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맹으로 (6)
“조심해, 남궁세가의 칠검단장이야!”
“어.”
연준호의 말에 서문경은 대충 대답했다.
사실, 저런 자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자기가 직접 생각할 줄 모르고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사람은 언젠가 큰 사고를 치니까.
하물며 그것이 관아에 진을 치고 있는 놈들이라면, 하는 짓이 뻔하다.
고수든 하수든 역겨울 뿐이었다.
“발버둥은 쳐 봐라.”
“……뭐?”
“그러지 않으면 무인답게 죽진 못할 테니까.”
서문경의 신형이 허공을 격했다.
운룡대팔식의 행로에 따라 검이 뒤따라 움직였다.
칼날에 햇빛과 검광이 뒤섞여 번뜩인다.
“……!”
칠검단장이 눈썹을 들썩였다.
강맹한 검기가 공간을 크게 점했다.
서문경이 제아무리 공간을 접듯 움직여도 남궁세가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 생각했었다.
“하나.”
서문경이 짧게 중얼거렸다.
검광이 햇빛을 갈랐다.
오른손의 궤적은 눈으로 좇기조차 버거웠다.
극쾌(極快)는 곧 필살(必殺).
이름조차 잊힌 옛 검객이 말했다는 진리다.
어느 감각으로도 좇지 못하는 검이 있다면 반드시 베일 수밖에 없었다.
칠검단장은 그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체득했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관아에 울렸다. 뒤이어 고통이 들이닥쳤다.
“으아악!”
체면은 완전히 잊었다.
칠검단장의 시야에 잘려 나간 왼손이 뒤늦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격이 다르다.
천무검왕 서문경에 관한 풍문이 오히려 사실보다 부족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
“둘.”
무감정한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서문경은 자신을 맞서 싸울 적수로 보는 게 아니라, 토벌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칠검단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끄으으…… 아아악!”
지혈할 내력조차 남기지 않고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창궁무애검.
광대하고 강맹한 검강이 칼날에 어렸다.
연준호의 검기처럼 화려하지도, 서문경의 일격처럼 극쾌에 가깝지도 않았다.
그저 거대한 벽처럼 자리한 채 내리찍히는 중검이자 광검.
“받아 내지 않고서는…… 안 될 거다!”
칠검단장은 피에 젖은 미소를 머금었다.
제아무리 서문경이 날고 기어도 내력 싸움으로 가면 승기를 점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마저도 착각이었다.
끼긱…….
검강이 깎이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선 손목이 꺾이고 기혈이 뒤틀렸다.
전력을 다하고도 적을 짓누르지 못해 생긴 몸의 뒤틀림.
그것이 근육부터 시작하여 대맥까지 치달았다.
폐부에서 터진 선홍색 울혈이 울컥거렸다.
“뭐, 이……”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나?”
서문경의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휘두르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 하는 검.
그것이 전장에서 활약하는 서문세가의 가전무공이 갖추어야 할 기본이었다.
스걱!
칠검단장의 칼날을 비스듬하게 긁어내린 일격이 허벅지를 양단했다.
“아아악!”
칠검단장은 고수로서 갖추고 있던 체통마저 잃었다.
왼팔과 한쪽 다리를 잃고 극심한 내상에 시달린 채 비명을 내질렀다.
서문경의 공세를 받아치는 것은 물론이요, 앞으로 무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했다.
그럼에도 서문경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셋.”
“아, 안 돼!”
칠검단장의 처참한 절규에도 서문경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일검에 하나씩.
서문경의 검이 사지를 베고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붙을 만한 상처가 아니라, 완전히 불구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가득했다.
“…….”
이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연준호는 압도되는 듯했다.
도저히, 천무학관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우답지 않았다.
‘이게 경이의 진면목인가?’
서문경이 화산에서 백야흔과 싸우는 것을 보았었다.
강하지만, 무공을 갈고 닦은 무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대단히 차갑구나…….’
전장에서 마주했다면 저런 광경이었을까.
연준호는 서문경이 칠검단장의 사지를 찢고 단전을 폐하는 것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보기가 무척 힘겨웠으나, 억지로 버텼다.
‘나도 이제 우유부단함을 버려야겠지.’
연준호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자리했다.
햇볕을 받는 벼가 잠시 고개를 숙이듯, 한 청년이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 * *
“정말로 우물이 말라 있다니.”
서문경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주백경이 건네준 지도를 펼쳤다.
나라의 갑급 기밀에 해당하는 농수지도(農水地圖).
웬만하면 이런 식으로 휴대하고 다닐 순 없었으나, 황제께 권한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흐음…… 역시.”
“공자님, 씨앗이 잘못된 것이 맞지요? 그놈의 씨앗이 물을 다 빨아먹어서…….”
촌장이라고 나온 노인이 연신 고개를 굽실거렸다.
하지만 서문경이 보기에 그렇지 않았다.
“아니요. 씨앗에 뭔 짓을 해도 물을 많이 빨아들이는 일은 없지요.”
“예? 하지만 관아에서 준 씨앗을 심고 나서…….”
“자기 집안의 씨앗을 쓴 집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들도 농사 망친 건 똑같았을 텐데요.”
“……크흠, 흠.”
촌장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에서 조금 배웠다고 한들 글자나 떼면 다행일 테니까.
서문경은 손가락으로 지도 몇 곳을 가리켰다.
“여긴 어르신도 아시는 곳이지요?”
“예. 수문(水門)이 있는 자리잖습니까.”
“가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게…… 그럴 여유가 나질 않아서……”
가뜩이나 물이 없는데 무슨 호기로 백릿길을 자청하겠나.
촌장의 말에 서문경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갔으면 죽었을 곳이니, 그나마 낫지요.”
“예?”
“관아가 저 꼴인데 수문은 어떻게 해 놨겠습니까.”
“아…….”
그 말에 무언가 떠오른 게 있다는 듯, 촌장이 분노에 찬 얼굴로 여러 말을 쏟아 냈다.
남궁세가의 곳간이 커지고 있다는 낭설과 일하기 위해 정의맹으로 떠난 사람이 많다는 점.
정의맹으로 간 사람 모두가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까지.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주백경과 성하민을 쳐다보았다.
“여기 오면서 본 사람이 대부분 어땠지?”
“합비에 지어진다는 정의맹으로 가는 행렬이었습니다.”
“그 외엔 별로 없었던 것 같네.”
몸뚱이가 곯아 있는 외견에서 빈민에 가까웠는데, 설마 이런 속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서문경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 사람들은 이런 일을 이야기하지 않은 거지?”
“아마 공자님의 행색을 보고 남궁세가의 무인으로 오인한 게 아닐까 합니다.”
촌장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같은 무지렁이는 무림인을 구분할 눈이나 식견이 부족하여 괜히 남궁세가의 무인을 오인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
뒷말은 묻지 않아도 알았다.
관아에 가서 이 짓을 해 놓은 놈들이 지나가는 양민이라고 가만히 두진 않았을 테니까.
서문경은 애통한 얼굴로 괜한 땅을 노려보았다.
“남궁명, 그놈이 대체 왜……”
“나도 모르겠네. 천무학관 이후로 연락이 뜸했으니까.”
연준호가 오른손을 힘겹게 들었다.
“그것보다, 하늘을 보지 않겠나?”
“뭐?”
“매가 너무 많이 날아다녀서…… 나만 그리 생각하나 했거든.”
그 말에 서문경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한참 이삭을 주워 먹고 다닐 작은 새보다 덩치 큰 매와 독수리가 수두룩하게 많았다.
-……공자님.
주백경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군부(軍部)의 치부가 될지도 모른다.
상황을 소상히 알아본 뒤 꺼내자는 신호였으나, 서문경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뭐야, 주 무사답지 않게. 이런 건 우리가 상처를 입어서라도 화살촉을 째 내야지.
-황제께서 내린 칙서가 무효될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제갈세가에서 칙서 하나 꺼낸 걸로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않았나.
무당파나 신창양가, 개방도 이걸로 완전히 무릎 꿇리겠지만, 양민의 곤궁하고 어려움을 무시해서야 군관이라고 할 수 없었다.
서문경은 죄를 고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궁세가에 높은 지위의 군문(軍門)이 붙었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인가?”
“저건…… 전서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무기거든.”
“뭐?”
연준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서문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여상스러웠다.
“다리나 입, 뭐든 간에 묶여 있는 새를 보면 떼로 공격해서 죽이는 훈련을 시킨 거야. 규모로 봐선 연 단위로 준비를 해 놓은 거겠지. 저 새들을 위한 곳간도 안휘성에 퍼져 있을 거고.”
“그, 그게 가능한 일인가?”
“전서구도 그럼 불가능해야지.”
“……허.”
“사람은 남궁세가의 무인을 풀어서 안휘성을 나가려는 사람을 무작위로 죽이거나 했겠지.”
서문경의 시선이 사지가 모두 잘린 칠검단장과 무인들에게 향했다.
“그렇지?”
“…….”
“말하지 않으면 저 사람처럼 불구가 되는 거야.”
“허, 허억…….”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면서 쩔쩔 맸다.
특히 사지가 잘린 칠검단장을 향해 죄의식 가득한 시선이었다.
‘머지않아 불겠군.’
서문경은 더욱 강한 기세로 무인들을 노려보았다.
* * *
“정지, 정지!”
“뭐야 X발?”
척안룡 담정은 자기 배를 멈춰 세우는 한 무리의 무인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같이 좀 얻어 탑시다!”
“땅 놈들이 배를 탈 수나 있나?”
“아, 진짜. 너무 그리 무시하지 마십시다! 동종 사람인데!”
“새끼들. 웃기네.”
담정은 부채주에게 말해 서둘러 사다리를 내렸다.
저벅, 저벅.
녹림의 고수들이 한 놈을 업고서 배에 탔다.
척 보기에 남궁세가 놈처럼 보였다.
신비한 무공사전