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61화 (159/250)

새장 (1)

“어디서 주워 왔대?”

“총표파자께서 정의맹으로 던지라고 한 놈입니다.”

“아니 이놈, 어디서 주워 왔냐니까 왜 딴소릴 해?”

담정이 은연중에 성질을 부리자 녹림의 고수, 대호채주가 퉁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 다 아시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도 안 좋은 버릇이십니다.”

“내가?”

“예.”

“너희 대장이 그러디?”

“알고 있을 테니까 괜히 말려들지 말라고 합디다.”

“아…… 그러셔?”

담정은 녹림의 총채주인 백담을 떠올렸다.

문사처럼 허연 피부에 음험한 생각이 가득한 놈.

거기다 누군가에게 잃은 눈을 의안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동종업계의 가장 큰 경쟁자니까.

하지만 그놈의 심계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다 무너져 가는 녹림을, 그것도 전대 총표파자를 죽였음에도 고스란히 물려받아 키운 놈이기에.

……또, 그놈 말이 맞았다.

담정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래. 대충 안다. 관도 어디서 숨어 있던 쓰레기겠지.”

“역시 다 아시면서 물어보시기는.”

대호채주가 히죽 웃자, 담정이 인상을 찡그렸다.

“뭘 처웃어. 정들어.”

“도와주실 거죠?”

“너네 총표파자가 이러라고 시키디?”

“잡고 나니까 육로로 다니지 말고, 수로채에 부탁하라고 했는데…… 와, 여기서 총채주님을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모르긴 뭘 몰라, 눈깔이 삔 게 아니고서야 내가 어딨는지 다 파악하고 있을 거면서.’

담정은 대호채주가 업은 놈을 유심히 보았다.

전에 마주쳤던 남궁세가 놈이 그렇듯, 헤진 옷에 녹색 건까지 쓰고 있어 명가의 무인답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땐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짼 달랐다.

담정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확신하고 있긴 했는데, 역시 이놈들. 너희를 사칭하고 있던 거냐?”

“……예.”

“너희도 참 억울하겠다.”

담정이 히죽 웃었다.

“서문세가의 군관이 그러던데 안휘성에서 벌어진 일이 모두 녹림이 벌인 짓이라고 하더라. 남궁세가랑 짝짝꿍해서 된 걸 거야. 그지?”

“총채주도 알겠지만, 우리가 도적놈 새끼라도 흉작인 집안에다가 불을 싸지르고 곡식을 훔치진 않소이다.”

대호채주가 팔짱을 꼈다.

불만이 얼굴에 그득해서 눈동자로 화살이라도 쏠 것 같았다.

담정은 그게 우스워서 끌끌 웃었다.

참으로 못 볼 꼴이었다.

“도적놈 새끼가 뭔 최소한 선이니 명예니 주절거리는 게 우습지도 않냐?”

“……쯧. 아무리 그래도.”

“뭘 아무리 그래도야, 내가 너희 총표파자를 아는데 녹림에 도움이 됐으면 마교라도 투신했을 놈이야. 그러지 않은 건 마교가 천하의 쌍놈들이라 투신한 가문을 방패막이나 산 제물로 써서 그런 거지.”

“…….”

대호채주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자기가 아는 총표파자라면 녹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테니까.

그 모습을 본 담정이 시선을 동쪽으로 향했다.

저도 모르게 혀를 쯧쯧 찼다.

“그 당연한 사실을 도적놈 새끼도 아는데, 어쩌다가 명가의 어린 가주가 후레자식처럼 행동할꼬.”

남궁세가.

한때 안휘성의 명가이자 관인과 두루두루 친하여 오랜 성세를 유지한 호족의 역사가 끝을 맞이하는 듯했다.

담정은 이를 안타깝게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어차피 남 일이고 명가가 한둘쯤 더 망해야 마교가 개새끼라는 걸 알 테니까.

“우리는 밤에 움직인다.”

“예!”

수적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

선착장에 갑자기 나타난 선박에 몇 어부가 웅성거렸다.

“이게 뭐지?”

“이 자린 고목나무 부락 자리 아닌감? 이상허다……?”

그들이 자리 주인을 찾아가려는 찰나에 성격 좋은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고목나무 부락 출신답게 아는 것이 많았고, 큰어른의 함자와 나이까지 상세히 알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많았다.

어부들은 청년이 자기 아버지 배를 몰래 가져다가 놀려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젊은 치기에 벌일 수 있는 일이라고 시시덕거렸다.

청년은 어부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실눈을 떴다.

“이제 나오십시오.”

그 말에 척안룡이 배에서 기지개를 펴며 나왔다.

“아이 거 썅, 배 좀 대놓겠다는데 귀찮게 구는 놈이 있네.”

“세상이 워낙 그렇지 않습니까?”

“저건 그냥 오지랖이 넓은 거야.”

“……저, 이번 일은.”

“알아. 며칠 있다가 사람 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옙!”

청년이 척안룡에게 극진한 예를 표하곤 자리를 떠났다.

수로채의 또 다른 가족이자 도우미.

지역 토박이와는 늘 관계를 유지했다.

그 편이 지금처럼 곤란한 곳에 배를 대거나 몸을 피할 때 큰 도움이 되곤 했으니까.

‘슬슬 약을 더 쳐 놔야겠지. 저놈 말따마나 세상이 워낙 X 같으니까.’

세상 타령한 이유도 돈이나 더 달라는 뜻이렷다.

척안룡은 땅에 가래침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석 냥에 떨이요! 자, 자, 다들 사 가시오!”

“싸다 싸!”

활기가 넘치는 시장.

옥수수 찌는 냄새와 빨간 염료로 칠한 단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는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흉년으로 고통 받는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담정의 직감은 여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시장 곳곳에 칼잡이인가.’

담정은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이곳의 사정이 나쁜 건 아니었다. 다른 곳처럼 굶주리는 상황이었다면 이런 풍경이 나올 리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남궁세가가 통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집단이 있었다.

“자, 자, 일하러 가세!”

“일당은 허튼 데 쓰지 말고…….”

“알아. 누이 시집에 보태자는 거잖아.”

활기찬 시장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어딘가로 향하는 행렬.

담정은 그들을 조용히 뒤따라갔다.

뭐 하는 놈들이기에 남궁세가에게 통제 받지 않는 건지 궁금했다.

답은 간단했다.

“……정의맹?”

일이 년에 걸쳐 쌓아 올리고 있는 전각들.

건물 짓는 자재와 인부가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혀, 누구 하나 놀지 않고 성실히 일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긍정적으로 봤을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노력이란 깊은 감명을 주기 마련이니까.

하나 조금 전 시장의 꼴을 보고 나니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거 상황이 깨나 복잡하게 돌아가는데…….’

담정은 보고 들은 것을 단순히 간추렸다.

안휘성을 처막고 있는 남궁세가.

그 안에 자리한 바깥 세력, 정의맹.

자칫 잘못하면 정의맹이 세워지기도 전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녹림이 당한 것처럼, 관인의 부패를 정의맹으로 연결 짓도록 만들 가능성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의맹에 있는 사람들이 안휘성 사정을 잘 모른다는 거지.’

위화감이 들었다. 정의맹의 사람이 바보 병신도 아니고 바깥 사람과 소통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담정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작은 새 사이사이 자리한 매가 눈알을 번뜩이고 있었다.

사람 많은 곳에 얼씬도 하지 않는 매가 저리 많은 건 특이한 일이었다.

담정은 옛 일을 떠올렸다.

‘사람을 의심하지 말고, 상황을 의심하라고 했지.’

명가의 가르침이었다.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영락한 가문이었으나 담정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방책을 서서히 구체화하던 그때.

“산도적 놈이 문제야.”

“요즘 마교보다 녹림이 더 문제라니까! 어떻게 동향 사람끼리 그리 잔인하게 굴 수 있는지. 쯧!”

구슬땀 흘리던 인부 몇몇이서 녹림을 욕하기 시작했다.

담정을 따라서 온 대호채주가 이를 뿌득 갈았다.

소매를 걷어붙이는 꼴을 보니 인부에게 다가갈 기세였다.

담정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그쯤 멈춰.”

“아니, 저것들이…….”

“대가리에 근육만 가득 찼나. 주위 안 살펴?”

담정의 꾸짖음에 대호채주가 전각이 지어지고 있는 그늘을 슬쩍 살폈다.

과연, 그 말대로 몇몇 아이가 흘깃거리고 있었다.

“……!”

“괜히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지 마. 어린 것들은 누구 아들이라고 하면 대개 넘어가니까.”

어린애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뿐더러, 가정사가 다난한 인부가 많을 테니까.

담정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얄팍하고 저급한 짓거리야.”

“총표파자도 이런 짓은 안 할 겁니다.”

“아니, 너흰 할 걸?”

“……쯥.”

대호채주가 차마 변명하지 못하고 혀를 차는 가운데, 담정은 이곳에 없는 사람을 떠올렸다.

서문경.

정의맹을 세우자고 입안했을 장본인.

‘자기 집구석이 이따구인데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거, 총채주님. 우리가 데려온 남궁세가 놈은……”

“조금만 기다리자고. 아니, 지금은 도망쳐야겠네.”

담정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인들의 기감에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배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할까?”

* * *

안휘성이 굶주릴수록 남궁세가의 곳간은 커졌다.

어디선가 가져오는 물자에 출처는 없었다. 묻는 것조차 엄금했다.

새벽마다 들어오는 마차의 바퀴에 잔뜩 기름칠하고 부드러운 것을 덧댔다.

그들은 늘 소리 없이 움직였으나, 남궁세가 내부에서 기름 냄새가 풍겼다.

남궁세가와 이웃하는 자들은 저마다 입을 다물었다.

보화와 식량을 적잖이 주는 까닭이다.

“큰일이로다.”

곳간을 바라보던 남자 하나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의 왼손에 횃불이 들려 있었다.

“언제부터 남궁세가가 명가의 무게를 잊었는지.”

남자는 당연한 것을 논했다.

“누군가는 흉작 때문에 굶어 죽어 가는데 곡식과 과실이 곳간에 가득하여 썩어 가니, 지역의 권문세가인 남궁이 의무를 잊었구나!”

지역에서 존경을 받는 가문이란, 의무를 지니기 마련이다.

힘만 있어서는 안 된다.

지역에 베풀고 상생하는 배포를 보여야 경의가 뒤따라온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언젠가 목을 붙잡힌다. 자기 멋대로 힘을 쓴 만큼 업보가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보게.”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무인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목소리를 낼 용기가 없었다.

가주는 뜻을 정했다.

마교와 뜻을 합하여 새로운 하늘이 되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남궁세가의 검단이 양민을 핍박하고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던가?”

“……조용하게.”

“명가의 검이라는 것이 그리 하찮나? 백정의 검이던가?”

그 말에 무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딴 말을 한 저의가 무엇이냐! 이름을 대라!”

“너한테 댈 이름은 없다.”

남자가 들고 있던 횃불을 곳간에 던졌다.

화르륵!

삽시간에 커진 불길이 곳간 외벽을 덮었다. 남자의 등 뒤로 시뻘건 파도가 일렁였다.

이를 본 무인이 칼을 뽑았다.

“네놈! 죽고 싶은 것이냐!”

“그럴 리가.”

차가운 비웃음을 머금은 남자, 주백경이 무영보를 펼쳤다.

화마 사이에 일렁이던 주백경의 그림자가 일순 사라졌다.

* * *

“좋아.”

남궁세가의 담벼락 너머에서 불길을 확인한 서문경이 휘파람을 불었다.

주백경을 시켜 곳간을 불태웠으니, 무언가 반응이 나올 터.

경신법을 펼쳐 정의맹 입구에 도착하자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

“반갑지 않아?”

남궁명이었다.

키가 한 뼘 더 커진 것을 제외하면 천무학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서문경은 한때 친우로 여겼던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서늘한 표정을 드러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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