한 번 받지 못했다. 그저 힘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소모되었을 뿐이다.
증오심이 빠르게 곯았다.
‘행동거지를 보아 우리의 목숨은 신경 쓰지 않는다. 말이야 죽이라고 하지만, 언제든 버림 패로 쓸 요량이야.’
어째서 주군은 이런 자와 손을 잡았는가?
생각하는 순간 머리에서 지웠다. 무사로서 머리에 담을 뜻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주군의 검으로서 살아 돌아가는 것.
그리고 청마가 앞으로 이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약점을 잡는 것.
‘주군께 필시 도움이 되겠지.’
해로를 차단해 새장을 만들라고 했지만, 문을 여는 건 오직 권한을 가진 사람뿐.
오직 망검만이 해로를 개방할 수 있었다.
‘……따로 남궁 가주와 자리를 만들어볼까.’
남궁명이 바라는 건 서문경과의 결착.
뜻이 맞다면 합의할 점이 있었다.
망검의 입술이 한쪽으로 비틀렸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