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63화 (161/250)

새장 (3)

다음날.

서문경은 담정과 함께 정의맹을 수립하고 있는 관인을 만났다.

“서문세가의 일공자님을 여기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살과 기름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얼굴에 값이 비싼 비단.

자기가 앉은 의자 또한 자단목으로 만들어져 걸어 다니는 은원보(銀元寶)였다.

적어도 은으로 만든 말발굽 두어 개는 나올 듯했다.

‘사치를 좋아하는 성격이군. 남궁세가가 좋은 것 좀 줬으면 아가리 꽉 다물었을 놈이야.’

서문경은 팔짱을 끼었다.

의문이었다. 본가의 방계가 담당하고 있을 직무를 왜 이런 자가 맡고 있는지가.

답을 알 것 같았지만, 과신하진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본디 현령이셨다는데 흙먼지 날리는 일에 도움을 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한데…… 서문세가의 방계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도망친 거지요. 군관이 이런 행정을 어찌 알겠습니까?”

관인이 뺨을 씰룩이자, 두툼한 살이 출렁였다.

그걸 본 담정이 푸하핫 웃음을 터트리기에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직 그가 책임자인 이상, 그리고 본래 관인이었으니 예의를 지키는 것이 많았다.

아직은.

서문경은 대놓고 담정을 한차례 꾸짖었다.

“이 사람이! 귀인에게 왜 무례를 저지릅니까?”

“아니, 야. 웃기지도 않냐?”

“당장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십시오!”

그 말에 담정이 구시렁거리며 문 밖으로 나갔다.

불편하게 경직되어 있던 관인의 얼굴이 비로소 풀어졌다.

귀한 군문의 일공자가 자길 대하는 태도가 퍽 좋았던 모양.

서문경은 다시금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슬쩍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 사람이 워낙 관인의 체계를 모르는지라……”

“아니요! 괜찮습니다. 무림인이라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 저들의 목줄을 쥐고 흔들어야 할 일공자님이 고생이십니다.”

“아, 그렇지. 제가 대인께 보여 드릴 문서가 있습니다.”

“어허이. 어찌 손님이 손을 무겁게 하셨습니까? 여봐라, 안쪽 찬장에 있는 술을 내와라!”

자길 찾아오는 사람이 늘 그렇듯, 비싼 보화나 귀한 그림을 가지고 와서 청탁하는 것처럼 보였던 걸까?

관인의 뺨이 투실거렸다. 그가 품은 오해가 깊었다.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껄껄 웃었다.

“술은 꺼내오지 않으시는 게 나을 겁니다.”

“아니, 왜? 술을 못하나?”

“음주를 즐기시기엔 무거운 문서라서 말입니다.”

“아하, 관직……”

“그런 게 아니라.”

서문경은 계속 헛다리나 짚는 관인을 보고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관인의 눈빛이 제 위치를 찾아갔다.

“설마 본가에서 뭘 가지고 왔다고 날 핍박할 생각이라면…… 가볍게 따르진 않을 걸세.”

관인은 예로부터 이어진 반목을 말했다.

군관과 문관.

두 가지로 쪼개진 관직 사회에서 서로를 향해 음습한 견제를 던졌던 갈등을 말이다.

서문경은 재차 실소를 터트렸다.

“핍박이라니요. 이게 왜 핍박입니까?”

“자네의 본가가 서방의 외적을 지키듯, 우리 또한 안휘성의 평안을 지키고 있네. 하물며 지금은 정의맹을 세우고 있는 책임자 아닌가? 괜히…….”

“안휘성의 평안은 이미 뒤집어졌고. 남궁세가의 정문은 새벽마다 열린다는데.”

“그게 무슨 트집인가?”

제 발이 저렸는지, 관인이 대뜸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러나 서문경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교와 맞서 싸울 정의맹을 세울 관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뇌물을 밝히는 돼지새끼가 있구나!”

“말 다했는가?”

“아니,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

서문경은 주먹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쩌저적!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우수수 무너졌다. 예술품처럼 이리저리 광을 낸 부분이 먼지에 뒤덮였다.

관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더위 먹은 돼지처럼 숨을 헉헉 뱉어 냈다.

“이 무례는……!”

“누구에게 따지려고?”

“안휘성의 지부대인들과 도독, 남궁세가에게 직접 가서 말할 걸세!”

“그놈들이 당신의 하늘인가?”

“안휘성에서는 왕이지! 암, 하늘이고말고!”

“현령을 지냈던 놈이 어떻게 진정한 하늘을 망각하고, 딴 놈과 놀고먹고 있을 줄이야.”

서문경은 실처럼 가는 의념을 발휘했다.

품속에서 아주 귀하게 지니고 있던 문서 하나가 서서히 끌려나왔다.

관인이 속으로 생각했다.

‘보나마나 서문세가에게 협력하라는 소리겠지. 그거야 누구에게나 받아 올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실로 중대한 착각이었다.

서문경은 돌돌 말려 있던 문서를 두 손으로 잡아서 폈다.

황실에서 나왔음을 증명하는 적색의 천.

값비싼 항유에서 나온 향이 방을 가득 채우니.

“천자의 말씀이 여기에 있다.”

“어, 어어……?!”

“눈앞의 백성은 두 무릎을 꿇어, 말씀을 귀 담을 준비를 하라.”

“허어억!”

관인은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하늘의 뜻을 받아 황제가 조한다는 첫 줄.

몇 글자만 보아도 무릎이 벌벌 떨렸다.

황제가 쓰지 않으면 가문째로 불탈 문장이었다.

“소, 소인의 귀는 열려 있습니다.”

“자. 똑똑히 들으라.”

서문경은 목소리에 공력을 담아 말했다.

“여기 적힌 말씀이야말로 진짜 하늘의 명령이니까.”

안휘성의 지부대인이든 도독이든 남궁세가든 진정한 하늘에 비할 수 없다.

서문경의 시선이 잠시 남궁세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네가 정말로 새로운 하늘을 자청하고, 중원을 침탈하여 밖으로 나아가겠다면…… 죽이는 수밖에 없어.’

남궁명.

한때 같은 편이 되어 주리라 여긴 친우를 죽일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무, 무조건 협력하겠습니다!”

관인이 두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들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담정이 허허 웃기만 했다.

정말로 돼지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어이 서문경이, 밖에서 얼추 듣긴 했는데 그게 진짜 황제의 친필 칙선가?”

“못 믿겠다면…….”

“내가 수적 놈이라지만 어찌 하늘을 의심하겠냐? 괜히 반역자가 되고 싶진 않아.”

담정은 히죽 웃고는 서문경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요?”

“뭐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실종된 방계 사람을 찾으라고 시키고, 남궁세가에 왕래한 사람을 모두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저 꼴을 보면 보나마나 별생각 없이 두었을 것 같긴 한데.”

“……왕래한 사람이라.”

담정의 외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혹시 그중에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죠. 불행한 사람 만드는 걸 제일 즐거워하는 놈 아닙니까?”

“만나 봤어?”

그 말에 묘한 기백이 담겨있었다.

서문경은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고 대답했다.

“……아니요, 얼굴도 잘 모릅니다.”

“안 보는 게 나아.”

담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끌끌 웃으며 등을 보였다.

“나는 남궁세가 놈이나 조지고 있을 테니까, 할 일이나 하고 있어.”

“예.”

서문경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담정의 사연이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어차피 남 일이고 끼어들게 허락하지도 않을 듯했다.

애초에 그런 성격이라면 전생에서 도움을 청했을 테니까.

궁금증을 접고서 관인을 억지로 일으켰다.

“자, 설명이나 쭉 해 보시지요.”

“예, 예?”

“칙서는 접었으니까 그만 겁먹으시고. 정의맹을 건설하는 경과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설명이나 하란 겁니다.”

“아, 그게……”

관인의 뺨에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척 봐도 켕기는 게 산더미였다.

서문경은 대답을 듣기보다 먼저 발을 움직였다.

스윽, 탁.

한 걸음에 허공을 올랐다.

정의맹의 부지가 워낙 넓어서 삼 년 공력을 운용했지만, 하늘에서 보니 무척 가관이었다.

“허, 이런 썅.”

헛웃음이 맺혔다. 괜히 매와 사람으로 정보를 틀어막은 게 아니었다.

그러다 서문경의 눈에 건물을 때려 부수는 놈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살며시 귀를 기울이니 의아함을 느낀 인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부수래?”

“몰라. 그냥 윗분께서 마음에 안 드셨나 보지.”

“도대체 몇 번을 이러는 거람?”

“나도 그걸 알면 좋겠네. 공사가 끝나야 고향으로 돌아갈 텐데. 내가 보낸 돈이 제대로 돌아가나 모르겠네.”

“이 사람아. 우리가 괜히 비싼 돈 모아 가며 표국을 고용했을까! 어련히 일이나 하세!”

“에휴…….”

인부의 한숨이 깊었다.

부지가 워낙 넓어 다른 구역의 인부끼리 소통하는 일은 없었으나, 공사가 몇 년이 지속되면 시장에서라도 만나기 마련인 법.

인부의 의심은 점점 구체적으로 화했다.

“이게 끝나기나 할까? 그, 왜. 일부러 만들었다 부수는 것 같은…….”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네.”

“그렇…… 헉!”

인부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공에서 나타난 남자, 서문경이 대화에 끼어든 것이다.

하지만 인부들이 제자리에서 넘어진 건 중요치 않았다.

서문경은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멀리서 들으니 표국을 고용해서 고향에 보냈다던데.”

“예!”

“표국 사람이 뭐 안부나 편지라도 전해 준 게 있나?”

“있지요! 집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

그 말에 서문경은 오랜만에 혐오감을 느꼈다.

이곳으로 오면서, 그리고 담정에게 들은 것이 많았다.

각 마을마다 사람과 매를 두고 괴롭히는 남궁세가와 방관하거나 동참하는 관인들.

그들이 있는 한, 인부들의 고향이 무사할 리가 없다.

편지 내용 또한 남궁세가에서 위장시켰을 터였다.

서문경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오늘이라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는 건 어때?”

“예? 하지만.”

“자네 말대로 여기 공사가 이상하잖아.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얼굴이나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 음. 척 보니 귀하신 분 같은데…… 저희가 여기서 일하는 게 더 낫습니다.”

“왜?”

“집에서 먹는 입이 하나 줄고, 돈을 보내 주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 민생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요!”

“…….”

서문경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걸 느꼈다.

피로했다.

남궁세가가 벌이는 패악에, 이들이 뒤늦게 알아차릴 진실과 슬픔에.

이를 남궁명이 주도한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분기가 솟구쳤지만, 고함을 내지르지 못했다.

“한데…… 왜 그리 말하십니까? 이 공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인부들의 눈동자에 불안함이 올라왔다.

웬 처음 보는 남자가 공사가 이상하다느니, 고향으로 가라고 말하는 게 예삿일이 아니었으니까.

여기서 고함까지 질렀다간 기름에 불을 붙일 뿐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려거든, 청정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래서 서문경은 더더욱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질지도 몰라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한 것뿐이야.”

“……아!”

인부들이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웃었다.

당장 싸움이 벌어져도 자기가 위험하지, 고향이 위험하진 않을 테니까.

그 선한 마음이 서문경을 더욱 화나게 했다.

‘남궁명, 이 새끼…….’

자기가 품은 야망이 한 지역이 메말라 죽는 것보다 크단 말인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를 보고도 방관한 관인한테도.

서문경은 제자리에서 보신경을 펼쳐 관인에게 날아갔다.

존댓말은 중간에 버렸다.

“이봐.”

“예엣?”

“당신 집으로 가지.”

“가, 갑자기 그건 왜…… 부수지는 말아 주십시오.”

“내가 왜 부숴.”

서문경은 분노로 슬금슬금 들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떼다 팔아서, 돌려줄 사람이 있는데.”

신비한 무공사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