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65화 (163/250)

새장 (5)

이름을 물었는데, 검을 잊었다고 답한다고.

남궁명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명가의 격이 상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망검은 이를 알지 못했다.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애송이와 대의를 함께할 생각이요?”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어색한 한어(漢語)였다.

하나 말이 단순할수록 뜻이 명확한 법.

남궁명은 입술을 씰룩였다. 마공의 서늘한 기운이 눈동자에서 일렁였다.

“지금 안휘성에서 남궁세가의 가주를 욕한 것이냐?”

“격조 있는 집안의 웃어른이라고 들었다.”

망검은 남궁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적의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거대한 가문의 정중앙에 홑몸으로 들어왔음에도 주변을 산책이라도 나온 태도였다.

“지금 너를 보라. 다른 중원인이야 경원시하겠지만, 외지인인 나에게는 훤히 보인다. 어리고 약한 청년이.”

“……나를 능멸하는 건가?”

“체면. 그놈의 체면이 발목을 잡는가?”

망검이 두 팔을 벌렸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로 먼저 선초를 양보하겠다는 몸짓이었다.

강호에는 두 검을 마주치는 교검(交劍)이라는 예우가 있다.

무인으로서 좋은 합을 겨루자는 시작이자 절차였다.

그렇기에 남궁명은 잠시 망설였다.

검조차 쥐지 않은 망검을 먼저 공격하는 게 본능적으로 꺼려졌다.

그때 망검이 인상을 찌푸리며 재촉했다.

“자, 여기 너를 무시하는 무적자(無籍者)가 있다! 베지 않을쏘냐!”

“……!”

저렇게 도발한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일.

남궁명이 칼을 뽑아서 나아갔다. 한 달음에 천지가 좁혀지고 코앞의 시야가 망검의 상반신을 채웠다.

그 순간이었다.

‘검인가?’

망검의 텅 비어 있던 손에 도검이 잡힌 것이 보였다.

외날이 햇빛을 받고 번뜩였다.

상단전의 심상을 바깥으로 꺼낸 도검이었다.

마음으로 닦고 의념으로 빚어 낸 도(刀).

남궁명은 지체 없이 베었다.

카앙!

청명한 마찰음이 허공을 때렸다.

충격이 두 검객을 밀어냈으나, 투쟁심은 변하지 않았다.

‘감히 안휘성에서 나에게.’

남궁명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망검을 노려보았다. 검을 자연스럽게 두 손으로 쥐었다.

창궁무애(蒼穹無涯). 그 이름에 걸맞게.

남궁명의 검이 수차례 분열하듯 움직였다. 거대한 검기의 흐름이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호오.”

마공에 잡아먹힌 줄 알았더니 근본은 남아있었나.

망검의 입가에서 감탄성이 흘렀다. 본국의 검과 결은 다르지만, 화려하고 광대한 검이었다.

그러나 겉만 번지르르해서야 진정한 검의 길에 도달했다고 볼 수 없다.

애초에 사도(邪道)로 길을 바꾼 행자가 아닌가.

망검은 진실한 마음을 심검에 담았다.

카앙, 카드드득……!

눈을 깜빡하는 사이에 세 번, 네 번의 검격이 휘둘러진다.

수많은 투쟁 끝에 몸과 정신에 새겨진 수천의 칼질은 예지에 가까워, 마공으로 부린 기교로도 희롱할 수 없다.

검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잊었다. 그리하여 망검(忘劍).

그는 한때 남궁명보다 앞선 길을 걸었던 존자(尊者)로서 말했다.

“가르쳐 주랴?”

“미친놈!”

남궁명은 되레 사나운 고함을 지르면서 망검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이 평생 익힌 가전무공에 회한을 갖지는 않았다.

그저 궁리했다.

청마가 지켜보는 한 죽이지는 못하니, 어떻게 해야 저 거만한 얼굴에 검상을 남길까.

고민하는 사이에 남궁명의 소매가 펄럭거렸다.

풍경(風經). 왜국에서 흔히 익힌다는 강체술(剛體術)이자 호신술.

망검은 팔뚝만 한 왜도를 쥐고서 현란하게 팔을 휘둘렀다.

꽈앙!

충돌과 동시에 남궁명의 입가에서 핏물이 샜다.

똑같이 검을 맞부딪쳤는데 이런 결과가 나 버린다.

‘저 검, 강호의 심검과는 다르다.’

구두룡의 망검이라고 했던가.

청마가 신원을 보증하고 데려온 자니 당연히 강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압도적이었다.

남궁명은 체면을 구기고서 허리를 폈다.

망검이 자신보다 수준 높은 고수임을 인정했다.

“……왜국에선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오?”

“신검합일. 심검. 혹은 일도일체(一刀一體).”

어느 쪽으로 부르든 무의 경지엔 별 의미가 없다는 듯.

망검은 처음으로 웃었다.

“무의 신은 이름에 까탈스럽게 굴지 않아. 다만 많이 가져갈 뿐이지.”

“…….”

그 말에 남궁명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강해지기 위해 이미 많은 것을 버렸다.

패륜이라는 도리마저 저버렸다. 마공을 얻고서 십대고수 중 말석에 자리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여기고 있었다.

한데 여기서 더 버려야 한다니?

남궁명의 얼굴을 본 망검이 청마를 흘깃 쳐다보았다.

“저자가 알려 준 것이 있겠지. 그 강함에는 나도 존중한다만, 그건 무의 길이 아니야. 만신(萬神)의 주술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면 나보고 어쩌란 거요?”

“어중간하게 중간에 있을 것이라면 둘 다 취해야지.”

망검은 왼손으로 턱수염을 쓸었다.

“그래, 강호에서는 별호가 곧 무의 이름이라고 했던가.”

“그렇소.”

“내 듣기로 검마(劍魔)란 별호는 과거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하면…… 귀신은 어떤가?”

“귀신?”

“만신의 마물이 되지 못할 것이라면 검귀(劍鬼)라도 되어야지.”

망검은 남궁명을 정면으로 보았다.

아직 앳된 얼굴에 비해 눈동자는 악귀 같은 심정이 가득하다. 자기 아비를 베고 누구보다 강해지려는 욕망이 가득한 청년이었다.

싫어하기보단 좋아하는 편이었다.

손 하나, 다리 하나를 잃더라도 어떻게든 위로 기어오르는 사내일 테니까.

언젠가 벨 맛이 날 관상이었다.

“내 보기에 자네는 귀신이 될 얼굴이야. 머지않아서. 한 줌의 머뭇거림마저 잃겠지.”

“내가 뭘 머뭇거렸단 말이오?”

“초견(初見)에서 내가 검을 들지 않았다고 망설이지 않았나.”

“…….”

“진짜 귀신이라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베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저기 있는 청마도 마찬가지겠지. 심중에 아직 무른 부분이 남아 있다는 뜻이야.”

망검은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남궁명 옆을 지나갔다.

“여독이 아직 덜 풀렸군. 쉬러가지.”

“…….”

남궁명은 망검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주먹을 꽉 쥐고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력하게 패배했다.

그 사실이 깊은 분노와 화를 일으켰다. 자기 자신을 향한 증오였다.

그때 청마가 말했다.

“서문경은 저자에게 양보하는 게 어떤가?”

“왜지?”

남궁명은 바보가 아니었다.

자기 손으로 남궁세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청마와 마교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강호라는 큰 대양에서 물을 흐리길 바란 것이다.

그럼에도 묵묵히 이해한 건 서문경과 사생결단을 내고 싶어서였다. 친우라는 관계를 버리고 적수가 되고 싶었다.

그걸 포기하라고?

남궁명의 어금니가 꽉 다물렸다.

“나는 그놈과 싸우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왜 양보해야 하지?”

“약하니까.”

“……뭐?”

“잘 생각해 봐라. 내가 왜 망검을 여기까지 데려왔을까?”

청마는 히죽 웃고서 남궁세가의 정문을 슬쩍 턱짓했다.

그곳에는…….

* * *

“모든 일은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다.”

서문경은 관인의 재산을 피해에 따라 분배한 이후 터를 살폈다.

중간에 부수고 다시 지은 병폐를 제외하면은 아주 똑바르게 지어졌다.

아니, 놀랍게도 그리 했기에 좋은 점이 있었다.

“아, 이게…… 몇 번이고 갈아엎고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이렇게 되었습니다.”

나이 많은 인부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관인이 무너뜨리고 다시 지으라고 해도 주춧돌을 뺄 순 없는 법.

그래서 몇 번이고 기초 공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다고 대충 했던 부분까지 눈에 확확 들어왔다.

서문경은 숨을 크게 고르고 기둥을 후려 찼다.

쿵!

“허억!”

엄청난 굉음에 인부가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기둥은 옆으로 조금 기울었을 뿐, 무너지거나 휘어짐이 없었다.

‘이게 전화위복인가?’

서문경의 얼굴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앞으로 마교가 정의맹의 본진까지 침투할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좋은 징조였다.

물론, 남궁세가의 모략으로 늦어지긴 했지만…… 어설프게 지어진 것보다는 훨씬 낫다.

서문경은 뒤늦게 인부의 안색을 보았다.

전전긍긍하는 것이 불호령이라도 내릴까봐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단단하게 지어져서 좋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 주십시오.”

“그, 그러면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겁니다.”

“괜찮습니다.”

“듣기로는 공자님께서 인부들에게 고향으로 잠깐 돌아가도 좋다고 들었는데…….”

“천천히 하십시오. 어차피 정의맹은 오랫동안 존속할 터이니.”

“……!”

인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오랫동안 공사 현장에 있으면서 보거나 들은 것들이 서문경의 외마디에 싹 정리되는 듯했다.

‘혹시, 정의맹은 마교가 사라지고 나서도…….’

“쉿.”

서문경은 슬쩍 눈짓하자, 인부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무림의 존재로 인해 죽거나 크게 피해를 입은 여럿 과거와 친척이 떠올랐다.

무엇이든 죽이고 지나가는 야차와 약한 자들이 어찌 한 세상 아래서 어울릴 수 있겠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랏돈을 주고 부려먹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서문경은 히죽 웃으며 인부들을 독려했다.

말로만 그러지도 않았다.

주백경과 성하민을 시켜 단 간식을 사다 뿌렸다.

그러자 인부들의 사기도 크게 올랐다.

“이제야 제대로 된 책임자가 왔구먼!”

“전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말이야, 쯧쯧. 목재를 횡령한다는 말도 많았지.”

“진척 빨리 빼고, 우리도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 가는 인부들.

서문경은 그들을 반드시 안전하게 집으로 보내 주리라 다짐했다. 고향 또한, 서문세가의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지켜 내야 했다.

‘수적 놈들을 이용하면 되겠지.’

제아무리 남궁세가라도 수로까지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했을 터.

물길에 있어서 전문가인 수로채를 따라갈 순 없다.

서문경의 발걸음이 건설 현장에서 바깥으로 향했다.

“척안룡 선배!”

“아쉬운 것이 있을 때만 선배냐?”

담정이 혀를 쯧 차며 서문경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전처럼 우습게 대할 순 없었다.

일생의 목표인 흑향을 제대로 아는 놈이자, 삼 년 전처럼 약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래. 한번 지껄여 봐라.”

“서문세가에 연락을 전달해 주십시오.”

“야, 우리가 전서구인 줄 아냐?”

“전에 했던 약속에서 제가 한 가지 더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정말이냐?”

담정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황제를 대행하는 신분인 서문경에겐 불가능한 일이 없었다.

그만큼 진지한 일이라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안휘성을 돌보아야지요.”

“네가 남궁세가보다 낫구먼.”

배를 돌아가기 위해 담정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때.

부채주가 서둘러 달려왔다.

“총채주님!”

“뭐야?”

“저희 배가. 고립되었습니다.”

“뭐?”

“왜놈들입니다. 구두룡이라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데, 마교에 속한 놈들로 보입니다.”

그 말에 담정과 서문경이 곧바로 부두를 향해 경신법을 펼쳤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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