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4)
쿵, 쿵!
수많은 발자국이 값비싼 융단에 찍혔다.
흙발이었다.
개중에는 진흙에 담구다 왔는지, 시꺼먼 발자국이 선명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인의 집으로 들어온 까닭이다.
“아니, 아, 으…….”
울상 지었던 관인이 눈을 부릅떴다.
서문경에게 붙잡힌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자기 집에 발을 들인 사람들의 얼굴이라도 기억해서 언젠가 되갚아 주리라.
그 각오는 일거에 꺾였다.
따악!
“뭔 눈을 그리 떠?”
서문경의 손바닥이 관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적당히 힘을 뺐지만, 어디까지나 무인의 기준이었다.
관인은 저도 모르게 혀를 쭉 뺐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아팠다.
“아이고, 공자님. 죽을 뻔했습니다.”
“엄살이 심하네. 네가 해 처먹다가 진짜 죽은 사람이 있을 텐데.”
“……아니, 제가 그렇게까지는.”
“이놈 눈치 보지 말고 다 챙겨 가시오!”
그 말에 눈치를 슬쩍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가죽주머니를 꺼냈다.
“뭐가 제일 비쌀까?”
“우리가 그런 걸 알아볼 수 있나! 손에 집히는 대로 가져가는 거지!”
“하하, 도둑질하는 기분이구만.”
“이 사람이. 말조심하게! 우리가 이렇게 가져가서 다들 나눠질 테니까!”
사람들의 얼굴에 있던 주름이 웃음으로 펴졌다.
남궁세가가 수문을 틀어막아서 온 흉작.
오랜 고통과 신음에서 간신히 들이마신 단물이었다. 환한 웃음이 비싼 것으로 채워진 저택에서 울렸다.
서문경은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관인에게 물었다.
“억울한가?”
“억울하지요. 제가 그리 부패했다지만, 그래도…….”
“저게 원래 당신이 해야 할 일이었던 거야.”
“……그게 어찌 쉽겠습니까?”
“어려우니까 의무이고 책무지.”
서문경은 어릴 때부터 배운 학문을 논했다.
관인이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을, 절대적인 이론을.
“나라에 피가 돌도록 하는 것은 지엄한 천자의 뜻을 받들어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는 관인의 발이요, 남궁세가 같은 호족이 한곳에 고여서 허튼 짓을 하지 않게 감시하는 눈이다.”
“…….”
“왜 이 지극히 당연한 것을 망각하고, 붙어먹다가 이렇게 된 걸까.”
한탄이 깊었다.
서문경은 관인의 얼굴에서 여전히 억울함이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묻지 않아도 뻔했다.
“혼란 속에서 나 자신과 가족이 안전하려면 많은 재물이 필요하다고 느꼈나? 아니면, 혼자라도 잘 살자?”
“아니, 나는…….”
“변명이 너무 많아. 죄과를 낱낱이 밝힐 생각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죽였을 거야.”
그 말에 관인의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뭐야, 뭐가 예뻐서 살려 둔 줄 안 거지?’
어이가 없었다. 눈치가 워낙 없으면서 욕심만 많은 것이 참, 남궁세가가 여기 둔 이유가 있었다.
관인의 두툼한 양 뺨이 세차게 떨렸다.
“저, 저 그럼…… 이걸로 죄는 조금 줄어드는 겁니까?”
“자발적으로 재물을 내놓았다고 내가 증언한다면 그러겠지.”
“공자님!”
쿵!
관인이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서 절했다.
앞으로 청렴하게 살겠다는 둥,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한 절박함이 가득했다.
물론, 하나도 믿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놈은 달라지지 않아.’
바보도 아니고 저런 빈 말을 믿겠는가?
그저 여기서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도 됐다.
오히려 웃으면 의심만 살 것이다.
“잘 협력한다면.”
“가, 감사합니다!”
관인이 이마를 땅에 대고서 외쳤다.
* * *
“서문경이 왔습니다.”
남궁명은 상석에 앉은 채 한 남자와 대화했다.
이제 막 약관이 된 외견에 왼쪽 눈 아래의 점.
청마가 눈웃음 지었다.
“기뻐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덤덤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남궁명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토록 기대했는데, 감흥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원래 그런 거야. 기약이 없을 때는 한없이 떨리고 기다려지다가, 막상 만나고 나면 확 풀리는 거지.”
“당신도 자주 겪었습니까?”
“스승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명가의 무인이 어찌 마인을 스승이라고 부릅니까.”
“자기 애비도 죽인 패륜아가 뭘 이제 와서.”
“…….”
그 말에 남궁명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자기가 모순덩어리인 건 알았지만, 막상 청마에게 지적 받으니 기분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쿠르르릉……!
마공으로 변화한 대연신공과 천뢰기로 펼친 일수(一手).
한순간 방 안이 검게 물들었다.
창궁무애검법을 방불케 하는 광대함에 마공의 난폭함이 섞였다.
청마가 입술을 씰룩였다.
“이런.”
쿠콰콰쾅!
가주실이 단숨에 터져나가며 나뭇조각이 비산했다.
한낮에 벌어진 폭음에 수많은 무인이 달려 나왔다.
그사이에 두 남자는 일합을 나누고 있었다.
타닥, 탁.
허공에 비산한 나뭇조각을 밟으며 발검하는 남궁명과, 채찍을 쥔 청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나뭇조각이 파편으로 변했다.
허공에 일렁이는 마기가 영역을 점하고서 파편을 눈이나 귀에 날리려고 안간힘썼다.
“제법 쓸 만해졌군.”
청마는 진심으로 말했다.
삼 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걸음마 수준이었던 마공이 진보하여 남궁세가의 무공과 뒤섞였으니까.
하지만 부족했다.
“서문경에겐 이기지 못하겠지만.”
“……!”
그 말에 남궁명이 기합을 내질렀다.
천뢰기의 뇌기가 기합 소리를 파묻었다.
꽈꽈광!
칼과 채찍, 파편과 파편, 직선과 곡선.
한 번의 출수에 세 번의 부딪침이 일어났다.
상승 고수만이 일으킬 수 있는 기파가 지면까지 닿았다.
“크윽…….”
“모두 내공으로 귀를 보호해라!”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가주의 경지에 전율하면서도 한탄스러웠다.
‘우리의 가전무공이 언제 저렇게 변질되었던가.’
‘당대에서 마교의 일파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구나.’
불과 한 달 전까지는 남궁명을 폐하고 다른 사람을 가주로 세우자는 말이 나왔다.
마교와 협력하는 명가란, 앞으로 오대세가의 자격을 잃게 될 테니까.
여러 장로와 고수가 나섰다. 그러나 무의미했다.
마공을 심유하게 익힌 남궁명과 청마.
둘을 넘어서질 못했다.
심지어 남궁명은 서문경과 마찬가지로 약관 이전에 엄청난 경지에 도달했으니,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충격은 곧 수용하는 단계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남궁세가의 젊은이가 그러했다.
가전무공을 정심히 익히지 못하여 마공에 관심이 쏠렸다.
자기와 비슷한 연령대의 가주가 마공으로 고수가 되었으니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쩌적, 쿵!
굉음이 상념을 끊었다.
남궁명의 검이 허공을 휘두르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풍이 청마를 향해 쇄도했다.
청마가 히죽 웃었다.
“가벼운 한 마디에 이리 폭급하게 굴어서야, 완전히 마공에 침식된 마인이 되었구나.”
“……닥쳐라.”
“계속 서문경한테 얽매여서야 다른 칠로두한테 도전조차 못할 거다.”
“그래서 이기겠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내 도움 없이?”
“그래.”
“가능할지 모르겠네.”
청마는 조금씩 약을 올리며 채찍을 휘둘렀다.
공세로 변화하지도 않았다.
남궁명의 일격을 막아 내면서 가늠하기만 했다.
서문경의 초식을 뚫어 낼 힘이 있는가.
어떻게 해야 남궁명을 더 쓸 만하게 갈아 낼 수 있을까.
수십 초가 곧 백 초를 넘어갔다. 허공에서 싸우던 것이 어느새 지상으로 이어졌다.
“……큭. 가주님, 이러다간 건물이 무너질 겁니다!”
그제야 남궁명이 검을 멈췄다.
대지에 새겨진 상처가 제법 깊었다.
청마가 몸을 비틀어 피한 검풍은 남궁세가의 전각에 부딪쳤다.
강한 돌풍이 휩쓸고 나간 것 같은 흔적.
그것을 보고도 부아가 치밀어서 청마에게 물었다.
“이 정도로도 서문경에게 부족한단 건가?”
“그래.”
“그놈이 대체 얼마나 강하다고?”
“칠로두 중 한 명을 잡았잖냐. 백야흔, 그놈은 나도 쉽지 않거든.”
“……또 그놈의 칠로두인가.”
남궁명이 시꺼멓게 물든 눈으로 청마를 노려보았다.
“내가 여기서 널 죽이면 되겠느냐?”
“하하. 녀석아. 나한테 힘을 다 빼면 서문경은 어찌 상대하려고?”
“…….”
“그래. 차분해야지.”
청마는 남궁명을 달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은 여기가 한계겠어.’
천무학관에 눈부신 재능이 많았다.
화산의 연준호가 그러했고 양무연이나 유화, 둔걸 또한 성하민에게 빛이 바랠 뿐 무척 뛰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제각기 지니고 있는 심지가 있었다. 남궁명처럼 뚫어 낼 재간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해 봤지만, 쯧. 버릴까.’
앞으로 쓸 이야기에서 좋은 과정이 되겠지만, 종착지가 되지 못할 그릇.
남궁명을 향해 청마가 말했다.
“네게 도움이 될 사람을 구해 왔다.”
“설마 그 불길한 여잔가?”
“설마 걜 데려왔겠나?”
청마는 인상을 찌푸리곤 멀리서 다가오는 남자를 가리켰다.
“인사해라. 동쪽의 구두룡에서 온 검객이시다.”
그 말에 남궁명이 고개를 돌렸다. 키가 작은 남자였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느껴졌다.
‘상단전을 한계까지 단련한 고수인가.’
칼에 베인 통증이 가슴에서 허벅지까지 내려왔다.
실제로 검을 맞댄다면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고수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망검(忘劍).”
키 작은 남자의 눈이 날카로웠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